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후기가 유난히 좋은 작품이라서 선택한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이 내게 어떤 유다른 영향을 줄 거라는 기대까지는 하지 않았다. 책이 아무리 좋다해도 그건 감정에 호소하는 부분이 크다든지 어떤 유효한 정보를 준다든지 하는 점에 유익성이 있지 실제 직접적인 행동을 일으키기는 어렵지 않은가, 대부분. 하지만 이 책은 실제의 행동을 할 수 있는, 짧은 글 하나를 쓸 수 있는 동기자체를 부여해준다. 말하자면, 나도 쓸 거리가 있는 것 같아, 라는 마음이 들게 한다.

 실려 있는 단편 대부분이 과거의 어떤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래 소설이란 과거의 어떤 일과 지금의 '나'가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고, 결말엔 그래서 내가 지금 이런 모습이고 그 사건 때문에 이렇게 변한 것이다, 라는 식의 좋든 나쁘든 교훈적인 면이 있다. 그 교훈이 반교육적일 수도 있고, 전혀 삶에 유용하지 않다 하더라도 일종의  반성적 성찰을 가져온다. 물론 이 책도 굳이 따지자면 그런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들은 굳이 꼭 그런 결말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쉽게 말하면 과거의 어떤 한 '기억'을 충실히 천천히 되새겨보며 그 때 그 일(사건)을 돌아보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것은 아쉽기도 하고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하지만, 그 기억을 오롯이 떠올리고 확실치 않았던 부분을 다시금 되살려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수미상관성을 꼭 만들어 주지 않아도 된다. 


차례

구멍

코요태

아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강가의 개

외출

머킨

폭풍

피부

코네티컷


 단편소설집을 읽으면 두서너 개의 작품만 떠오르는 편인데, 이 소설집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내용이 기억난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구멍, 코요태, 아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강가의 개 등은 오래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 같다. 

 오래전, 15년 전, 20년 전의 기억들을 천천히 서술하면서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다시 돌아보니 그 때 잘 몰랐던 부분을 되짚으면서 하나의 주제를 하나의 작품으로 써 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니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쓸 거리가 없는 사람들에겐 참 유익한, 방법을 가르치지 않지만 방법론적인 책이다.

 다음달쯤엔 앤드루 포터의 장편을 읽고 있을 것 같다. 

 이 작가 때문에 올해 목표가 벌써 와해됐다.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만큼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아주 유익한 이론서(?)이자 실용서(?)이다. 두 권의 글쓰기 책을 주문했다. 오늘 저녁에 도착할 것이다. 그걸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볼 무엇이 있으리라. 

 아 참, 이 책을 읽고 내 기억의 한 부분을 일주일만에 다 쓸 수 있었다. 물론 퇴고가 남았지만 앤두루 포터의 덕이다. 포터에게 감사를, 포터에게 별 네개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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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이상문학상작품집 대상 중 11~41쪽


권여선 <사랑을 믿다>


 오래전 읽었을 때와 느낌이 조금 달랐다. 당시의 나는 '사랑을 믿다'라는 제목에 끌려들어, 그래도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라는 명제에 골몰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보니 제목에 굳이 끌려갈 필요는 없다. 사랑을 믿는다해도, 믿지 않는다해도 어쩌다 인생에서 몇 번 만나기 힘든 사랑에 빠지는 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그러니 문제는 적극적으로 좋아서이든, 어쩔 수 없이 헤어날 수 없어 수렁에 빠지듯 사랑에 젖어들든, 시작지점을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이 작품에서 말하는 '사랑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건 사랑이 영원하다는 뜻도, 사랑이 한 사람을 완전한 이상세계에 잠시라도 들여놓는다는 뜻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완벽하지 못한 사랑, 상처와 회한으로 남는사랑이라해도 분명히 존재했던 만큼 흔적을 남기게 된다는 의미. 그리고 이 사랑은 서서히 퇴색하면서 그러나 쉽게 소멸되지 않고 삶의 태도가 달라지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흘려보낸다.

 그것은 사랑 자체가 불완전하거나 믿지 못할 존재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랑을 담아낼 사람들의 현실적인 조건과 인간적인 어떤 결여 등으로 인해 불완전성을 지니게 되고, 그런 의미를 깨달은 인간은 남은 생에서 또다른 의미로 성장하고 변화되면서 쓸쓸함과 삶의 허무 또한 배우게 되리라는 것. 

