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가 들리고 짙푸른 태양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을 때 나는 이곳 뉴욕에서 내가 열렬하게 매달릴 무언가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지식,
권력, 방향. 그리고 목표를 찾았다. 나는 간절히,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p.104) "
처음에는 '단지 뉴욕의 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들어보기 전에 이런 문구를 먼저 봤다.
"바쿠샨(Bakushan)은 일본어로 바꾸-샨으로, 뒤에서 보면 예쁘지만 앞에서 보면 못생긴 여자를 뜻한다고 한다. 이 요리는 어느 모로 보나
못생겼다고 할 수는 없으나 우리에게 오싹함을 전해준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그 여자가 뒤를 돌아 진실을 보여줄 때, 우리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두려움과 흥미를 동시에 느낀다. (p.8)" 중후반에서 결말에 이르기까지 보여줬던 흥미진진함과 깔끔한 마무리가 다시 빛이 바랠듯한
대목이다. 이게 이 책의 시작이었다. 얼굴이 못생긴 여자가 전해줄 오싹함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시작으로 우리에게 전해줄만한 '내용'이
뭐가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더 압권은 "그 여자가 뒤를 돌아 진실을 보여"준다는 표현이었다. 뒷모습이 예쁘건 앞모습이 못생기건 그 모든 것들이
그녀의 진실이 아닌가? 왜 이런 표현이 담겨있어야만 했는지, 전체적인 그림으로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지만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을 고작 여자의 외모에 관한 저급한 말로 소개할 수 밖에 없었다니.
시작은 실망스러움이었지만 인내심을 갖고 책을 읽다보면 그래도 꽤 흥미롭다. 초반은 다소 혼란스러웠다. 그 느낌은 주인공 티아가 뉴욕에
도착해서 느꼈을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도 뉴욕은 처음이고, 우리의 티아는 친절한 안내자가 아니다. 그녀는
음식과 문장에 한참 깊이 빠져있는 중이었고 그녀와 만나게 된 사람들-독자-에게 마음을 쏟아 안내하는 주인공 타입은 아니었다. 다만 의욕과 열정에
충만한 채 새로운 도시에서 무언가를 꼭 해내겠다며 눈을 빛내는, 두려움과 욕심에 찬 여자다. 때문에 티아처럼 낯설고 정신없이 뉴욕 한복판에
그리고 업계에 뛰어든다. 현란하게 쏟아져나오는 식재료의 이름, 조리법, 제대로 경험해보기 어려울 레스토랑의 분위기들에 눈길을 빼앗기다 보면
뒤이어 패션과 브랜드들도 끼어든다. 티아의 옷차림이 달라지게 되면서부터는 처음 책장을 넘기며 느꼈던 거부감마저 점차 사라진다, 잊힌다. 그녀의
죄책감과 일상, 목표가 어그러지는 방식과 비슷하게. 묘한 부분에서 주인공에게 이입하게 된다.
사용한 표현이 실망스러웠던 것에 비해 전체적인 흐름은 매우 깔끔했다. '바쿠샨'이라는 단어를 세세히 소개한만큼 중요한 복선이 되어
주었고, 갈수록 심화되었던 비밀과 잘못들로 얽힌 문제는 적절한 순간에 터져나왔다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리되었다. 다만 이 깔끔함과 긍정적인
결말이 현실성을 무너뜨린다. 아니면 뉴욕의 삶은 원래 이런 식으로 지나치게 쿨한가? 소개되는 음식과 레스토랑, 그녀를 뒤흔드는 문제들에 비하면
티아 주변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한 편이 아쉬웠다. 티아가 보여주는 단편적인 교류 사이에서 에메랄드와 멜린다를 번갈아 재단하다 문득
다른 인물들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 "마음이란 건 물이 많은 호수 같은 거야." 멜린다는 와인 잔을 들고 말했다. "물이 불기도 하고
줄기도 하지만, 그래도 같은 높이를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거든. 썰물이 와서 물이 빠져나가면 말이야." 멜린다는 남은 와인을 한 번에 마셔버리더니
하던 말을 마쳤다. "무언가를 들어오게 하면 되는 거지. 그러면 우리 머리로는 그 차이를 몰라." (p.356)" 미각을 잃어버린 평론가,
매력이 넘치는 에메랄드, 같이 있으면 죄책감을 남기는 멜린다, 그리고 감각을 일깨우는 남자 파스칼.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뉴욕도 조금 더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담없는 책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이 가득 묻어나는 느낌을 받았는데, 언뜻 보면 화려한 보석같지만
사실은 글리터같은 반짝이 가루였다는 감상이 남는다. 심각하고 무거운 책들 사이에서 기분전환이 되어줄만한 시간을 줄 한 권이 될 것이다. 전채나
디저트와 같은, 그러나 메인이라 여기기는 어려운 '단지 뉴욕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