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F 지음, 송아람 그림, 이홍이 옮김 / 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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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울 때는 실컷 외로워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투정을 부렸어야 했다. 추억이란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때 더 부끄러운 짓을 했었더라면 지금보다 덜 후회하고 살고 있을 것이다. p.201 "

 

 이 책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을 모르겠다기 보다는 일본 사람들을 모르겠다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어떤 부분에서는 요즘말로 하는 인스타감성 가득한 내용을 써내리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나이 든 남자를 공략하는 방법' 같은 걸 들이민다. 그런 방법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는걸까. 이미 여기서 더 나이 든 남자를 만났다가는 금새 병수발 들게 생긴 내 늙음 탓에 따라가지 못하는 걸까. 익명의 SNS 작가고 아직 머리카락이 까맣다길래 굉장히 트렌디한 문장들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무리 그렇더래도 이건 좀 촌스러운데 싶은 내용들이 지뢰처럼 등장해서 깜짝깜짝 놀래키곤 한다.

 

 우리가 원래 인터넷에 쓰는 글들이 다 그렇듯 전에 했던 요지의 내용과 나중에 나오는 내용이 서로 다르게 부딪치기도 한다. 몇 개의 내용을 읽으면서 일본에서 넘어왔다는 '여자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는데 이 책에서도 여자력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그것도 '여자력이란 말을 없애'자는 내용으로 등장해서 당황스러웠다. 남자 꼬시는 법이나, 남자 점수 매기기, 속마음 번역하기, 악녀되기 등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잡지책같은 키치한 면모를 자랑하다 갑자기 여자력은 필요없어! 너는 그냥 너 자신이 되면 돼! 하고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제대로 된 말이 나오는가 싶어도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뜨악해지곤 한다.

 

 처음엔 감상적인 내용이 많길래 여자가 작가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남자였다. 뒤늦게 알아차린게 이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특히 백엔짜리 반지 얘기같은 건 전형적인 감성이라 나도 모르게 김건모의 '미안해요'라는 노래를 싫어한다는 한 희극인의 일갈을 떠올렸다. 혹은 문방구 반지 커플링 같은 그런 인터넷 괴담들을. 앞서서 남자에 대해 분석하고 점수매긴 글들이 왜 이렇게 나왔나 했더니 남자어 번역 같은 느낌으로 나름 객관과 주관을 섞어낸 것이었다. 코스모폴리탄 같은 잡지를 한 5년 정도는 정기 구독한 여자인줄 알았더니 90년대에 태어난 우리들이란 표현을 쓰는 애늙은이였다.

 

 다행이도 공감대가 없어 뻘쭘한 이 어색함은 연애에 관한 부분에서 특히 강조되었을 뿐이었는지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서는 약간씩 흥미를 회복해갈 수 있었다. 친구와 만나 신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내놓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긴다던지, SNS로 애매한 저격글을 올리는 일 같은 사소함에 공감이 됐다. 어찌보면 본문의 내용보다 삽화에 더 눈길이 갔다. 송아람 작가가 그린 이 삽화가 내용까지 원작가의 확인을 통해서 담아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짧으면서도 직접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치사한 방법이고 남들 앞에서는 잘 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만화나오는 부분만 먼저 골라가며 읽었다.

 

 이 책이 18만부 넘게 팔리고 품귀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흥했다는 문구에 문득 '언어의 온도'를 떠올렸다. 결이 좀 다르지만 가진 것 이상의 관심을 받았다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혹 '언어의 온도'를 좋게 읽었다면 이 책도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글마다 호불호가 널을 뛰었기 때문에 무엇을 기대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지 가늠이 잘 오지 않는다. 불편을 감수하고 기꺼이 예민한 감각을 가졌다거나 말장난을 해놓은 것 같은 SNS 감성은 원치 않는다면 마음에 안들겠지만, 에세이를 좋아하고 킬링타임용 가벼운 책을 찾는다면 혹은 늦은밤 감성에 취해있을때 곁들이고 싶은 책이 있다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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