 

 

 한 남자가 술집에서 오랜 지인이었던 여자를 추억한다. 그 여자와 그는 삼년 전, 그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남자는 실연을 했고 그 얘기를 건네는데 여자는 자신도 삼년 전에 누군가로부터 실연을 했다고 말한다. 남자는 헤어질 때야 깨닫게 된다. 그녀가 실연한 상대가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이 소설의 가장 재미있고 출중한 묘사는 바로 그녀가 우연찮게 자신의 실연을 치유하게 된(치유라기보다 한 단계를 뛰어넘어 어른이 되고 쓸쓸한 삶을 받아들이게 된) 과정을 남자에게 이야기해주는 부분이다. 

 그녀는 엄마의 심부름으로(그러나 본인의 필요도 더해진 시점에서) 큰고모댁을 찾아가는데, 우연히도 철학관으로 잘못 알고 들어온 여자들과 큰고모댁 거실에서 한참 동안 같이 앉아있게 된다. 칠순은 족히 넘은 희한한 질병을 가진 노파와 손주를 유괴당한 초로의 중년여자와 남편 때문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젊은 여자들 사이에서 그녀는 그들의 얘기를 듣게 된다. 

 그러다 어느만치 시간이 흐른 뒤, 큰고모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철학관은 옥탑방으로 올라가야한다고 알려준다. 여자는 얼떨결에 엄마가 준 선물 보따리를 그대로 놔두고 건물을 나온다. 세 명의 여자들은 위층계단으로 올라가고, 그녀는 계단을 내려온다.

 

 이 우스꽝스러운 우연한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의 실연의 감정이 달라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만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온 것뿐인데, 삼층 큰고모님 댁에 무거운 잼 단지만이 아니라 그녀를 그녀이게 만들었던 본성의 작은 칩마저 함께 두고 온 듯했다."고...

 그녀의 이야기를 나중에 이해하게 된 남자는 이제 그녀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것들과 어떤 인연을 느낀다. 삼층 건물을 보면, 그녀의 큰고모가 뜨거운 물을 마시고 이내 죽게 된 것을 떠올리며 무슨 실수가 있게되면 '찬물을 먹었어야 했는데", 라는 식으로...

 3년 전에 남자는 실연한 이야기를 했고, 여자는 그보다 3년 전에 혼자(아무도 모르게) 실연해서 그걸 헤쳐나오게 된 경위를 이야기했고, 지금 남자는 여자를 기다리며 혼자 술을 마신다. 

 

 "그녀는 오지 않고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엄청난 위로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사랑이 보잘것없다면 위로도 보잘것없어야 마땅하다. 그 보잘것없음이 우리를 바꾼다. 그 시린 진리를 찬물처럼 받아들이면 됐다."


 그 보잘것없음이 우리를 바꾼다. 맞다. 보잘것없어도 사랑은 우리에게 어떤 성찰을 가져온다. 그래서 우리를 바꾼다. 그리고 반대로 휘황찬란했던 사랑도 우리를 바꾼다. 휘황찬란한만큼 더 비참할 수도 있다. 또, 너무나 내밀해 영원히 발설해서는 안되는 사랑도 우리를 바꾼다. 그리고 사람은 늙고 쓸쓸해지고 현명해진다. 그래서 전혀 다른 뜻으로도 사랑은 믿을 만한 일이다. 




같은 책 45~76쪽


권여선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다시 읽어도 정말 재미있다. 이거야말로 아슴푸레한 첫사랑 이야기이다. 대학 신입생 시절 겨우 한 살 위였던 선배와 얽힌 사랑이었는지 아닌지, 하지만 분명 아직도 그가 궁금하고 그 시절 그가 했던 행동 하나하나를 다시 짚어보는 여자.

 "무엇인가가 완성되는 순간은 그것을 완전히 잃고, 잃었다는 것마저 완전히 잊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그 언저리를 헛짚는 순간이다.... 내달리는 심야 택시의 묵시록적인 관통 속에서 휙 지나가듯 내 첫사랑은 완성되었다. 그리고 완성된 순간 비스듬히 금이 가버렸다."


