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저자인 모리 마리에 대한 짧은 소개글을 초입에 읽고 어쩐지 기가 질렸다. 짧은 문장들만 봤을 때는 '우리는 같은 과'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 그녀와 나는 너무나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홍차와 장미의 나날"로 표현되는 사람을 가성비와 포기의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담아낼 수 있겠느냔 말이다. 집안이 항상 어질러져 있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비워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 서로 다른 사람들. 플라스틱 컵을 쓰지 않지만 유리컵으로 분위기를 내는, 스테인레스 컵으로 보온을 강조하는 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맞닿을 지점이 있을까.

 

 " 괜찮아, 먹고 싶은 건 매일 있으니까! " "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소설이 안 써진다 "  "좀 곤란한 인생이지만 잘 먹겠습니다 " 와 같은 문구들은 어머, 당신은 나의 정신적 쌍둥이 아닌가요 붙들고 물어보고 싶을 만큼 호감이 갔다. 때때로 일기처럼 쓰던 블로그에 한 꼭지 정도는 뭘 먹었거나, 뭘 먹고 싶다는 얘기가 꼭꼭 들어갔던만큼 핸드폰 사진첩에 온통 먹을 것, 먹을 방법, 먹은 것 사진들이 폴더별로 정리되어 있는 만큼 나름 미식의 세계에 들어가고자 열심히 발돋움하고 있는 만큼 '홍차와 장미의 나날'이 궁금했고 읽어보고도 싶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이 사람, 나와는 안 맞는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에세이니만큼 저자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게 작용했다. 세대도 차이지고, 나라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실제로 만났어도 성향이 너무나 달랐을거라 생각되는 젠체하는 듯한 표현방식이 시선을 냉담하게 만들었다. 유복한 생활을 한 탓에 프랑스에서도 생활하고 했겠지만 '일본은 아시아의 유럽'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태도나 "파리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미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p.38) " , " 나는 구두쇠에 욕심쟁이인 프랑스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p.227) "같은 표현은 '일본은 아시아의 그냥 아시아! 아시아 섬나라 사람!' 이라고 어딘가를 향해 소리치고 싶게 만드는 면이 있다.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녀의 솔직함. 그것도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독이었다. 주로 과거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것과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초면에 시종일관 천연덕스럽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을 좋아해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 긴자의 가게에도 취향이 고급스러운 사람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멍청이 직원만 넘쳐나고 있는 모양이니 p.157 " 하는 부분이나 " 나는 엄청나게 애지중지 자란 아가씨라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엌 쪽으로 가서 하녀에게 "얼굴 씻을 더운물"하고 말씀하신다. 그런 다음 세면대가 딸린 삼첩방에서 더운물로 얼굴을 씻으시고 간식을 드시는 순서였다. p.131 " 이런 내용을 읽으면 떨떠름해진다.

 

 특히 이 삼첩방 더운물이 나오는 '애지중지 자란 아가씨' 단락의 내용에서는 그 앞에 "조센아메 (조선엿)" 라는 음식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시기적으로 '우리나라가 일제의 수탈에 고통을 받고~' 하는 생각이 들면 내 안에 자리잡은 독립투사의 혼이 불쑥 솟구쳐오른다. 그럼 나도 모르게 "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육첩방은 남의 나라 (쉽게 쓰여진 시_윤동주) " 하고 떠올리며 마음이 문득 고요해지는 것이다. 너무 나갔나 싶지만, 혹 누군가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모리 마리라는 사람이 밉살스럽기에 이러저러한 불평을 늘어놨지만, 다른 사람들이 평하는 그런데도 밉지 않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는 3 퍼센트 정도쯤은 알 것도 같다. 사랑만 받고 자라 물색없고 솔직하기만 한 사람이랄까. 의도없이 단지 느낀 그대로를 말하기 때문에 가깝고 싶진 않아도 나쁘게 평할 수는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대체적으로 나는 앞으로 글을 쓰거나 말할 때 저렇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때로는 그 단호하고 확고한 취향을 에둘러말하지 않는 당당함이 부럽기도 했다. 굉장히 호감가는 첫인상이지만 의외로 호불호가 갈리는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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