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사
백가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전 힌트는 도련님을 접했을 때 백가흠은 쓰레기같은 인간군상이나, 불쾌한 소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 작가... 마이너하지만 매력있는 작가. 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착각이었나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 예쁜 책. 죽음이 두려운게 아니다.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이, 통증들이, 비루함이, 너절함이 무서운거다. 그 어둠들은 저자가 부인과 아이를 안고 환하게 미소짓는 사진처럼 프레임 밖에 숨겨져 있다. 처절한 투병기보다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인건 사람들이 원하는 게 이쪽에 더 가까워서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빌론의 탑, 이해, 영으로 나누면 앞부분 세 작품을 읽고난 후 참 오랜만에 하드sf계에 훌륭한 작가가 나왔나 보다... 싶었다.

뭔가 이 작가의 글을 더 읽고 싶다는 갈급증이 더해갔고 기대감도 커졌더랬다.

하드 sf다운 sf, 품위 있으면서 과하지 않은 우아한 지적 유희, 참 오랜만에 하드sf계에 누군가의 아류가 아닌 독창적이고 멋진 작가가 나왔구나 싶어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도 점점 더 빨라졌더랬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팍 식어버렸다.

 

물리학을 깊이 파들어갈수록 무신론자는 그 우주의 방대함에  경외감을 느끼고 불가지론자 쪽으로 견해가 바뀐다고 하던가. 아마 이 작가는 그 반대일 것이다.

수학이란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방법론적 수단일 뿐이라는 걸(물리학보다 못한.) 깨닫고 자괴감과 허무에 빠지는 수학자의 이야기인 영으로 나누면...의 주인공들이 그 좋은 예다. 그 기묘하게 거부감들던 기시감은 뒤로갈수록 강렬해졌고,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

이 작가에게는 물리학>수학>인문학이라는 분명한 등급이 있다.

인문학을 경시하는 걸 넘어서 불필요하고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류.

학문에 등급이 있고 물리학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물리학도를 싫어한다.

아쉽다. 아무래도 이 작가... 그런 부류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의 용도 (양장)
니콜라 부비에 지음, 티에리 베르네 그림, 이재형 옮김 / 소동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서를 모으는 취미는 없다.

한 때는 있었지만... 다시 읽지 않는 책들마저 다 짊어지고 산다는 것에 회의를 느낀 뒤론, 정말 최소한의 책들을 제외하면 완독 후 바로바로 정리해 부피를 늘리지 않게 되었다.

이 빠진데 없이 빼곡하게 꽂힌 장서를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계속 읽히지 않고 꽂혀만 있는 책들을 보면 어쩐지 내가 그 책을 가치 없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 같은 죄의식마저 든다. 덕분에 오늘도 서재에서 정리할 책들을 강박적으로 골라냈다.

하지만, 무려 670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정리되지 않고 함께 가게 되지 않을까.

 

세상의 용도.

여행기다. 1953년에서 54년 사이, 작가인 니콜라 부비에와 화가인 티에리 베르네, 두 청년이 제네바에서 유고슬라비아, 터키, 이란, 파키스탄을 거쳐 아프가니스탄 카불까지의 기나긴 길을 작고 낡은 피아트를 타고 여행했던 이야기.

내게는 단지 그들의 여행 경로가 아나톨리아 반도를 가로지른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했던 책이다.

 

아나톨리아... 입 속으로 소리내는 것만으로 밑도 끝도 없는 서글픔이나 애잔함이 뒤엉키는 곳.

 

내가 아나톨리아에 느끼는 감정은 니콜라 부비에가 이스파한의 왕립사원에서 느끼던 서글픔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스파한... 17세기에 무려 인구 6만의 도시, 전 세계에서 가장 번잡했을 아케메네스 제국의 수도.

한 때는 사원의 광장에 가득했을 소란함과 번잡함은 어느새 다 사라지고 이제는 한 때 화려했지만 빛바랜 의상을 걸친 늙은 무희처럼... 인적없이 남루해진 샤 아바스의 위대한 건축물들로 가득한 곳. 

 

사파비 왕조의 우아하고 거대한 기념물들은 마치 너무 커져버린 옷처럼 도시 위에 떠있다.

폭풍우가 한번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진흙으로 된 타일들이 떨어져나갔다. 그래봤자 백만개가 넘는 타일 중에 수십개에 불과하고, 모든 게 너무나 넓어서 뭐가 없어졌다는 표가 좀 나려면 50년은 태풍이 불어야 할 것이다. -p406

 

니콜라 부비에가 이스파한의 왕립사원에서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타일들을 보며 애잔해 한 뒤로 벌써 60년도 더 흘렀는데...

지금 그 웅장한 사원의 아름다운 타일들은 모조리 바람에 날려가고 하나도 남지 않았을까?

