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월기

나카지마 아쓰시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10월



  이 책 띠지에 쓰인 '60여 년 동안 일본 교과서에 수록된' 이라는 구절에 호기심이 동했다. 도대체 얼마나 지고의 윤리와 삶의 핍진성을 띠었기에 한 작품이 교과서에 60 년 간 실릴 수 있을까. 
  
  '산월기'는 자신의 생을 뒤돌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한탄했을 법한 회오를 품고 있다. "인생이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나 길지만 무언가 이루기에는 너무나 짧다"는 경구가 실로 우리의 생을 표현하기에는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것은 생의 유한한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느냐일 것이다. 길고 짧은 시간은 이미 정해진 시간이라 인간으로선 불능이고 그런 와중에도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는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산월기'의 이징은 자신이 가진 '약간의 재능을 다 허비'하고 끝내 맹수 호랑이가 되고 만다. 
  맹수라니, 사람이 맹수가 되었다고? "인간은 누구나 맹수를 키우는 사육사이며, 그 맹수는 바로 각자의 성정이라고 한다." 쓸데없는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으로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며 상처를 주고 그러다 외모까지 '속마음과 어울리게 바꾸어버'려 결국 호랑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까는 왜 이런 운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지는 않다. 인간이었을 때, 나는 애써 남들과의 교제를 피했다.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다, 거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거의 수치심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 
  나는 시로써 이름을 떨치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거나 기꺼이 시우와 어울리며 절차탁마를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한 나는 속물들 사이에 끼는 것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 모두가 나의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 탓이었다. 내가 옥수슬이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애써 각고하여 닦으려 하지 않았고, 또 내가 옥구슬임을 반쯤 믿는 까닭에 그저 줄줄이 늘어선 기왓장들 같은 평범한 속인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나는 점차 세상에서 벗어나고 사람들과 멀어지며 번민과 수치와 분노로써 내 속의 소심한 자존심을 더욱 살찌게 했다."
  위 글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도 조금 생각나게 한다. 속으로는 자신을 대단히 고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낼 자신은 없고 속인들을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세상과 섞이지 못해 외롭고 괴로웠던 그들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들 주인공들은 전부 나와 한통속인 인간들이다. ㅠㅠ

  이 산월기는 아주 짧은 단편이다. 그러나 무게로 치자면 대단히 무거운 작품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읽으면 누구나 깨닫게 되고 말 테니까. 몇 페이지 읽으면서부터 나는 필사를 한 번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구성은 '중국의 고담'에서 가져온 이야기들이 9편, '식민지 조선의 풍경'아래 묶인 3편해서 모두 12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중 공자와 그의 제자인 자로의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조선에서 작가가 직접 겪은 듯한 '범사냥'과 '순사가 있는 풍경'도 좋았다. 조선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탓인지 경성을 고향처럼, 그러면서도 잘 아는 이국의 도시처럼 말하는 듯한 이중적인 뉘앙스가 특이했다. 작가 나카지마 아쓰시는 어려서부터 이미 감수성이 예민하고 지성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특히 '순사가 있는 풍경'을 읽으면 일본 학생인 그가 조선인이면서 일제에 충성해야하는 순사에 대한 고뇌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게 사뭇 놀라웠다. 어릴 때에는 그런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텐데 말이다. 이런 천재적이고 양심적인 작가 나카지마 아쓰시는 33세에 기관지 천식으로 요절했다고 한다.ㅠㅠ

다른 단편들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산월기 하나만으로 충분해서라기보다 독후감을 쓰는 일이 별로 재미있지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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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재기 넘치는 언어와 지성, 심오한 직관을 실험적이고 현란한 언어로 풀어내 언어의 마술사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탁월한 이야기꾼 폴오스터". 폴 오스터는 그만한 극찬을 받을 만큼 빼어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도록 배경을 만들어낸다. 그 배경 위에서 인물들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모습 또한 아주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작가가 배경과 인물과 상황 하나하나를 리얼하게, 지나치다 싶게 디테일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독자가 다른 생각을 할 여백이 생기지 않을 정도다. 글을 읽다가 두어번은 숨이 막혔다. 행간이 너무 빽빽하고 질식할 것같은 구체적인 묘사와 설명이 머리를 아프게 했기 때문이었다. 

