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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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모습만큼이나 처한 상황에서 각기 살아온 시간이 다른 이들이 만나 사랑할 때만 해도 이성을 잃고 상대를 미화하여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받아들이며 현실적 삶과는 멀어진다. 연인이 갈구하며 사랑하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면 현실이 녹록하지 않음을 느끼며 살 때가 늘어난다. 인연을 맺고 지내는 이들이 결혼을 앞두고 조언을 구할 때면 결혼은 미룰 수 있으면 미루다 철이 들어서 결혼하기를 권한다. 제대로 된 연애도 해보지 못하고 결혼하여 철없이 시작됐던 결혼 생활은 현실의 벽과 부딪혀 깨질 때마다 후회는 쌓인다. 다른 우주에서 지내다 온 남편과 그의 세계를 구축하는 환경을 오롯이 받아들이기에는 역량이 부족하고 아량이 넓지 못하여서일 것이다.


  직장 동료로 만나 짧은 연애를 끝으로 결혼 생활 25년째이지만 여전히 결혼에 대한 생각은 비관적이다. 자식 역시 품 안에 자식이라고 커갈수록 부모의 마음을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모습이 보이고 있어 씁쓸해질 때가 있다. 미성년 아들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가정불화의 씨앗으로 자리하여 슬픈 다툼이 종종 일어난다. 자정 무렵까지 이어진 다툼은 잠을 자야 할 시간이라는 이유로 적정선에서 타협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워보지만 쉽게 잠들 수 없어 뒤척거리다 잠을 깼다. 굳어진 표정으로 가족의 얼굴을 보면서 데면데면한 채로 씻고 말없이 앉아 아침을 먹는다. 냉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는 모습에서 가까이 사는 식구들이 타인처럼 여겨질 때 서글퍼진다.


  우연한 시간과 공간이 직조하는 인연의 날실과 씨실은 두 사람의 만남을 필연적인 사랑으로 엮는다. 도시 공간을 구획하여 시민 공간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건축가 라비는 건축 현장에서 지성과 친절함, 유머와 아름다움을 겸비하였다고 판단한 커스틴을 만나 그녀의 마음을 얻고 사랑에 빠졌다. 커스틴은 결핍과 사랑의 부재로 외로웠던 유년기의 상처를 토로하는 라비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에 공유의 폭을 넓혀갔다. 비밀을 함께 알고 있는 동반자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상황에서 둘은 에로틱한 자극으로 두려움을 해소하여갔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직관적으로 서로에게 압도되어 사랑에 빠진 이들은 결혼으로 부부가 살아보지 않은 미래를 향하여 가는 길에 선다.


  한 방향을 보고 생활하는 부부가 화합하여 조화롭게 사는 시간보다 소소한 쟁점으로 불화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상대한 대한 강한 분노를 토라짐으로 드러내며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지만 내면의 아이를 만나고 용서해주는 과정이 쉽지가 않다. 떼쓰는 아기를 토닥거리며 달래주는 일이 토라진 연인에게 베풀 수 있는 호의라는 말에 공감하며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 결혼 생활의 현실적인 도덕률을 담고 있다. 상대가 바라는 이상형에 일치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생각의 차이를 용기 있게 말하여 대화로 풀어가는 일은 비단 부부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혼 3주년 기념 여행을 앞두고 아내의 의견에 따르면서 회의하면서도 라비는 무분별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인 커스틴에게 더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잘못된 희망을 걸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랑받기를 바라는데 초점이 맞춰진 낭만적 사랑이 인색한 낭만적 사랑임을 깨달을 때 성숙한 인간으로 자리한다는 작가의 말은 사랑을 주는 것보다는 받기를 갈구하며 지내온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양육하며 자리하는 사랑은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임을 발견하고 부부만의 방식대로 자식들을 사랑하였지만 양육과정에서 아이들과의 마찰로 배우자에게 불만이 쌓이기도 한다.


