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인원
나이절 섀드볼트.로저 햄프슨 지음, 김명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디지털 유인원' 책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4차산업혁명을 떠올렸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이 차세대 산업혁명은 지금도 그렇지만 재빠르지 못한 나도 한동안 4차산업혁명과 관련된 책들을 몇권 읽어보게 될 만큼 주목받는 주제였다. 4차산업혁명은 예정된 미래이자 현실이기 때문에 기술과 이론의 원리와 구조를 이해하는 소수에 비해 중간의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쥐어진 현대 기술 발전의 산물을 이용만 하는 다수에게 미래는 존재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뉘앙스를 보여준다. 때문에 처음 이 책을 봤을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좀 더 이해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었다.

 

 책은 호미닌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존재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외부의 물건을 능숙하게 다룸으로써 지구 전체를 변모시키"고, "우리 자신이 살아가는 생활 환경 전체를 변화시켰(19)"음을 시작으로 왜 우리가 '디지털 유인원'으로 이름 붙여졌는지 설명한다.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나머지 네 손가락들과 마주보도록 진화한 인간의 엄지손가락을 통해 수만년전부터 도구의 사용이 인간의 발달에 영향을 끼쳤음을 자연스럽게 연결 짓는다.(23) 인간이 사용해온 그 '도구'는 주변에서 얻어진 주먹도끼(117)에서 시작하여 엄지손가락 기술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핸드폰까지 연결된다. 이를 통해 손안에 놓여진 도구의 종류만 다를 뿐 그 근본은 여전히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임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도시 혹은 시골의 환경, 그녀가 하는 일의 사회적 목적, 하루중의 이런저런 사건에서 그녀가 느끼는 인간적인 감정은 옛날과 매우 비슷하다. 디지털 기술은 새롭지만, 유인원은 옛날 그대로다(319)"

 

 초반의 몇장에서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 사회의 시대적 흐름에서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 왔는지를 서술하는 한편, 인간으로부터 만들어진 기술이 다시 어떤 식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주어 변화시켰는지를 말한다. 털이 적은 몸이 불을 사용하는데 어떤 이점을 주었는지, 추위를 막기 위해 어떤 식으로 군집했는지, 외부에서 소화 단계를 거치고 들어온 음식물이 위를 작게 만들고 에너지를 어디에 더 집중하도록 만들어 주었는지, 뇌의 크기가 어떤식으로 변화하였는지를 동원하여 인간이라는 종이 다른 동물들을 제치고 어떻게 가장 큰 발전을 할 수 있었는지 과거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개인적으로는 위의 부분들이 어렵지만 꼭 필요한 통과 지점이었는데, 책을 찍어낸 종이에 수면제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인쇄소에 확인을 해봐야되나 싶을만큼 읽기 더뎠던 부분이기도 했다.

 

 5장의 내용으로 들어서면서부터는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생명과학에 관련된 주제들이 하나씩 등장하기 때문에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벌써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무인상점들을 비롯하여 노동의 상당부분을 인간 대신 로봇이 대체하게 될 근미래에 이로 인한 부작용을 해결할 방법으로 언급된 '로봇세'와 이 노동경쟁에서 진 인간에게 어떻게 소득을 보장해 줄 것인지에 관해 어떤 의견을 보여줄까 궁금했었다. 이미 로봇에 인격을 부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유럽의 실제적 사례가 있기 때문에 탈노동 생존보장의 한 방안으로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로봇세는 비유적 표현(328)일뿐 제안이 될 수 없음을 짚어낸 부분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또 재미있었던 부분은 8장, 데이터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는데 "서양 세계 전역에서 범죄율이 떨어지고 있는 한 가지 이유(319)"가 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현 상황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파놉티콘의 형상을 띄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전부터 중국의 텐왕(AI를 이용한 폐쇄회로 감시시스템) 프로젝트에 대한 자료를 볼 때마다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우리의 생활도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시스템안에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더불어 기록되어 사라지지 않는 데이터들이 어떤식으로 관리되어야 할지 '거대한 짐승'들이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는 개인들의 정보를 어떤 식으로 규제하고, 데이터로 인해 발생하는 이윤을 어떻게 분배하여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거 미래사회를 떠올릴 때 그 명암을 상상할 뿐이었다면 지금은 그 갈림길에 서 있는 존재가 되었다. 로봇의 노동에 세금을 부과함과 동시에 인간다움의 규정을 넘어 인간 자체에 대한 규정을 내려야하고, 기차역의 전등을 켜고 끄는 일로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새로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주어질까 이 책을 통해 조금은 답을 찾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새로운 디지털 통화로 언급된 비트코인(360)이나 무선 샤워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는 와이파이(454) 부분 같이, 지금 우리가 접하고 고민해왔던 익숙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룬 내용들이 많아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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