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향수>를 읽었다. 당연히 쥐스킨트의 대표작이지만 미학적 관점에서, 또 소설적 완성도나 예술성에서 <향수>는 문학예술의 최고봉을 점하고 있다. 이 책은 85년 출간되어 3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세계적으로 150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이 작품으로 그는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고. 

 

 향기 하나로 인생을 점철한 한 남자의 고독하고 불행한 이야기가 향수의 스토리이다. 

 

 1738년 7월 17일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가 태어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모질게 불운한 여자가 다섯 번째 어린애를 시장통 구석에서 낳고 스스로 태를 자른다. 그녀는  네 번이나 애를 낳았고 그 애들이 다 죽었기 때문에 이 다섯 번째 애도 죽을 거라 생각해 잘린 생선 머리들 사이에 처박아버린다. 그러나 그녀가 쓰러지고 사람들이 몰려오자 생선 속에 버려진 아이가 구출된다. 아이 엄마는 아이들을 넷이나 죽였다는 죄로 광장에서 처형되고 아이는 수도원 신부가 유모를 구해 키워준다. 아이의 이름은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그런데 아이는 이상하다. 인간이라면 지녀야 할 냄새가 없다는 것. 그래서인지 아이는 귀엽고 불쌍한 게 아니라 끔찍하고 공포스러웠다. 여덟 살이 되자 아이는 버려지고 이후로 무두장이의 심부름꾼이 되어 큰다. 그러다 그르누이는 열악한 작업장에서 탄저병에 걸려 목숨이 끊어질 만큼 위태로운 가운데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키가 작고 등에 혹이 있는 것처럼 구부정한데다 얼굴과 목과 어깨에 얼룩덜룩한 반점마저 있어 일반인들에게 기피할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놀라운 재능이랄까 특이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냄새나 향기에 대한 특별한 감각이다. 그는 냄새나 향기를 맡으면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하는 비상함과 남들은 맡지 못하는 아주 실낱같이 멀리서 날아오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는 점점 향을 맡으러 도시를 돌아다니고 냄새를 수집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자기 안에서 분류하고 조합한다.   

 

 읽으면서 생각했다. 왜 그르누이는 냄새가 없을까. 인간이면 누구나 특유의 냄새가 있고 땀을 흘리면 땀내가 나고 피를 흘리면 피냄새가 난다. 근데 작가는 어째서 냄새 없는 주인공을 창조해냈을까. 그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갖고 있는,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결핍'이라는 문제를 '향기'로 끄집어낸 게 아닐까. 자신을 다른 인간들에게서 소외시키고 평생 외로움과 열등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그르누이는 동일시될 만한 인간상이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그르누이는 무두장에서 커다란 향수판매점으로 옮겨가고 거기서부터 자기만의 재능을 홀로 꽃피우기 시작한다. 그는 증류하는 법과 수많은 향수의 재료를 알게 되고 향기를 찾아 도시를 배회하다 너무나 특별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우연히 찾아 나서게 된다. 그리고 그 향기를 지닌 소녀를 죽이게 된다. 그는 오직 그녀의 향기를 가지려고 살인을 한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전무했다. 


 배울 걸 다 배운 그는 향수점을 떠난다. 그리고 7년간 산에서 혼자 산다. 그는 그만큼 인간을 증오하고 싫어한다. 하지만 혼자만의 낙원에서 살던 그는 어느날 안개에 갇혀 헤매는 꿈을 꾼다. 그 안개는 그의 체취. 그런데 그의 체취 자체인 안개에서는 어떤 냄새도 없다. 그는 안개 속에서 괴로워 날뛰다 비명을 지르고 깨어난다. 그로써 드높은 산 위에서의 안락한 삶은 끝난다.


 그는 세상으로 내려와 다시 향수를 만드는 일을 한다. 그러나 목적은 분명해졌다. 그가 만들고 싶은 향수는 사람냄새. 다른 이들과 같은 냄새를 가진 인간이 되려는 것이다. 그것도 여러가지의 다양한 인간의 냄새. 남들에게 관심을 받지 않는 약하고 흐린 인간의 냄새, 누구나 맡으면 저절로 사랑하게 되는 마법같은 향기로운 냄새 등....

