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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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신 휴대전화로 음악을 듣고, 홍보는 요란했지만 결말을 빤한 스릴러물을 읽는다. 그런 다음 뒷문 앞에 서서 잡초가 우거진 뒤뜰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운다. (p.34) "

 

 이 문장이 처음에는 유쾌하게 웃겼는데, 책을 다 읽고나니 자조적으로 느껴졌다. 어디가 문제일까 좀 생각해봤다. 어딘가에 이 책을 아쉽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데 이것 때문이라고 딱 집을 수는 없지만 뭔가 있었다. 공포소설이라고 이름 붙이면 되려나,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비현실성과 모호함이 '애니가 돌아왔다'를 아쉽게 만들었다.

 

 이런 류의 책들이 그렇듯 핵심적인 사건을 손에 쥐고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독자의 관심을 끌고 긴장감을 높일 수 있는 밀당같이 중요한 요소이긴한데 한 450 페이지 정도 되는 적지 않은 분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엔 반복적이고 지루하다. 줄리아와 벤이 살았던 집에서 느껴지는 오싹하고 기분 나쁜 느낌에 대한 묘사나 과거의 사건을 알듯말듯 묘사만하다가 마는 부분들만 걷어내도 300페이지 정도 분량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랬다면 꽉 준 손을 펼쳤을 때 나온 게 별다른 사건이 아니더라도 좀 덜 실망하고 좀 더 속도감있게 전개됐다는 장점을 얻었을거다.

 

 과거와 현재를 한 사건을 중심으로 오가지만 그 사건이 무엇이고, 어땠는지에 대한 전개와 묘사가 아쉬웠다. 글이 아닌 영상물로 만들어졌다면 이 비현실성이 그리고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장소나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애니가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다는 걸까. 그 장소가 보여지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뭘까. 그 장소에서 애니가 무엇으로 변해서 돌아온 것일까. 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책을 읽어도 답을 찾을 수 없어 차라리 설명이 요구되는 설정들을 단지 보여주는 것만으로 대부분 생략할 수 있는 영상물로 제작되었더라면 더 나았겠다 싶었다.

 

 워낙 잔인한 컨텐츠와 현실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던 탓인지 '애니가 돌아왔다'는 딱정벌레들이 우글거리는 장면 말고는 평범했다. 돌아온 아이들이 전과 다르게 이상해져서 냄새가 나고, 기괴한 행동을 하는 건 그냥 애들이 좀비가 된건가 아니면 귀신이라도 씌였나 싶어진다. 해골이 쌓여있는 장소도 눈이 하나 빠진 인형도 낮에 보면 햇빛에 가려 오히려 간밤의 무서웠던 점들이 안보이게 되는 것처럼(203) 금방 그러려니 하는데, 벌레들은 밤이나 낮이나 징그럽다. 수많은 벌레들이 우글우글 달려들다니, 바퀴벌레가 떠오르면서 이 책에서 가장 혐오스럽고 강렬한 장면이다.

 

 거기에 작가가 좋아하는 인물 설정인가 싶은 친구들 구성도 관계성이 약했다. 과거 친구- 라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무리였던 다섯명은 스티븐이 닉과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크리스와 조를 무리로 끌어들인 건 아무리 그들이 유용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애매했다.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커플이 속해있는 그룹은 크리스와 조같은 부류를 이용하고 갈취하고 무시하고 폭력을 쓸 수 있지만 의견을 들어주고 함께 다니지 않는다. 굳이 친구처럼 보이게 그들을 엮어놓았을 필요가 있었을까. 차라리 더 수직적이고 폭력적인 관계로 드러냈다면 더 납득이 쉬웠을 것 같다.

 

 다만 주인공 조 손은 독특하다. 과거 그의 어린시절을 보면 미국 틴무비같은 데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찌질이다. 운동을 좋아하거나 대단히 똑똑하지 않다. 대신 조용하고 학교에서 가장 예쁜 여학생을 좋아하지만 말 걸 용기도 없다. 제일 편한 놀이 상대는 나이차 나는 여동생인, 하지만 그 사실을 드러내기는 부끄러워하는.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온 조 손의 모습은 다른 사람같다. 도박으로 인생을 망친 밑바닥 인생을 살고 거짓말을 숨쉬듯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고 두려워하면서도 두려움 없이 무모해보인다.

 

 조가 인생의 밑바닥까지 치고 온 주인공이라 성깔도 있고 시니컬한 농담을 던지고 툭하면 남한테 시비나 털리는 입을 가진 캐릭터라 재밌었다. 본인은 문제를 피해가고 싶다면서 지나가는 사람도 돌아와서 한 대 치고 싶게 만드는 말재주를 가진게 좋다. 그리고 그래서 엮인 팻맨과의 사건이 '애니가 돌아왔다' 중에서는 의외로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안힐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들, 거기에 얽힌 사람들은 베스 말고는 대부분 별론데, 별일 아닌듯 심어놓은 노름빚이라는 장치와 거기에 얽힌 인물들이 이 책에 무작정 실망하지만은 않도록 해준다.

 

 여름이 너무 더워서 이 정도로는 더위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차라리 애니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평범한 스릴러물이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혹은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장점이 더 극대화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왜 자꾸 영상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싶었는데 글을 읽고 어떤 장면이 될지 바로 구체화해서 떠올릴 수 있었다. 마치 본 것처럼. 독자가 그럴 수 있도록 만드는 묘사는 좋았던 것 같다. 언젠가 '애니가 돌아왔다'를 영화관에서 영화로 만나 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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