 


** 두 단편을 읽으면서 작가(화자)의 마음 겹겹이 쌓여있던 꺼풀이 천천히 하나씩 드러나는 게 읽는 속도를 늦추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먼 심연 속을 헤치며 예전의 소중한, 잃어버렸던 귀중품을 찾는듯한 느낌이 좋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과 그 속에 가득 낀 먼지를 걷어내고 그 근원을 건져올려야 작가라 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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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237~264페이지


권여선 <팔도기획>


  짧은 내용이 5개의 챕터를 이루고 있다. 마지막 화자의 상상이 가슴을 뜨겁게,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사실은 '상상'이 아니라 화자의 '기대'나 '희망'의 다른 표현이리라. 화자의 마음은 작가의 마음이기도 할 터, 작가는 문학에 대한 자신의 결벽한 마음을 이렇게 쓴 것인지도. 


1."팔도기획'이라는 기획출판사에 한 여자가 자신이 쓴 소설을 들고 온다. 그녀는 당당한 태도에 곧바른 문학관(세계관이라고 해도 아주 틀리지는 않겠다)을 지닌 여자다. 

 "소설가는 글에 향기를 불어넣을 줄 아니까요." 그녀가 하는 말이다. 화자는 잠시 어안이 벙벙하다. "네에? 향기요?", "이런 우스꽝스러운 얘기는 누구로부터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2.'팔도닭발'이라는 요식업체 사장의 자서전 대필이 촉박해 그녀를 불러 일을 함께 하게 된다. 그녀는 윤작가로 불리게 되는데, 그녀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은 대신 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당당하게 의지를 밝힌다. 그녀와 함께 인터뷰를 하고 녹취를 풀어 대필을 하려던 정선배는 황당해하면서 윤작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 시작한다.


3. 윤작가는 정말 충실히 자기 일을 한다. 화자는 어쩔 수 없이 정선배를 본의 아니게 돕게 된다. 화자는 한편 정선배나 홍팀장의 속물적이고 기계적인 일처리에 늘 속으로는 환멸을 느끼고 있지만 늘 그들 편에 서는 척, 연기를 하고 있다. 화자는 사무실에서도 가장 가운데 앉아 있어서 곧바른 윤작가와 세속적인 정선배 사이를 이어주는, 또는 그 경계를 나누는 위치에 있다. 


4. 드디어 정선배와 윤작가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터진다. "그 일은 폭발물처럼 계산된 시각에 정확히 터지도록 예비되어 있었는데..."라고. "그럼 나가! 나가 이 쌍년아!" 정선배의 극한 폭발. 윤작가는 그렇게 나가게 된다.


5. 환갑잔치 날에 맞춰 팔도닭발 사장의 회고록이 출간된다. 모두 기분이 좋다. 회식이 있을 예정이다. 홍팀장은 윤작가가 써놓은 회고록을 읽다가 눈을 비빈다. 그리고 원고를 자신의 책상 속에 조심스럽게 밀어넣는다. 

 화자는 홍팀장의 눈을 비비게 만든 그 원고를 읽고 싶다. 화자는 상상한다. "먼 훗날 미지의 방문객이 조용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을..... 저는 소설을 쓰는 사람입니다....원고를 가져왔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건네주는 원고를 유리그릇처럼 소중하게 받아 안는다. 그렇게까지 조심하실 필요는...... 나는 턱을 살짝 치켜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소설가는 글에 향기를 불어넣을 줄 아니까요."


"적절하게 자신을 감추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기술이 만연하는 이즈음 윤 작가의 문학에 대한 투명함과 견고함은 솔직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연기에 서툰 권여선은 타인에게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이 쿨하지 못한 인물에게 뜻밖에도 문학적 진지함과 엄숙함을 부여한다..... 예술조차 지나치게 쿨해져서 더 이상 예술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신파는 아닐까." (심진경 문학평론가)


 감동적이었다. 문학이 얼마나 문학적일 수 있는지, 알게 모르게 우리 대다수는 상업적인 목적과 명예에 현혹돼 문학을 이용하고 적당히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예술적으로 보이면서도 세상의 기준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타협하고, 그런 방식을 세련되게 익히려고 노력하지는 않는지... 

 품위가 촌스러움이 되고 세속성이 '쿨'이라는 미명을 쓰고 당당히 활보하는 세상... 하지만 작품만을 보자면 윤작가의 글이 인간 내면을 흔들 수 있는 깊이를 지니게 될 것은 자명하지 않을까. 화자의 마지막 장면의 상상은 아직 작가가 되지 않은, 미래의 윤작가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과 같았다. 

