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과 물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이 작품집은 현재의 한국 단편소설에서 볼 때 논외에서 다루어야  할 만큼 이질적이다. 이 작품집 전체에서 느껴지는 환상적이고 모호한세계는 그로테스크하고 꿈속 같다. 그리고 무얼까, 죽음과 그 너머의 세계를 향한 끝없는 걸음. 그리고 죽음 앞에 있는 자가 삶을 돌아보는 것 같은 느낌.  분명한 것은 모든 서사가 이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결코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이며, 그렇다고 해서 죽음 너머의 세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꿈속을 헤매는 것 같기도 하고, 샤머니즘적인 세계에서 불길하면서도 매혹적인 어떤 일에 연루된 것 같기도 하다.

  하니 정확한 언명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적 서사를 가늠할 수 없다. 이게 뭐지? 싶었다. 

  '뱀과 물'이 특별히 마음에 와 닿았던 건 굉장히 난해하게 썼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아, 하고 작가의 의도와 플롯이 이해되었다는 점이었다. 한 소녀가 자라서 선생이 되었고 그 선생은 늙어서 죽었다. 그리고 지금  그 죽은 사람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고 있다. 어린 소녀였던 시절의 운동장, 중년이었던 시절의 교무실, 그리고 지금 사자인 자신이 그 모든 것을 동시에 보고 있는 것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세상을 다 산 뒤에, 아니 죽지 않은 지금도, 우리는 자신이 어릴 적 무엇 때문에 슬펐던 것을, 울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어떤 삶의 변곡점에서 아프고 절망했던 순간을 어제일처럼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시간은 과거와 현재라는 분명한 구분을 하지 않게 되고 동시에 미래도 언젠가는 구분되어지지 않을 것이다. 통째로 시간을 한 번에 본다면 소녀도 어머니도 할머니도 결국 하나일 테니까. 

  시공간이라는 물리적인 세계에서 한 발 뒤로 위로 물러나 다층적인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상상이라는 것의 드넓은 울타리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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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어제에 이어 구병모의 '단 하나의 문장'에 실린 나머지 다섯 편의 단편에 대해 적기로 한다.


미러리즘

4개월 전쯤 읽었기 때문에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한 남자가 병원에서 간호사로 위장한 누군가에게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게 되는데, 그는 중환자실에서 깨어 일어나고 자신이 여자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여자친구를 만나 자신은 남자들 중에서도 여성 혐오를 하지 않는 정도의 남자였고 정말 억울하다고 말한다. 직장에서는 총무부로 발령이 떨어지고 자신이 하던 일을 옆 팀장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는 너무나 억울하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말한다. 네가 지금 당하고 있는 일, 나는 계속 당해왔던 일이라고... 이 여자 친구의 말이 작가가, 여자들이(페미니스트가 아니라해도) 하고 싶은 말. 여자가 직접 돼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을 여자들은 항상 당하고 살아왔다.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것 같이 작가는 여백이 없는 문단과 행간을 빽빽하게 채워나간다. 의도는 좋지만, 그리고 꼭 필요한 발설이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진행시켰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숨이 찬다.

몇 개의 리뷰를 찾다가 한 독자의 감상과 평을 주의해 읽었다. 다분히 정치적인 작품들이라고, 너무 날카로와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입담이 이 정도가 아니라면 읽기에 괴로웠을 거라고 했다(네이버 블로그, 론샙). 나도 그 의견에 완전히 동감. 


웨이큰

익스피리언스 파크에서 벌어진 일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가상세계를 체험하는 것은 소풍을 가는 것과 별다르지 않다.  단체로 체험을 하러 온 어린 아이들이 가상세계에서 인질들에게 붙들린 채 헤어나오지 못한다. 

계약직으로 가상세계를 만들고 기기를 만든 개발자들이 이 상황에 다시 불려간다. 화자의 남편은 익스피리언스 파크에서 계약직으로 개발을 마치자마자 해고된 노동자이다. 억울했던 마음대로라면 이런 상황에서 불려가지 않아야하지만 자신의 어린 자식을 생각해보면 따지고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기막히고 분노할 일은 피해를 입은 약자들이 더 연민이 많고 헌신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남편은 가상세계에 들어가 아이들을 구하고 자신은 나오지 못한 채 '슬리핑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동안 파크는 개발자들을 내쫓고 아무것도 모르는 알바생들에게 이 가상체험 공간을 맡긴 것이다. 한데도 파크는 화자의 남편이 누워있어도, 아이들 몇이 희생되었어도, 다음날부터 다시 가상체험 놀이기구를 운영한다. 

