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이 어때서? - 노경실 작가의 최초의 성장소설
노경실 지음 / 홍익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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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와 어른 사이 어디쯤에선가 바람 많은 날들을 보내고 있을 사춘기 소녀와 소년이 떠오른다. 어쩌면 청소년으로 지칭되는 본격적인 나이 열넷은 초등학교 시절의 유치함을 벗고 조금씩 성장하며 철이 나는 모습을 기대하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별 다른 준비 없이 세월 따라 6학년이 되었고 때가 되어 초등학교를 졸업하였을 뿐인데 기성세대들은 애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열네 살 연주는 중학교에 갓 입학하고 초등학교 생활과는 달리 획일화된 상황과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지낸다. 열세 살과 열네 살은 고작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중학생이 되어 감내하여야 할 일들은 많이도 늘었다. 생떼를 쓰고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던 초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스스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아져 여유를 부리며 지낼 틈이 쉬이 나지 않았다.

   

  고작 열네 살밖에 먹지 않은 연주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환경과 외모, 보통의 능력밖에 지니지 않았지만 가수의 꿈을 꾸면서 뮤지션의 길을 걷기 위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한창 때는 꿈이 많았지만 그 꿈은 어느 새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전업주부로 가정을 오롯이 지켜내려는 중년의 엄마는 열네 살 연주에게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연주는 엄마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순응적인 아이의 길을 따를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녀 말대로 기껏 14년을 하루로 환산해 겨우 5,110일 살았을 뿐인데 부모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하며 자녀의 가능성을 사장해 왔는지도 모른다. 방과 후면 학원에서 다시 강의를 들으며 점점 자신의 꿈을 찾는 시간은 줄어들어 안타까움이 더한 날 연주는 민지가 전해 준 정보대로 오디션 장으로 향했다.

  엄마가 지리산으로 야유회를 떠난 날 연주는 학원을 빼 먹고 가수가 되기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히 밟기로 작정하고 경연장으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 비록 오디션에서 불합격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위한 지렛대로 삼기로 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외할머니, 엄마와 함께 사는 민지는 환경에 굴하지 않는 당당함을 보인다. 살면서 뜻하지 않는 일로 부부가 이혼할 수도 있다고 여기며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없는 일에는 현실을 받아들여 긍정적으로 무장하고 생활하는 모습은 주눅 들지 않는 열네 살의 당당함으로 비춰진다. 연주는 매사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동파 민지와 대화를 나누며 힘겨운 학교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지냈다.

  

   마음의 병을 앓아 미국으로 치료를 하러 간다는 지섭 오빠의 돌연한 소식은 지금껏 감지하지 못했던 연주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말았다. 이제 떠나면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은 생각에 연주의 머릿속에는 지섭 오빠로 가득 차 올랐다. 예전에 미처 느껴보지 못한 감정 앞에 당혹스러워하는 연주를 보고 민지는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다며 친구를 놀리기도 하지만 왠지 모를 아련함이 자꾸만 연주의 가슴에 크게 남았다. 이별의 시간을 앞두고 엄마들과 함께 한 모임에서 서로 기억에 남을 만한 선물을 주고받으며 이별의식을 치렀다. 연주는 지섭이 영어 발표 대회에서 부상으로 받은 파란 시계를 들고 와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에 잠 못 이루며 그 소리에 번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연주는 또 다른 생각에 귀착되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이 순간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세상은 변화해 감을 강조하던 담임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 비춰진 선생님 말은 자기만의 색깔을 찾느라 고심하는 시간도 낭비처럼 치부하며 규칙적인 틀을 벗어나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연주는 이런저런 일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대로 따르기에는 이제 겨우 열네 살인 연주에게는 가혹한 부탁일는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삶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조금 더디고 힘들더라도 자신만의 빛깔과 향기로 인생을 설계해 나가길 바란다.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열네 살이 될 아들과 딸 같은 연주를 포함한 모든 중학생 새내기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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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아 푸른도서관 40
안오일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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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시까지 등교하라는 학교 방침대로 등교 시간을 엄수하기 위해 가방을 둘러메고 아이들은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려 들어온다. 교실에 발을 걸치고는 숨을 할딱거리며 인사를 하는 아이 얼굴은 어느 새 당근 빛깔처럼 발갛게 달아 올랐다.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면 쪽지를 내서는 그것을 외우느라 손끝이 바삐 움직인다. 책 속에는 우리들이 가보지 못한 길들이 경험 속에 살아 있다며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시험에 쫓겨 책 읽을 겨를이 없다고 항변한다. 야자 시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있는 학생의 등짝을 때리며 헛짓거리 한다고 타박하는 감독 선생님의 말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괜찮아』안오일 청소년 시집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눈에 포착된 시적 소재를 짧은 리듬 속에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예순 네 편의 시를 네 부분으로 나눠 분류된 시를 각기 다른 제목으로 아우르고 있는 시들은 평이해 보이지마는 시 속에 담긴 의미는 자못 깊다. 학교, 집, 학원을 획일적인 순으로 움직이는 청소년들의 동선은 무미건조함을 더한다. 학원에서 이미 배운 내용을 학교에서 건성으로 배우며 교과서 지식과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내용을 왜 말하느냐는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리할 것인지 냉소적인 시선으로 물었다. 잘나가는 어른이 되기 위해 열여섯 살 지금의 나를 잃어버린 시적화자가 빠져 버린 내 소리를 찾아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시에서는 점점 자신의 본질을 망각한 채 지내는 청소년들의 정체성을 찾게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각박한 생활은 지금 행하는 규칙을 수동적으로 따르며 지내느라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자기표현이 미숙한 아이, 남의 물건을 제 물건처럼 빌려 쓰고는 돌려주지 않는 아이, 돈 잘 쓰는 아이 앞에서 굽실거리는 녀석의 등짝을 한 대 쳐 주고 싶다는 시에서는 한 교실에 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부정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천 냥 하우스에서 팔리는 물건들은 모두 한 자리에 들어있는 모습에 착안하여 각기 다른 취미를 안고 사는 아이들 역시 적성과 취미를 고려하기보다는 모두 수학 심화반에 넣어진 점을 들어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있다.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내려다보는데