  만사가 시계추처럼 정확히 움직인다면 단조로울 수 있지만 무탈하게 지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늘어난다. 가족 중 어느 누구가 아파 투병하게 되었을 때 가정의 질서는 흐트러지고 건강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지내느라 무탈하게 지내온 시간이 생기 없는 생활에도 감사하게 된다. 합리적이고 너무 체계적이고 계획적이어서 갑갑하다고 아내에게 항변하는 라비를 보면서 맞벌이 부부로 어느 한쪽의 희생 아래 가정이 꾸려진다면 그것도 개선해야 할 점일 것이다. 혼외의 성적 욕망을 충족하려는 생각과 도덕적인 부부 생활로 신뢰를 지켜가는 결혼 생활은 양립하기 힘든 만큼 외도의 여파를 겪으며 라비는 결혼을 사랑의 감정을 토대로 쌓은 축성에서 제도화된 규약까지 포함하였다.


  어린 시절 겪은 부당한 경험의 상처는 자기 방어를 위한 전략을 구축하고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는 전략을 세우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서로의 약점과 슬픔을 인정할 때 오는 불안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상충하여 다툼으로 비화하는 경우 라비는 불안해하면서 공격하고, 커스틴은 회피하면서 퇴각하여 합일점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의견 차이로 간극이 컸던 부부는 전문가의 조력으로 자신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 상대를 받아들이며 통찰적인 안목으로 새로운 결혼 생활의 활기를 찾아가는 길에 섰다.


  열정으로 만난 연인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지만 이들이 화합하며 지낼 때보다 불화하는 경우가 더 많아 상처를 주고받으며 지내는 삶이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한눈에 알아보았던 미래의 배우자라고 여겼던 직관이 맞지 않았다고 푸념하기보다는 스스로 중첩된 위험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점을 반성하며 다양한 삶에서 발견하는 인생의 지혜를 일깨우는 시간이 결혼 생활이 아닌가 싶다. 상대의 허물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여과하여 상대의 마음을 해하지 않는 소소한 실천이 취향이 다른 상대를 인정하며 조화를 찾아갈 수가 있다. 사랑의 정점이라 여겼던 결혼이 흐르는 시간에 따라 감정이 퇴색하더라도 사랑을 지속시켜주기 위한 장치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낭만적 사랑을 넘어 성숙한 사랑으로 부부가 동반성장하는 질적인 삶을 지향하며 지나온 시간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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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라도 톡을 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카카오 톡을 통한 소통은 디지털 시대 SNS의 위력을 확인하게 만든다모임을 앞두고 단체 톡으로 일정을 조율하고 맛집을 추천하며 이동에서부터 숙소까지 해결하는 과정이 현 시대의 트렌드다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상의 대화창 ''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설정의 웹툰으로 네이버 연재하는 무적핑크의 조선왕조실톡을 읽으면서 태정태세문단세…….’로 암기했던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고려 왕조에서 조선 개국으로 이행되는 시발점부터 이야기가 진행되는 조선 건국으로 이뤄진 가족사를 테마에 따라 구성하여 실시간 중계로 실록에 담긴 내용을 골자로 톡톡 튀는 탄산수처럼 담았다.

 

   무력으로 세워진 나라 조선은 정통성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였다. ‘태조-정종-태종을 조선 건국 패밀리로 묶어 조선왕조실톡은 사료를 토대로 현대의 동향에 걸맞은 대화법으로 내용을 전개해 간다고려 우왕 때세력이 커진 명나라는 철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고 고려를 위협하고 나섰다사불가론을 들어 요동정벌을 반대하는 이성계와는 달리 우왕과 최영은 그를 위협하며 왕의 명령에 따를 것을 종용하여 위화도에 도착하였다 회군한 뒤 고려를 치고 조선을 건국하였다.