 재미있고 유의미한 작품이었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고 쉼표가 없는 느낌이었다. 작가는 왜 이렇게 급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미러리즘과 웨이큰이 특히 그 점에서 아쉬웠다.


사연 없는 사람

자서전 대필을 주로 하는 작가가 대형 사고에서 죽은 사람을(시신) 만나게 되고 그에게 사연 있는 생을 만들어주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자칭"세상 어디서도 온전한 자신의 몫을 인정받지 못하는 대필작가이자 기획 작가이며 짜집기 전문 이야기꾼으로서의 집필 노동자인 나는 총 스물네 대의 차가 도로에서 뒤엉킨 참사, 그 아수라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한 구의 시신과 우연히 만난다. 양팔이 훼손돼 연고를 찾을 수 없는 시신의 뒷주머니에서 나의 명함이 발견됐다며 경찰이 신원 확인을 부탁하면서 인연이 생긴 것인데, 시체의 얼굴을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그에 대한 기억은 전무하다. 평소 명함을 습관처럼 여러 사람들에게 건네고 다닌 터라 외모만으론 도무지 특성 없는 남자인 그를 떠올리지 못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은 채'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될 것을 예감하면서 그의 죽음을 고유한 하나의 이야기로 기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야기 만들기'로써 망자를 애도하고 사회적 참사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자임하는 소설 속 나의 모습은 작가를 '고립적 예술가'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이야기 제작자'로 바꿔 상상해볼 것을 요청한다."(306p, 해설 중, 신샛별 문학평론가)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우연히 한 테이블에 앉게 된 '중고신인'인 네 명의 작가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중 오작가라는, 외진 시골에 묻혀사는 주부인 그녀는 '곰삭다'라는 말을 진저리 치게 싫어하는데...

"작가들이 어떤 강도로 자기 억압과 자기 감시에 시달리는지를 한 편의 우화로써 이야기한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곰삭다'라는 지배적 평가에 진저리를 치던 작가 '오'의 심리가 몇 단계의 자유연상을 거치면서 '곰'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로 이어지게 됐다는 사연이 서술되고, 이에 동료 작가인 나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그건 네가 자꾸 곰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하니까 그런 것인데 당연한 일이야. 그러니까 곰이 문제네. 곰부터 때려잡아.... 

술김에 내뱉은 이 말들 때문에 졸지에 나는 오의 곰 사냥에 동참하게 된다. '곰'이라는 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없애려고 진짜 곰을 때려잡겠다고 나선 오의 기이한 행동을 독자에게 설득하는 데 작가는 별 관심이 없어보인다. 그보다는 그 환상적 설정을 고집하여 곰이 두 작가를 덮치는 상황을 만들고, 머리 위로 드리워진 곰의 그림자 아래에서 주인공이 '곰'이라는 글자를 적은 뒤 그것을 '문'으로 읽어내는 임기응변을 발휘하는 순간을 향해 나아가기를 택한다. .......일종의 언어 전복이 작가의 본령이자 소임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해설 302~303p)


오토포이에시스

인류가 멸망하고 얼마 후, 쓰레기 더미 산에서 AI가 우연히 전기적 충격으로 일어나 걸어나온다.

그는 황폐한 땅을 걸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오지만 언어조차 제대로 통일되어 있지 않은 원시적인 마을과 무지한 사람들. 

그는 인류가 멸망하기 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로봇이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 적이 있으므로, 이제 그는 그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로 꿰어낼 단 하나의 문장을 찾으려고 매일 책상에 앉아 문장을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린다. 

몇 날 며칠 비가 내리고 삼 주 쯤 지나 햇살이 들 즈음, 이웃 마을의 여자가 그를 찾아왔지만 그는 책상에 엎드린 채로 완전히 멎어있다. 

이제 그는 정말로, 다시는 일어나 앉지 못할 것이고 단 한 문장도 쓸 일이 없을 것이다.

그 AI 머리 아래 책상 위에는 그녀가 가르쳐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언어가 씌어져 있을뿐.....


