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이 책도 예선이 언니가 준 것이다. 이건 내가 쓴 '너를 기다리는 집'이라는 졸작을  예선 언니가 읽은 후 이 작품을 참고해 보라면서 선물한 책이다. 

  매일 4시면 화자의 집을 찾아오는 이웃에 대한 이야기로 사건이 시작되는데, 일견 평범해 보이는 시작에 비해 그 결말은 비극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의 내면과 배후에 도사린 불합리하고 어두운 그늘을 누가 치유할 수 있을까. 밝고 환하고 아름다운 것을 인간은 지향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환한 빛만을 향해 전진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리고 종내는 미움과 증오, 체념과 죽음에의 유혹이 그 사람을 덮어버린다.... 사람에게 달라붙는 끈질기게 불행한 운명의 끈을 가차없이 잘라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아멜리 노통브의 이름은 몇 번 들었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녀가 천재적인 작가라는 사실을 페이지 몇 장 넘기자 단번에 알게 되었다. 그녀의 책을 두어 권 더 주문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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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8월




  이 책 표지 안쪽에 쓰인 작가 소개를 그대로 옮기면, 1999년에 태어나 가나가와현에서 자랐다, 2019년 데뷔작인 <엄마>로 56회 문예상을 수상했고, 2020년 33회 미시마 유키오상을 사상 최연소로 수상했다..... 이런 구절들이 짧게 나열되어 있다. 그러니까 작가 우사미 린은 만 20세 전에 작가가 되었고 쓰는 것마다 수상작이 되고 있으며 장담할 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작가로서 살아갈 사람이다. 
  참 대단한 일이고 대단한 작가이지만, 이 작품이 23살의 작가로써는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다고는 믿지만, 그리고 연예인이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우상시되는 현재에 의미있는 작품이라고도 믿지만, 나는 그렇게 열렬한 마음으로 한문장 한문장 읽어내려가지는 않았다. 밑줄도 그었지만(책 읽을 때의 습관일 뿐이다) 오래오래 기억될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내 안에 깔려 있었다.  
  작가가 젊다는 것은 한편으로 엄청난 재산이다. 그저 가만히 자신의 이야기만 잘 해도 시의성 있는 젊은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과 작품들은 이 작가와 너무나 멀리 있다. 그래서 나는 예선 언니가 선물해준 따끈한 젊은 작품을 그저 얼른 읽어치웠다.
  그래도 작품 얘기를 해보면,
  그룹에 속한 우에노 마사키라는 남자가수를 쫓고 좇는, 평범한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목적도 가질 수 없던 한 여자가 마사키를 본 순간 자신이 좇아야 할 목적이 생긴 다. 화자인 나는 그의 팬이 되고 그를 모니터링하며 그의 앨범과 사진을 사고 SNS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내 방은 마사키의 물건들로 쌓이고 마사키는 나의 최애가 된다. 
  그리고 어느날,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나는데, 나의 최애인 마사키가 한 여자를 때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진정어린 사과를 하지도 않는다. 얼마 안 있어 팀은 해체되고 나의 최애였던 마사키는 연예계를 완전히 은퇴한다. 나는 어느 날, 그의 집을 찾아나서고 어느 맨션, 그의 집쯤으로 여겨지는 집에서 한 여자가 나와 이불을 터는 것을 목격할 뿐이다. 

  "그냥 평범한 맨션이었다. 이름은 확인할 수 없는데 분명 인터넷에서 본 건물이다. 딱히 뭔가를 할 생각은 없었던 나는 그저 멈춰 서서 그곳을 바라봤다. 만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갑자기 오른쪽 윗집의 커튼이 젖혀지더니 끽끽 소리를 내며 베란다 창문이 열렸다. 쇼트커트 여자가 빨래를 품에 안고 비틀거리며 나와 난간에 걸쳐놓고 숨을 내쉬었다. 
  눈이 마주칠 뻔해 시선을 피했다. 우연히 지나가는 척 걷기 시작해 서서히 걸음을 빨리했고 마지막에는 뛰었다. 어느 집이든, 그 여자가 누구든 상관없다. 설령 그 맨션에 최애가 살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나를 명확하게 아프게 한 것은 그 여자가 안고 있던 빨래였다. 내 방에 있는 엄청난 양의 파일과 사진, CD, 필사적으로 긁어모은 수많은 것들보다 셔츠 단 한 장이, 겨우 양말 한 켤레가 한 사람의 현재를 느끼게 한다. 은퇴한 최애의 현재를 앞으로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게 현실이었다. 
  이젠 쫓아다닐 수 없다. 아이돌이 아니게 된 그를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해석할 수는 없다. 최애는 인간이 됐다. 
  최애는 왜 사람을 때렸을까, 이 질문을 줄곧 회피했다. 회피하면서 계속 그 질문에 끌려다녔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답이 저 맨션 밖으로 보일 리 없다. 해석할 방법이 없다. 그때 그 노려보는 듯한 눈빛은 리포터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 눈빛은 최애와 그 여자 이외의 모든 인간을 향했다."(128~129쪽), 참고로 이 책은 132페이지의 경장편이다. 