 

  아버지를 잘 도왔던 이방원이 조선 건국을 반대하던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척살함으로써 세자의 자리에서 밀려나 훗날 왕자의 난을 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되고 말았다실질적인 권력자인 이방원이 이방석 제거 이후 둘째 형을 추천하여 왕세자 자리를 준 것은 모양새를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라 여겨 조선의 2대 왕으로 즉위한 뒤 정종은 2년도 채 안 되는 왕의 자리에서 물어나 동생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틈날 때마다 격구를 즐긴 정종은 냉혈한 동생의 극악한 행동에 보신책을 강구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고기를 유독 좋아하였던 세종은,

  ‘나는 배고프다그러니 남도 배고플 수 있다.’

  신하들을 굴려서 경연을 통한 학문 연구로 몰았고 능력 있는 신하는 사직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을 부리며 백성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일에 주력하였다관료들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세종은 자신이 꿈꾸는 각종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융성한 문화를 창달하였고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다세종을 닮은 문종은 처복이 없어서인지 두 아내와 헤어지고 현덕빈 권 씨를 맞아 아들을 낳았지만 이튿날 숨을 거둬 문종은 39세를 일기로 여생을 마칠 때까지 새 왕후 없이 지냈다니 그 아픔이 커 보인다문종의 뒤를 이어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올랐지만 그의 숙부인 수양대군은 왕위를 찬탈하여 권좌를 차지하였다단종 복위를 도모한 사육신과 그들의 아버지형제친척들 중 남자들은 모조리 처형당하였고여자들은 노비로 넘겨졌다니 권력의 야욕이 빚은 잔혹한 참사로 비춰진다세조 때에 이르러 세종이 건설하려 했던 국가의 기틀은 무너져 내렸다.

 

   폭군 패밀리로 칭할 수 있는 수양대군은 형 문종의 부탁을 도외시한 채 12세의 단종을 제거하려는 피의 숙청인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선의 7대왕으로 등극했다세조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힘을 써준 신숙주와 한명회를 등지고 누구도 믿지 못한 채 죽임을 일삼던 왕은 즉위 일 년 만에 요절한 예종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성종은 세조의 손자라는 약점에 사로잡힌 강박관념으로 신하들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였다그럴수록 공부에 열중하던 성종이 세상을 뜨고 그는 세종대왕처럼 성군이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였지만 쉬지 않고 학문에 매달리다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였다뒤이어 폭군의 대명사로 불리는 연산군은 장녹수에게 빠져 절대군주의 폭정을 일삼아 공포 정치를 잇다 그의 이복동생 진성대군이 반정을 일으켜 중종에 즉위하였다.

 

   ‘중전 신 씨가 보고 싶구나.’

   강화도에 위리안치된 뒤 학질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고 헛소리를 해대던 연산군이 유언으로 남긴 말이라고 한다폭정으로 아들은 죽고 딸은 부평초처럼 떠도는 삶을 살았다니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이들도 순리를 거역하는 일로 복락을 누리며 살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일깨운다혈육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둘레에서 동문수학하며 지내던 이들이 연대하고 화합하기보다는 다른 야망을 꾸면서 이익을 위해서라면 도륙도 서슴지 않는 참척의 화를 실은 실록의 돋보기를 보면서 권력의 영욕이 수반되는 인생에 균열이 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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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인생 강의 -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찾은 환대와 공존의 길
신정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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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트렌드를 반영하는 단어 중 하나인 각자도생은 경쟁구도에서 살아남으려는 실천을 드러냈는데 이제는 상생과 공존을 위한 적극성으로 단절의 시대를 소통으로 열어가야 합니다. 무위자연 사상으로 각인되어 있는 노자의 가르침은 물질에 대한 소유로 치닫는 시대에 필요한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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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가 없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지인의 뒷공론까지 받아넘길 정도로 담대함은 자리하지 않아 타인의 언행에 휘둘리며 상처를 받으며 지낸다. 게다가 누웠다 하면 이내 잠들었던 청춘 시절을 비껴나서인지 숙면을 취하기 힘들고 등줄기에서는 열이 나고 얼굴은 화끈거린다.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는 친구에게 갱년기 티 나게 한다 했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갱년기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이래서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일상을 가늠하고 진단하지 말라고 한 모양이다. 노화의 진행과 더불어 회복탄력성은 떨어지고 기억력은 가물가물하면서 예전 같지 않다는 말 대신 메모지를 곁에 두고 산 지 이태가 지났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길어진 노년에 건강은 여생을 잘 보낼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바로미터로 작용한다. 지인들이 불귀의 객이 되어 이승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나자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늘어난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솔직해지는 순간은 그리 흔치 않다. 지나고 보면 역할에 걸맞은 가면을 쓰고 그에 부합하는 행동으로 생각을 유폐하는 시간이 많았다. 속력을 내며 사느라 방전된 에너지를 불어넣을 때를 놓치고 살던 저자는 길 위에서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지난봄 제주도 올레 길을 걸으며 파도에 부서지는 포말을 말없이 바라보며 유한한 인생도 어느 순간 스러져 자연으로 순환하리라는 생각에 미치자 외로움이 더한다.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해안선을 따라 걷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할 수 있는 일들은 줄어듦을 알아차리게 된다. 거문도 섬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뱃사람이라면 으레 행할 어로활동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며 바다를 배경으로 질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인심 좋은 작가가 건네는 막걸리 한 사발 쭉 들이키고는 일상의 일을 전하며 질박한 정을 주고받는다.