이 소설집의 표제'단 하나의 문장'은 AI가 그토록 헤매던 그것을 말함이다. 모든 것을 꿰뚫을, 모든 것을 다 봉합할 수 있는, 더는 다른 말이 필요 없는 단 하나의 문장을 찾고 싶은 사람들, 그토록 어휘가 풍부하고 날카로운 구병모 작가에게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단 하나의 문장인가 보다. 그것은 선문답으로만 가능한, 수많은 문장이 필요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이상화시키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 문장이 아니라 수많은 단어와 문장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싶을 뿐, 단 한 문장에는 관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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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구병모는 어휘가 많은 작가인 것 같다. 내가 '것 같다'고 굳이 한 발을 빼는 이유는 외국 작가는 물론, 국내 작가들조차  제대로 일별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편 '아가미'에서도 생경한 단어가 나올 때마다 사전을 찾곤 했는데 이 소설집에서도 그런 일이 꽤나 있었으니 어휘가 많고 그 어휘의 쓰임새가 남다른 작가일 거라고 짐작하게 된다. 밑줄을 그어놓은 단어들을 몇 개 옮겨본다.


돌라내다- 남의 물건을 슬쩍 빼돌려 내다.

뜨더귀(판)- 조각조가으로 뜯어내거나 가리가리 찢어내는 짓. 또는 그 조각.

타래,

맹사- 맹렬히 쏨, 목표물이 없이 또는 목표물을 겨누지 않고 함부로 사격함.

염결주의,고릿적, 오라, 

욕동- 활동을 하는 주도력과 충동 및 추진력.

울가망하다- 근심스럼거나 답답하여 기분이 나지 않는 상태이다.

이염- 염색되어 있던 물감이 다른 부분으로 번지거나 다른 물건으로 배어듦.

체머리- 머리가 저절로 계속하여 흔들리는 병적현상, 또는 그런 현상을 보이는 머리.

역연산, 거멀못, 안면 인식 불능, 패착, 

혼화하다- 한데 섞이어 합쳐지다.

폐곡선, 결락, 편재, 원생세포 등

사실 단어들을 이어 구와 절을 만드는 부분에서도 나로선 오! 감탄한 부분이 있었으나 다 적기에는 무리이므로 이 정도만 해둔다.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소설가 P씨의 종생을 지켜본 과정을 담담히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반전은 그 P씨가 결국 화자인 나라는 것.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가족을 챙겨야하고 글을 업으로 하기에는 일상이 바쁜 주부이다. 실제 많은  여작가들이 이럴 것이다. 습작하는 문청(?) 주부들도 사실 대부분 이렇다. 글에 매진해도 모자란 판에 식구들 챙기고 친정시댁 모른 척 할 수 없으니 언제 작가가 될 것인가, 오매불망이되 현실은 한없이 늘어지다 사라지기도.... 

그런데 P씨는 어떻게 종생을 맞게 되었는가.

처음 P씨는 그런대로 잘 나가는 작가 같았다. 어느 정도 '소비되기 좋고 소진되기 쉬운 적당한 감흥을 안겨주는' 작품을 쓰면서, 더구나 처음부터 드라마, 영화와 웹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유명세를 얻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P씨는  도통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음으로써 정체를 궁금하게 만드는 은둔자 이미지를 고수한다. 하지만 사회파 스릴러쯤 되는 소설을 내놓은 후에는 독자들의 질타와 비난은 계속된다. 그러나 P씨는 별 반응없이 자신의 SNS에 사진이나 덜렁 몇 장 올리고, 종내는 출판사가 P씨를 대신해 변명 겸 사과를 한다. 

그래도 P씨는 얼굴을 내밀지 않고 한동안 잊혀지다가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을 때, 이번에는 정말 큰 사건없이 잔잔한 한 가족의 서사를 장편으로 선 보이고.... 그렇게 그렇게 천천히 사라진다. 화자인 나는 남동생의 도와달라는 문자, 큰형님한테서 낼모레 제사에 올수 있느냐는 문자를 받고 하교할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제목의 P씨는 PC를 가르킨 것 같다. 있을 법한 작가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기록이었다. 어쩌면 P씨의 종생이 그렇게 비극적이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화자에게는. 화자인 나는 이제 한 주부로서 바쁜 일상을 살게 될테니까. 절망하고 눈물 흘릴 여유도 없으므로. 

