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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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모습만큼이나 처한 상황에서 각기 살아온 시간이 다른 이들이 만나 사랑할 때만 해도 이성을 잃고 상대를 미화하여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받아들이며 현실적 삶과는 멀어진다. 연인이 갈구하며 사랑하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면 현실이 녹록하지 않음을 느끼며 살 때가 늘어난다. 인연을 맺고 지내는 이들이 결혼을 앞두고 조언을 구할 때면 결혼은 미룰 수 있으면 미루다 철이 들어서 결혼하기를 권한다. 제대로 된 연애도 해보지 못하고 결혼하여 철없이 시작됐던 결혼 생활은 현실의 벽과 부딪혀 깨질 때마다 후회는 쌓인다. 다른 우주에서 지내다 온 남편과 그의 세계를 구축하는 환경을 오롯이 받아들이기에는 역량이 부족하고 아량이 넓지 못하여서일 것이다.


  직장 동료로 만나 짧은 연애를 끝으로 결혼 생활 25년째이지만 여전히 결혼에 대한 생각은 비관적이다. 자식 역시 품 안에 자식이라고 커갈수록 부모의 마음을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모습이 보이고 있어 씁쓸해질 때가 있다. 미성년 아들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가정불화의 씨앗으로 자리하여 슬픈 다툼이 종종 일어난다. 자정 무렵까지 이어진 다툼은 잠을 자야 할 시간이라는 이유로 적정선에서 타협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워보지만 쉽게 잠들 수 없어 뒤척거리다 잠을 깼다. 굳어진 표정으로 가족의 얼굴을 보면서 데면데면한 채로 씻고 말없이 앉아 아침을 먹는다. 냉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는 모습에서 가까이 사는 식구들이 타인처럼 여겨질 때 서글퍼진다.


  우연한 시간과 공간이 직조하는 인연의 날실과 씨실은 두 사람의 만남을 필연적인 사랑으로 엮는다. 도시 공간을 구획하여 시민 공간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건축가 라비는 건축 현장에서 지성과 친절함, 유머와 아름다움을 겸비하였다고 판단한 커스틴을 만나 그녀의 마음을 얻고 사랑에 빠졌다. 커스틴은 결핍과 사랑의 부재로 외로웠던 유년기의 상처를 토로하는 라비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에 공유의 폭을 넓혀갔다. 비밀을 함께 알고 있는 동반자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상황에서 둘은 에로틱한 자극으로 두려움을 해소하여갔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직관적으로 서로에게 압도되어 사랑에 빠진 이들은 결혼으로 부부가 살아보지 않은 미래를 향하여 가는 길에 선다.


  한 방향을 보고 생활하는 부부가 화합하여 조화롭게 사는 시간보다 소소한 쟁점으로 불화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상대한 대한 강한 분노를 토라짐으로 드러내며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지만 내면의 아이를 만나고 용서해주는 과정이 쉽지가 않다. 떼쓰는 아기를 토닥거리며 달래주는 일이 토라진 연인에게 베풀 수 있는 호의라는 말에 공감하며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 결혼 생활의 현실적인 도덕률을 담고 있다. 상대가 바라는 이상형에 일치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생각의 차이를 용기 있게 말하여 대화로 풀어가는 일은 비단 부부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혼 3주년 기념 여행을 앞두고 아내의 의견에 따르면서 회의하면서도 라비는 무분별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인 커스틴에게 더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잘못된 희망을 걸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랑받기를 바라는데 초점이 맞춰진 낭만적 사랑이 인색한 낭만적 사랑임을 깨달을 때 성숙한 인간으로 자리한다는 작가의 말은 사랑을 주는 것보다는 받기를 갈구하며 지내온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양육하며 자리하는 사랑은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임을 발견하고 부부만의 방식대로 자식들을 사랑하였지만 양육과정에서 아이들과의 마찰로 배우자에게 불만이 쌓이기도 한다.


  만사가 시계추처럼 정확히 움직인다면 단조로울 수 있지만 무탈하게 지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늘어난다. 가족 중 어느 누구가 아파 투병하게 되었을 때 가정의 질서는 흐트러지고 건강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지내느라 무탈하게 지내온 시간이 생기 없는 생활에도 감사하게 된다. 합리적이고 너무 체계적이고 계획적이어서 갑갑하다고 아내에게 항변하는 라비를 보면서 맞벌이 부부로 어느 한쪽의 희생 아래 가정이 꾸려진다면 그것도 개선해야 할 점일 것이다. 혼외의 성적 욕망을 충족하려는 생각과 도덕적인 부부 생활로 신뢰를 지켜가는 결혼 생활은 양립하기 힘든 만큼 외도의 여파를 겪으며 라비는 결혼을 사랑의 감정을 토대로 쌓은 축성에서 제도화된 규약까지 포함하였다.


  어린 시절 겪은 부당한 경험의 상처는 자기 방어를 위한 전략을 구축하고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는 전략을 세우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서로의 약점과 슬픔을 인정할 때 오는 불안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상충하여 다툼으로 비화하는 경우 라비는 불안해하면서 공격하고, 커스틴은 회피하면서 퇴각하여 합일점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의견 차이로 간극이 컸던 부부는 전문가의 조력으로 자신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 상대를 받아들이며 통찰적인 안목으로 새로운 결혼 생활의 활기를 찾아가는 길에 섰다.


  열정으로 만난 연인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지만 이들이 화합하며 지낼 때보다 불화하는 경우가 더 많아 상처를 주고받으며 지내는 삶이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한눈에 알아보았던 미래의 배우자라고 여겼던 직관이 맞지 않았다고 푸념하기보다는 스스로 중첩된 위험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점을 반성하며 다양한 삶에서 발견하는 인생의 지혜를 일깨우는 시간이 결혼 생활이 아닌가 싶다. 상대의 허물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여과하여 상대의 마음을 해하지 않는 소소한 실천이 취향이 다른 상대를 인정하며 조화를 찾아갈 수가 있다. 사랑의 정점이라 여겼던 결혼이 흐르는 시간에 따라 감정이 퇴색하더라도 사랑을 지속시켜주기 위한 장치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낭만적 사랑을 넘어 성숙한 사랑으로 부부가 동반성장하는 질적인 삶을 지향하며 지나온 시간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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