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 - 10대와 어른, 섹슈얼리티로 소통하다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유섹인) 기획, 변혜정 엮음 / 동녘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2008년 겨울 송년회를 앞두고 온 가족이 함께 봤던 영화 과속 스캔들이 떠오른다. 10대들의 전폭적인인 관심 속에 인기를 모으던 서른 중반의 라디오 DJ 남현수가 진행하는 프로에 하루도 빠짐없이 사연을 보내오던 황정남이 느닷없이 찾아와 숨겨진 사실을 폭로하고 말았다. 정남 자신은 현수가 과속해서 낳은 딸이라며 바득바득 우겨댔고,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애까지 달고 나타나 황당무계함을 더했지만 가족의 끈 아래 함께 연대하여 살아가는 희망적인 삶을 담았다. 10대 여성이 임신을 하고 출산 후 미혼모의 삶을 택해 아이를 키워나가는 과정을 표면화한 영화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를 통해 그동안 묻어두고 입에 담기 불편하게 여겨 왔던 10대의 성에 대해 다양한 측면으로 살폈다. 간간이 경험자의 인터뷰를 함께 실어 우려했던 일들이 흔하게 벌어져 충격적인 10대의 성문화만큼이나 기성세대들이 간과시해 왔던 점을 반성케 했다.
어른과 아이의 중간지대에 놓인 열여덟, 열아홉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며 소통이 잘 안 되어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줄 때가 종종 있다. 도발적인 말로 반항을 일삼는 아이, 과잉 행동으로 조절 능력을 잃고 생활하는 아이들을 골치 아픈 존재로 여기며 이 학년도만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적도 있다. 막강한 소비자본주의와 대중매체의 영향력으로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청소년들은 하나같이 성형을 할 것이라고 말하며 지금부터 알바라도 해서 돈을 모으겠다는 소리까지 서슴지 않아 충격적일 때도 있다.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10대 성매매와 성 상품화 관련 뉴스가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 아래 10대들이 떠안고 살아가는 고민 중 성(性)에 대한 생생한 고민과 분석을 객관화하여 보여준다. 사건을 일으키는 십대에게 지금은 인생을 책임질 나이가 아니니 모든 일은 어른이 된 뒤로 유예하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로 현안을 마무리 짓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듯하다.
성교육을 행하는 강의실에서는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성년이 될 때까지는 성행위를 해서는 인생을 망치게 된다는 우려를 담아 낙태했을 때의 피해 양상을 보여주는 교육이 많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자기 규제적이고 검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주체로 살아가는 10대의 성적 욕망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명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듯하다. 무엇보다 성 경험을 뒷공론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친구들과 성에 대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공간에서 삶의 상황과 정체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음을 밝히는 글에서 10대의 성경험에 따른 임신을 표적 삼아 조용히 일을 끝내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요구되는 요즘이다. 고착적인 위치성이 깨지고 운동성이 발휘되면서 진동의 일탈을 꼬집은 김예란 글쓴이는 유비쿼터스 같은 모바일 환경 아래 10대는 쉽게 욕망에 노출됨을 주시했다. 경제적 결핍과 성적 욕망의 불행한 결합이 진정성과는 거리가 먼 일탈을 부추기는 점이 큰 것으로 봤다.
여성의 외모는 경쟁력으로 치부되어 성형을 해서라도 경쟁력을 높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잠재된 가능성과 실력보다는 여성의 외모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남성 중심의 가치관이 여성의 외모 관리에 열을 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불편함을 더했다. 그 파장은 10대에까지 미쳐 저렴한 수술로 외모의 불균형과 변형을 야기하였다. 출산 장려 정책으로 미혼모들을 위한 사회복지 시설 확충으로 10대의 임신을 장려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기도 하지만 10대 미혼모는 증가 추세를 보인다. 10대 임신에 대한 사회적 낙인 속에서도 엄마가 되려는 10대의 선택을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 가족, 환경, 노동 시장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쉽게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비춰졌다. 10대의 임신과 출산을 백안시하기보다는 그녀들이 처한 삶의 환경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역동적인 집단으로서의 10대로 볼 필요가 있음을 주창했다.
티켓 다방으로 시작해 성 매매업에 발을 딛고 사는 이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 그들이 생각하는 일은 본능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소모하며 사느라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듯해 안타까움이 더했다. 쉽게 돈을 벌고 쓰는 법을 배워 힘든 일은 기피하며 빚까지 떠안는 10대들의 모습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며 꿈을 향해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과 동떨어져 간극이 너무나 커보였다. 10대의 동성애자들의 고민 속에는 다수가 지향하는 가치를 선으로 여기며 소수자들의 동성애는 볼썽사납게 여기는 사회 풍토를 꼬집었고, 북한 이주 1.5세대 여성들이 남한 사회에서 여전히 겉돌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야기까지 폭넓게 담아 베일에 가려진 10대들의 성 담론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열여덟 살 딸을 키우는 엄마로 이 글을 읽어가는 시간이 제목처럼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가정과 학교에서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 대부분이 일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자신의 선택 의지보다는 환경의 영향으로 또 다른 길을 걷는 이들이 많음을 인지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일이 급선무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