  좀 다른 얘기지만 같은 맥락인데, 어제 본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이 그랬다. 영화에 집중하고 후반부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두통이 느껴졌다. 머릿속이 아프고 열이 났다. 영화가 끝나고 화장실에 가서 찬물을 이마와 머리에 적시고 나서 몇 분 지나자 이런 증세는 말끔히 사라졌다.  내 머릿속 신경과 세포들이 왜 그토록 열을 받았던 걸까. 그만큼 단 1초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이 초집중하려니 힘들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머릿속이 과부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 작품 '폐허의 도시'도 그랬다는 말을 나는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폐허의 도시'는 익명의 도시이다. 주인공 안나 블룸은 연락이 끊기고 행방이 묘연해진 오빠를 찾아 이 도시를 찾아간다. 그녀의 오빠는 취재차 이 도시로 떠났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한데 이 익명의 도시는 자신이 살던 문명의 도시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라지고 소멸되고 있는 도시였다. 거리도 건물도 시스템도 완전히 붕괴된 채 하루가 다르게 파괴되면서 파멸을 향해서 전진하고 있었다.

  안나는 처음에 버려진 쓰레기들 중에서 쓸만한 물건을 찾는 넝마주이(물건 사냥꾼)로 간신히 연명하다 이사벨을 만나 그녀의 집에서 살게 된다. 이사벨의 남편 페르디난드는 집안에서 꼼짝도 안하면서 이사벨에게 생활을 의지하고 있는 남자였다. 어느날 안나는 그의 성적 폭행에 맞서 그의 목을 조르고 죽기 직전에 그를 놓아주지만 그녀가 나갔다 돌아와보니 페르디난드는 죽어있다. 두 여자는 시신을 끌고 옥상으로 올라가 밑으로 떨어뜨려서 일을 해결한다. 그런데 페르난드의 죽음 이후 이사벨은 서서히 죽어간다. 

  그녀의 죽음 후 안나는 다시 거리를 떠돌게 되고, 오빠를 찾기 위해 무작정 헤매다닌다.

  그러다 우연히 안나는 드디어 자신의 오빠를 이름으로만 알고 있는 다른 기자출신의 남자 사무엘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그와 지내면서 사랑에 빠지고 그가 쓰는 책을 완성하기 위해 그를 도와 애쓴다. 그러다 그녀는 신발 한 켤레를 사려다가 끔찍한 인간도살장으로 유인되고, 짐승처럼 도살되지 않기 위해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그리고 그녀는 며칠 만에 깨어난다. 

  다행히 그녀가 깨어난 곳은 '워번 하우스'라는 자선공동체였고 그 곳에서 그녀는 몸을 추스른다. 자선을 행하는 이 하우스의 주인은 빅토리아 워번이었고 그녀는 이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아함과 재능을 지닌 여자였다. 빅토리아는 안나를 면접관으로 채용해서 머물 수 있게 해주고 안나는 바쁜 일상과 안전함 속에서 지낼 수 있게 된다. 그 사이 사무엘이 기거하던 도서관이 불타고 사무엘이 사라졌었는데 몇 달이 지난 후 그는 이 자선하우스에 면접을 보러 왔다가 안나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부족하고 소멸하기만 하는 도시에서의 삶이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드디어 워번 하우스에도 끝이 다가오고 그들은 돌보던 사람들을 모두 내보낸 뒤 날이 풀리기를,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봄이 오면 간신히 쓰지 않고 버텨온 돈을 가지고 이 도시를 탈출할 계획이다.  가능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은 그런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처음 만났던 이사벨이 죽기 전에 몇 장 썼던 노트의 앞 부분을 찢어 간직하고 여백의 노트에 자신이 이 도시에 와서 겪은 일을 적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났던 도시, 문명의 도시에서 친했던 옛 친구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노트 한 권을 다 채우고 갈수록 페이지가 부족해 작아지는 글씨로, 나중에는 과연 누가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싶게 작은 글씨로 이 폐허의 도시를 적어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부족한 것에 익숙해야 한다. 덜 원하고, 덜 만족하고, 덜 필요로 하면 부유해진다. 이도시가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이거다. 마음속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것이 이 도시다. 피할 도리가 없다. 아니, 피하든지 피하지 못하든지 둘 중의 하나다. 혹 지금은 피할 수 있다 해도 다음은 확신하지 못한다. 피하지 못하면, 그냥 그것으로 끝이다. (11쪽)