작가의 단편 중 아마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아닐까 싶다.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제목만으로는 한 아이를 둘러싼 마을의 관심과 축복이 무척이나 행복하게 그려질, 무슨 크리스마스 축제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남편이 어쩌다 시골마을로 전근을 하게 되고 아기를 낳은지 얼마 안 된 정주는 남편을 따라 그 시골로 주거지를 옮긴다. 한데 시골 인심이라는 게, 어르신들의 공동체적인 관심이 정주에게는 지나친 간섭이 되고 사적 공간이 침범당하며 자아가 사라지는 일상이 되고 만다. 사소한 일에도 감시를 당하는 것 같은, 그리고 도시에서는 충분히 있을법한 일들도 시골 동네에서는 사치가 되고(아이에게 선물로 오는 택배와 내가 시킨 필요한 물품들이 매일 쌓이자) , 정주는 예의없는 인간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남편은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 선생이라는 이유로 매일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행사에 초대되어 술에 취에 들어온다. 남편은 선생이라는 업무보다 이런 외적인 일에 시달림을 당하느라 매일 초죽음이 된다. 정주는 견딜 수 없어 남편과 싸우게 되고 이혼을 하더라도 잠시 헤어져 살기로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제목에서 느꼈던 온기는 작품 중반부터 스릴러에 못잖은 긴장으로 바뀌고 숨이 막힌다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아무래도 도시인들에게는 매일 나다녀도 아무도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 인한 자유가 몸에 배었기 때문에 그런 시골 생활을 견딜 수 없는 것이리라. 

온 마을이 한 아이에게 가지는 관심은 정주에게 저주가 되고 말았다. 

언젠가 누군가 한 말이 생각난다. 아파트라는 건물에서 서로 아는 체 인사를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라고... 서로 모르는 채 인사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게 예의라고...

정말 그렇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여실히 깨달았다. 도시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정주는 문득 러시아워에 어깨를 부딪치거나 서로 발을 밟고 밟히는 사이였던, 다시 스쳐갈 일 없으며 형상이 떠오르지 않는 수천수만의 얼굴들이 그리워졌다. 누구도 정주를 알지 못하며 정주 또한 그들을 모르는 세계에서의 불안과,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나 실상은 아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의 안식 가운데 선택을 요하는 문제에 불과했다. 환멸과 친밀은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는 값싼 동전의 양면이었고, 이쪽의 패를 까거나 내장을 꺼내 보이지 않은 채 타인에게서 절대적 믿음과 존경과 호감을 얻어낼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지속되는 호의

한 가족이(부부와 아이) 여름 날 풀장에서 물놀이 중 벌어진 미칠 것 같은 에피소드.

우연히 옆에 있는 여자아이를 도와주었다가  나중에는 그 아이의 동생인 남자아이까지 둘이서 계속 주인공 서영에게 버릇없이 장난을 걸고 서영의 아들 상휘에게도 우악스럽고 짓궂은 장난으로 괴롭힌다. 

"큰 얼굴에 눈 코 입이 중앙을 향해 모여 불룩 솟은볼살 안으로 파묻히기 직전인 경도 비만의 아이. 여덟 팔 자를 뒤집은 모양으로 터진 솔기처럼 보이는 작은 눈구멍 사이에 눈동자로 추정되는 검은 실밥이 드러났다. 두개골에 금이 갈까 겁나게 꽉 끼는 수영모 바깥으로 어깨 길이 머리카락이 비어져나온 모습은 버려진 싸구려 소파의 내장을 채운 석면 유리솜을 떠올리게 했으며... 검게 탄 피부는 군데군데 껍질이 벗어져서 덜 구워진 채 오븐 아래로 떨어뜨린 빵 반죽 같았다."

버릇없고 도대체 무지막지한 아이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실감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버지는 자기 자식들이 무얼 하고 다니는지 관심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몇 번 흘끔거릴수록 퉁퉁 부은 얼굴이며 거무튀튀한 피부가 더욱 그 남매의 아비가 맞다는 확신이 섰다. 평소 우려스럽도록 살찐 사람들을 대할 때, 서영은 그들이 자기 관리를 게을리한 결과일 뿐이라는 편견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당위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비록 학습된 인지상정에 불과하더라도. 그러나 남매의 아비는 저 폼나 보이는 선글라스만 벗으면 그 아래에서, 사람들의 선입견을 충실히 반영한 은둔형 외톨이의 상상도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벽은 일본 거유 소녀들의 그림으로 도배하고, 제 손 같은 동족의 족발이나 치킨을 뜯으며, 게임 속 연신과의 연애에 푹 빠져 현실을 잊는 거우의 여드름투성이 안경쟁이."

