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거짓말 : 금기 속에 욕망이 갇힌 여자들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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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군가 우리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주면 오히려 그 거울을 깨버리는 사회, 그것이 바로 모로코 사회다. (p.87)"

 

 '섹스와 거짓말' 은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책의 주제도 그렇고 각 장에 담긴 내용들도 하나같이 불편했다. 불편하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량이 많은 것도 아닌데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모로코만큼은 아니겠지만, 페미니즘이란 말만 입에 올려도 공격과 비난의 시선이 날아드는 사회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것이 신경쓰인다. 심정적으로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표현하기는 꺼려지는 것이다. 이렇게 먼 곳에서도 발끝에 물이 닿을까 주저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호수의 한 가운데에 뛰어들어 파문을 일으키려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처음에는 불쑥 솟아오르는 모로코와 이슬람 사회에 대한 비난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한명 한명의 증언이 더해질 때마다 더욱 스트레스가 올라가다 " 저 외국 딴따라들이 뭔데 내 나라까지 와서 우릴 가르치려 드는 거야? (p.96) " 하는 내용이 눈에 밟혀 무작정 화내지도 못했다. 우리 내부의 문화이자 문제로 고착된 것들도 외부의 지적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알기 때문이다. 문화 차이의 존중은 일의 옳고 그름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인지, 그 옳고 그름의 잣대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에 대한 구분이 필요한 것인지 생각했다. 여성의 문제이니까 함께 연대하여 소리를 내는 것이 괜찮은걸까.  

 

 책에서 모로코 여성은 9시 이후에 길에 나서면 안되고, 치마를 입거나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만으로도 창녀 취급을 받는다. 아버지 뻘의 남자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결혼을 한다. 심지어 강간범은 처벌을 받지도 않는다. 그러다 문득 이 비슷한 일들이 과거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것을 떠올린다. 미니스커트는 경범죄처벌을 받았고, 70년대 대구 고등법원에서 법정약혼, 90년대 서울 고등법원에서 양쪽부모 합의로 성폭행범과 피해자를 결혼시키려는 판결이 있었다. 담배 사례는 담배 피는 여자만 검색해도 아 싫어요 내가 싫어요 사회시선이 그래요 어쩌고 하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저 시점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멀어졌을까 생각해본다. 충분히 멀어졌을까 아니면 멀어지려 애쓰고 있을까. '섹스와 거짓말'을 읽으며 이슬람 사회에 대한 비난을 하고 싶다가도 그 자체를 비난할 수 없는 비슷한 흔적을 우리 사회에서 발견하기도 하고, 내 옆의 빈자리를 남에게 내주는 일이 공연히 탐탁지 않은 기분을 들게 만드는 것임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정도는 다르더라도 모든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으로써 존재하기 위해, 원하는대로 행동하기 위해. 발끝이 적셔지는 일이 두렵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고민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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