아마 이런 생각이었을 게다. 당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에 알려 주고 싶어 이 글을 쓴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어서....(11쪽)


배고픔이 매일 찾아오는 저주인 양, 위장이 이 세상만큼이나 큰 구멍이 난 밑 빠진 독인 양, 사람들은 음식을 탐한다.(14)


통행세를 부과하는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옛장소는 어느 날인가 사라지고 없고, 딴 곳에 그런 장애물이 새로 생긴다. 따라서 어느 길을 가야 하고 어느 길은 피해야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 도시가 야금야금 사람들에게서 확실성을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도 정해진 길이 따로 없다. 필요한 것이 없어야 생존할 수 있는도시다. 사전 예고가 없어도 쉽게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하던 일을 금방 접을 줄도 알아야 하고, 거꾸로 안 하던 일도 얼른 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엔 모든 게 다 하나하나 문제가 되는 사례인 셈이다. 따라서 어느 경우든 그 징후를 읽어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눈이 흐려지면 코라도 예민해야 한다. (16)


희망이 사라지고, 희망의 가능성마저 포기해 버리고 나면 사람들은 그 빈 공간을 꿈으로, 어린아이의 생각과 같은 유치한 생각과 유치한 이야기로 채우고 싶어한다. 그래야 세상을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20)


환영의 언어, 죽음의 질주자, 최후의 질주, 최후의 점프, 안락사 클리닉( 신기한 여행, 귀향 항해, 쾌락의 순항), 암살 클럽, 변형 센터, 웃음 짓는 사람들, 기어다니는 사람들, 개 같은 사람들, 뱀 같은 사람들, 북 치는 사람들, 종말론자들, 자유 연상가들, 똥 치우는 사람들,쓰레기 수거인, 물건 사냥꾼, 부활 센터, 넝마주이-탐욕의 독수리


아무 의미도 없고 현실성도 없는 이야기면 된다. 대체로 사람들이 굳게 믿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옛날에 아무리 나쁜 것이었다 해도 그것이 오늘날의 그 어떤 것보다 낫다는 믿음이다. 이틀 전의 것이 어제의 것보다 더 좋다. 과거로 되돌아가면 갈수록 세상은 더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이 된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보이는 것은 분명 그 전날보다 더 열악한 상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잠들기 전의 세상의 모습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지금'의 현재가 단순히 헛것에 불과하다는 미몽에 빠질 수 있다. 마음에 안고 사는 옛날의 기억만큼이나 현실성 없는 헛것, 그래서 현재의 아픔을 잊을 수가 있는 것이다. (22)


환상이 그들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나는 절대 환상을 그리지 않는다. 헛된 환상을 쫓는 사람들, 그들은 항상 잠을 자다 죽는다. 그전에, 한달이나 두 달 정도 그들의 얼굴엔 아릇한 웃음이 감돈다. 벌써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는듯, 제 모습이 아닌 딴 사람이 된 듯한 기묘한 기운이 그들 주위에 감돈다 싶으면 영락없다. 그 징후는 틀림없다. 뺨에 살짝 감도는 붉은 기운, 갑자기 커져버린 두 눈, 혼미한 발걸음,  하체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 ㅡ 이런 것들이 죽음의 징후다. 하지만 행복한 죽음일지도 모른다.(23)