 막상 필사를 하고 보니 참 잘 썼다. 젊고 어린 화자의 마음이, 한 여자아이가 서있다가  서서히 걷다가 마지막에는 뛰는 모습이, 그 정황이 너무 잘 보인다. 내가 지레 지나치게 젊은 작가를 얕잡아보고 싶어했던 것 같다. 어떤 글에도 그 작품만의 고유한 빛과 무늬는 살아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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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깊은 곳

하오징팡 지음, 강초아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2월





  하오징팡은 중국의 SF 소설가이다. 중국의 젊은 여작가! 여러 생각이 든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큰가. 그나라 대도시의 부자들은 얼마만한 부자들인가. 엄청난 인구를 지닌 도시에 교육열이 높은 시민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들의 자식들이 오직 공부에 매진한다면 그 지식의 총량은 놀라울 것이다. 하니 중국이 비록 공산주의 나라라 해도 지식인들의 면모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성장해 있을 것이다. 
  왕 웨이렌의 책을 읽었을 때도 정말 놀라웠다. 내가 그동안 읽은 어떤 단편보다 왕 웨이롄의 작품은 다채로우면서도 차원 높았다. 그래서 독후감을 쓰는 게 흥분되었었고 막힘없이 쓸 수 있었다.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도 첫 단편으로 들어있는<접는 도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그 상상력에 탄복했다. 서사를 따라가보면, 접을 수 있는 도시(베이징)는 몇십 년 간 체계적으로 지어졌고 시민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어느 면에 사는지가 정해진다. 신분에 따라 주거지가 배당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능력으로 택해진다는 면에서 강제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주거지가 정해지고 나면 자유란 없다. 여기서의 자유란 행위와 이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의해 일상이 완전히 통제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체계는 물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한다. 3면의 시민들은 일상의 시간이 다르다. 
  도시의 1면에 사는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매일을 살아간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고 저녁에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저녁에 부는 바람을 맞고 산책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잠들 시간에  도시는 접혀진다. 
  그러나 2면에 사는 사람들은 16시간만 깨어있을 수 있다. 나머지 시간은 커다란 캡슐에서 분사되는 수면가스를 마시고 누구나 똑같이 잠들어 있다. 그 시간에 캡슐에 있지 않다면 그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그리고 3면의 시민들, 그들은 8시간만 깨어있을 수 있다. 그들은 주로 쓰레기를 분류하고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16시간을 자야한다. 도시 전체에서 볼 때 3면의 시민들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일테면 그들은 일하는 시간 외에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일개미쯤 되는 사람들이다. 
  결국 '접는 도시'는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파생시킨, 신분이 고착된 사회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 전체가 알레고리여서 주제가 선명하고, 그래서 2016년 휴고상을 받았을 것 같다. 
  이 <접는 도시> 뒤의 다른 단편들도 좋았지만 자세히 쓰고 싶을 만큼 좋지는 않았다. 단지 작가가 물리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나로선 상상할 수도, 디테일을 갖출 수도 없는 소재를 끌어오고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낸 것에 부러움과 질투를 느꼈을 뿐이다. 
  총 열 편의 단편 중에 여섯 개를 읽었는데 읽은 작품을 쓰지 않으려니 서운해서 제목이나마 언급하고 독후감을 마친다. 

접는 도시
현의 노래
화려한 한가운데
우주극장
마지막 남은 용감한 사람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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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물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이 작품집은 현재의 한국 단편소설에서 볼 때 논외에서 다루어야  할 만큼 이질적이다. 이 작품집 전체에서 느껴지는 환상적이고 모호한세계는 그로테스크하고 꿈속 같다. 그리고 무얼까, 죽음과 그 너머의 세계를 향한 끝없는 걸음. 그리고 죽음 앞에 있는 자가 삶을 돌아보는 것 같은 느낌.  분명한 것은 모든 서사가 이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결코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이며, 그렇다고 해서 죽음 너머의 세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꿈속을 헤매는 것 같기도 하고, 샤머니즘적인 세계에서 불길하면서도 매혹적인 어떤 일에 연루된 것 같기도 하다.