결핍을 견디며 사는 법을 터득한 이들은 필요 이상을 소비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음을 안다. 권력의 중심 과잉된 욕망의 도시와는 떨어져 지내지만 더딘 변화를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온 항구 주변에 깃들어 사는 이들의 삶은 실재하는 풍경으로 꿈틀거렸다. 끝도 모를 수평선을 말없이 바라보며 침묵을 견디고 거대한 파도와 강풍을 감내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도 고립할 수 있는 근간이 있어야 섬에서의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섬으로 들어왔다 섬을 떠나는 사람, 평생 섬을 지키며 사는 사람, 욕망을 찾아 도시로 나갔다가 섬으로 회귀하는 사람들의 일상성이 갖는 비문학적 삶 하나하나가 문학을 키우는 질료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경험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다.

 

  “너만 먹어!”

   라며 붉어진 얼굴에 손등이 까만 소년은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눌은밥 한 덩이를 나에게 건네주고는 뒤돌아서 우물가로 달려갔다. 군것질 거리가 귀하던 시절 가마솥 눌은밥은 씹을 때마다 단물이 빠져나와 고소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나이 들어갈수록 추억을 곱씹으며 그 시절을 반추하느라 머릿속은 분주하고 마음은 아련한 향수를 돋운다. 초등학교 동기들과 만나고 오는 길 함께 했던 추억의 음식을 떠올리며 허기진 마음을 달랜다.

제철에 맛볼 수 있는 그 지역의 토박이 음식을 준비하며 밥을 같이 먹던 시간은 추억을 되새기며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영혼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자퇴와 가출을 병행하였던 10대의 방황이 정점에 오를 때 저자는 범어사에 머물며 여러 가지 푸성귀로 싸 먹던 쌈밥들의 다양한 맛을 떠올리며 여러 경험이 잣는 쌉쌀함과 싱그러움이 공존하는 인생을 돌아보았다. 된장을 풀어놓은 물에 짱뚱어를 삶아 으깬 뒤, 시래기와 애호박 등을 넣어 한소끔 끓여낸 탕은 고봉밥을 먹어치우던 밥도둑이었다. 고슬고슬 지은 쌀밥 반찬의 진수인 지역의 젓갈 등이 즐비한 남도 음식이야기는 외가에서 먹은 굴비젓갈을 올린 비빔밥의 감칠맛을 떠올리게 한다.

 

   다양한 경험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창조적인 작가로 살기를 바랐던 저자가 보낸 시간 속 세월은 부침(浮沈)의 인생에 걸맞은 경험이 변주한 음식의 나눔으로 <<밥도둑>>은 지난 추억의 장터로 사람 사는 냄새를 더한다. 밥 한 끼 하자는 소리를 아끼며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세상살이에 밥을 나누는 일은 상대와 소통하는 시간이다. 결핍으로 이어지던 시대 썩어가는 생물을 응용하여 만든 음식으로 이웃들과 나누어 먹던 감자떡의 추억은 그 시대를 함께 지냈던 이들과 이야기 나누며 건네고 싶은 명물이다.

