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길고양이 - 제8회 푸른문학상 동화집 미래의 고전 21
김현욱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을씨년스러움이 더하는 가을에는 지나 온 시간을 자꾸만 돌아보며 그동안 성의껏 살지 못했다는 회한으로 마음이 헛헛하고 심드렁할 때 한 편의 동화는 따스함이 주는 잔잔한 울림 속으로 빠져들 때가 있다.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 동화집에 실린 일곱 편의 글은 소소한 일상을 화제로 삼아 이지러진 마음을 바로 세우고 밋밋한 생활에 마음의 무늬를 아로새겨 변화를 더한다. 아동을 독자로 하는 동화에서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더 큰 힘으로 마음을 채우는 힘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요즘 들어 자신의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며 원망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 일이 늘어나 우울할 때가 많아졌다. 기대하고 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쉽게 그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보호 속에 자유롭게 잘 자라야 할 아이들이 가슴에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엄마의 부재와 아빠의 병환으로 할머니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스무 명도 안 되는 분교로 전학 와 생활하는 욱삼이 이야기는 분교 아이들이 그를 따스한 기운으로 감싸 겨드랑이에 날개를 돋게 하는 듯하였다. 산을 찾았을 때 행복하다는 아버지는 실족사로 이승을 뜨고 남매와 함께 생활하는 엄마는 분식집을 경영하며 또 다른 삶의 궤적을 따라 갔다. 지금껏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마뜩치 않았던 정민이 엄마 가게를 홍보하는 정우를 보며 자신이야말로 부정적인 그림자를 안고 살았던 멍에를 거둬야 함을 알아차린 슬픔을 대하는 자세가 주는 여운은 무엇보다 강렬했다.

  이기적인 습관이 배인 평범한 이들은 조금의 불편함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일 때가 있다. 유해시설 설치를 반대하는 님비 현상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 떠오른다. 냄새 나는 쓰레기 수거함을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가까이 두지 않으려는 어른들의 이기심은 어린 아이들 마음까지 타산적으로 흐르게 했다. <<일곱 발, 열아홉 발>> 동화 제목처럼 서로 자기 집 가까이 학원 차를 세우려는 아이들의 마음을 옮겨 놓아 씁쓸함이 더했지만 그것이 잘못된 생각에서 나왔음을 깨우치는 모습은 살가운 풍경이었다. 책은 세상을 보는 눈이라는 안목으로 딸 다미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독서를 극도로 싫어하는 딸에게 책을 가까이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도서관 사서인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딸에게 방학 중 일주일만 도서관에 함께 가자는 약속을 하고는 동행했다. 쉽사리 책을 읽지 않던 다미는 도서관에 머무르는 길고양이로 오인한 늙수그레한 할아버지가 책을 읽는 현장을 목격하고는 자신도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도서관 길고양이>> 할아버지가 책에 빠져드는 것처럼 다미도 책 속 흥미로움을 찾아 길을 떠날 듯하다. 

  오늘도 남편은 밥 먹다 말고 아들에게 너 학교에서 대장하는지 넌지시 물어 본다. 아들은 별 것을 다 알고 싶어 한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누가 대장을 하는지 무척 중요한 사안처럼 보였다. 대장 놀이에서 늘 부하 대원만 해 불만이 컸던 주인공은 여동생을 부하삼아 보물찾기 원정대의 대장이 되어 권위를 펴고 싶은데 그 일도 만만치 않았다. 동생은 자신이 부하임을 망각하고 대장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공주로 변신하여 오빠의 애를 먹였다. 동생과 티격태격하다 대장만 하던 형을 만나 대장자리를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주인공을 여동생은 감싸주며 보물 원정대 대장의 권위를 세워줬다.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들 하는지 모르겠다. 폐쇄적인 공간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엘리베이터는 또 다른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엘리베이터 괴물>>에서 주인공은 실용적인 승강기가 괴물처럼 자신을 집어 삼켜버릴 까 겁을 내며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짧은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종종 이상 행동을 보이는 영민이 유일한 친구로 여기던 준호마저 그를 놀리는 아이들과 합세하여 자신의 곁을 떠날 때 슬픔은 컸을 텐데도 영민이는 준호와 함께 하려고 했다. 친구가 자전거 사고를 당했을 때 부상을 당하면서까지 도움을 준 영민이와 준호가 우정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앞에 놓인 괴물은 바로 불신의 벽이 낳은 씨앗이 아닐는지 반문해 본다. 


‘하늘에 세수를 하면 얼마나 좋겠니? 멱을 감으면 마음까지 깨끗하겠지?’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돌연 새엄마로 자리하게 된 날 민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무척 힘들었다. 떠나버린 엄마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는 엄마 역할을 한다는 점을 수긍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을 듯하다. 미스 박 아줌마가 챙겨주는 음식을 본 체 만 체하며 외톨이로 지내던 민주는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와 친구로 삼으려 했다. 아줌마가 데려온 개와는 서로 원수처럼 지내리라 믿었던 동물들이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는 서서히 닫힌 마음을 문을 열어 나갔다. 민주가 여인으로 새롭게 태어난 날 새엄마가 손수 마련해 준 주머니 속 선물로 상황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가족을 인정해 갔다. 지금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불순물들을 떨쳐내고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은 날이면 맑은 하늘에 투명한 물로 세수를 한 뒤 어지러운 마음을 다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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