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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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을 받고 싶어도 교육 받을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에 여성으로서 꿈을 품고 이상을 실현하며 정체성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일이 수월치 않았다. 병약한 동생을 대신해 누이는 남장을 하고 동생으로 살며 한 집안의 생계를 맡아야 할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불편함을 감수해서라도 남자처럼 행동하며 거벽과 사수 일로 경제력을 갖추고 살아야 했다. 윤식의 차도 없는 병세와 끝없이 이어지는 어머니의 고생에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윤희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학문이 이끄는 세계로 흠뻑 빠져 들었다. 필사를 비롯한 다른 일거리가 없을 때는 굶을 판이라 윤희는 조금은 안정적인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동생의 호패로 과거를 치르고 급제하면 작은 관리직에라도 올라 집안을 돌볼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그녀의 생각에 날개를 달았다.

 

  진사시와 생원시에 잇따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선준과 윤식은 일산(日傘)을 함께 쓴 인연을 시작으로 서로에게 호감을 표하며 두터운 정을 쌓아가는 길에 섰다. 남자들만 생활하는 성균관에서 여자임을 숨기고 남자의 몸으로 지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 속에 놓인 윤희는 오해를 받지 않고 윤식처럼 살아야 하므로 늘 긴장하고 지내야만 했다.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에서 생활하는 유생들의 일상에 가늠하기 힘든 일들이 어우러져 그들의 삶을 진하게 뿜어내고 있다.

 

  보수적 성향을 띤 노론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개혁적인 자세로 조선 시대 문예 부흥기를 이끈 정조 임금은 종묘와 사직을 굳건히 해 나갈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는데 정성을 쏟았다. 선준의 학문적 소양을 한눈에 알아차린 임금은 대과를 치르지 않고 출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고 했다. 훌륭한 인재들과 소통하려던 임금은 직접 성균관 유생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그들의 학문적 깊이를 더욱 공고히 하는 일에 주력했다. 개방적인 자세로 당파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당파에 치우치지 않는 인재 발굴로 그들을 포용하여 나갔다.

 

  성균관 유생으로 살아가는 일은 첫 관문을 통과하는 것부터 하나의 의례를 치러야했다. 암호처럼 얽히고설킨 과제를 해결하는 신방례 명령을 통해 문제해결력을 평가하는 과정을  한정된 시간 속에 해결해 갔다. 남인 아버지와 노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멸시당하며 살았던 윤희는 성균관에 들어가 영민함을 더욱 쌓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모란각의 최고 기생인 초선의 속곳을 가져와 대물이라는 낯 뜨거운 별호를 받게 되었고, 노론의 명문벌족의 후손인 선준은 과거에 장원 급제할 정도의 실력과 멋진 용모에 착한 마음까지 겸해 가랑이라는 별호에 부합하는 인물로 거듭났다. 선진에게 음식을 바치는 상읍례가 열리던 날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쑥떡을 입에 넣고 소박한 음식을 함부로 대한 이들에게 쐐기를 박은 선준의 모습은 윤희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기억에는 없지만 장가 든 용하는 돈줄 때문에 성균관 유생으로 생활하며 어느 당파에도 휩쓸리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기를 자처하면서도 뼈 있는 말로 주변을 놀라게 하는 재주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여색을 밝히고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좌중을 웃기는 재주까지 겸해 여림이라는 별호를 받았다. 재신은 노론의 부정적인 외압으로 형을 잃고 울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야생마처럼 격하게 들고 일어나 분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명문장으로 현실을 풍자하는 시를 써서 부당한 권력을 일삼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였다. 미친 말이[걸오]라는 별호로 불리는 그이지만 밤사이 도성 안에 있는 관서와 조정 대신의 대문에 벽서를 붙이고 사라지는 신출귀몰함으로 조정 대신들을 능멸하였다.

 

  재신의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해주며 계집처럼 허구한 날 옷에 피를 묻히냐며 반색하는 대목에서 윤희를 겨냥한 질문은 그녀를 더욱 당혹스럽게 했지만 의연히 대처하려 애썼다. 여자임을 숨기고 가랑과 걸오와 함께 같은 방에서 지내느라 잠을 설치고 긴장 속에 지내야 하는 윤희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홍소가 피어난다. 높은 학식을 갖춘 유생 가랑은 병약한 윤식을 배려하는 진중함으로 윤희의 마음을 달뜨게 했다. 그녀는 궁색한 가정 형편에 변변치 않은 자신을 돌아볼수록 명문대가의 자녀인 효은과는 견주기도 힘든 처지에 탄식이 늘었다. 아리따운 모습에 강단진 태도로 자기관리에 능한 윤희의 진면목을 가랑이 알아줄 것이라 믿으며 1권을 마저 읽었다.

 

  단편적 지식을 암기했다가 토해내는 얕은 공부로 내신 관리를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학문적 깊이를 더하는 탐구 활동으로 교육적 본보기로 들 만한 성균관 유생(儒生)들이 떠올랐다. 이들은 학문 수양에 힘쓰면서 윤리적 규범을 따라 엄격하고도 질서 있는 생활로 이어졌다. 과거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에 한해 특별히 입학할 수 있는 성균관 생활은 선비들의 이상이자 동경이었을 듯하다. 꽉 짜여진 일정 속에 규율을 따르며 사는 일이 녹록치는 않지만 경전을 수차례 읽어 내리며 경전 속에 들어있는 깊은 뜻을 깨달을 때까지 끊임없이 책 내용의 창조적인 궁구(窮究)를 위해 연마하였다. 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윤리를 저버리지 않고 박사에게는 깍듯한 예의를 갖추며 국가의 장래를 맡아 나갈 인재로 커가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가랑, 대물, 걸오, 여림이 각기 다른 색깔로 개성을 드러내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다가도 의기투합하여 어떤 일을 해결할 때면 누구보다 연대하는 모습은 꽉 짜여진 틀을 넘나드는 상상을 더한다. 완벽한 정책보다는 보다 나은 정책으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유생들의 생각은 보다 나은 조선을 위하는 유생들의 일상 속으로 점점 파고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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