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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확실히 계속 그 다음장을 향해 손이 넘어가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비밀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나중에는 어떤 식으로 끝날지 궁금해서 계속 읽게된다. 사건이 12년 전 여자친구의 실종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은 과거와 현재를 바쁘게 오가며 주인공인 핀의 숨을 조여오는 전개는 꽤 흥미롭다. 핀이 숨기고 있는 12년 전 실종사건의 비밀, 여전히 발견되지 않은 실종된 여자친구 레일라, 레일라의 언니이자 핀의 새 여자친구 엘런의 복잡한 관계도 모두를 의심하게 만드는데에 한몫을 한다. 간단한 소개글에 "네가 망가져버렸으면 좋겠어. 내가 원하는 대로 다시 조립할 수 있게." 라는 문구를 본 뒤로 '브링 미 백'이 눈에 띌 때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에프엑스의 피노키오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따라따라따따따 짜릿짜릿 할꺼다 궁금투성이의 너 딱 꼼짝마라너 조각조각 따따따 부셔보고 따따따 맘에 들게 널 다시 조립할거야' 갑자기 왜 이 노래가 튀어나오나 싶겠지만 여기서 이걸 본 사람들도 아마 흥얼거리게 될거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넉넉한 시간대를 잡아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지만 중간부터는 아쉬운 점이 좀 생겨났다. 핀과 엘런에게 레일라의 실마리를 가지고 협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 많은 부분을 드러내놓은건 아닌지 싶었다. 특히 자매의 어린시절에 대한 부분에서는 거의 대놓고 숨겨진 비밀이 뭔지 알려주는 부분이라 읽는 입장에서는 더이상 혹시나 하고 망설이는 일이 없어졌다. 거기에 마트료시카의 역할은 상징적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섬찟한 느낌을 주는 소재로 이용한 것 같아 진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러시아의 전통인형이긴한데 생김새나 특징이 때에 따라서는 괜히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면이 있는 점이 '엄마가 섬그늘에-'하는 동요가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나올때 괜히 무섭게 들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섬집아기가 거의 클리셰처럼 쓰이듯이 안에 여러 크기의 인형들이 잔뜩 채워져있는 마트료시카도 전형적인 상징성을 보여준다.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레일라와 엘런의 과거를 보면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너무나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그녀들이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핀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핀 역시도 큰 틀에서 보면 과연 레일라를 " 진심으로 사랑했 "던 것이 맞나 싶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엘런을 레일라 대신 만난 것은 분명하지만 핀이 사랑했다고 하는 레일라의 육감적인 몸매, 빨간 머리카락, 녹색이 섞인 갈색 눈동자 같은 것들 말고 그녀의 본질을 바라보았던 건지 궁금하다. 시종일관 핀과 레일라, 엘런이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고 사랑했기 때문에 생겨난 일들이라고 표현되었지만 사랑보다는 굴절된 상처, 고통, 욕망 같은 것들에 더 가깝게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가을방학의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를 떠올린다. '너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었어' 하는 가사를.
재밌는 점은 지나고보면 다들 분명하게 레일라 혹은 레일라의 납치범을 두고 미친사람이라고 단언한다는 것이다. 핀과 엘런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어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특히 루비가 바로 제정신 아닌 사람이라고 하는 부분이 뜻밖에 일반적 반응이라 소설 안에서 갑자기 현실로 확 돌아오게 된다. 핀의 시점에서 누가 무슨 의도로 레일라의 흔적을 남겨두며 접근하는 건지 한참 궁금해하다가 왜 핀은 주변에 알려서 도움받을 생각을 안하고 혼자 나서는 것인가 하고 거리를 두고 읽게 된다. 알고보니 핀의 마음에 걸리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알고보면 가장 평범하고 정상적인 인물이었던 루비를 사건과 엮는 내용이 많은데 오히려 루비보다 문제 많은 세명의 주요 인물들을 제외하고서 핀의 친한 형 래리가 더 이상해보였다. 핀이 가진 이상 행동들을 " 무슨 일이야, 인마? " 같은 말로 발벗고 나서서 해결해줄 수 있는걸까. 레일라는 탐탁치 않아하고 엘런은 받아들였다는 것도 찜찜한데 루비와 여행을 떠났다는 것도 의아한 조합이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조금 끼워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남은 듯해서 아쉬웠다. 소재도 파격적이라기 보다는 이정도면 흔하지 않은가 싶고. 다만 계속 궁금하게 남는 것이, 만나는 사람이 갑자기 실종되어 버렸다면 혹은 더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다면 그 사람과 닮은 형제자매와 사랑에 빠지거나 대신해서 만나고 싶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비슷한 타입을 또 찾을 필요가 있을까, 찾더라도 같은 사람이 아니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싶은데 '너 말고 니 언니' 처럼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한사람의 취향이 소나무라 같이 자라고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형제자매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과 같은 성장배경으로 취향도 비슷해서 둘이 한 사람을 똑같이 좋아하게 되는 일 역시 삼각관계의 전통적 공식 중 하나긴 하지만, 실종된 상대 대신 이라는 설정이 쉽게 이해가능한 범위인지 역시나 핀도 제정신 아닌 면이 있어서였는지 모르겠다.
이쯤되면 '조각조각 따따따' 하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조각나는건 네가 아니라 나의 입장이었고, '너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게 과연 사랑 때문이란 말인가, 이게 사랑이냐 하고 묻고싶은 내용이었다. 뒤로 갈수록 아쉽지만 초반에 놓아둔 여러 설정들이 중반까지는 재밌게 이어지므로 여름을 맞아 읽어볼만한 스릴러 물이다. 브링 미 백을 읽고나니 어쩐지 여름엔 러시아로 휴가를 떠나고 싶어진다. 마트료시카를 기념품으로 사오고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