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가 없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지인의 뒷공론까지 받아넘길 정도로 담대함은 자리하지 않아 타인의 언행에 휘둘리며 상처를 받으며 지낸다. 게다가 누웠다 하면 이내 잠들었던 청춘 시절을 비껴나서인지 숙면을 취하기 힘들고 등줄기에서는 열이 나고 얼굴은 화끈거린다.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는 친구에게 갱년기 티 나게 한다 했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갱년기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이래서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일상을 가늠하고 진단하지 말라고 한 모양이다. 노화의 진행과 더불어 회복탄력성은 떨어지고 기억력은 가물가물하면서 예전 같지 않다는 말 대신 메모지를 곁에 두고 산 지 이태가 지났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길어진 노년에 건강은 여생을 잘 보낼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바로미터로 작용한다. 지인들이 불귀의 객이 되어 이승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나자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늘어난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솔직해지는 순간은 그리 흔치 않다. 지나고 보면 역할에 걸맞은 가면을 쓰고 그에 부합하는 행동으로 생각을 유폐하는 시간이 많았다. 속력을 내며 사느라 방전된 에너지를 불어넣을 때를 놓치고 살던 저자는 길 위에서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지난봄 제주도 올레 길을 걸으며 파도에 부서지는 포말을 말없이 바라보며 유한한 인생도 어느 순간 스러져 자연으로 순환하리라는 생각에 미치자 외로움이 더한다.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해안선을 따라 걷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할 수 있는 일들은 줄어듦을 알아차리게 된다. 거문도 섬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뱃사람이라면 으레 행할 어로활동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며 바다를 배경으로 질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인심 좋은 작가가 건네는 막걸리 한 사발 쭉 들이키고는 일상의 일을 전하며 질박한 정을 주고받는다.
결핍을 견디며 사는 법을 터득한 이들은 필요 이상을 소비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음을 안다. 권력의 중심 ‧ 과잉된 욕망의 도시와는 떨어져 지내지만 더딘 변화를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온 항구 주변에 깃들어 사는 이들의 삶은 실재하는 풍경으로 꿈틀거렸다. 끝도 모를 수평선을 말없이 바라보며 침묵을 견디고 거대한 파도와 강풍을 감내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도 고립할 수 있는 근간이 있어야 섬에서의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섬으로 들어왔다 섬을 떠나는 사람, 평생 섬을 지키며 사는 사람, 욕망을 찾아 도시로 나갔다가 섬으로 회귀하는 사람들의 일상성이 갖는 비문학적 삶 하나하나가 문학을 키우는 질료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경험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다.
“너만 먹어!”
라며 붉어진 얼굴에 손등이 까만 소년은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눌은밥 한 덩이를 나에게 건네주고는 뒤돌아서 우물가로 달려갔다. 군것질 거리가 귀하던 시절 가마솥 눌은밥은 씹을 때마다 단물이 빠져나와 고소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나이 들어갈수록 추억을 곱씹으며 그 시절을 반추하느라 머릿속은 분주하고 마음은 아련한 향수를 돋운다. 초등학교 동기들과 만나고 오는 길 함께 했던 추억의 음식을 떠올리며 허기진 마음을 달랜다.
제철에 맛볼 수 있는 그 지역의 토박이 음식을 준비하며 밥을 같이 먹던 시간은 추억을 되새기며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영혼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자퇴와 가출을 병행하였던 10대의 방황이 정점에 오를 때 저자는 범어사에 머물며 여러 가지 푸성귀로 싸 먹던 쌈밥들의 다양한 맛을 떠올리며 여러 경험이 잣는 쌉쌀함과 싱그러움이 공존하는 인생을 돌아보았다. 된장을 풀어놓은 물에 짱뚱어를 삶아 으깬 뒤, 시래기와 애호박 등을 넣어 한소끔 끓여낸 탕은 고봉밥을 먹어치우던 밥도둑이었다. 고슬고슬 지은 쌀밥 반찬의 진수인 지역의 젓갈 등이 즐비한 남도 음식이야기는 외가에서 먹은 굴비젓갈을 올린 비빔밥의 감칠맛을 떠올리게 한다.