 윤작가라 불리던 그녀는 '자기 마음에 드는 소설 작품이 나올 때까지는 응모도 안하고 등단도 안할 거라'고 정선배에게 말한다. 전적으로 그녀에게 공감한다. 작가란 오직 필력만으로 인정받아야 할 사람이다.




 













2011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중 81~105페이지

 

권여선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숲>


 사랑했던 남자가 사고로 세상을 뜨고 한참 후, 남자의 동생이 전화를 걸어온다. 남자의 어머니가 여자를 꿈에서 보았다고 한 번 보고 싶다고 한다. 

 그녀는 바로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내려가 남자의 어머니와 남자의 동생을 만난다. 셋은 바닷가를 돌아 비자나무숲으로 드라이브를 나선다. 여자는 자주 환각에 빠지곤 하는데, 차를 타고 가는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환각에 빠진다. 

 이 환각이 실제인지 환각인지 독자로서는 판단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이런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편소설에서 결미로 사고나 자살, 죽음은 정말 싫다. 아무리 서사가 진지하게 진행됐다 하더라도 왠지 작위적인 매듭같아서 그렇다. 하지만 권여선의 작품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나... 나로선 완전히 납득이 되지는 않는 결말이었다. 


 전에 읽었지만 '사랑을 믿다'를 다시 읽어야겠다. 그 단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내일 연신알라딘에 가서 중고로 사야겠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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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43~76페이지

권여선 <하늘 높이 아름답게>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일흔두 살에 죽은 마리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견 '전'이 될 것 같은 이야기는 아주 짧은 마리아의 출생과 어린시절을 다루고 이내 문단을 띄어 베르타의 시점으로 이동한다. 

 

 베르타는 성당 마당 파라솔 아래에서 처음으로 마리아의 죽음을 듣고 안타까워하면서 성도들과 마리아를 추억하는 담화를 나누는데... 

 베르타는 같은 성도인 자매들의 마리아에 대한 회고담을 들으면서 그녀들의 말버릇이나 성격을 일일이 자기 뜻대로 평가하여 한심하게 생각한다. 베르타의 속마음을 나타내는 문장.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이 사람들은, 하고 생각했다. 분명 자신도 고귀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고귀하지를, 전혀 고귀하지를 않다고 베르타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성도들은 돌아가며 마리아에 대해 자신이 알던 바를 하나하나 술회하며 아쉬워하는데, 이 때마다 마리아를 이야기하는 자매와 그걸 바라보며 속으로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 베르타. 작가의 시선은 두 사람을 오고간다. 

 이야기가 점차 진전되자 자매들은 마리아에 대한 자신들의 속내와 정을 드러내는데 그쯤 이르자 베르타의 편견은 순간 수정되기도 한다. 그녀들을 쉽게 오해하고 경멸했던 자신에 대해 참회한다. 처음에는 상당히 냉정하지만 지적인 여자라고 생각됐던(독자 입장에서) 베르타 또한 변덕스럽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는 걸 그제야 독자는 깨닫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라는 고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차츰차츰 드러난다.   그녀는 어려서(옛 여인들의 인생이 대부분 그러했지만)부터 막내딸이었음에도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살았고 젊어서는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가서 고생을 했으며, 그곳에서 터키계 독일인과 결혼을 할 참이었고 그의 아이를 낳았으나 병원에서 아이를 안고 나오던 남자는 돌연사를 당하고 만다. 마리아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아이를 입양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그녀의 생은 계속 어려움과 구차함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의 죄를 잊지 않고 보속하는 마음으로 살았고 하느님께 은혜를 구하지도 않는다고 고백했었다. 

 또한 장기 위탁보호를 하다 아들을 삼은, 지금은 입원중인 아들이 있고 친손녀가 아닌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신부의 어머니뿐이었던 걸 보면 마리아는 친아들, 친손녀처럼 그들을 돌보며 살았고, 그걸 아무에게도 티내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마리아에게 하나의 형이상학적이고 보람에 찬 일이 있었는데 그건 태극기를 팔러다니는 일이었다. 아마도 독일에서 고국에 대한 태극기에 대한 어떤 추억이 있었으리라 추측하는 베르타. 

 그리고 태극기 행상을 가는 마리아와 어느 하루 같이 길을 다녀왔던 베르타는 잊고 싶은, 그러나 가슴에 자신도 모르게 남아있는 역사에서의 일을 떠올린다. 