구병모의 묘사와 설명은 사람 하나를 외형에서부터 태도와 일상살이까지 짐작하도록 만들어준다. 

결국 상휘는 그 남매와 사라지고 부부는 아이들을 찾아 풀장을 뒤진다. 아이를 찾는 부모는 제 정신이 아니라 상휘의 이름을 부르면서 미친 듯 뛰어다닌다. 일면식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한 아이에게 당연하다 느껴 베풀었던 호의가 악의적인 사태로 돌아올 줄 그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어느 순간 자신을 괴롭히고 상휘를 괴롭히며 놀던 남매를 속으로 돼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한편 인구밀도가 높은 반대쪽 파라솔에서는 부모들이 이쪽을 흘끔거리며 불평했다. 저게 뭔 일이래, 그저 어디 잠깐 놀다 오나보지, 뭘 저리 유난을...... 아이들은다시 물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서영에게는 그 모든 장면이 원래의 속도와 부피를 잃은 채 잼과 같은 감촉으로 자신의 피부를 훑고 슬로모션으로 지나가면서 자신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로 느껴졌다. 부패한 암죽처럼 흘러내리는 현실, 흩어지는 윤곽, 한낮의 악몽"

이 작품을 읽을 때(사실 앞의 4편은 몇 달 전에 읽었고 뒤의 네 편은 그제어제오늘에 걸쳐 읽었다) 나는 구병모 작가의 디테일한 정황 묘사, 그리고 주인공 서영의 내면(허위의식과 예의 때문에) 심리묘사를 혀를 내두르며 읽었다. 놀라운 어휘력과 놀라운 관찰력, 내가 풀장에 서서 어린 아들을 찾아다니는 그 어지럽고 혼란스럽고 아뜩한 느낌이 저절로 들었다. 정말 대단한 입심의 작가이다.


감자에게 약 먹여야 할 시간이 지났다. 그러니 내일 2부를 쓰고 오늘은 이만 줄이기로. 

그런데 문득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 안녕히들 주무세요. 벌써 12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바이,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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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이 책은 박지후씨가 추천해서 읽고 소감 나누기를 했던 책이다. 특히 표제가 된 작품은 이미지즘적인 배수아 스타일이 온전하게 드러난 작품이라고 본다. 어딘가 모호하고 아슴프레하게 다가오는 서사와 그림처럼 남는 이미지로 인해 다른 작가들과 완연히 다른 인상을 남기게 되는 단편이다. 강렬한 이미지, 우울하고 모호한  정서, 기억나지 않는 서사. 
  또한 작가는 일반적인 정통 소설에서 서사를 다루는 방식과 조금 다른 스타일을 선보인다. 그것은 의식의 흐름 기법이다. 우리 의식에서 순간순간 지나가는 찰나의 연상과 사유, 기억들이 자유자재로 들고 난다. 그렇다고 완전히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여진 것은 아니다. 소설이란 그런 기법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영역일 테니까.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지후씨가 또 강력하게 추천한 <뱀과 물>을 병행해 읽었다. 오츠의 <여자라는 종족>과 더불어 세 권의 책을 아무데나 놔두고 되는 대로 어쩌다 걸리는 대로 읽었다. 언제나 내겐 새롭고 획기적인 책들인데 그런 대접을 세 권의 책은 받지 못했다. 그러니 독후감을 쓰는 것으로 이 책들의 존재감을 확인해줘야겠다.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연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국도를 지나는 길에 푸른 사과를 파는 여인을 만난다. 사각거리는 누런 종이봉투에 사과를 담아주는 여인은 두껍고 성글게 짠 머플러를 하고 뺨은 거칠고 붉으며 머리에는 먼지가 쌓인 것만 같다. 

  이 애잔하고 쓸쓸한 이미지는 이 소설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장식한다. 친구의 이야기, 사촌 언니의 이야기, 같이 국도를 지나 어느 섬으로 여행을 다녀왔던 연인의 이야기.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이상하게 안개처럼 흩어져버리고 그 짙은 안개 속에서도 유독 푸른 사과와 국도, 머플러를 쓴 뺨이 튼 것 같은 여인만이 강렬하게 끝까지 기억으로 남는다.