많은 관찰 끝에 내가 당신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곳의 하늘이 당신 머리 위의 하늘과 똑같은 하늘이라는 사실이다. 똑같은 구름, 똑같은 햇살, 똑같은 폭풍, 똑같은 고요, 똑같은 바람, 그런데도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로 하늘 아래,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일 것이다.(36)


결국 나중에 내가 알게 된 것은 이곳 사람들이 어떤 일에 대해서는 전혀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도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따지고 싶지 않은 주제가 있다는 사실이다.(38)


예를 들어, 소수이긴 하지만 나쁜 날씨는 나쁜 생각에서 연유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의견은 날씨 문제에 대해 다소 신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왜냐하면 이 의견의 바탕에는 사람의 생각을 물리적 세계의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 따르면, 내가 어떤 암울하고 염세적인 생각을 하면 그것이 하늘에 구름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이다. (43)


각 구역마다 자체 발전소가 있는데, 그 발전소의 주 연료가 바로 쓰레기다. 자동차 연료, 난방연료 ㅡ 이 모든 연료가 바로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메탄 가스에서 나오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좀 우습게 들릴지 모르나 이곳에서는심각한 문제다. 똥이 주요 사업 품목이다. 그래서 길에서 허락 없이 똥을 수거하는 사람은 발견 즉시 체포된다. 만일 두 번 적발되면 그때는 자동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제도가 이러니 어디 웃음이 나오겠는가.(52)


너무도 비참한 처지라 정신마저 마비된 것 같았다. 정지된 의식, 오로지 본능적이고 이기적인 몸부림만 남았다. 그러는 사이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 일들을 내가 어떻게 버텨냈는지 모르겠다. (69)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답게 살려는 노력을 포기했소. 내 삶의 목표는 주변 환경에서 나 자신을 지우는 것이었지. 더 이상 나를 괴롭히고 상처 주는 것이 없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었소. 나는 하나하나 나와 관련된 것을 다 버리기 시작했다오. 내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 그냥 그렇게 없어지도록 내버려 두었소. 무관심, 그래요, 그런 무관심이었소. 초연한 무관심, 그 어떠한 공격과 괴로움으로부터도 내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무서운 무관심 말이오. 안나, 난 당신에게도 작별을 고했소, 책에게도 작별을 고하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도 다 지우고 말았소. 더 나아가 나 자신하고도 작별을 고하고 싶었소. ....... 내 육신만 없었다면, 속을 채우고 속을 비우라는 몸뚱어리의 요구만 없었다면 아마 나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을 거요.(244)


"내 육신만 없었다면, 속을 채우고 속을 비우라는 몸뚱어리의 요구만 없었다면 아마 나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을 거요."---내가 앞으로 꼭  쓰고 싶은 문장이었는데, 폴 오스터가 너무나 정확하고 멋지게 먼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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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만든 사람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2022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최은미 작가의 '고별'이 실려 있었다. '고별'은 어떤 페미니즘을 주제로 내세운 이즈음의 작품보다 파격적이고 과격하다 싶게 여성의 주체성을 끝까지 파고든 작품이었다.  '고별'의 주인공은 여자도 남자들만큼 정치적일 수 있고 당위성이 있다면 그래야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점에 매료되었고 최은미 작가의 입심에 반했었다. 

