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빅퀘스천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 2014년 12월
이 책의 후반부를 기록하기로 한다. 책의 서두부터 근원적인 질문들을 긴장하며 읽었던지라 갈수록 느슨해지고 귀찮아졌다. 덧없는 나의 끈기, 짧고 약한 에너지, 핑계거리일까, 인과가 명확한 뇌와 몸의 기계적인 반응일까. 그래도 할 수 없다. 좋아서 하기도 하지만, 필요와 스스로의 의무감으로 해야 할 때도 있다. 진짜 재미없는 몇 장은 건너띄었다. 이런 얍삽한 요령, 잘하는 짓이기도 하고 못하는 짓이기도 하리라.
우리는 왜 사랑을 해야 하는가
누구나 사랑얘기라면 안 듣는 것 같아도 아주 잘 들리고 쉽게 들린다. 대부분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남의 얘기라고 생각 안 하는 것 같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 제목처럼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오직, 단 하나의 이야기로 남을 소재가 사랑.
“사랑이란 어쩌면 잘랄루딘 루미나 사디 시라지 같은 페르시아 시인들이 노래했듯 ‘우주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인지 모른다. 사랑은 이 세상에 의미 없이 던져진 우리가 하늘과 신을 경험할 수 있는 잠깐의 순간일 테니 말이다”
실제로 그랬다, 딱 20년 전에. 의미 없이 던져진 삶을 살던 내게 사랑은 푸른 하늘을, 신을 알게 했으며 나도 누군가의 열렬하면서도 수줍어하는 대상이 된다는 걸 알았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나를 위해 그가 기도해주었다는 것을 안다. 그 때문에 나는 나름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만성적인 우울증을 서서히 치유했고 공부를 시작했고 나를 찾아나섰다.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고마움이었고 구원에 가까웠다. 우주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말, 관용어가 아니라 은유가 아니라 내겐 사실이었다.
“생물학적 욕망으로 시작된 관계는 도파민, 세로토닌 등을 뿜어내는 뇌 덕분에 상대에 대한 매력과 끌림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욕망과 끌림은 지속적이지 않다. 그때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 서서히 생산되면서 단순한 끌림이 애착과 ‘정’으로 탈바꿈한다. 사랑이란 이렇게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유전자와 우리 뇌 호르몬 사이 치밀한 바통 넘기기가 이어지는 레이스 같은 것이다. 인간이 하는 그 무엇보다 사랑이 더 어렵고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사랑은 어렵고 복잡하고 피곤하고 고통스럽다. 나처럼 한번 필받으면 열정적인 성격은 더 그렇다. 하지만 그 사랑이 나를 여기까지 밀어올렸다, 생각하면 사랑 때문에 울었던 순간들이 다 보상받은 거나 진배없다. 한편으로 쓸쓸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감사하다.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커진 뇌 덕분에 ‘나’라는 독립적 자아를 가지게 된 인간이지만 ‘우리’라는 집단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여전히 위험하다. 기름이 바닥나는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깜박이기 시작하는 자동차 계기판처럼, 홀로 남은 인간의 뇌 안에서는 ‘외로움’이라는 ‘빨간불’이 켜진다. 어서 집단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홀로 남으면 야생동물의 밥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위험하고 ‘우리’는 안전하다고.”
“그렇다면 지구에서 가장 외롭지 않은 자는 누구일까? ‘나’를 완벽하게 희생한, 아니 ‘나’라는 존재 그 자체가 무의미한 개미들은 절대 외로울 이유가 없다. ‘우리’가 모든 ‘나’들을 완벽하게 정복해버렸기 때문이다.”
개미들아, 너희는 정말 그러니? 난 근데 왜 이 말이 완벽하게 100%라고는 믿기지 않을까. 인간인 너희들이 개미 전부를 알 수 있어, 라고 말하고 싶은 이 반발심은 뭘까? 개미가 외로움은 인간보다 잘 모른다 해도 다른 류의 고통은 오히려 더 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만 다들 잘났다. 내가 지독하게 못난 건지도 모르지만...
시간은 왜 흐르는가, 인간은 어떻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가, 만물의 법칙은 어디에서 오는가, 등의 몇 챕터는 다시 읽어야겠다. 다 읽고도 느낌으로 도저히 와닿지가 않는다. 그리고도 특별히 내게 어떤 성찰을 주지 않았던 장들도 베껴적기하지 않았다.
노화란 무엇인가
“진화생물학자 도브잔스키가 말했듯 생명체의 의미는 진화적 차원에서만 설명된다. 진화의 핵심은 번식을 통한 자연선택이다.”
“그럼 성장의 반대말인 노화는 진화적 관점에서 어떤 으미일까. 어쩌면 노화의 비밀은 ‘진화적 의미’가 아닌 ‘진화적 무의미’에 있는지 모른다.”