  이 단편에서 작가는 아주 자연스럽게 과거의 한 자락을 현실로 가져오며 그것은 조금도 독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능숙하다. 꼭 인과관계가 맺어질 때만 과거를 불러와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상, 어떤 정황, 어떤 하찮은 티끌 한 조각도 과거를 데려올 수 있는 것이다. 또 불려온 과거는 특별한 이유없이 불려나왔듯이 제 역할을 다하기 전에 또 사라진다. 두 문장, 세 문장, 이게 뭔가 싶게 만들고 불친절하게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뭔가 아슴프레한 요소를 만들어내며 진행되던 현재의 서사는 그 윤곽이 뭉개지고 만다.

 해서 배수아의 소설은 서사가 있으되 명징하게 잡히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정통소설을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뭐가뭔지 좀 애매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미묘한 감정을 만들어내고 모호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세련된 작품 전체 분위기를 가져온다. 

* 이 작품의 주요 이미지

  푸른 사과, 국도, 사과를 파는 여인, 국도 양쪽에 늘어선 플라타너스(였던가?), 먼지, 노을, 섬, 차 앞을 스쳐지나간 고양이, 방황하는 젊은이들, 외로움, 눈 쌓인 산 속, 어두워가는 스포츠 의류 아울렛 매장 앞에서 신문지에 불을 붙여 태우는 남녀들, 친구의 죽음, 그 친구가 마지막 들고 있었던 백화점 행사용 독일제 나이프, 사촌 언니, 영혼 대신 물질적인 안정, 눈에 빛이 사라졌다. 나는 그 국도와 푸른 사과와 사과를 파는 여인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나도 언젠가 그런 여인이 돼 있을 것 같다. 


1988년의 어두운 방

  몇십 명의 사람들이 콘도에 모인다. 그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져 한 편은 콘도에 머물고 한 편은 바닷가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유별난 여자 시인이 내게 관심을 보인다. 그녀는 몇 년 전, 이국의 호텔에서 내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을 그녀는 기억해 낸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일까? 나로선 잘 모르겠다. 작가의 의도와 목적을 알 수 없는 글들도 간혹 있으니까. 내가 무슨 얘기를 할 때 그것을 온전히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적이 많지 않으므로 이해된다. 그걸 것일 테지.

  이 단편에서도 동생의 남자가 죽는다. 이 정도로 해 두자.


엘리제를 위하여

  한 소녀의 성장기. 피아노를 치던 소녀와 소년. 엄마가 죽고 동생이 죽고. 시장통을 지나가는 소녀들과 자전거를 타는 한 소녀의 그림이 보일 듯 묘사가 뛰어나다. 이 작품은 정통소설의 서사를 제대로 따른다. 서사가 오롯이 살아있다. 


여섯번째 여자아이의 슬픔

 남학생들이 한 여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그녀를 만나고 싶어한다. 그녀는 집안에서 여섯번째 아이다. 기윤은 내게 함께 살자고 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의 동기면서 사촌인 준영은 여자아이와 주문진 행 기차를 탄다. 준영은 은행에서 돈을 찾고 여자아이는 사실 자기는 임신했다고 말한다. 도착지인 주문진 버스를 타고 떠나기 전에 준영은 내려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그는 그 버스를 타지 않는다. 버스 안에서 여섯번째 여자아이는 슬픈 꿈을 꾸고 있다. 

  엘뤼아르의 시 

  어쩌란 말인가 도시는 굶주렸는데. 어쩌란 말인가 우린 무장해제 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밤은 떨어졌는데. 어쩌란 말인가 우린 사랑했는데.


아멜리의 파스텔 그림

  이 작품은 내게 배수아가 얼마나 뛰어난 작가인지를 증명해준 단편이었다. 동생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언니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언니가 동생에게 소개해주려던 남자는 사실 언니가 대학 때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남자이다. 그 남자는 지금 화구상을 크게 하고 있고 그림도 그리는 화가인데 한쪽 다리를 저는 사람이다. 

  집들이를 하는 날 손님들이 아멜리 카페에 걸린 그림에 대해 말하며 그 화가가 누구인지에 대해 갑론을박한다. 동생은 주방에서 손님들의 그런 잡담을 듣고 있다. 언니는 동생을 붙들어놓고 한 남자가 오기를 기다린다. 뒤늦게 온 남자가 나가려하자 동생이 그 남자에게 함께 가자고 한다.