내 신발코가 불안하게 나를 쳐다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문처럼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다, 괜찮아...........

나는 신발코를 어루만져 주었다.

나를 만지듯

 

  현실의 부정적인 모습에 좌절하면서도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을 찾는 청소년들의 모습에 희망을 발견한다. 이 외에도 많은 시에서 청소년들의 각박한 삶을 반영하면서도 그들의 고민과 생각을 어루만져주는 모습에 진정성이 더해진다. 위만 쳐다보고 내달리는 청소년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위로의 말이 절실한 현대에 청소년들의 마음을 헤아릴 만한 시를 통해 그들이 삶 속에 이울 대는 단면을 보며 안쓰러움이 더한다. 청소년들의 현실적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이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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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방 푸른도서관 41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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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는 어린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며 지내야 했다. 서른이 채 되기도 전에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엄마는 여성이라는 삶의 고리를 끊고서라도 살아가야 했다. 돌배기 아들과 다섯 살 어린 딸을 위해서라도 이를 앙다물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계절마다 행상을 나간 엄마가 오지로 떠돌 때는 교통이 불편하여 사나흘이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말을 잘 안 듣는 손녀에게 엄마가 도망가서 다시는 안 돌아온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행여 할머니 말을 잘 안 듣고 있으면 엄마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할머니 말은 손녀를 점점 순응적인 아이로 만들어버렸다.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생명체의 죽음은 한 가정의 기틀을 무너뜨려 결핍으로 잇게 하여 상처 입은 가슴에 흉을 남기는 사례가 많다. 철이 들기도 전에 맞닥뜨린 부모님의 부재는 어린 소녀가 떠안고 살아가기에는 족쇄를 채우고 걷는 것처럼 힘겨울 것이다. 아들의 돌연한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할머니는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할 며느리에 대한 연민보다는 자식을 앗아간 장본인으로 낙인을 찍고는 며느리 스스로 집을 떠나는 순으로 마무리 짓고 말았다. 영문도 모른 채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소희는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가슴 속 한 마당에서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자리했다. 할머니를 의지하며 살던 소희에게 천수를 누리고 간 할머니의 죽음은 친척 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으면서 지내야 했다. 

