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순례길이다 - 지친 영혼의 위로, 대성당에서 대성당까지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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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과 인간의 믿음으로 쌓아올린 고딕 대성당의 아치의 정점에는 어김없이 키스톤이 박혀 있다. 키스톤이 박혀 있지 않다면 하늘을 찌르는 대성당의 무게는 지탱할 수 없다. 우리 삶의 정점에도 어김없이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절대 사랑의 키스톤이 박혀 있음을 돌의 신전은 엄숙하게 말했다. 대성당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한 에너지는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던 절대 사랑이었다. 인간이 대성당을 지었지만 대성당이 인간을 성장시켜주었음을 산티아고 순레길의 건축이 사랑의 온기로 증명해주었다. (p.333) "

 

 산티아고 순례길. 십여년 전 쯤 어디선가 선물로 받은 책에서 만난 이름이었다. 그 책을 읽기 전까지는 세상에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다. 알고 났더니 언젠가 꼭 한번 떠나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걷고 걷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그 길 위에서 걷는 일이 언젠가 삶의 한 순간에서 꼭 있어야만 할 것처럼 바라게 되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때로는 잊은듯이 지내다가 때로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여행 프로그램에서 무심결에 마주치기도 하며 지내왔다. 그곳에 가고싶다는,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잘 간직하고 있는 소망탓에 '스페인은 순례길이다'를 보자마자 끌린듯이 읽어보게 되었다. 저자가 순례길 위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스페인은 순례길이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다르다. 순례길을 걷는 천천한 이동의 면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흔히 곁들여지는 개인적인 사색이나 감성은 없다. 건축물에서 건축물로 옮겨지는 시선을 통해 우리가 그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전달해준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에서는 물집잡힌 발 때문에 고생하는 일, 걷다가 만난 사람들, 자신 내면의 고민과 생각들이 길 위에 펼쳐져있었다면, 이 책에서는 오로지 건축물 뿐이다. 어떤 양식으로 지어졌는지, 무슨 장식을 눈여겨보면 좋을지, 건축 배경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른다면 지나치기 쉬운 성당, 수도원, 궁, 알베르게 등의 아름다움을 잘 설명해놓았다. 

 

 책에는 얼마 전 화재로 피해를 입은 노트르담 대성당(31)에 대한 내용도 나와있다. 문득 생생한 성당의 외관을 담아낸 사진과 스케치를 마주하게 되니 새삼스러운 충격이 전해졌다.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운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현실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눈앞에 들이밀어진 느낌이었다. 거기다 문득 반가운 건물의 외관을 만나게 되는데, '스페인 하숙' 프로그램의 촬영지인 스페인 레온 주의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가 나온다. 책에서는 몇장의 사진 뿐이지만 몇번이나 텔레비전으로 본 탓에 방송에서 보여준 산골마을의 전경이 그려지며 가본 적 없는 곳에 대한 반가움과 친밀함이 솟아난다. 다른 독자들도 그러하리라. 

 

 건축물들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인 설명도 좋지만, 또다른 매력은 정성들여 찍은 사진(김희곤, 카리타, 윤기병, 손진)과 거칠면서 섬세한 스케치에 있다. 어찌나 멋지고 아름답게 찍어낸 사진을 골라 담았는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천천히 사진과 스케치만을 다시 넘겨보았다. 푸른 하늘과 흰구름을 배경으로 한 오래된 건축물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낯선 바람이 느껴지는 듯한 현장감이 든다. 무엇인가 자신이 깊게 매료되고 연구한 분야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충실한가. 같은 공간 안에서도 더 많은 의미를 찾아 해석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저자가 대단하고 부러웠다. 언젠가 나도 순례길을 떠나게 된다면 이 책을 분철하여 가지고 가야지 생각했다.

 

 다만 왜 표지와 함께 둘러진 띠지의 앞부분에 저자보다 방송국 작가의 이름이 더 크게 붙여져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방송의 인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언뜻 비슷한 제목으로 다른 사람이 낸 책이라고 잘못 생각했다. 방영하고 있는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작가가 시기를 맞추어 낸 책이라고 생각했다가 표지를 한 번 더 뜯어보고 아니구나 했다. 오히려 띠지의 앞과 뒤의 내용이 바뀌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전쟁과 종교의 역사라고 생각했던 길을 '절대 사랑'으로 쌓아올려진 '사랑의 건축'으로 바라보았다는 애정가득한 저자의 시선으로 잘 마무리 된 점이 좋았다. 다소 건조하게 느껴졌던 시선이 상쇄되었다. 진짜로 떠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젠가에 대한 소망을 품고 한번쯤 읽어둔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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