다양한 경험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창조적인 작가로 살기를 바랐던 저자가 보낸 시간 속 세월은 부침(浮沈)의 인생에 걸맞은 경험이 변주한 음식의 나눔으로 <<밥도둑>>은 지난 추억의 장터로 사람 사는 냄새를 더한다. 밥 한 끼 하자는 소리를 아끼며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세상살이에 밥을 나누는 일은 상대와 소통하는 시간이다. 결핍으로 이어지던 시대 썩어가는 생물을 응용하여 만든 음식으로 이웃들과 나누어 먹던 감자떡의 추억은 그 시대를 함께 지냈던 이들과 이야기 나누며 건네고 싶은 명물이다.
생명적 유기체는 누구든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에 놓여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한두 달이 멀다하고 접하는 부음(訃音) 중에서도 젊은 생명이 제 빛을 발하기도 전에 세상과 결별하였다는 소식은 헛헛함에 휩싸이게 한다. 스물 셋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제자의 상가를 찾았을 때 남은 식구들과 친구들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오열하고 있어 비통함은 배가 되었다. 다양한 죽음을 목도하면서 슬픔에 젖을 때마다 불가항력적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야할지 고민한다. 순연한 흐름으로 죽음을 수용하며 남은 자들을 배려하는 넉넉한 사랑은 전하지 못하더라도 불평을 늘어놓기보다는 푸념을 거두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부터 실천하며 지낸다.
동생이 태어난 지 오래지 않아 아버지는 서른 중반에 서둘러 이승을 뜨고 말았다. 무엇이 그리 급하였던지 가을걷이를 끝내고 동네 어귀의 다리에 짐을 부리고 앉아 막걸리 한 순배를 돌리다 쓰러져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고 한다. 동네 어른들은 아버지가 선하여 이를 시샘한 염라대왕이 서둘러 아버지를 데려간 것이라 둘러댔다. 아버지 빈자리를 채우며 생업에 뛰어든 어머니는 물리적·시간적 한계를 넘어서는 실천력으로 한 집안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느라 고단한 시간을 보내야 했고 슬하의 남매 역시 농사를 거들며 자립할 힘을 길러야 했다. 어느 한쪽이 빠진 부분을 채우는 일이 쉽지 않음을 일찍부터 알아서인지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자기관리능력은 조금씩 쌓여갔다.
살다 보면 우리네 삶이 최적의 선택과 결정보다는 불가항력적인 결정대로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왕왕 벌어진다. 작은 개체인 점들이 모여 하나의 연결 고리인 선으로 이어져 크고 작은 영향 아래 놓여 또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켜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으로 이끌기도 한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들어온 이복동생의 돌연한 사고사는 점점이 떨어져 있던 이들을 하나의 선으로 결박하여 인간의 품위를 짓밟고 만다. 고립된 섬처럼 찍힌 작은 점에 지나지 않았던 동생의 죽음은 생전에 잘해주지 못하였다는 부채감에서 시작된 동생의 죽음을 추적하던 중 죽음의 단서를 찾아 나섰다.
단기간에 목돈을 만질 수 있다고 사회적 약자를 유혹하여 하부로 삼는 구조망으로 연결된 먹이사슬의 정점인 다단계 수법은 서로에게 덫을 놓는다. 다단계 수법의 그물망은 독립된 개체의 점조직들이 상부와 하부로 나뉘면서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서로를 잠식하는 연결고리에 지나지 않았다. 가학적인 폭력으로 피해의식을 부추기며 자유롭게 숨 쉬고 뜻한 대로 움직이며 살아갈 힘까지 앗아가 버린 악인들의 행동은 거대한 자본의 힘에 굴종하여 기생하는 삶을 잇는 선들의 법칙이었지만 이들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유대하고 연대하여 공공의 선을 실현하는 일에는 실패하였다. 가족이 함께 밥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마저 유기한 채 지내온 시간들을 복원할 수 없기에 지금부터라도 구성원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묻고 응대하는 가운데 소원해진 관계는 서서히 회복될 것이다. 신기정이 신하정의 죽음의 궤적을 좇아 외로운 삶을 끝낼 수밖에 없었던 인생을 연민하면서 진정한 애도를 시작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