 

   생명적 유기체는 누구든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에 놓여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한두 달이 멀다하고 접하는 부음(訃音) 중에서도 젊은 생명이 제 빛을 발하기도 전에 세상과 결별하였다는 소식은 헛헛함에 휩싸이게 한다. 스물 셋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제자의 상가를 찾았을 때 남은 식구들과 친구들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오열하고 있어 비통함은 배가 되었다. 다양한 죽음을 목도하면서 슬픔에 젖을 때마다 불가항력적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야할지 고민한다. 순연한 흐름으로 죽음을 수용하며 남은 자들을 배려하는 넉넉한 사랑은 전하지 못하더라도 불평을 늘어놓기보다는 푸념을 거두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부터 실천하며 지낸다.

 

   동생이 태어난 지 오래지 않아 아버지는 서른 중반에 서둘러 이승을 뜨고 말았다. 무엇이 그리 급하였던지 가을걷이를 끝내고 동네 어귀의 다리에 짐을 부리고 앉아 막걸리 한 순배를 돌리다 쓰러져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고 한다. 동네 어른들은 아버지가 선하여 이를 시샘한 염라대왕이 서둘러 아버지를 데려간 것이라 둘러댔다. 아버지 빈자리를 채우며 생업에 뛰어든 어머니는 물리적·시간적 한계를 넘어서는 실천력으로 한 집안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느라 고단한 시간을 보내야 했고 슬하의 남매 역시 농사를 거들며 자립할 힘을 길러야 했다. 어느 한쪽이 빠진 부분을 채우는 일이 쉽지 않음을 일찍부터 알아서인지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자기관리능력은 조금씩 쌓여갔다.

   살다 보면 우리네 삶이 최적의 선택과 결정보다는 불가항력적인 결정대로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왕왕 벌어진다. 작은 개체인 점들이 모여 하나의 연결 고리인 선으로 이어져 크고 작은 영향 아래 놓여 또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켜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으로 이끌기도 한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들어온 이복동생의 돌연한 사고사는 점점이 떨어져 있던 이들을 하나의 선으로 결박하여 인간의 품위를 짓밟고 만다. 고립된 섬처럼 찍힌 작은 점에 지나지 않았던 동생의 죽음은 생전에 잘해주지 못하였다는 부채감에서 시작된 동생의 죽음을 추적하던 중 죽음의 단서를 찾아 나섰다.

 

   단기간에 목돈을 만질 수 있다고 사회적 약자를 유혹하여 하부로 삼는 구조망으로 연결된 먹이사슬의 정점인 다단계 수법은 서로에게 덫을 놓는다. 다단계 수법의 그물망은 독립된 개체의 점조직들이 상부와 하부로 나뉘면서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서로를 잠식하는 연결고리에 지나지 않았다. 가학적인 폭력으로 피해의식을 부추기며 자유롭게 숨 쉬고 뜻한 대로 움직이며 살아갈 힘까지 앗아가 버린 악인들의 행동은 거대한 자본의 힘에 굴종하여 기생하는 삶을 잇는 선들의 법칙이었지만 이들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유대하고 연대하여 공공의 선을 실현하는 일에는 실패하였다. 가족이 함께 밥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마저 유기한 채 지내온 시간들을 복원할 수 없기에 지금부터라도 구성원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묻고 응대하는 가운데 소원해진 관계는 서서히 회복될 것이다. 신기정이 신하정의 죽음의 궤적을 좇아 외로운 삶을 끝낼 수밖에 없었던 인생을 연민하면서 진정한 애도를 시작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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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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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회의 부정적인 일면을 담은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임을 절감한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려는 능력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채 처한 상황을 탓하며 기저에 자리한 감정 폭발이 야기하는 사건·사고가 배태하는 불안은 크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과 만나 소통하며 사는 일을 다행으로 여기고, 타인의 아픔에 공명하는 미담을 위안으로 삼는 일이 늘어난다. 38도를 웃도는 한여름 열기를 식혀 줄 소나기를 맞으며 웃음 짓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확인한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생각하는 부분이 다른 것 같지만 또래들과는 다른 측면이 강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편도체 크기가 작아서 자극이 들어와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감정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다. 눈앞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보고서도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윤재는 유아 때부터 감정을 인식하거나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 때문에 또래 집단에서 튀는 아이로 통하였고 질책의 소리를 들을 때가 늘어났다. 두뇌를 계발하기 위해 견과류를 씹어 먹듯 아몬드를 먹는 것처럼 윤재 어머니는 상황에 따른 감정을 아들에게 교육하여갔다