  그래서 구매한 이 단편집은 역시나 좋았지만 '고별'을 읽을 때의 통쾌한 맛에 미치지는 않았다. 하긴 모든 작품에 파격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독자의 횡포(?)인 것 같다. 좋은 작품을 쓴다는 것도 힘든 일인데 매 작품이 늘 정점을 찍는다면 작가는 숨이 막혀 질식하고 말 것이다. ㅎㅎ


차례

보내는 이

여기 우리 마주

눈으로 만든 사람

나와 내담자

운내

미산

내게 내가 나일 그때

11월행

점등



보내는 이

  "진아씨가 이전 글들을 지우지 않았는지 보기 위해 매일 지역 맘카페에 들어간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진아씨가 어떤 얘기를 해도 서운했고 어떤 얘기를 하지 않아도 서운했다. 겉으로는 티내지 않았다. 진아씨가 나한테 해주지 않은 얘기를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진아씨는 전혀 몰랐다. 맘 카페에서 진아씨를 봤다고 터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

  "지나가다 눈인사만 주고받는 이웃으로 돌아가자는 건가. 아니면 아예 안 보겠다는 건가. 내 인간관계는 또 한번 이렇게 실패하는 건가. 다음 주면 아이들이 개학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진아씨네서 보내던 여름 저녁들이 말할 수 없이 그리워졌다. "

  "나는 진아라고도 지나라고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진아씨한테 편지를 보낼 수가 없었다. 그런 채로 이 사람은 대체 문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 아파트에서 살고 아이들이 친한 학교 친구이고 여름을 같이 보냈고 함께 밥을 먹은 사이, 그런데 원래 이름은 진아가 아닌 지나인 걸 sns계정을 본 뒤에야 알게 되었고, 진아는 내게 이별의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이사를 떠나갔다. 어쩌면 별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마음으로는 정말 하염없이 울고 싶어질 것 같다. 나는,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었나.


여기 우리 마주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아무리 좋아도 함께 있을 수 없다. 확진자가 되면 누구나 격리되어야 하니까. 


눈으로 만든 사람

  가족 친지간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피해자였지만 발설할 수 없었던 여자. 성적 폭력을 가했던 삼촌은 이제 늙었고 그의 젊고 착한 아들(내겐 사촌동생)은 암에 걸려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자신의 아들이 그런 상황에 이르자 삼촌은 자책감에 여자에게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말한다. 눈이 오는 날, 여자의 딸과 삼촌의 아들은 눈사람을 만들어 베란다에 세워둔다. 그리고 눈사람은 어느덧 녹아 없어진다.  딸은 눈사람이 없어졌다고 운다. 여자가 말한다. 

"아영아, 민서 삼촌이랑 니가 만든 눈사람, 없어진 거 아니야. 그냥 모습이 변한 거야."

어느날 새벽 여자는 자신의 딸이 자꾸 자신에게 비는 꿈을 꾼다고 말하곤 남편에게 기대어 운다. 남편은그녀의 등을 닦아주고 그녀를 어루만지며 그녀의 몸으로 들어온다. 그날 피임을 하지 않았다는 걸 부부는 아침이 되어서야 알게 된다.

  삼촌의 이름 강중식, 그의 암에 걸린 소년같은 아들 강민서, 남편 백은호, 딸 백아영, 인물들이 호칭으로 쓰이지 않고 이름으로 쓰였다. '고별'에서도 남편을 이름으로 칭했던 것과 상통한다. 그런 점이 매력적이었고 이치로도 합당해보인다. 우리는 누구의 누구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여자든, 아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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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지음, 서치헌 옮김, 소담출판사











몇 년 전 읽은 책을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또 너무 재미있었다. 



차례


목걸이

비계 덩어리

두 친구

의자 고치는 여인

달빛

보석

미스 해리엇

후회

후원자

첫눈

고아

어느 여인의 고백


목걸이

말해 무엇하랴. '목걸이'는 그 자체로 단편소설의 선조, 전범이다. 짧고 단순한 서사지만 인간의 희로애락이 다 표현돼 있다. 