 둘은 비가 퍼붓는 도로변에 차를 세운다. 바로 앞에는 통유리로 된 아멜리 카페가 훤히 빗속에서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카페 벽에 대형 파스텔 그림이 걸려 있다. 동생인 그녀가 남자에게 말한다. 저 그림을 누가 그린 줄 아느냐고, 자기는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을 알고 있다고. 

  젊은 날, 오래 전, 그는 군대에 가지 않겠다며 여자에게 자신과 강원도로 떠나자고 했다. 여자는 짐을 챙겨 그와 떠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결국 군대에 갔고 그녀의 여행가방은 오랫동안 짐을 풀지 않은 채 한구석에 남겨져 있었다. 그가 바로 그 그림의 화가였다. 그녀는 지금 비내리는 아멜리에 카페 앞에서 오늘 처음 만난 남자에게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생각한다. 자신의 생에서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언니의 시점으로 언니는 유치원에서 나오는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으로 함께 쇼핑 겸 놀러간다. 그녀는 물건을 고르고 만지면서 생각한다.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뒤에 더 있는 두 편, '인디언 레드의 지붕'과 '검은 늑대의 무리'는 생략하겠다. 읽을 때도 재미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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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종족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강수정 옮김 / 예담 / 2009년 9월






일기 비슷해질 것 같다. 텍스트 이외의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이 책은 예선 언니가 준 책인데(언니에게서 몇 권인가 책 선물을 받았다) 내게는 부족한 스릴러와 공포, 불안 등이 주제와 소재로 다루어지는 단편소설집이었다. 여자들이 주인공이거나 화자가 되기도 하고 3인칭 전지적 시점을 쓰기도 하는데, 주로 피해자나 가해자가 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단순히 좀 끔찍하거나 두려운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범죄적인 선에까지 근접하므로 나로선 썩 좋아하지 않는 장르이다. 바로 이 점,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또 잘 다루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필요하다면 필요한 소설집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몇 편의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고 재미있어서 배운 것도 있고 신선하기도 했지만 목차에 있는 것 전부를 읽기에는 버거웠다. 그만큼 나는 이런 장르적인 문학을 좋아하지 않거니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연이어 나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반복되는 패턴을 못 견뎌한다. 그래서 반쯤 읽다가 책을 덮었고 배수아의 책 두 권을 읽다보니 세 권의 책이 한 자리에 모여 있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해서 배수아와 오츠를 교대로 읽은 셈이 된다.

그러면서 거의 세 달이 지나갔다. 중간에 이사를 했고 아팠고 우울과 실의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들이 한 달이 넘었다. 

그리고도 권외의 이야기 또 하나. 오츠의 책 붉은 면지에 수많은 작품들이 언니의 펜으로 메모되어 있었다. 그걸 하나하나 써보련다.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하진 <멋진 추락>(중국 작가)-이전에 waiting(기다림)의 작가이다. 미국 내에서도 엄청난 작가.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배명훈 <신의 궤도>

이케이도 준 <하늘을 나는 타이어>

조이시 캐롤 오츠-- '블랙워터, 블론드, 작가의 신념.

토머스 h <붉은 낙엽>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뒤마클럽>(스페인 작가)

예선 언니가 좋아하는 책들의 반(?) 정도는 스릴러와 미스터리, 고딕인 것 같다. 나랑 취향이 아주 정반대인 편인데 내게는 그런면에서 반쪽 동반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잊었을 때를 대비해(벌써 거의 잊었다) 가장 좋았던 작품에 대해서는 간단히라도 언급해야겠다. 

1. 하늘에 맹세코

출신과 계급이 확연히 다른 연상의 남자, 그것도 폭력적이고 교묘하면서 의심까지 많은 남자에게 유혹당한(그러나 깊게 보면 가스라이팅과 성폭력이 개재되어 있다) 어린 소녀가 그와 결혼해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다 그 굴레를 벗어나는 이야기. 그러나 의도치 않은 살인이 벌어지고, 소녀는 부유하고 권위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어쩌면 그런 남자에게서 벗어나는 길은 살인 외에는 달리 길이 없을지 모른다. 결코 살아있는 그가 그녀를 보내줄리는 없으니까...