  달밭마을을 떠나던 날 소희는 그곳에서 두터운 정을 나누며 친하게 지낸 바우와 미르를 먼저 버리고 소중히 여겼던 일기장을 함께 버렸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사실 중 하나가 눈치를 보면서 지내게 된다는 점이다. 소희는 사촌들과 함께 생활하며 학업성적이 뛰어나도 기뻐하기는커녕 식구들 눈치를 봐야 했고, 숙모가 운영 중인 미용실 바닥의 머리카락을 쓸며 애어른이 되어 갔다. 삼촌 집을 나와 엄마가 사는 곳으로 거처를 옮길 때 아기 때 헤어진 엄마를 만나 살아갈 수 있다는 기대도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십 수 년이 지난 세월의 간극이 빚은 틈새를 메워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자리해 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냉랭한 어조로 우진이와 우혁이를 우리 애들로 명명하며 자신과는 선을 긋는 엄마를 볼 때 소희는 가슴 속 큰 짐을 안고 지내야 했다. 
 

   아저씨 딸 리나가 머무르다 미국을 가버린 곳에 가방을 푼 소희는 자신만의 자율성이 확보되는 공간에서 정소희, 윤소희를 떠나 오롯이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 소희는 이전의 무상 급식 대상자라는 연민의 시선과 함께 감내해야 했던 모멸감, 수치심에서 벗어나 엄친아의 가면을 쓰고 살아갔다. 소희는 영화감상 반에서 활동하며 진솔한 모습으로 적극적인 생활을 잇는 채경,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힘겹게 생활하면서도 영화감독을 꿈꾸는 지훈과 정을 나누며 그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빚는 외로움을 상쇄해 나갔다. 소희는 차갑게 대하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바라는 모범생에서 점점 비껴나 자기감정에 충실한 열다섯 살 소녀로 존재해 나갔다. 엄마가 사다 준 비싼 옷보다는 아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골라 입고는 그동안 가슴 속에 재워 둔 말을 하나씩 꺼내며 자신에게 냉담했던 엄마와 마음의 문을 열어 대화하며 소통해 갔다. 

   자신의 본질을 숨기고 과거의 윤소희와는 단절한 채 살아가던 정소희는 디졸브로 활동하는 재서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위로받고 적절한 조언으로 생활의 변화를 이끌어 갔다. 처음부터 소희가 어떤 아이였는지 알고 있던 재서에게 자신의 치부를 다 틀어넣고 만 듯해 그를 대하기 힘들기도 했지만 서서히 둘의 관계는 회복해 간다. 아저씨의 달 리나가 스물이 되어 다시 집을 찾았을 때의 서먹서먹함이 애틋한 동질감으로 화해 갔듯이 소희는 찬란함 뒤에 숨겨진 초라함을 끌어안으며 하늘을 쳐다보며 꿋꿋이 살아가는 하늘말나리라처럼 성장해 갈 것이다. 소희가 가슴에 묻어두고 사는 달밭마을의 느티나무가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굳건히 살아나 무성한 잎을 달고 한여름 시원한 그늘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듯 사랑을 베풀며 자신의 본질을 깨우쳐 가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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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
오츠 슈이치 지음, 황소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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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항해하는 배를 타고 살아가는 인생인지도 모른다.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에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지인들의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할 때가 많다.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일에만 미쳐 하루하루를 지내던 이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지 넉 달째 세상을 하직하고 만 현실은 남은 가족들에게도 회한으로 가득했을 듯하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 존재 가치를 발견하고 살아가지만 때로는 누군가와 갈등하며 현실에 부딪치며 사느라 부침하는 가운데 후회할 일들이 늘어만 가는 삶이다. 병마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연명해 가느라 쇠약해진 육신으로 생명의 끈을 잇는 이들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는 이의 이야기는 지나 온 삶을 반추하고 오늘을 새롭게 살아갈 의미를 찾게 한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는 호스피스 전문의인 저자가 돌보던 말기 환자들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고통을 완화해주는 일련의 일들이 냇물이 흘러 강으로 가는 것처럼 잔잔한 리듬을 타고 내면으로 스며든다. 나이 들어 갈수록 육신은 늙고 병들어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나기에 건강할 때 오롯한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 후회를 줄여 나가는 길밖에 없을 듯하다. 타인의 부음(訃音)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을 반추하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게 한다. 지금껏 자신의 확고한 선택 의지보다는 타인이 정한 규정을 따르며 수동적으로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마음을 더한다. 

