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어제에 이어 구병모의 '단 하나의 문장'에 실린 나머지 다섯 편의 단편에 대해 적기로 한다.


미러리즘

4개월 전쯤 읽었기 때문에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한 남자가 병원에서 간호사로 위장한 누군가에게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게 되는데, 그는 중환자실에서 깨어 일어나고 자신이 여자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여자친구를 만나 자신은 남자들 중에서도 여성 혐오를 하지 않는 정도의 남자였고 정말 억울하다고 말한다. 직장에서는 총무부로 발령이 떨어지고 자신이 하던 일을 옆 팀장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는 너무나 억울하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말한다. 네가 지금 당하고 있는 일, 나는 계속 당해왔던 일이라고... 이 여자 친구의 말이 작가가, 여자들이(페미니스트가 아니라해도) 하고 싶은 말. 여자가 직접 돼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을 여자들은 항상 당하고 살아왔다.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것 같이 작가는 여백이 없는 문단과 행간을 빽빽하게 채워나간다. 의도는 좋지만, 그리고 꼭 필요한 발설이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진행시켰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숨이 찬다.

몇 개의 리뷰를 찾다가 한 독자의 감상과 평을 주의해 읽었다. 다분히 정치적인 작품들이라고, 너무 날카로와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입담이 이 정도가 아니라면 읽기에 괴로웠을 거라고 했다(네이버 블로그, 론샙). 나도 그 의견에 완전히 동감. 


웨이큰

익스피리언스 파크에서 벌어진 일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가상세계를 체험하는 것은 소풍을 가는 것과 별다르지 않다.  단체로 체험을 하러 온 어린 아이들이 가상세계에서 인질들에게 붙들린 채 헤어나오지 못한다. 

계약직으로 가상세계를 만들고 기기를 만든 개발자들이 이 상황에 다시 불려간다. 화자의 남편은 익스피리언스 파크에서 계약직으로 개발을 마치자마자 해고된 노동자이다. 억울했던 마음대로라면 이런 상황에서 불려가지 않아야하지만 자신의 어린 자식을 생각해보면 따지고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기막히고 분노할 일은 피해를 입은 약자들이 더 연민이 많고 헌신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남편은 가상세계에 들어가 아이들을 구하고 자신은 나오지 못한 채 '슬리핑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동안 파크는 개발자들을 내쫓고 아무것도 모르는 알바생들에게 이 가상체험 공간을 맡긴 것이다. 한데도 파크는 화자의 남편이 누워있어도, 아이들 몇이 희생되었어도, 다음날부터 다시 가상체험 놀이기구를 운영한다. 

 재미있고 유의미한 작품이었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고 쉼표가 없는 느낌이었다. 작가는 왜 이렇게 급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미러리즘과 웨이큰이 특히 그 점에서 아쉬웠다.


사연 없는 사람

자서전 대필을 주로 하는 작가가 대형 사고에서 죽은 사람을(시신) 만나게 되고 그에게 사연 있는 생을 만들어주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자칭"세상 어디서도 온전한 자신의 몫을 인정받지 못하는 대필작가이자 기획 작가이며 짜집기 전문 이야기꾼으로서의 집필 노동자인 나는 총 스물네 대의 차가 도로에서 뒤엉킨 참사, 그 아수라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한 구의 시신과 우연히 만난다. 양팔이 훼손돼 연고를 찾을 수 없는 시신의 뒷주머니에서 나의 명함이 발견됐다며 경찰이 신원 확인을 부탁하면서 인연이 생긴 것인데, 시체의 얼굴을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그에 대한 기억은 전무하다. 평소 명함을 습관처럼 여러 사람들에게 건네고 다닌 터라 외모만으론 도무지 특성 없는 남자인 그를 떠올리지 못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은 채'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될 것을 예감하면서 그의 죽음을 고유한 하나의 이야기로 기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야기 만들기'로써 망자를 애도하고 사회적 참사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자임하는 소설 속 나의 모습은 작가를 '고립적 예술가'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이야기 제작자'로 바꿔 상상해볼 것을 요청한다."(306p, 해설 중, 신샛별 문학평론가)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우연히 한 테이블에 앉게 된 '중고신인'인 네 명의 작가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중 오작가라는, 외진 시골에 묻혀사는 주부인 그녀는 '곰삭다'라는 말을 진저리 치게 싫어하는데...

"작가들이 어떤 강도로 자기 억압과 자기 감시에 시달리는지를 한 편의 우화로써 이야기한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곰삭다'라는 지배적 평가에 진저리를 치던 작가 '오'의 심리가 몇 단계의 자유연상을 거치면서 '곰'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로 이어지게 됐다는 사연이 서술되고, 이에 동료 작가인 나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그건 네가 자꾸 곰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하니까 그런 것인데 당연한 일이야. 그러니까 곰이 문제네. 곰부터 때려잡아.... 

술김에 내뱉은 이 말들 때문에 졸지에 나는 오의 곰 사냥에 동참하게 된다. '곰'이라는 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없애려고 진짜 곰을 때려잡겠다고 나선 오의 기이한 행동을 독자에게 설득하는 데 작가는 별 관심이 없어보인다. 그보다는 그 환상적 설정을 고집하여 곰이 두 작가를 덮치는 상황을 만들고, 머리 위로 드리워진 곰의 그림자 아래에서 주인공이 '곰'이라는 글자를 적은 뒤 그것을 '문'으로 읽어내는 임기응변을 발휘하는 순간을 향해 나아가기를 택한다. .......일종의 언어 전복이 작가의 본령이자 소임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해설 302~303p)


오토포이에시스

인류가 멸망하고 얼마 후, 쓰레기 더미 산에서 AI가 우연히 전기적 충격으로 일어나 걸어나온다.

그는 황폐한 땅을 걸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오지만 언어조차 제대로 통일되어 있지 않은 원시적인 마을과 무지한 사람들. 

그는 인류가 멸망하기 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로봇이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 적이 있으므로, 이제 그는 그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로 꿰어낼 단 하나의 문장을 찾으려고 매일 책상에 앉아 문장을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린다. 

몇 날 며칠 비가 내리고 삼 주 쯤 지나 햇살이 들 즈음, 이웃 마을의 여자가 그를 찾아왔지만 그는 책상에 엎드린 채로 완전히 멎어있다. 

이제 그는 정말로, 다시는 일어나 앉지 못할 것이고 단 한 문장도 쓸 일이 없을 것이다.

그 AI 머리 아래 책상 위에는 그녀가 가르쳐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언어가 씌어져 있을뿐.....


이 소설집의 표제'단 하나의 문장'은 AI가 그토록 헤매던 그것을 말함이다. 모든 것을 꿰뚫을, 모든 것을 다 봉합할 수 있는, 더는 다른 말이 필요 없는 단 하나의 문장을 찾고 싶은 사람들, 그토록 어휘가 풍부하고 날카로운 구병모 작가에게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단 하나의 문장인가 보다. 그것은 선문답으로만 가능한, 수많은 문장이 필요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이상화시키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 문장이 아니라 수많은 단어와 문장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싶을 뿐, 단 한 문장에는 관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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