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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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 끝자락 작렬하는 태양 아래 2박 3일 간의 예스 문학 캠프를 다녀왔다. 캠프를 떠나기 전 우리나라 대표 작가 두 사람을 초청해 강의를 듣고 질의 응답하는 시간이 있다는 말에 설렘과 기대로 마음은 부풀어 올랐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개성을 중시하는 문단의 기인(奇人) 괴벽스러운 이로 치부하고 살았던 이외수 작가와의 만남이 예정된 첫날은 호기심이 더했다. 연륜에 걸맞은 반백의 머리를 뒤로 넘겨 한 갈래로 땋아 생경함을 더했고, 스트라이프 셔츠에 파란 넥타이를 멋스럽게 연출한 작가는 예순 넷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에서 충북 보은 속리산 아래까지 내달려 왔으니 피로할 법도 한데 우렁찬 소리로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열정은 더없이 귀한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푼푼해진다.

   디지털 세상은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여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장년 세대들에게 다소 생소한 소통의 산물인 트위터를 이용해 짧은 글 속에 지혜로운 말을 담아 세상을 살아가는 앎을 제공하는 역할도 서슴지 않는 작가 이외수는 그만큼 독자들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사는 이처럼 여겨진다. 무엇보다 독자와 소통하는 즐거움이 지극한 즐거움이라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과 소통하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지금도 시간은 들리지 않는 초침 사이로 흐르며 나이 들어감을 재촉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구태의연함으로 안이하게 살았던 삶을 반성하고 스스로가 인생의 주체로 우뚝 서야 함을 <<아불류 시불류>>에는 담고 있는 듯하다. 소설가, 화가, 시인, 연기자로 다중적인 삶을 사는 작가는 단조로운 일상에 변화를 시도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 가는 가운데 자신만의 창조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가능성을 열어 실력가로 거듭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차나 한 잔 하고 가소.’
  선사들이 수행 정진 중에 정신적 여유를 찾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담은 풍류와 운치는 오늘날 회식 문화와는 다른 면모를 띠고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풍진(風塵) 세상도 돌려 생각하면 살 만하다는 판단을 내릴 때도 있다. 모든 감정의 씨앗은 마음에서 자아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처럼 믿음은 마음에서 만들어지고 오해는 머리에서 만들어진다는 짧은 글이 자꾸만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공부해서 남 안 주는 사람들은 헛공부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접할 때는 만물을 사랑하며 대상과 나를 하나로 보려는 작가의 시도가 드넓은 사랑의 실천으로 퍼져나갈 듯하다. 사계절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 인생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늘 봄날만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더 불행헤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글이 제대로 써내려갈 수 없다며 탄식하고 새벽까지 깨어 있을 때가 왕왕 있다. 젊은이들 역시 불확실한 현실을 앞에 두고 또 다른 기회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정성을 쏟는 대목은 언제 봐도 가슴 뭉클하다. 한 가지 생각으로 집중하여 몰입하다 보면 문리가 트인다는 성현의 말처럼 고수는 머릿속이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에 공감하며 자신은 갖가지 생각으로 얽히고설킨 하수라는 생각에 미치자 우울해진다. 평범한 인간이기에 숙면을 취하지 못한 경우 누적된 피로로 수마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휴식으로서 잠을 잠으로써 심신을 가볍게 할 수 있지만 나태함으로 잠을 자는 경우 심신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는 말에 깨어 있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절감케 한다. 작가는 무생물이 아파하는 것까지 느껴진다니 사랑하는 이가 아플 때는 차라리 자신이 앓는 게 낫다는 말을 전할 정도로 나와 그 대상을 동일시해 합일하는 자세로 살아가가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농부는 파종을 하기 전부터 터를 고르고 이랑을 만들어 그 위에 씨앗을 뿌리고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거름을 줘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두기까지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하지만 씨앗을 심는다고 모두 싹이 트는 것은 아님을 알아차리고 노력과 정성으로 씨앗을 관리해 나가는 일이 의미 있다. 한 줄의 글을 건졌다고 만족해하지 말고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이 없는지 거듭 생각하여 글을 쓰는 일은 쉽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반문케 한다. 폐쇄적인 사회에서 독자들에게 인정받고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 최고의 실력가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스스로 창조자로 자리할 수 있어야 함을 역설했다. 앞길이 막막한 젊은이가 조언을 구하러 왔을 때 그에게 10년 동안 병뚜껑을 줍다 보면 문리가 트일 것이라는 다소 엉뚱한 답변 속에는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레 길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적 암시를 담고 있었다.

  일상에 매몰되어 여유를 찾기보다는 그 속에 허우적거리다 보니 어느 새 40대 중반에 이르고 말았다. 늘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하며 붙박이별처럼 한곳에 머물며 지낸 시간은 회한으로 가득하다. 자유로운 자신을 찾아 길을 떠날 때도 칼로 무 자르듯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은 스스로 지어 낸 업력이 커서일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인생에는 반전이 있어도 게으른 자의 인생에는 반전이 없다는 구절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성실하게 살라는 당부로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게 한다. 외롭고 지치는 세상을 살 만한 세상으로 화하는 바탕에 빛을 내며 자리하는 사랑은 이 시대를 희망으로 바꿔 놓을 소중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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