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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무야! 나무야! 서서 자는 나무야! 나무야! 나무야! 다리 아프지 나무야!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 우리 아들이 요즘 자주 부르는 동요이다. 이 동요를 들을 때마다 난 어린 아이가 그렸다는 누워서 자는 나무 그림을 생각한다. 아마 초등학생용 책이었을 것이다. 나무가 뿌리는 땅에 박고 큰 기둥을 비스듬히 눕혀서 누워있는 모습, 눈은 감고 있었지만 평생 처음 이렇게 편안한 잠은 처음 자본다는 듯한 흐뭇한 표정이 나무 기둥에 그려져 있었다. 단순한 그림이었는데...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난 가끔 저런 순수한 사랑에서 나오는 상상을 기대한다. 그래서일까 나무와 관련되는 책을 사서 보면서 난 으레 버릇처럼 그렇게 누워서 자는 나무를 생각하곤 했고,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책에는 표현이 달랐지만 그렇게 나무를 걱정하는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이 책도 제목이 나무이던데... 베르나르 베르베르 책이라는 생각을 잠시 접고 당연히 그 누워 자는 나무를 상상했다. 기발한 상상력은 창조로 그리고 그것은 오래도록 기억되는 그리움을 남긴다고 난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의 상상은 좀 가벼웠고, 그리고 너무 비판적이었다. 난 옛날부터 이성보다는 감성에 치우쳐서 글을 많이 읽기 때문에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난 너무도 많은 영화를 떠올렸고... 그래서 그렇게 날카로운 상상이라 칭찬하기가 어려웠다. '날카롭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세상을 향한 빈정거림이 더 어울릴 듯하다. 물론 이건 나의 주관이다. (작년에 읽은 그의 책 '뇌'가 더 좋은 듯... 장편이라서 일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열정이나 삶에 대한 애착을 너무 가볍게 표현한 것은 아닌지. 물론 서두에서 이야기하듯 호기심 많은 아들의 잠을 재우기 위해서 매일 밤 들려줄 짧은 이야기 정도의 상상이라면 무난할 듯도 하다.
사육하는 인간이 자주 나와서 인가 특히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영화가 있어 같이 소개한다. 짐캐리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만든 '투루먼 쇼'라는 영화이다. 대상은 좀 다르지만 그 영화에서도 트루먼이라는 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육이 된다. 그 만의 공간에서 쇼를 보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가 먹고 자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을 생방송으로 보게 된다. 친한 친구며, 아내며, 부모님조차도 다 계획된 배우들이었다. 투르먼은 자신이 사육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 안전하고도 평온한 삶의 양식장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물론 힘겹고, 두려운 일이었지만...
칼에 손을 베이면 너무 아프다고 말하는데, 종이에 손을 베이면 기분이 나쁘다고들 한다. <나무>를 읽고 기대가 커서일까 종이에 손을 벤 느낌이었다. 물론 그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지식과 거침없는 상상력은 인정한다. 그리고 한국 독자들을 잊지 않는 그의 팬 서비스까지.... 그냥 책을 덮고, 서서 자는 나무를 걱정하는 노래를 아들과 같이 불렀다. 여전히 감성적인 나의 독서력... 그래도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