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자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아주 오래전,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부러웠었다. 그들의 문장은 어쩌면 그렇게 정갈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내가 느끼면서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그렇게도 완전하게 표현해주고 있는지, 눈에 보이듯 풍광과 사물을 그려내는 그들의 문장이 놀라웠다.

 아직도 나는 그런 글에 놀라워 하지만 이제는 지향이 조금 바뀌었다. 기막힌 상상력이나 세상을 아우르는 지식과 사유에 더 외경을 느끼고 부러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 부러움은 아주 오래전에 느꼈던 그 부러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문장 자체와 묘사, 그것을 배우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제 배우려고 애를 써도 배울 수 없는, 과연 그 꼬리의 한 자락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지 아연한 것은 작가들의 방대한 지식과 사유, 그들의 머릿속에 차있는 의식들이다. 

 <소립자> 의 작가, 미셸 우엘벡은 역사와 과학과 철학과 풍속을 넘나든다. 포르노적인 묘사도 서슴지 않고 보통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물리학적 지식도 펼쳐놓는다. 그렇다고 모든 게 좋았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브뤼노의 행태를 묘사하기 위해 수많은 성적 일탈이 이어지는데, 그게 브뤼노를 이해하기 위한 포르노인지 포르노를  위한 브뤼노의 일탈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모범적으로 조용하게 살아온 이 땅의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프랑스 지식인인 작가의 표현들이 자못 심각하고 신선하게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다 읽었고 밑줄을 그었고 놀라워했고 배운 게 많았다.


1.  두 주인공은 성격이 아주 다른 이부형제다.  

 형 브뤼노와 동생 미셀은 히피들과 만년을 함께한 어머니 잔느의 아들들. 브뤼노와 미셀은 부모없는 아이들처럼 할머니와 외할머니 손에 자란다. 브뤼노는 성공한 아버지를 두었지만 기숙학교에서 심각한 외상을 입게 되는 왕따를 당하고 정신적 장애인(?)이 된다. 동생 미셸은 감정이나 욕구가 없는 사람처럼 건조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는 자신이 인간적 감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란다. 그는 공부벌레이다. 

2.  그 성격들처럼 그들의 애정관이나 삶의 방향도 완전히 대비된다.

브뤼노는 오랫동안 콤플렉스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방황한다. 미셸은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어떤 성적인 시도를 하지 않는다. 결국 여자친구 아나벨은 자유롭고 이기적인 다른 남자들을 만나게 된다. 

3. 브뤼노는 나이가 들면서 여자를 찾아 떠도는 변태 아닌 변태적인 행위로 세월을 흘려보낸다.

미셸은 아나벨을 떠나보내고 연구자로써의 삶을 살아간다. 그는 외롭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외롭다. 그러나 그건 독자가 느끼는 감정일 뿐, 그는 아주 무심하고 평화로울 정도로 무감하다.

4. 그들도 이제 마흔 줄에 들어섰다. 브뤼노는 드디어 사랑할만한 여자를 만난다. 그녀(크리스티안)는 너그럽고 다정한 여자다. 그녀는 브뤼노를 위해 천상의 섹스천국쯤 되는 곳으로 그를 이끌어준다. 그룹 섹스가 이루어지는 곳, 성이 공산주의 식으로 모두와 공유된다. 브뤼노는 자신이 원하던 최상의 것을 가진것 같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쓰러진다. 그녀는 몸이 마비되고 아들과 임대아파트로 떠나지만 며칠 뒤 죽는다. 그는 아주 짧은 순간 그녀로 인해 자유를 누려보았고 가져보았다. 

 미셸은 아나벨을 20년(23년?) 뒤에 고향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를 통해 따듯한 인간적 사랑을 되찾게 되지만 아나벨 역시 자궁암으로 죽는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5.  두 형제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게 된다. 브뤼노는 반미친 상태에서 어머니를 모욕하는 말을 뱉고 미셸은 아주 객관적인 태도를 지니고 어머니를 지켜본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그들은 헤어진다. 서로 예감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6. 브뤼노는 정신병원을 찾아간다. 미셸은 아일랜드의 연구소로 떠난다. 그 곳에서 미셸은 인간이 겪어야 되는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조화를 이루지못하는 사랑과 성을 평화롭게 나눌 수 있는, 폭력과 전쟁을 내재한 인간의 DNA에 대한 연구를 한다. 그리고 그 연구가 완성된 후, 그는 사라진다.

7. 미셸이 보낸 편지와 연구 논문은 다른 과학자들의 연구와 실제 실험으로 몇 십 년 뒤 공식화되고 체제가 만들어진다. 미셸의 연구는 현 인류의 문제점을 개선한 새로운 인류를 대체하는, 새로운 종을 만들어낸 것이다. 형상은 인류 그대로이지만 인류의 모든 악과 고통을 해결한 미셸.

8. 그 새로운 종은 미셸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 이 책<소립자>를 지어 형상만으로는 자신들의 조상인 인류에게 이 책을 바친다. 그들에게는 죽음이 없고 성차가 없다. 성감대는 몸 전체에 퍼져있어 충격적이고 가학피학적인 섹스가 없어도 쾌락을 즐길 수 있다. 그들은 평화롭고 타인을 괴롭히지 않는다. 그들은 지루하지 않고 행복하다. 그들은 미셸을 잊지 않기 위해 <소립자>를 지었다. 


미셸은 작가 자신의 이름이 아닌가. 아무튼 놀라운, 기발하고 차원이 다른 작가다. 나야말로 그 새로운 종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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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8-23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아주 궁금했는데 감상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읽고 싶어요. ㅎㅎㅎㅎ

lea266 2020-08-24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작가의 이과적 지식도남다른 것 같구요. 참 배울게 많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