  하니 정확한 언명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적 서사를 가늠할 수 없다. 이게 뭐지? 싶었다. 

  '뱀과 물'이 특별히 마음에 와 닿았던 건 굉장히 난해하게 썼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아, 하고 작가의 의도와 플롯이 이해되었다는 점이었다. 한 소녀가 자라서 선생이 되었고 그 선생은 늙어서 죽었다. 그리고 지금  그 죽은 사람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고 있다. 어린 소녀였던 시절의 운동장, 중년이었던 시절의 교무실, 그리고 지금 사자인 자신이 그 모든 것을 동시에 보고 있는 것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세상을 다 산 뒤에, 아니 죽지 않은 지금도, 우리는 자신이 어릴 적 무엇 때문에 슬펐던 것을, 울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어떤 삶의 변곡점에서 아프고 절망했던 순간을 어제일처럼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시간은 과거와 현재라는 분명한 구분을 하지 않게 되고 동시에 미래도 언젠가는 구분되어지지 않을 것이다. 통째로 시간을 한 번에 본다면 소녀도 어머니도 할머니도 결국 하나일 테니까. 

  시공간이라는 물리적인 세계에서 한 발 뒤로 위로 물러나 다층적인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상상이라는 것의 드넓은 울타리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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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어제에 이어 구병모의 '단 하나의 문장'에 실린 나머지 다섯 편의 단편에 대해 적기로 한다.


미러리즘

4개월 전쯤 읽었기 때문에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한 남자가 병원에서 간호사로 위장한 누군가에게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게 되는데, 그는 중환자실에서 깨어 일어나고 자신이 여자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여자친구를 만나 자신은 남자들 중에서도 여성 혐오를 하지 않는 정도의 남자였고 정말 억울하다고 말한다. 직장에서는 총무부로 발령이 떨어지고 자신이 하던 일을 옆 팀장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는 너무나 억울하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말한다. 네가 지금 당하고 있는 일, 나는 계속 당해왔던 일이라고... 이 여자 친구의 말이 작가가, 여자들이(페미니스트가 아니라해도) 하고 싶은 말. 여자가 직접 돼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을 여자들은 항상 당하고 살아왔다.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것 같이 작가는 여백이 없는 문단과 행간을 빽빽하게 채워나간다. 의도는 좋지만, 그리고 꼭 필요한 발설이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진행시켰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숨이 찬다.

몇 개의 리뷰를 찾다가 한 독자의 감상과 평을 주의해 읽었다. 다분히 정치적인 작품들이라고, 너무 날카로와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입담이 이 정도가 아니라면 읽기에 괴로웠을 거라고 했다(네이버 블로그, 론샙). 나도 그 의견에 완전히 동감. 


웨이큰

익스피리언스 파크에서 벌어진 일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가상세계를 체험하는 것은 소풍을 가는 것과 별다르지 않다.  단체로 체험을 하러 온 어린 아이들이 가상세계에서 인질들에게 붙들린 채 헤어나오지 못한다. 

계약직으로 가상세계를 만들고 기기를 만든 개발자들이 이 상황에 다시 불려간다. 화자의 남편은 익스피리언스 파크에서 계약직으로 개발을 마치자마자 해고된 노동자이다. 억울했던 마음대로라면 이런 상황에서 불려가지 않아야하지만 자신의 어린 자식을 생각해보면 따지고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기막히고 분노할 일은 피해를 입은 약자들이 더 연민이 많고 헌신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남편은 가상세계에 들어가 아이들을 구하고 자신은 나오지 못한 채 '슬리핑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동안 파크는 개발자들을 내쫓고 아무것도 모르는 알바생들에게 이 가상체험 공간을 맡긴 것이다. 한데도 파크는 화자의 남편이 누워있어도, 아이들 몇이 희생되었어도, 다음날부터 다시 가상체험 놀이기구를 운영한다. 

 재미있고 유의미한 작품이었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고 쉼표가 없는 느낌이었다. 작가는 왜 이렇게 급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미러리즘과 웨이큰이 특히 그 점에서 아쉬웠다.