    상대가 던지는 말 속에 담긴 참 의미와 자신이 하는 말에 담아야 할 바람직한 의도까지 짝지어 외워야 했지만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으면 충분히 익힐 수 있다고 믿는 듯하였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고 적절히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윤재 가족이 겪었을 고충이 가늠된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일수록 특별함은 기존의 사회적 질서에 융해되지 못한 채 겉돌 수밖에 없다. 단순한 감정이라도 읽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려는 어머니의 노력은 크리스마스이브 그의 생일에 방점을 찍고 만다.

 

   자신의 심리 상태와는 달리 환히 웃고 있는 상대를 골라 흉기로 찌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묻지 마 살인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괴물 같은 손자를 예쁘게 봐왔던 할머니는 저승으로 갔고, 목숨을 건진 어머니는 식물인간처럼 누워 지내야 했다. 중고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을 운영하던 어머니를 대신해 오래된 책들 사이 선현들이 전하는 사상과 작가들이 전하는 다양한 인생 경험 속에 시간을 녹여냈다.

    아픈 아내의 죽음을 앞두고 정상에서 벗어난 행동으로 도움을 준 일을 계기로 만난 은 감정 과잉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켜 교화시설까지 다녀온 이력이 있었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윤재와 감정대로 행하며 폭력적 언행을 일삼는 곤은 서점을 오가며 마음의 빗장을 열고 대화하는 가운데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간다. 나비의 날개를 찢어 고통을 느끼게 하려 했던 곤의 행동에 무감각한 윤재를 이해하고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상대에 대한 관심과 사랑만 필요했을 뿐.............

 

   윤재는 자신에게 고통, 죄책감, 아픔 등을 알려주려 했던 곤과는 달리 바람과 꿈, 자연의 향기 등을 가르쳐 주려 했던 도라를 만남으로써 새로운 감정의 변  화를 느낄 수 있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도라는 정적으로 흘렀던 윤재의 고정적인 마음에 윤활유로 자리하였다. 도라에게 호감을 갖는 자신의 심경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그 변화가 싫지 않았던 이유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표정에 서린 감정을 읽기 위해 이목구비를 관찰하며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윤재로 자리해 갔다

    수학여행 중 조작된 절도 사건으로 학교를 나간 곤의 진심을 외면한 죄책감으로 뒤엉킨 윤재는 진정성 있는 친구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용기를 내었다. 조직폭력의 은신처로 곤을 찾아 부정의 늪에서 나가자며 갖은 폭행을 감내하던 윤재는 친구에게 자신의 진심이 통하기를 바랐다. 곤이 행한 잘못에 대한 회개와 응징은 뒤따라야겠지만 문제아로 재단하고 구원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것은 가혹한 일로 여겼기에 끝까지 친구를 찾았을 것이다.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처럼 병석에 들어있던 엄마가 휠체어를 타고 아들의 변화된 모습에 웃음을 띠는 모습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처한 상황을 들어 노력과 정성만으로 불가능한 일들이 많다고 지레 포기하기보다는 끝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누군가의 이지러진 삶을 조금씩 채워 갈 때 우리 인생은 무르익어 갈 수 있음을 알아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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