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숟가락 하나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현기영 지음 / 실천문학사 / 199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여름 같지 않게 바람이 많은 날 그 바람 따라 죽어라 소리지르는 매미 한 마리가 있었다. 나무 등에 걸터앉아 쉬어야 할 매미가 18층 아파트 베란다 방충망에 붙어서 울고 있다. 저 귀한 시간을 저렇게 허비하면 어떡하는지, 나중에 억울해서 어쩌려고 저라나 가엾고 측은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역사도 저렇게 길을 잘못 들어 허비한 흔적이 너무도 많다. 가엾고 측은하다고 말해버리기엔 아직도 그 상처를 부여 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가슴이 아프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 대학교 신입생 때 '순이 삼촌'을 통해서 어렴풋이 현기영 이란 작가를 알게 되었고, 더불어 제주도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환상의 섬 제주, 그 맑고 투명한 제주의 바다와 눈 덮인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처절한 몸부림으로 되살려 놓았다. 역사의 깊은 아픔과 더불어 성장한 주인공과 함께 제주의 푸른 물살이 남기는 섬뜩한 쓰라림을 어렴풋이 공유 할 수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덜 서러워야 운다고, 덜 무서워야 운다는 그 말처럼 깊은 설움과 아픔으로 다져진 저 환상의 섬이 삼킨 역사의 아픔을 이젠 모두가 조금은 이해해야 할 때가 아닐까

어떤 이는 우리의 문학에서 중요한 테마로 '아버지의 부재'를 말한다. 아버지의 부재는 집안의 생계와 연결되고 더불어 중심의 부재가 된다. 깊은 아버지 부재의 골은 우리 역사의 중심이 그만큼 불안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유독 우리 아버지들은 무뚝뚝하고 항상 생활에 힘들어하는 모습으로 비쳐지면서 어느새 무대의 중앙에서 밀려나 힘들어하시고 있다. 이 글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부재와 상실 속에서 자신의 성장을 되짚어보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여름 휴가로 전라도를 답사하면서 먼저 5.18국립묘지를 들렀다. 4살 난 나의 아들에게 답사 전에 우리 역사 한 귀퉁이 아프게 남아있는 슬픔을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 여기가 어디야?' '그러니까... 으... 착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서...' '엄마, 억울이 뭐야?' 설명이 너무 어려워서 남편에게 맡겼다. 남편이 뭐라 설명했는지 아들은 고개를 연방 끄덕이고 있었다. 국화꽃 한 다발을 부끄럽게 남기고 돌아서는데 아들이 갑자기 화를 내면서 달려갔다. '엄마, 꽃 놓아두고 오면 어떡해...' 꽃을 가져와야 한다고 떼를 썼다. '저기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저 꽃이 너무 좋다는구나.' 아이는 주의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 허공을 보면서'그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져가는 거야? 아, 그렇구나' 알았다며 먼저 앞장서는 아이를 보며 내 아이들의 세상에는 이런 아픔이 없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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