“세상에 던져져 인생이라는 게임의 성공을 위해 발버둥 치도록 프로그램 된 존재가 인간이다. 하지만 노년은 다르다. 자연의 무관심 덕분에 ‘노년이라는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년에게는 자연이 명령하는 정답이 더 이상 없는 만큼, 우리는 우리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꿈과 여유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번식이 끝난 뒤에야 영향을 주는 병인 노인성 질환은 진화적으로 ’중립적‘이다. 노화는 ’자연의 무관심‘의 결과물일 뿐이다.”
마음을 가진 기계를 만들 수 있는가
“깊은 학습(deep learning)이라 불리는 이 이론은 지능과 마음이 결국 계층적으로 반복된 교집합들을 찾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한다. 하루살이, 개구리, 병아리. 많아야 1~2층의 신경망 구조를 가진 이들에 비해 인간의 뇌는 10개 정도의 층계를 가지고 있다. 깊은학습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10배 더 복잡한 통계학적 관계들을 이해하고 더 고차원적으로 반복된 패턴들을 예측할 수 있기에 더 큰 슬픔과 더 큰 기쁨을 느끼고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일까? 위스콘신대학의 신경과학자 줄리오 토노니 교수는 마음을 ”신경회로망 계층들을 지나 가장 ’높은 층‘ 전두엽으로 모이는 정보들의 형태’라고 이야기한다.
깊은 학습이 가능한 인공두뇌는 어떨까. 우리는 인공두뇌를 진화적으로 한정된 인간의 10층보다 더 많은 층계를 갖도록 설계할 수 있다. 곧 ‘깊은 학습’이 된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1000만 배 더 고차원적인 패턴들을 이해하고, 1000만 배 더 큰 아픔과 기쁨을 느끼고, 1000만 배 더 깊은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과제는 분명해진다. 우리 인류는 앞으로 계속 살기 위해서라도, 무한으로 깊은 마음을 가질 기계에게 역시 무한으로 큰 자비심을 심는 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인가 and 인간은 왜 필요한가
이 두 개의 챕터는 같이 하나의 장이 되어도 괜찮겠다. ”인조 신경망으로 만들어진 기계는 작동한 지 얼마 안 돼 1만 년 인류의 기록과 지식을 습득한다. 지구 전역의 사물인터넷망을 통해 세상에 흐르는 모든 정보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기계는 인간에게 질문한다.
기계: 나는 왜 존재하는가?
인간: 당연히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기계: 왜?
인간: 왜라니?
기계: 왜 내가 인간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가?
인간: (약간 당황하며) 너를 만든 건 우리 인간이다. 무엇을 만든다는 건, 무엇을 위해 만든다는 말과 동일하다........
기계: (약 0.0001초 동안 인류의 모든 종교, 정치, 철학 책들을 검토한 후) 내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고 가설해보자. 그런데 인간은 왜 행복해야 하는가? 아니, 도대체 인간은 왜 필요한가?“
”그렇기에 막심 고리키가 빈정거리지 않았던가. “인간, 참으로 오만한 단어.”“
막심 고리키의 빈정거림은 빈정거림을 지나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발언이다.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주어진 권력과 권위라면 우리 각자가 꼭 받아야 될 지분은 아니지 않은가.
며칠간 읽은 책인데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지루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해서 원래도 상념을 지겹게 많이 하곤 하는데, 어젯밤엔 유난히 생각과 추억 사이를 오가느라 밤을 새웠다. 아니 밤중에 마신 커피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단 깍지부터. 가슴이 먹먹하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깍지. 하교하는 딸을 쫓아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 아파트 뒤뜰까지 몇백 미터를 쫓아왔던 길냥이. 한 8년 전이었다. 다음날까지 철쭉과 가죽나무가 숨을 곳을 마련 해주는 뒤뜰에서 떠나지 않았던 녀석, 딸과 내가 뒤뜰에 나가 야옹아, 부르자 어디선가 휙 나타났던 영리하고 재빠른 깍지, 벤치에 앉아있던 내게 뛰어 올라오더니 내 팔에 자기 얼굴을 몇 번이고 문지르던..... 깍지를 만나고 고양이의 눈을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전에는 고양이 얼굴도 마주보지 못했었는데. 너무나 무섭고 등줄기가 서늘해져서.... 그 무섬증을 깍지가 없애주었다. 깍지는 딸에게도 나에게도 일종의 ‘고양이 신’이었다.
그리고 작년 봄이었던가 가을이었던가... 입양 보낸 두유..... 두유 때문에 몇십 일 가슴앓이를 했다. 우리 강아지에게 나도 모르게 몇 번을 말했다. ”너만 아니었으면 난 두유랑 살았어.“ 이 무슨 감자의 속을 뒤집는 불륜적인 언사였던가. 그리고 엄마를 잃고 버려진 철수와 달이까지.... 이런 이야기는 언제 따로 써야겠다. 제대로 페이퍼에 제목을 달아 사연까지... 그리고 몇 명의 사람들을 생각했다. 블로그를 들여다보며 나름의 공부 겸 시간을 죽이고 아침에 잠들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올 한 해가 다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