 싸구려 양산을 쓴 여자의 우산대가 베르타를 치고 지나가자 베르타의 갑작스런 화가 마리아를 향했던 것이다. "도대체 이모님은 뭣 때문에, 베르타가 앙칼지게 물었다. 하나도 못 팔 거면서 그깟 태극기는 왜 그 먼 데까지 팔러 다니시는 거예요?"라고... 

 더구나 그 양산이 고급스런 양산이었다면 자신이 그렇게 화를 마구 냈을까? 뒤늦은 자책...

 "베르타는 가을 저녁의 찬 기운에 오싹함을 느꼈다.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었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베르타의 한탄은 우리 대부분의, 인간들 대부분의 회오일 것이다. 이 문장은 진정 명문이다. 그 어떤 명작의 명문보다 직설적이고 함축적이고 날카로운 문장. 참 고귀하지를 못하구나. 우리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다 읽고나니 제목이 너무 좋다. 마리아의 일견 구차하고 초라한 삶, 그러나 그녀의 삶은 높이 아름답게 살아낸 삶이었다. 





 















제 12회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91~113페이지


<희박한 마음>


 이 작품은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지만 그 이유나 근원을 찾아내기 힘든 상황(정황)에 대한 무력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또 그 이유나 근원을 찾았다해도 어쩔 수 없는, 개선할 수 없는 삶의 자기운동을, 서글프고 끔찍한 생의 아픈 이면을 그리고 있다.


 어디에선가 알 수 없는 기괴하고 불안한 소음이 들려온다. 그러나 아무리 추적해봐도 어느 호수인지 찾아낼 수 없다. 한참을 시달리다 우연히 알고보니 앞집 현관 앞에 있는 수도계량기(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다)에서 나는 희한하고 괴이한 울음같은 소리...

 같이 동거하던 친구가 떠나갔다. 둘은 싸운 적도 없고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한 적도 없다. 그런데 무언가 찜찜한 감정이 남아있다. 함께 영화를 보러 외출을 나갔었다. 맛집을 찾아간다고 한참을 걸어갔는데 주인공은 호흡이 가빠온다. 천식(이것도 맞는지 모르겠다, 호흡기가 안 좋은 건 확실하다)이 시작된 것이다. 

 주인공은 무언가를(영화티켓이었던가...) 던져버린다. 친구가 그걸 주워든다. 그래 영화는 보지말자,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었다. 결국 영화를 보지 않고 밥만 먹고 돌아왔다. 

 그런 찜찜한 기억들이 몇 개인가 그녀의 뇌리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근데 그 일은 언제 있었던 일이었지,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 기억은 겹쳐지기도 하고 아예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도 분명하지 않다. 자신의 기억이지만 도대체가 희미하고 불투명하고 오락가락한다. 그런데 친구가 떠나고 언제부터인가 수면이 이루어지지 않고 혼자 멍하니 앉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희박하다. "바로 아래층에 살고 있는 건 우리가 아니었어. 그들이었어.디엔.

*디엔-같이 살았던 친구이름


 

*** 

 누구와 함께 산다는 건 언제나 이별을 뜻한다. 실제의 이별이든, 마음의 이별이든... 왜냐면 서로 아무리 아껴주고 잘해주려 해도 어느 순간, 힘들어진다. 상대의 습관과 그 마음이 견딜 수 없어진다. 내 좁은 마음이 너무 싫지만 마음은 넓어지지 않는다. 상대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내 딸과 계속 살 수 있을까. 딸은 나랑 평생 살 마음이라는데... 딸은 그래도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친구랑은 절대 못 살 거 같다. 남편도 아들도 강아지도 평생 살기에는, 아무래도 아니다. 아니야...


 아파트에서 소음의 진원지를 찾지 못한 경우는 허다하다. 언젠가는 분명 윗집에서 들리는 소음이라고 여겼는데 헉, 2층이었다. 우린 6층인데... 도대체 아파트 지을 때 방음을 위한 자재는 하나도 쓰지 않았다는 건가.

 그린빌에 살때는 간혹 새벽에 우는 아이 소리가 들려서 속으로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혹시 학대당하는 아이면 어쩌나하고... 그런데 도무지 그 소리를 찾을 수 없었다. 

 간혹 고양이가 앙칼지게, 위험에 처한 것 같은 소릴 들을 때도 있다. 그러면 맘이 미칠 것 같다. 누가 우는 소리, 누군가 위험에 처한 것 같은 소리, 떨어지는 물소리, 긁고 치는 소리, 이런 소리들은 불안과 공포를 야기한다. 

