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구병모는 어휘가 많은 작가인 것 같다. 내가 '것 같다'고 굳이 한 발을 빼는 이유는 외국 작가는 물론, 국내 작가들조차  제대로 일별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편 '아가미'에서도 생경한 단어가 나올 때마다 사전을 찾곤 했는데 이 소설집에서도 그런 일이 꽤나 있었으니 어휘가 많고 그 어휘의 쓰임새가 남다른 작가일 거라고 짐작하게 된다. 밑줄을 그어놓은 단어들을 몇 개 옮겨본다.


돌라내다- 남의 물건을 슬쩍 빼돌려 내다.

뜨더귀(판)- 조각조가으로 뜯어내거나 가리가리 찢어내는 짓. 또는 그 조각.

타래,

맹사- 맹렬히 쏨, 목표물이 없이 또는 목표물을 겨누지 않고 함부로 사격함.

염결주의,고릿적, 오라, 

욕동- 활동을 하는 주도력과 충동 및 추진력.

울가망하다- 근심스럼거나 답답하여 기분이 나지 않는 상태이다.

이염- 염색되어 있던 물감이 다른 부분으로 번지거나 다른 물건으로 배어듦.

체머리- 머리가 저절로 계속하여 흔들리는 병적현상, 또는 그런 현상을 보이는 머리.

역연산, 거멀못, 안면 인식 불능, 패착, 

혼화하다- 한데 섞이어 합쳐지다.

폐곡선, 결락, 편재, 원생세포 등

사실 단어들을 이어 구와 절을 만드는 부분에서도 나로선 오! 감탄한 부분이 있었으나 다 적기에는 무리이므로 이 정도만 해둔다.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소설가 P씨의 종생을 지켜본 과정을 담담히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반전은 그 P씨가 결국 화자인 나라는 것.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가족을 챙겨야하고 글을 업으로 하기에는 일상이 바쁜 주부이다. 실제 많은  여작가들이 이럴 것이다. 습작하는 문청(?) 주부들도 사실 대부분 이렇다. 글에 매진해도 모자란 판에 식구들 챙기고 친정시댁 모른 척 할 수 없으니 언제 작가가 될 것인가, 오매불망이되 현실은 한없이 늘어지다 사라지기도.... 

그런데 P씨는 어떻게 종생을 맞게 되었는가.

처음 P씨는 그런대로 잘 나가는 작가 같았다. 어느 정도 '소비되기 좋고 소진되기 쉬운 적당한 감흥을 안겨주는' 작품을 쓰면서, 더구나 처음부터 드라마, 영화와 웹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유명세를 얻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P씨는  도통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음으로써 정체를 궁금하게 만드는 은둔자 이미지를 고수한다. 하지만 사회파 스릴러쯤 되는 소설을 내놓은 후에는 독자들의 질타와 비난은 계속된다. 그러나 P씨는 별 반응없이 자신의 SNS에 사진이나 덜렁 몇 장 올리고, 종내는 출판사가 P씨를 대신해 변명 겸 사과를 한다. 

그래도 P씨는 얼굴을 내밀지 않고 한동안 잊혀지다가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을 때, 이번에는 정말 큰 사건없이 잔잔한 한 가족의 서사를 장편으로 선 보이고.... 그렇게 그렇게 천천히 사라진다. 화자인 나는 남동생의 도와달라는 문자, 큰형님한테서 낼모레 제사에 올수 있느냐는 문자를 받고 하교할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제목의 P씨는 PC를 가르킨 것 같다. 있을 법한 작가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기록이었다. 어쩌면 P씨의 종생이 그렇게 비극적이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화자에게는. 화자인 나는 이제 한 주부로서 바쁜 일상을 살게 될테니까. 절망하고 눈물 흘릴 여유도 없으므로. 

작가의 단편 중 아마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아닐까 싶다.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제목만으로는 한 아이를 둘러싼 마을의 관심과 축복이 무척이나 행복하게 그려질, 무슨 크리스마스 축제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남편이 어쩌다 시골마을로 전근을 하게 되고 아기를 낳은지 얼마 안 된 정주는 남편을 따라 그 시골로 주거지를 옮긴다. 한데 시골 인심이라는 게, 어르신들의 공동체적인 관심이 정주에게는 지나친 간섭이 되고 사적 공간이 침범당하며 자아가 사라지는 일상이 되고 만다. 사소한 일에도 감시를 당하는 것 같은, 그리고 도시에서는 충분히 있을법한 일들도 시골 동네에서는 사치가 되고(아이에게 선물로 오는 택배와 내가 시킨 필요한 물품들이 매일 쌓이자) , 정주는 예의없는 인간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남편은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 선생이라는 이유로 매일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행사에 초대되어 술에 취에 들어온다. 남편은 선생이라는 업무보다 이런 외적인 일에 시달림을 당하느라 매일 초죽음이 된다. 정주는 견딜 수 없어 남편과 싸우게 되고 이혼을 하더라도 잠시 헤어져 살기로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제목에서 느꼈던 온기는 작품 중반부터 스릴러에 못잖은 긴장으로 바뀌고 숨이 막힌다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아무래도 도시인들에게는 매일 나다녀도 아무도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 인한 자유가 몸에 배었기 때문에 그런 시골 생활을 견딜 수 없는 것이리라. 