사연 없는 사람

자서전 대필을 주로 하는 작가가 대형 사고에서 죽은 사람을(시신) 만나게 되고 그에게 사연 있는 생을 만들어주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자칭"세상 어디서도 온전한 자신의 몫을 인정받지 못하는 대필작가이자 기획 작가이며 짜집기 전문 이야기꾼으로서의 집필 노동자인 나는 총 스물네 대의 차가 도로에서 뒤엉킨 참사, 그 아수라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한 구의 시신과 우연히 만난다. 양팔이 훼손돼 연고를 찾을 수 없는 시신의 뒷주머니에서 나의 명함이 발견됐다며 경찰이 신원 확인을 부탁하면서 인연이 생긴 것인데, 시체의 얼굴을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그에 대한 기억은 전무하다. 평소 명함을 습관처럼 여러 사람들에게 건네고 다닌 터라 외모만으론 도무지 특성 없는 남자인 그를 떠올리지 못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은 채'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될 것을 예감하면서 그의 죽음을 고유한 하나의 이야기로 기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야기 만들기'로써 망자를 애도하고 사회적 참사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자임하는 소설 속 나의 모습은 작가를 '고립적 예술가'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이야기 제작자'로 바꿔 상상해볼 것을 요청한다."(306p, 해설 중, 신샛별 문학평론가)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우연히 한 테이블에 앉게 된 '중고신인'인 네 명의 작가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중 오작가라는, 외진 시골에 묻혀사는 주부인 그녀는 '곰삭다'라는 말을 진저리 치게 싫어하는데...

"작가들이 어떤 강도로 자기 억압과 자기 감시에 시달리는지를 한 편의 우화로써 이야기한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곰삭다'라는 지배적 평가에 진저리를 치던 작가 '오'의 심리가 몇 단계의 자유연상을 거치면서 '곰'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로 이어지게 됐다는 사연이 서술되고, 이에 동료 작가인 나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그건 네가 자꾸 곰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하니까 그런 것인데 당연한 일이야. 그러니까 곰이 문제네. 곰부터 때려잡아.... 

술김에 내뱉은 이 말들 때문에 졸지에 나는 오의 곰 사냥에 동참하게 된다. '곰'이라는 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없애려고 진짜 곰을 때려잡겠다고 나선 오의 기이한 행동을 독자에게 설득하는 데 작가는 별 관심이 없어보인다. 그보다는 그 환상적 설정을 고집하여 곰이 두 작가를 덮치는 상황을 만들고, 머리 위로 드리워진 곰의 그림자 아래에서 주인공이 '곰'이라는 글자를 적은 뒤 그것을 '문'으로 읽어내는 임기응변을 발휘하는 순간을 향해 나아가기를 택한다. .......일종의 언어 전복이 작가의 본령이자 소임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해설 302~303p)


오토포이에시스

인류가 멸망하고 얼마 후, 쓰레기 더미 산에서 AI가 우연히 전기적 충격으로 일어나 걸어나온다.

그는 황폐한 땅을 걸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오지만 언어조차 제대로 통일되어 있지 않은 원시적인 마을과 무지한 사람들. 

그는 인류가 멸망하기 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로봇이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 적이 있으므로, 이제 그는 그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로 꿰어낼 단 하나의 문장을 찾으려고 매일 책상에 앉아 문장을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린다. 

몇 날 며칠 비가 내리고 삼 주 쯤 지나 햇살이 들 즈음, 이웃 마을의 여자가 그를 찾아왔지만 그는 책상에 엎드린 채로 완전히 멎어있다. 

이제 그는 정말로, 다시는 일어나 앉지 못할 것이고 단 한 문장도 쓸 일이 없을 것이다.

그 AI 머리 아래 책상 위에는 그녀가 가르쳐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언어가 씌어져 있을뿐.....


이 소설집의 표제'단 하나의 문장'은 AI가 그토록 헤매던 그것을 말함이다. 모든 것을 꿰뚫을, 모든 것을 다 봉합할 수 있는, 더는 다른 말이 필요 없는 단 하나의 문장을 찾고 싶은 사람들, 그토록 어휘가 풍부하고 날카로운 구병모 작가에게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단 하나의 문장인가 보다. 그것은 선문답으로만 가능한, 수많은 문장이 필요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이상화시키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 문장이 아니라 수많은 단어와 문장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싶을 뿐, 단 한 문장에는 관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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