 작가는 이런 상황을 아주 리얼하게 묘사하고 설명한다. 오래 전 대학 때의 사건도 되불러온다. 

 

 이 작품은 이 대도시,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동거인에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공생관계의 갈등, 그 힘겨운 관계에 대한 성찰로 읽혔다. 마지막엔 절망과 함께 슬픔이 느껴졌다.

권여선~ 정말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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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상반기엔 단편을 좀 자세히 읽으려고 한다. 아무래도 여자작가들부터 시작할까 싶다. 내가 여자니까 그렇고 아무래도 여자들의 심성과 그 속내가 더 잘 공감되기도 할 것 같고, 어떻게 그걸 형상화시키고 펼쳐보일지 기대가 되기도 해서다. 오랫동안(몇 년 간) 한국문학을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읽자고 하면 또 끝이 없게 책이 쌓이겠지만 나는 내가 못할 일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 편이다. 애초에 내가 읽을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미련을 두지 않으련다. 그러지 않으면 이작가 저작가에게 마음이 부대끼고 스스로 힘들게 되고 말 테니까.... 그래서 나처럼 좁은 사람도 드물겠지만, 나는 내 생긴대로 살아야 할 팔자라는 걸 아주 오래전에 깨달았다. 억지로 황새가 되려다간 뱁새도 되지 못하고 산통이 다 깨지고 만다. 뱁새에겐 뱁새의 길이 있다. 뱁새가 되기로 작정하면 마음도 편하고 몸도 견딜만 하다.

 그렇게 뱁새걸음으로 상반기에 대충 몇 여자작가를 탐구하고 나서(주로 단편으로) 하반기엔 남자작가들을 물색해야겠다. 근데 남자작가들은 더 모르겠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가도 없다. 문학을 기웃거린다는 사람치고 너무나 무지한 편이다. 

 

 그러고보니 올 한해의 계획이 이것이다 싶다. 한국작가들의 단편의 세계로.... 그렇다고 여기에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나 자유로운, 불성실한 나의 '마이 웨이'...


 

 

그럼 그 첫 작가이신 권여선의 세 단편소설부터,


<약콩이 끓는 동안>

2007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147p~179P


1.윤서영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첫 문장: 여우들은 영험하게도 죽을 때를 찾아든다고, 윤서영은 그렇게 들었다고 여긴다. 서영은 정신을 잃은 상태로 잔디밭에 누워있다(사고였다). 


 서영은 박 조교의 부탁으로(일견 호의와 혜택이 있을 것이라고도) 김교수의 집으로 다니게 된다. 김교수는 휠체어에 의지해 학생들의 논문을 봐주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서영이 그 일을 돕게 된 것. 서영은 타인과의 소통이 잘 되지 않는, 폐쇄적이고 두려움 많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그녀의 과거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녀는 가정부 여자가 "내가 저분을 입으로 빨아서 그려" 라고 했을 때 저분을 김교수로 생각했고 가정부가 김교수의 신체 중 특정부위를 입으로 빠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나 가정부의 저분은 젓가락을 말하는 것이고 김교수는 그만큼 결벽한 성격임을 말하는 것인데 전혀 다른 의미를 부과한다. 김교수가 자기중심적이고 교활하며 치졸한 만큼 그녀 또한 포용력 없고 남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는 면에서 상통하고 있다. 

 

2. 김교수의 시점으로 이동: 그는 퇴임을 일 년여 앞두고 사고를 당해 반신불구가 되었다. 일상은 이제 자신의 뜻이 아닌, 대학의 뜻, 가정부의 뜻, 아들 둘, 조교 윤서영의 뜻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다. 그는 이들 때문에 평온한 일상을 누릴 수 없다. 그는 그들 모두가 못마땅하고 그들에게 진정한 위로를 받을 마음도, 소통할 마음도 없다. 


3. 서영의 시점: 김교수는 밑줄 친 부분을 문제삼아 서영을 인격적으로 모욕한다. 

 

 또 문단을 한참 띄어내려와 모욕을 당하고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서영을 붙잡은 둘째아들 상욱은(취해있다) 제 형에게서 들은 형의 친구의 수술얘기(불알 두쪽을 떼어낸)를 한다. 서영은 귀를 막고 짙은 나무그림자를 벗어나 환한 가로등 불빛쪽으로 한 발 내디디다 사고를 당해 날아오른다. 그렇게 그녀는 잔디밭으로 떨어져 버린다. "이번에도 세상의 말귀를 잘 못 알아들었거나 늦게 알아들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았다."