 

 그는 그런 향기를 만들어 자신에게 바른다. 그러자 그의 오랜 컴플렉스였던 무취의 그가 타인들과 같은 사람이 된다. 그러다 오래 전 향기를 독차지하기 위해 한 소녀를 죽였던 것처럼 소녀에서 여인이 되려는 여자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그녀들을 죽이고 냄새를 채취하면서 살인은 스물다섯 번 자행된다. 목표였던 모든 향수를 결국 다 만들게 그르누이.


 그르누이가 만든 최고의 향수는 결국 인간냄새. 그는 그것으로 자신의 위대함을 스스로만 알게 된다. 그러니 그르누이의 불행은 진정한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것.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인간다운 삶이라는 역설이 그르누이가 만든 향수가 말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긴 인간으로 태어났다해서 다 인간답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꽤 많다. 향수를 뿌려서 자신의 악취를 덮고 인간다운 척 해봐야 그건 가면을 쓰고 자신의 얼굴을 가려야만 진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향수, 가면, 권위, 재산, 학식, 미모, 권력 등등...... 그런 것들에 자신을 기대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기자신 자체로 온전히 행복할 때라야 진정 행복할 것이다. 그러니 도를 닦는 일, 수련은 인간이면 언젠가는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죽기 전에 자신의 본질에 도달해야....

 

 다시 그르누이로 돌아가면, 

 그러나 그의 스물다섯 번째의 살인은 발각되고 그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광장의 처형대에서(십자가 처형) 죽어야할 운명이 된다. 그러나 그가 광장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매료되고 그들은 그를 살인자가 아닌 사랑스러운 인간이라고 믿게 된다. 그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그만의 향수가 있지 않은가. 그 향수가 사람들을 미혹하고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환락을 원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마법같은 향기로 인해 환각상태에 빠진 인간들에게서 죽음을 면한다. 그러나 그는 갈 곳이 없다. 산 위에서 혼자 7년을 살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 자신을 그 곳에서 몰아냈다. 인간 세상에 돌아와서 살아봤지만 "사람들은 어디서나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파리에서 죽기로 하고 파리를 찾아간다. 

 

 이노셍 묘지에 다다른다. 그곳은 갈 곳이 없는 천민들이 밤마다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가 향수병을 열자 그들은 그를 파란 옷의  천사라 생각하고 어떤 이해할 수 없는 흡인력에 끌려 그에게 덤벼들어 그를 차지하려고 싸운다. 그리고는 그들은 종내는 그를 죽이고 잘라서 나눠먹는다. 그런데 그런 후에도 그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당당하다. "그들이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향기 하나를 소재 삼아 쓴 소설이 이렇듯 엄청난 이야기를 품고 있다. 18세기의 파리와 지방 도시들, 당시의 사람들과 사회상을 재연하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열심히 자료를 모았는지 알 만하다. 이 작품을 쓸 때 쥐스킨트의 책상 위에는 커다란 18세기의 파리 지도가 붙어있었고 향수의 도시 그라스를 몇 차례나 방문했다고 한다. 향수를 만드는 과정 또한 구체적이고 리얼하다. 치밀한 쥐스킨트의 작가정신이 이 작품에서 정말 향기롭게 폭죽처럼 터진다. top 10에 끼워둘 수작이다. 


 내일은 <향수>에서 경탄 그 자체였던 문장들을 옮겨 적으려 한다. 책 전체가 경탄 자체이지만 그래도 쥐스킨트의 놀라운 문장들을 다시 대면하기 위해 책을 들춰가며 베껴 적으련다. 쥐스킨트는 천재다. 예술가다. 그는 작가 아닌 다른 방면의 사람일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런 작가는 사람들을 무력감에 빠지게 만든다.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도 쥐스킨트는 나의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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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8-23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약 나무감사드립니다. 영화로만 봤는데 책 읽기에 추가합니다. 쥐스킨트의 단편만 봤었어요 :-)

lea266 2020-08-2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읽을 만한 책이예요 쥐스킨트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소재로 엄청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그건 자신을 온전히 집중시키지 않으면 불가능할 거예요
별것 아닌 글에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