비계 덩어리

상류층의 집단 이기주의와 비열함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종교지도자,귀족, 진보적인 혁명가, 보수주의자, 부르주아, 한결같이 후안무치하다. 별명이 비계덩어리인 매춘부만이 인간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의자 고치는 여인

한 불우한 여자가 이웃의,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탐욕과 이기적인 남자를 짝사랑하다 그에게 전 재산을 남기고 죽는다. 남자와 그의 아내는 그녀의 죽음에 한 점 동정조차 하지 않다가 그녀가 유산을 남겼다고 하자 그 유산을 받겠다고 한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할 때, 사랑하는 나는 가치있는 인간인가, 또 그는 사랑받을 만큼 괜찮은 사람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나 그가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그저 그런 인간이라해서 사랑하지 말란 법은 또 없으니..... 하긴 그렇게 다 따지고 사랑한다면 누가 사랑 같은, 미몽에 빠지겠는가.



보석

'목걸이'와 같은 소재이지만 다른 결말을 갖고 있다. 정반대의 서사로 보석 뒤에 말해지지 않은 여자의 불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돈이 없을 때와 있을 때의 아주 다른 한 인간의 두 얼굴을 말해주기도 한다. 


미스 해리엇

남들 눈에는 어딘가 이상하고 외로운  여자 해리엇, 하나 그녀의 마음은 소녀보다 더 순진하고 맑고 깊다. 그녀가 우연히 사랑하게 된 남자, 그녀는 질투에 눈이 멀어 우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만다. 남자는 해리엇을 추억하며 회오에 젖는다.


후회

삼십 년 전, 친구의 아내를 짝사랑했다. 정확히는 짝사랑이 아니라 서로사랑이었다. 이제 그는 너무 늙었고 죽을 일만 남겨놓고 있다. 그는 회한에 차서 그녀를 찾아간다. 그리고 삼십 년 전 일을묻는다. 그녀가 대답한다. "바보,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걸요!" 그는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처음 알았고 함께 거닐었던 강가로 비를 맞으며 걷는다. 그리고 그는 "벌거벗은 나무 밑에 앉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불륜일지언정 진정한 사랑을 그냥 스쳐지나간 늙은 남자의 회오와 각성, 그리고 슬픔.


후원자

참의원이 된 한 남자의 과시욕이 일으킨 파멸. 성공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 남자가 드디어 참의원이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아무나 붙들고 자신이 참의원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어려운 일을 당한 것 같으면 무조건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러다 한 늙은 사제를 만난 그는 신부를 위해 여기저기에 편지를 써준다. 그러나 늙은 신부는 사실 현 정부에 대한 음모를 꾸몄으며 파렴치한이었다. 그러자 그는 또 그 사제가 자신을 속인것이라며 그에게 유죄를 선고해달라고 검찰총장과 대주교에게 편지를 쓴다.


첫눈

너무나 표피적인 것만 아는 남편과 살아야하는 여자의 불행. 아내가 아무리 춥다고 하소연해도 남편은 자신은 절대 춥지 않다고, 난로같은 건 흉하다고, 견딜 수 없던 아내는 일부러 눈을 맞고 폐렴에 걸려 눕는다. 그리고 죽는다. 그런 남편과 사느니 죽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겠지.


고아

부모도 집도 친척도 없이 불쌍한 남자아이를 데려다 키웠더니 양모를 죽인 고아는 양모의 전 재산을 유산으로 받고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을 베풀면서 잘 살고 의원이 된다. 양모는 해서는 안될 자선을 베풀고 자신의 목숨을 빼앗긴 것이다. 

함부로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지 말라, 내가 선하게 대했다고 해서 그가 내게 고마워하기는 고사하고 내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다. 


어느 여인의 고백

한 여자가 자신의 불행했던 결혼에 얽힌 비극적인 이야기를 고백한다. 매일 자신의 집을 드나들었던 한 남자를 남편이 사냥총으로 죽인 끔찍한 사건. 그녀의 남편은 남자가 자신의 아내 때문에 매일 찾아온 거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쓰러지자 하녀가 뛰어와 남자를 끌어안고 통곡한다. 여자는 결코 자신이 남편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녀의 생은 너무나 쓸쓸하고 어두운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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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조지 오웰 지음, 김병익 옮김, 문예 출판사.