4. 상욱의 시점: 아버지를 바라보는 상욱의 관점--보보크를 떠올린다. 형 상섭과의 툭하면 벌어지는 싸움, 사고가 난 서영 대신에 다른 남학생이 김교수를 찾아온다. 그 남학생은 김교수에게 한없이 약하게 자신을 낮추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쓴다. 서영이 당한 사고는 상욱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다.


5. 김교수의 시점: 서영이 오지 않자 두 아들은 집을 나간다. 가정부 순천댁은 점점 김교수에게 어떤 불쾌한 정념을 일으킨다. 그는 "왜 인간들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는 걸까?"라고 짜증을 낸다. 

 

 문단을 한참 띄어내려 순천댁의 시점으로 이동: 약콩을 삶으며 순천댁은 서영을 자꾸 생각한다. 왜 자신은 서영에게 "밥 먹고 가라고 한 번 붙든 적이 없다는 사실"을,  

"영험시런 여우는 죽을 때가 들면 죽을 데를 딱 찾아든다등마. 그래 그랬으까, 으째 그랬으까?"


 


******



 주인공이 윤서영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시점은 계속 변하고 이야기는 자기편에서 자기식으로 진행된다. 철저한 단절이 연이어 하나씩의 장을 만들어 나간다.

 아직 젊은 서영의 사고(어쩌면 그녀는 반신불구가 될 수도 있다)는 어떤 인생의 공평하지 못하면서도 공평함과는 비교되지 않는 숙명적인 운명(또는 비극적인 인생사) 같은 걸 보여준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 친척집을 전전하며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과 제대로 소통하는 법을 모르고 어울리는 법을 모른다. 남들의 말을 오해하고 제대로 들을 줄 모른다. 김교수에게 속된 처신을 해야하지만 그녀는 뻣뻣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어 김교수의 치졸한 분노를 받게 된다. 

 김교수는 혼자 있을 땐 지팡이를 내던지고 울음을 터뜨리지만(그는 사실 외롭고 그 상황을 견디기 힘들다) 막상 누가 곁으로 다가오면 화를 내고 까칠하게 군다.

 김교수의 두 아들은 진실한 대화를 할 줄 모르고 자기 말만 한다. 형제의 대화는 언제나 싸움으로 끝난다.

 가정부 순천댁은 열심히 콩을 삶아 김교수의 병증을 약화시키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서영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에게 친절하지 못했던 점을 뒤늦게 자꾸 되새기고 있다. 


 총체적인 소통부재인 세계, 또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김교수라는 한 사람과 그의 공간인 아파트에서 스치듯 만났다 제각각 뿔뿔히 흩어진다. 서영은 중상을 입고 김교수처럼 평생 못 일어날 수도 있다. 두 아들은 어떤 누구와도 진지한 관계를 할 수 없고, 하릴없이 부랑아 같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순천댁은 이 집안 식구들 누구와도 속있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서영이 후에 이 집에 드나드는 남학생만은 조금 다르다. 그는 김교수에게 납작 엎드릴 줄 알고(일견 처세에 능한 것 같지만, 매사에 존대를 붙이는 걸 보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스스럼없이 남을 대한다. 그러니까 순천댁이 그에게는 밥을 먹고 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순천댁의 사투리가 작품을 살아있게, 돋보이게 만든다. 


 *보보크에 대한 상욱의 관점, 서영에 대한 순천댁의 회한과 의구, 서영에게 닥친 가공할 불행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여우는 죽을 데를 알고 찾아든다는 말, 과연 서영에게 합당한, 맥락있는 격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죽을 데'를 '즉을 때'라고 들었다는 서영의 잔디밭에 누워서의 기억은 숙명에 관해 해도 될만한 회한일까. 

 이 부분은 다시 읽어야겠다. 오늘 밤에...


저녁 준비해야겠기에 두 개의 단편은 이따 밤이나 내일 낮에 쓰기로 하고 이만...  

  

p.s

보보크가 무언지 방금 전 찾아냈다. 기가 막히게도 그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 중의 하나란다. 이 작품을 읽지는 못했지만 일종의 좀비 소설이란다. 참으로 재미있다. 하필 도스토예프스키.... 지금은 1월 22일 12:36 , 시간 너무 빠르다. 벌써 새해 한 달이 다 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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