온 마을이 한 아이에게 가지는 관심은 정주에게 저주가 되고 말았다. 

언젠가 누군가 한 말이 생각난다. 아파트라는 건물에서 서로 아는 체 인사를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라고... 서로 모르는 채 인사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게 예의라고...

정말 그렇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여실히 깨달았다. 도시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정주는 문득 러시아워에 어깨를 부딪치거나 서로 발을 밟고 밟히는 사이였던, 다시 스쳐갈 일 없으며 형상이 떠오르지 않는 수천수만의 얼굴들이 그리워졌다. 누구도 정주를 알지 못하며 정주 또한 그들을 모르는 세계에서의 불안과,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나 실상은 아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의 안식 가운데 선택을 요하는 문제에 불과했다. 환멸과 친밀은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는 값싼 동전의 양면이었고, 이쪽의 패를 까거나 내장을 꺼내 보이지 않은 채 타인에게서 절대적 믿음과 존경과 호감을 얻어낼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지속되는 호의

한 가족이(부부와 아이) 여름 날 풀장에서 물놀이 중 벌어진 미칠 것 같은 에피소드.

우연히 옆에 있는 여자아이를 도와주었다가  나중에는 그 아이의 동생인 남자아이까지 둘이서 계속 주인공 서영에게 버릇없이 장난을 걸고 서영의 아들 상휘에게도 우악스럽고 짓궂은 장난으로 괴롭힌다. 

"큰 얼굴에 눈 코 입이 중앙을 향해 모여 불룩 솟은볼살 안으로 파묻히기 직전인 경도 비만의 아이. 여덟 팔 자를 뒤집은 모양으로 터진 솔기처럼 보이는 작은 눈구멍 사이에 눈동자로 추정되는 검은 실밥이 드러났다. 두개골에 금이 갈까 겁나게 꽉 끼는 수영모 바깥으로 어깨 길이 머리카락이 비어져나온 모습은 버려진 싸구려 소파의 내장을 채운 석면 유리솜을 떠올리게 했으며... 검게 탄 피부는 군데군데 껍질이 벗어져서 덜 구워진 채 오븐 아래로 떨어뜨린 빵 반죽 같았다."

버릇없고 도대체 무지막지한 아이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실감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버지는 자기 자식들이 무얼 하고 다니는지 관심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몇 번 흘끔거릴수록 퉁퉁 부은 얼굴이며 거무튀튀한 피부가 더욱 그 남매의 아비가 맞다는 확신이 섰다. 평소 우려스럽도록 살찐 사람들을 대할 때, 서영은 그들이 자기 관리를 게을리한 결과일 뿐이라는 편견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당위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비록 학습된 인지상정에 불과하더라도. 그러나 남매의 아비는 저 폼나 보이는 선글라스만 벗으면 그 아래에서, 사람들의 선입견을 충실히 반영한 은둔형 외톨이의 상상도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벽은 일본 거유 소녀들의 그림으로 도배하고, 제 손 같은 동족의 족발이나 치킨을 뜯으며, 게임 속 연신과의 연애에 푹 빠져 현실을 잊는 거우의 여드름투성이 안경쟁이."

구병모의 묘사와 설명은 사람 하나를 외형에서부터 태도와 일상살이까지 짐작하도록 만들어준다. 

결국 상휘는 그 남매와 사라지고 부부는 아이들을 찾아 풀장을 뒤진다. 아이를 찾는 부모는 제 정신이 아니라 상휘의 이름을 부르면서 미친 듯 뛰어다닌다. 일면식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한 아이에게 당연하다 느껴 베풀었던 호의가 악의적인 사태로 돌아올 줄 그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어느 순간 자신을 괴롭히고 상휘를 괴롭히며 놀던 남매를 속으로 돼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한편 인구밀도가 높은 반대쪽 파라솔에서는 부모들이 이쪽을 흘끔거리며 불평했다. 저게 뭔 일이래, 그저 어디 잠깐 놀다 오나보지, 뭘 저리 유난을...... 아이들은다시 물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서영에게는 그 모든 장면이 원래의 속도와 부피를 잃은 채 잼과 같은 감촉으로 자신의 피부를 훑고 슬로모션으로 지나가면서 자신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로 느껴졌다. 부패한 암죽처럼 흘러내리는 현실, 흩어지는 윤곽, 한낮의 악몽"

이 작품을 읽을 때(사실 앞의 4편은 몇 달 전에 읽었고 뒤의 네 편은 그제어제오늘에 걸쳐 읽었다) 나는 구병모 작가의 디테일한 정황 묘사, 그리고 주인공 서영의 내면(허위의식과 예의 때문에) 심리묘사를 혀를 내두르며 읽었다. 놀라운 어휘력과 놀라운 관찰력, 내가 풀장에 서서 어린 아들을 찾아다니는 그 어지럽고 혼란스럽고 아뜩한 느낌이 저절로 들었다. 정말 대단한 입심의 작가이다.


감자에게 약 먹여야 할 시간이 지났다. 그러니 내일 2부를 쓰고 오늘은 이만 줄이기로. 

그런데 문득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 안녕히들 주무세요. 벌써 12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바이,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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