그런데 이 서사를 풀어가는 작가의 방법은 아주 센스있고 매력적이다. 

첫 문장, 문단 - "전화벨이 울린다. 사촌 안드레아가 받는다. 맹렬한 기세로 비가 내리는 지난 4월의 어느 평일 저녁, 7시를 막 넘겼을 뿐인데 어둡기가 한밤중 같다. 안드레아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 집인 양 수화기를 들면서 갓난쟁이 딸을 왼쪽 엉덩이께로 옮기는데, 그 모습이 마치 1930년대에 워커 에번스가 찍어서 널리 알려진 시골 농가의 이민자 아낙을 연상시킨다. 벨이 울린다! 그녀의 손에서 수회기를 뺏어 들고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냅다 내려놓았으면 좋았을 걸."

안드레아는 주인공의 사촌 언니쯤 된다. 나는 안드레아가 아주 중요한 인물인 줄 알았다. 이런 건 몰랐지? 하며 작가가 내게 메롱, 혀를 내밀고 있는 것 같다. 안드레아는 뒤에서도 거의 언급이 없다. 이런 시작이 매력적!!! 이런 스릴러적인 작품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작품만은 다시 봐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다시 볼 일은 업을 것이다.


2. 인형, 미시시피 로맨스

어린 소녀처럼, 인형처럼 화장을 하고, 의붓아빠인지 매니저(?)인지 되는 남자와 떠돌아다니며 원조교제(그러나 대부분 하룻밤)를 하는 것으로 생활을 이어간다. 소녀는 해맑을 정도로 거짓말에 능숙하며 매니저에게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황을 택하고 주도한다. 소녀는 찌질하고 비열한 성인 남자들을 조롱하고 끝내는 그들의 신체의 한 부위를 잘라서 수집하는 것을 취미로 삼기도 하는데... 너무 끔찍하고 잔혹하지만 비열한 남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죽이고 도륙하는 데에는 약간의 후련함이(?).


3. 허기

한 부르주아 젊은 주부의 일탈기- 믿음직스럽고 충직하며 우직한 남편을 죽일 것인가, 매혹적이지만 불순해서 위험한 정부를 죽일 것인가? 그녀는 기로에 서 있다. 

'허기'는 애정에, 소통에, 매혹에 허기진 그녀 마음을 가리킨다. 제목이 좋았다. 


4. 용서한다고 말해 줄래?

딸아이가 어릴 때 불륜 관계에 있던 남자를 지하실로 떠밀어 죽이고 그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지하실로 내려보낸 여자의 죽기 전 편지와 그 놀라운 사연이 주요서사인데, 그런데 반전은 , 그 불륜의 남자를 죽인 이유가, 자신이 친부를 사랑하고 모종의 관계를 친부와 맺었다는 비밀을 그 남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딸에게 죽은 남자를 확인하는 심부름을 시킨 일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지만 친아버지와 사랑에 빠져 엄마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그로 인해 불륜남을 죽인 여자의 말로가 너무나 기막혔다. 반전에 반전. 막장드라마도 이런 막장이 없어서 오츠의 상상력과 그 대담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놀랍다. 놀랍다.


5. 분노의 천사

사랑하는 미혼모인 여자를 위해, 그녀가 원하는 남자를 죽여주는 천사가 된 남자. 집착이라 말할 수 없는 광기의 스토커. 그는 그녀가 지목하는 남자를 죽이고 그녀의 믿음을 얻는다. 가난하고 서글픈 그녀에게 한편으로는 천사일 수도 있겠다.  


6. 자비의 천사

미국 한 병원에서 오랫동안 간호일을 했던 전문 간호사인 여자가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환자들을 약물로 안락사한다. 그러나 여자의 의도는 점점 변질돼 환자를 죽이는 일이 환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적인 만족이나 피로함을 덜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되어간다. 그녀는 자신의 행위를 정의롭고 자비로운 것이라 내심 믿고 있었다.수십 명의 환자들의 그녀의 손에서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채 죽어갔다. 그리고 몇 십 년 뒤까지 그녀의 이름은 자비의 천사라고 불리며 병원에서 전설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쓰다보니 총 9개의 단편 중에 6개나 썼다. 나름 꽤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소재가 만만치 않게 충격적이어서 내겐 좋은 학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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