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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평점 :
“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누군가가 불쑥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행복하다고 단언할 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밋밋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훗날의 더 나은 삶을 그리며 지금의 괴로움을 견디고 궁극적으로는 행복한 삶을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 속도전에 밀려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별반 다를 게 없는 내일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 새 중년이 넘어서버렸다. 마흔을 훌쩍 넘기고 조바심 내며 살던 일상에 여유를 찾기 시작하면서 살아 온 세월의 무늬는 표정에 그대로 담겨 삶의 내용이 어떠한지 가늠케 한다. 유복한 환경은 아니지만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단란함 속에 소소한 행복을 찾는 이들을 보면서 행복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 여길 때가 종종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각종 문명 이기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우리들의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정신적인 황폐화로 치달아 불행함을 더한다.
의료 기술의 발달과 혜택으로 평균 수명이 늘어남으로써 노년이 점점 길어짐으로써 무엇보다 행복한 시간 속에 건강하게 살아가는 일이 개인적 소명으로 굳어질 정도다. 여든을 넘긴 할머니는 생전 잠자리에 들었다가 뒷날 평온히 죽어가길 소망하면서 열심히 절에 다니며 기도해왔다. 하지만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자리보전하다 자식들에게 험한 모습을 보이며 눈을 감고 말았다. 병석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혼미해져가던 의식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할머니는 목숨만 겨우 붙어 있는 목석같은 이로 변해 버렸다. 마지막 가는 길이 너무나 참혹하여 눈 뜨고 보기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할머니에 대한 연민은 더했다. 나이 들어간다는 말은 점점 노쇠하여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말이기도 하여 많은 이들이 늙어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 따라 늘어나는 주름과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좀 더 긍정적으로 노화를 바라볼 수 있는 길을 탐색해 간다는 점은 자못 의미 있는 일이다.
혈기왕성한 청춘 시절을 지나 중년에 이르러서는 지금 건강한 생활 속에 행복하게 나이 들어가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암세포의 기습적인 공격에 힘없이 스러져 이승을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죽음의 그림자는 행복을 앗아가는 진원으로 건강관리를 잘해야 함을 극명히 보여줬다. 피할 수 없는 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행복지수가 높은 성공적인 인생길에 대한 탐색이 절실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연구 팀은 ‘건강한 인간의 전 생애에 걸친 전향적 연구’를 위해 몰두한 설문조사, 인터뷰 등의 보고서를 토대로 과학적인 분석 자료를 내놓아 시선을 모으고 있다.
비교적 사회적인 혜택 속에 나고 자라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남성 집단, IQ가 높은 천재 여성으로 구성된 터먼 집단, 어린 시절 청소년 범죄에 빠지지 않고 자수성가한 이너시티 집단을 연구 대상으로 이뤄졌다. 연구팀은 세 표본 집단 대상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그릇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전향적인 연구로 그 깊이를 더했다. 대상자들 중 행복한 노년을 맞아 감사하며 사는 이들에게는 타인의 경험과 희망, 용기를 내면화 할 수 있는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은 안도감 속에 자기감정을 존중하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사례를 접했을 때는 결핍의 유년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아려왔다. 하지만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이가 시 쓰기를 통해 공포를 극복하고 생산성 있는 일을 통한 과업 달성으로 새로운 가정을 이뤄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점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결혼 생활 19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조화를 이루며 살기보다는 부조화 속에 갈등하고 타협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상과는 달리 맞닥뜨린 현실은 고달픈 삶의 연속이라 때로는 인연의 줄을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인내하며 자식들을 부양하고 새로운 관계 모색을 위해 노력하며 지냈다. 성공적인 노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행복한 결혼생활이 필요한 점을 감안한다면 부부에게 절실한 것은 얼굴에 웃음을 띠게 하는 유머 감각이었다.
‘늘 우리는 행복이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재료와 능력을 자신 속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기성품의 행복만을 찾고 있다.’고 말한 알랭의 금언이 푸념을 늘어놓으며 지냈던 지난날을 반성케 한다. 나이 50에 가까운 남편은 외향적인 성격에 사회활동 지수가 높은 편이라 늘 가정을 돌아보는 일에는 소홀한 편이다. 어쩌면 자기 아이들의 성장보다는 지역사회의 집단적 성공을 더 바라며 다른 이들을 돌보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성인이 이뤄야 할 발달과업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는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 이의 푸념이 그 속에는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한 노년의 진짜 비결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데 있다. 노인들은 봉사를 통해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이들의 삶에 끊임없는 흥미를 얻게 되며 그 보답으로 주위 사람들의 사랑까지 되돌려 받게 된다.' p438
감각적인 본능 속에 자리하고 있는 욕구를 억제하며 좀 더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타인을 배려하며 밝은 면만 보려고 애쓸 때 성숙한 방어기제는 찾아들어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성공적인 노화를 이끌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양한 계층의 군상(群像)을 만나 하버드 연구팀이 책에서 밝힌 행복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7가지 변수를 50대 이전에 얼마나 갖추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실현했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무엇보다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인간관계를 으뜸으로 삼았고 그 다음으로는 교육연수, 안정적인 결혼생활, 금연, 적당한 음주 , 규칙적인 운동, 적당한 체중 유지를 들었다.
국적이 다른 여러 사람들을 만나 행복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들이 물질적인 잣대에 있지 않음을 다시금 깨달으며 행복한 삶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은 유대 속에 살아가는 인간관계이고, 그 바탕에는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성숙한 길로 나서게 하는 사랑이었다. 책장을 덮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처한 현실이 더욱 행복한 중년으로 떠오른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서로를 존중하고, 직장에서는 배우며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들이 생산적인 과업으로 이어져 행복지수를 드높인다. 책을 가까이 하며 지적 성장을 돕고 문화생활을 향유하며 창조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또 다른 행복이다. 마흔 되던 해 추억을 공유하던 중학교 친구들과 새로운 모임을 결성해 정기적인 만남으로 정을 나누며 살고 있으니 더욱 행복해질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행복한 노년, 성공적인 노화를 위해 조금은 여유 있게 삶을 돌아보며 경험 속에 녹아든 삶의 지혜로 영적 통찰에 이르는 삶을 꿈꾸는 이로 오늘도 폭 넓은 사회적 지평을 넓혀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