  "그가 지금 하려는 일은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불법은 아니었지만 발각만 되면 사형, 아니면 적어도 강제노동 25년형을 받을 것이 틀림없었다." (13쪽)

  전체주의 국가, 당이 모든 조직과 국민을 온전히 지배하는 나라에서 윈스턴은 기록국의 공무원이다. 현재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고, 그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과거의 모든 기록을 찾아내 삭제하고 다시 조작하는 일을 그는 매일 해야한다. 

  그러나 그는 어떤 조작을 했어도 그것에 대해 의문이나 불합리성을 느끼면 안된다. 자신이 조작을 한 것에 대해 당의 어떤 의도를 의심해서도 안되며, 자신이 삭제한 과거에 실재했던 것을 완전히 잊어야한다. 이것은 기억을 갖고 있는 인간에게는 혼란스러운, 어려운 일에 틀림없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원들에게는 '이중사고'라는 당의 방법론에 자신을 맞추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중사고'는 자신이 조작해야하는 자라는 사실을 알고 조작하되, 자신이 조작한 것을 믿어야하는 사고를 말한다. 

  그런 그가 일기를 쓴다. 그는 어떤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도 나눌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실행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막연하지만 분명히 자신이 그로 인해 파멸하리라는 예감을 갖는다. 일기는 사적인 것이고 그는 오직 공적으로만 국가와 사회에 존재해야하기 때문이다. 하나 충동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그는 몇 년 전부터 유난히 끌리던 오브라이언과 만나게 되기를 원하기까지 한다. 오브라이언은 웬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일 것만 같다. 텔레스크린이 사무실과 방마다 설치되어 있는데도 그는 충동을 참을 수가 없다. 24시간 자기를, 당원 모두를 감시하는 스크린 한곁에서 교묘하게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의 파멸은 이렇게 그의 일기장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일기를 쓰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부터 이미 그는 당의 사상에서 멀어지고 있었고 반역하고 있었다. 당은 사적인 생활과 마음조차도 범죄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무모한 그에게 지나치게 생동적인 줄리아가 다가온다. 그는 어디에나 깔린 감시망을 벗어나 한적한 교외 지역에서 줄리아와 밀회를 갖는다. 그는 곧 노동자들이 밀집해 사는 지역의 2층에 오래되었지만 혁명 전의 분위기를 간직한 방을 얻어 그녀와 밀회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용기있게 오브라이언을 찾아간다. 지하조직단의 일원이 되고자하는 열렬한 마음에 그들은 맹세를 하고 단원이 된다. 그러나 이 거대하고 치밀한 당의 감시망과 그물망은 그들의 숨소리조차도 체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간과한 것이고, 오브라이언의 정체를 완전히 오해하고 만 것이다. 

  밀회를 나누던 그들은 체포되고 애정성(법무부쯤)에서 자행되는 고문과 심문에 그들의 정신과 육체는 완전히 파괴된다. 그들은 파멸되는 것이다.

  오브라이언은 '이중사고'를 완전히 체득한 인간이며 당을 자신과 한 몸처럼 여기는 괴물이었다. 윈스턴은 그의 지휘 아래 이어지는 수많은 심문과 고문으로 완전히 넋이 빠져나가 껍데기만 남은 오브라이언의 로봇이 된다. 그는 끝내 오브라이언에 철저히 예속되어 당의 빅 브라더, 대형을 사랑하고 믿으며 죽어간다. 완전한 디스토피아가 구현된 세계에서 윈스턴은 잠시 발작을 일으켰던 수많은 바퀴 중 한 바퀴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했던 줄리아를 배신하고 줄리아 또한 그를 배신한다. 맞고 모욕을 당하고 뼈가 부러지고 전기고문을 당할 때만 해도 그는 줄리아를 거명하지 않았다. 그녀도 비록 심문과 고문을 당하고 있겠지만 그의 마음은 결코 줄리아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혼자만의 다짐이기도 했다. 그러나 101호실에 들어서서 자신에게 씌워질 철망상자를 보자 그는 소리를 지르고 만다. 그 철망 안에는 윈스턴이 극도로 무서워하는 쥐가, 너무 커서 까맣기보다 갈색인 쥐가 들어있었다. 그는 쥐만큼은 견딜 수 없었다. 공포에 질린 그가 소리를 지르고 만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자기 형벌을 대신 받아야 할 꼭 '한' 사람이, 그와 쥐 사이에 밀어 넣을 수 있는 '한' 몸뚱이가 있다는 걸 갑자기 깨달았다. 그는 열에 들떠 마구 소리를 질렀다.

