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지음 / 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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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년전쯤 일이다. 갑자기 왼쪽 손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무거운 것을 들지도, 손목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아파서 덜컥 겁이 났다. 주로 사용하는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이 아픈 것도 이유를 모르겠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팔목에서부터 뼈에 구멍이 생기고 있는건 아닌지 염려되었다. 덜컥 차를 얻어타고 아는 사람에게 들은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주차해서 접수를 하러 가니 교수님의 진찰을 받으려면 대기가 삼사개월은 넘어간다고 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그냥 돌아오고서 한동안 손목을 부여잡고 생활했다. 내 진료 대기 차례가 되자 통증은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의 저자 김신회가 오른손에 통증이 생겨 강제휴업 상태로 들어간 계기를 통해 이 책을 썼다는 것을 읽고는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왼쪽 손목이 아팠던 나는 어땠던가.

 

 이 에세이는 몇 퍼센트의 진실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꽤 생생하다. 정말 너무나도 가까웠던 지인과 일년을 함께 살고 난 뒤에 어색해졌다는 단락에서는 불편함마저 느껴졌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졌다는 이유가 크겠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집 한 켠을 내어줄 정도로 살가웠던 지인이 데면해졌다면 그 이유가 어디서부터 왔을지! 그리고 본인은 왜 그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것인지! 게다가 이런 내용을 글로 써도 되는 것인지! 까지 걱정이 앞섰다. 날 것 그대로의 내용은 아니겠지만, 원래 작가들은 자기의 모든 것들을 이렇게 내놓는데에 주저함이 없는 것일까. 이런 상황의 자신에게는 모두에게 다 사랑받을 수 없으므로 관대해지고, 스타벅스 계산대 앞에서 무슨 음료를 마실까 가벼운 고민을 불특정 다수에게 묻는 결정장애의 타인의 삶에선 움츠리면 나아갈 수 없으니 변화해보자고 말하는 것도 어색했다. 맞는 말이고 좋은 충고이긴 한데, 관대함의 범위가 나와 타인에게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은 초반 부분을 읽으며 주로 들었는데, 사실 이런 날카로운 반응이 돋아나는 것은 저자의 탓이라기 보다는 내 개인적인 일들이 에피소드와 반응해 떠올랐기 때문이 더 컸다. 워낙 생활감이 묻어나는 주제들이어서 비슷한 경우가 나에게도 하나씩은 있었다. 이유를 잘 모른채 멀어지게 된 관계나 속으로만 삼키고 끊어낸 관계도 있었고, 밀떡과 쌀떡에 대한 선호도나, 다소 어려운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생각, 사야된다고 생각하면서 몇번이나 무슨 제품으로 살지 간만 보고 사지 못한 물건들, 선물에 대한 관점을 토론했던 기억도 있었다. (선물을 할 때 실용적인 물건을 고르는지, 필요하지 않아도 있으면 좋을만한 물건을 고르는지 혹은 내가 받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고르는지, 상대방이 원하는 물건을 고르는지 에 대한 토론) 그런 일상적인 내용들 사이에서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생각은 나와 다른데? 왜 이런 생각을 했지? 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다 '사과의 타이밍'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서 날선 마음이 점차 공감하고 이해하는 시선으로 변해갔다. 자연스럽게 이 사람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에서 저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 하며 달라졌다. 그러자 그때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래서 이렇게 생활하고 있구나 하고 가볍게 저자의 일상을 듣듯이 편안하게 책이 읽혔다. 시선이 좀 더 관대해졌을 뿐인데, 타인의 시선과 삶을 이해하고 바라보자 내 것도 인정받은 듯한 기분이 들며 스스로에게도 '그럴 수 있어'하며 관대해졌다. 처음엔 저자는 손이 아픈 동안 이 책을 위한 준비를 했는데, 나는 손목이 아픈 동안 대체 뭘 했었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 그때 아팠지. 좀 더 잘 쉬었어야 했는데 팔목을 너무 썼어. 하고 생각도 해본다.  에세이라는 분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나름 좋은 마무리로 잘 읽어냈던 것 같다. 다른 무엇보다 책 속의 당신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알아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로는 이런 사람이 아닐수도 있고 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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