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스피드
김봉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왜 이 책이었을까. 어디선가 지난해 가장 인기있었던 소설 순위에 올라 있는 것을 봤었던가, 아니면 누군가 동성애를 다룬 소설들 목록을 만들어놓은 것에서 봤었던가. 짐작컨데 전자에 가까울 것이고, 그 뒤로는 어디서 봤다 기억해둔 것인지 잊어버린 채 바닷가에서 수영이나 하는 장면이 있는 소설집인가 하고 집어든 것 같다. 표지가 그렇길래. 그런데 막상 책을 들고 볼일을 보러 나가는 지하철에서 펼쳐 들고 읽기 시작하자 어라, 옆사람의 시선이 좀 신경쓰이는 내용이었다. 귀여운 개불이나 러브주스, 환장하것네, 이거 내거지, 박타는 얘기는 웃기긴한데 아무래도 혼자 있을 때 웃고 싶은 부류라. 찾아보니 2018 교보문고에서 진행한 올해의 소설 1위라는 차트에서 봤나보다.

 

 동성애. 동성애자.가 있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다만 이것이 트렌디함이 된 것은 어딘가 물린다. 오늘 보고 온 공연이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내용인데 의사 역으로 흑인배우가 분하여 공연하는 것을 보며 여러 명도 아니고 단 한 명의 존재가 보란듯이 포함되어 있는 상황이 영 떨떠름했다. 대관절 피씨하다는 것이 뭐길래. 그동안 소설 안에서 동성애자의 존재가 보통 친구의 위치에 있었다면 이제 화자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요즘을 반영하기 위한 도구에서 주체가 되어버린다. 한참 요란한 '~자이툰 파스타'나 '우럭 한 점~' 같은 소설 뿐 아니라 '여름, 스피드'를 채운 것도 동성애다. 이것은 필연적인 등장일까 흐름의 큰 너울일까.   

 

 작가가 커밍아웃한 줄은 모르고 너무 현실적인 것 같아 읽으면서 이건 찐이다, 찐. 하고 생각했었다. 찐이라서 찐내가 풀풀 난 것을. 덩치 있는 타입을 선호하는 것도 일관된 취향으로 몇 편에 걸쳐 나오는데 말로만 듣고 설마했던 취향의 문제라는게 정말이었단 말인가 싶었다. 그 밖에도 어플이나 다니는 동네 길목, 모텔 방 구하기 같은 디테일이 흥미로웠다. 그렇다더니 그런가보네, 하고. 어찌보면 내가 모르는 타인들의 삶과 연애라 낯설수도 있겠지만 읽다보면 문학의 테두리 안에서 보여질 수 있는 현실성을 구현했나보다 싶은 정도다. 언젠가 아마 결혼한 게이의 이야기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다만 이성애고 동성애고 인기없는 사람의 연애는 참으로 고달프고나 싶은 구질하고 짜잔한 단편들이 이어져서 조금 울적했다. 나는 동성애자고 절연했고 벽장속에 있고 세상 혼자고 스트레이트를 사랑해버렸고, 뭐 이런 내용의 청승이 아니라는 점은 괜찮았는데 박만 타지말고 연애 좀 해라 싶으면 유야무야 끝나버리고, 간만 보지말고 뭣 좀 해봐라 싶으면 아무것도 없이 끝나는 통에 인생 여러모로 쉽지 않구만 하고 덮어지는 요즘의 소설들과 비슷했다. 하긴, 남자도 잘꼬시고 연애도 잘하고 섹스도 잘하는 꽃밭같은 내용만 있다면 그건 야설이 되지 소설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연이나 시련없는 소설은 못 본 것 같다.

 

 전체적으로 좋은 인상도 아니었는데 특히나 이곳저곳에서 브레이크를 잡은 건 여기저기 안끼는 곳이 없도록 튀어나오는 일본이다. 안그래도 홍대, 종로 번화가 한복판에 일본풍의 건물을 짓고 술을 팔고, 일본 가정식이니 뭐니 음식이 유행하고, 멀쩡한 우리말 놔두고 모찌니 산도를 쓰면서, 명란이나 덮밥 제대로 된 표현이 있는데도 여기저기 갖다붙이는 일본어에 짜증이 나 있는 중이다. 거기에 쇼와시대 운운하는 바람에 내 안에 숨겨진 독립투사의 피가 끓어 읽으면서 아 정말 꼴보기 싫은 부분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노래 한 곡이 나와도 일본노래가 나오니 공감도 안되고 들어볼 의지도 안생기고 짜게 식었다. 이 부분은 진짜 아쉬웠다.     

 

 가볍게 읽고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길어졌다. 아무래도 이런 점 때문에 그만큼 많이 읽혔겠지 싶다. 다음에 할 얘기는 뭘까, 또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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