  "줄리아한테 그러세요! 줄리아한테! 내가 아녜요! 줄리아예요! 그여자한테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요. 그 여자 얼굴을 찢고 뼈다귀까지 추려요. 내가 아녜요! 줄리야예요! 내가 아녜요!""


  몇 년인지 몇 달인지 며칠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날들을 고문 당하고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머리가 벗겨져 대머리가 되고 뼈가 어긋난 것처럼 틀어지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정신은 멍해져 한가지 생각에 집중할 수 없다. 그가 모든 것을 놓고 오브라이언의 로봇이 되었을 때 그는 석방된다. 그리고 그는 바보처럼 살이 찌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매일을 술로 보낸다. 웨이터가 다가와 그의 술잔이 비어있으면 따라준다. 그의 술값은 아주 싸게 치러진다. 

  '3월, 어느 구질구질하게 쌀쌀한 날, 공원에서' 그들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는 손이 얼고 추위로 눈물을 흘리면서 급히 걷다가 10미터도 안 떨어진 거리에 그녀가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녀가 좀 추하게 변해 있어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알은체도 하지 않고 서로 지나쳤다. 그런 다음 그는 돌아서서 별다른 흥분도 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아무런 위험도 없고 아무도 그들한테 관심도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를 피하려는 듯 풀밭을 비스듬히 걷더니 다시 생각한 듯 그와 나란히 걸었다. 그들은 곧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나무 숲을 지났다.( ..........) "그런 일이 닥치면 그렇게 돼 버려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줄리아도 그를 배반했고 그처럼 그녀도 이제 넋이 빠진 인간 이하의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텔레스크린에서 나오는 음악이 바뀌었다. 깨어지는 듯, 비웃는 듯한 선정적인 곡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우거진 밤나무 아래 

   나 그대를 팔고 그대 나를 팔았네."


  그의 앞에는 죽음만이 남아있다. "그는 햇빛 속을 걷는 기분으로 하얀 타일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무장한 간수가 나타난다. 오랫동안 소망해 오던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힌다."

"그는 이제 달리며 환호성을 지르지 않았다. 애정성에 돌아가 모든 걸 용서받고 그의 영혼을 눈처럼 깨끗이 한 것이다. (.............) 술내 나는 두 줄기 눈물이 코 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잘되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얻은 것이다. 그는 대형을 사랑했다."

  국민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게 의무요 권리인 전체주의 국가에서 한 인간은 당을 위해 소모품이 되고 수많은 바퀴 중 하나의 바퀴로써 굴러가야 될 뿐이다. 지배층은 국민을 자신들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위해, 아무 사고도 할 수 없도록 가난과 무지가 계속 되도록 내버려두고 가끔 당근으로 그들의 환심을 사서 정권을 유지한다. 가난하고 무지한 국민은 지배계층의 탄탄한 토대가 된다. 조지오웰은 이 점을 마지막에 온전히 이해시킨다. 


  부록 '신어의 원리'는 읽다가 그만 두었다. 머리가 좀 아팠다. 다음에 읽을 기회는 없을 테지만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했으므로 이만 독후감으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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