 

왕립사원이란 아마도 샤 모스크를 말하는 듯 하여.

찾아보니 여전히 아름다운 푸른 타일들이 웅장한 모스크의 돔 지붕에 가득 붙어 있다.

다행히 그 오랜 세월에도 다 떨어지진 않은 듯 하다.

아니면 이란 정부에서 관광산업을 위해 대대적인 개보수를 했거나...;;

 

어쨌든  이 책은 완독한 뒤에도 계속 내 침실의 협탁 위에 있다.

그리고 여행이 가고 싶을 때마다 그 지역에 해당하는 단락을 들춰본다.

그럼 버드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는 작은 계곡 한가운데, 거무칙칙한 얼굴의 세관원들이 서 있는 이란의 국경이나. 벽토로 지어 푸른색으로 문을 칠한 집들, 이슬람 사원의 뾰족탑, 사모바르 주전자에서 솟아오르는 김과 강가의 버드나무가 금빛 레몬색에 잠겨있는 나른한 봄의 마하바드로, 안개처럼 자욱한 아편연기로 가득한, 터번을 두른 사내들이 흔들리는 트럭 짐칸으로 순식간에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unsun09 2017-09-21 0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도 멋지고 다스베이더 님의 생각도 멋지시네요.

아나킨 2017-09-21 19:10   좋아요 1 | URL
별거 없는 감상글에도 좋은 말만 해주셔서 부끄럽습니다.ㄱㅜ

munsun09 2017-09-21 20:17   좋아요 1 | URL
전 아직도 책꽂이에 꽉 찬 책들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데 님처럼 비움을 실천할 때가 오긴 와야지 싶은데 쉽지가 않네요.
감사합니다

아나킨 2017-09-21 20:44   좋아요 1 | URL
엌! 장서 수집 취미 버리지 마세요. 공간만 허락한다면 소장하는 취미도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남들의 소장목록을 엿보는 건 좋아합니다. 그 사람의 취향과 살아온 역사가 보여서 참 좋아보여요. 전 그냥 서재가 무척 협소한데다 꽉 찬 것보다 비어있는 공간을 선호하는 아주 개인적이고 몹쓸 습성이 있을 뿐이죠. ^^;>

munsun09 2017-09-21 20:49   좋아요 1 | URL
아직은 님의 말씀대로 장서수집을하고 언젠가는 비워야 될 듯하네요.^^
 
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을 읽을 땐, 꼭 김기덕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어딘가 불편하고 작가의 생각에 동의할 수도 없고, 우울하게 가라앉아 가지만 그래도 읽게 만드는 대단한 재능.

 

개인적으로 자존감과 자기애가 엄청난 작가라 생각한다.

그를 표현할 때 대부분 문학계의 이단아, 아나키스트, 반항적인 삶, 따위로 표현하는데. 그건 그냥  그의 재능과는 별개로 인간적 성찰은 덜된 작가... 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의 행보 모든 게 마음에 안든다.

너희들 이러쿵 저러쿵 하는게 마음에 안들어서 아쿠타가와상 이후 문학계의 상을 전부 거부한 일화도, 문학은 떼로 몰려 하는게 아니라 혼자하는 거라며 너희들 다 왕따시킬거야! 라고 시골에 칩거했다는 일화도.

아니 칩거하는건 좋은데 이 냥반은 그것만이 옳은 길인양 남들을 후려쳐 댄다.

전형적인 내 말만 옳고 너희들은 다 틀렸다고 버럭질치는 꼰대 스타일.

내가 그의 소설은 읽어도 에세이는 절대 선택하지 않는 이유다.

이 냥반 에세이는 정말 감당이 안될 것 같음... 대놓고 자기 말만 옳다고 남들 후려쳐댈게 훤히 보여서.

 

하지만 군더더기 하나 없는 예리한 칼날같은 아름다운 문장들...

그의 문장에는 언제나 넋을 잃고 빠져든다.

비록 그의 소설들에 아마도 철저히 작가 자신을 반영했을 중년의 남주인공이 등장하며. 그는 꼭 아버지를 증오하고, 아버지 혹은 다른 남성들로 인해 고통받는 성녀, 혹은 창녀인 여성을 오로지 자신만이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함 마저 아름답게 미화하는... 그 한결같은 패턴을 집요하게 구도자처럼 파고드는 내용을 담고 있더라 해도 말이다.

아...  이 냥반 소설을 읽을 때는, 정말 이렇게까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내면만을 연구하고 주변에는 관심이 1도 없지만, 그걸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독보적 예술이 될 수 있구나. 란 생각에 기분이 묘해진다.

진짜 재주다.

 

작가는 참 별로인데 소설은.... 별로라고는 절대 말 못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