  저자는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들의 고단한 삶 속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스물다섯 사례를 들어 일상에 매몰되어 사는 현대인들에게 성찰의 시간을 준다. 일상에서 도외시하고 넘어가던 일들을 끌어내 변화를 줘 새로운 세상과 부딪치며 사는 일을 즐기고 있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로 떠난 인도 여행은 아직껏 맛보지 못했던 시큼하고 짭짤하며 쓰디 쓴 일상의 연속이었지만 그때만큼 진솔한 나를 만나보지 못했던 듯하다. 그래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공간으로 다가가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갈 무렵 일상으로 돌아오는 여행을 떠나지 못한 게 후회스러운 점이라는 부분에서는 더욱 공감되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의 ‘행복’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 온 세상이 발그레한 모습으로 타올라 더욱 아름답게 보였던 때가 청춘시절에 있었다. 그 무엇보다 생생한 삶을 그리며 현재를 열심히 살았던 추억은 지금 생각해도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기도 하다.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의 발자취 속에 생생한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다. 즐기던 음식까지 기피하며 살빼기에 골몰하는 이들을 적잖이 만나면서 먹는 즐거움이 배제된 식사는 무미함이 더할 듯하다. 보고 싶은 이를 만나 서로 대화하며 즐거운 음식을 함께 먹지 못한 게 또 다른 한으로 남아서는 안 될 일이다. 이외에도 책에서는 일상 속 의미 있는 활동을 프레임 속에 담아 후회를 최소화하며 살아가야 할 삶의 의미를 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의 문턱에 서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며 회한에 젖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현재 건강한 삶을 자신하면서 죽음을 멀게만 여긴 나머지 미처 생각지 못한 일들을 자각하게 만든다. 예고도 없이 찾아드는 죽음은 기존의 질서를 뒤엎고 상실의 아픔을 넘어 통한의 슬픔에 잠기는 일을 줄일 수 있는 길은 살아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언젠가는 죽게 될 운명을 앞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죽음을 맞아들여야 하는지를 생생한 인터뷰에 담았다. 사랑과 신뢰로 맺어진 가족들에게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는 일로 하루를 열어가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 감정에 휘둘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일을 줄여 오늘 하루가 현세의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하는 길은 회한으로 얼룩진 마음을 펴나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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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 - 10대와 어른, 섹슈얼리티로 소통하다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유섹인) 기획, 변혜정 엮음 / 동녘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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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겨울 송년회를 앞두고 온 가족이 함께 봤던 영화 과속 스캔들이 떠오른다. 10대들의 전폭적인인 관심 속에 인기를 모으던 서른 중반의 라디오 DJ 남현수가 진행하는 프로에 하루도 빠짐없이 사연을 보내오던 황정남이 느닷없이 찾아와 숨겨진 사실을 폭로하고 말았다. 정남 자신은 현수가 과속해서 낳은 딸이라며 바득바득 우겨댔고,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애까지 달고 나타나 황당무계함을 더했지만 가족의 끈 아래 함께 연대하여 살아가는 희망적인 삶을 담았다. 10대 여성이 임신을 하고 출산 후 미혼모의 삶을 택해 아이를 키워나가는 과정을 표면화한 영화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10대의 섹스, 유쾌한 섹슈얼리티’를 통해 그동안 묻어두고 입에 담기 불편하게 여겨 왔던 10대의 성에 대해 다양한 측면으로 살폈다. 간간이 경험자의 인터뷰를 함께 실어 우려했던 일들이 흔하게 벌어져 충격적인 10대의 성문화만큼이나 기성세대들이 간과시해 왔던 점을 반성케 했다.


 

  어른과 아이의 중간지대에 놓인 열여덟, 열아홉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며 소통이 잘 안 되어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줄 때가 종종 있다. 도발적인 말로 반항을 일삼는 아이, 과잉 행동으로 조절 능력을 잃고 생활하는 아이들을 골치 아픈 존재로 여기며 이 학년도만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적도 있다. 막강한 소비자본주의와 대중매체의 영향력으로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청소년들은 하나같이 성형을 할 것이라고 말하며 지금부터 알바라도 해서 돈을 모으겠다는 소리까지 서슴지 않아 충격적일 때도 있다.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10대 성매매와 성 상품화 관련 뉴스가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 아래 10대들이 떠안고 살아가는 고민 중 성(性)에 대한 생생한 고민과 분석을 객관화하여 보여준다. 사건을 일으키는 십대에게 지금은 인생을 책임질 나이가 아니니 모든 일은 어른이 된 뒤로 유예하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로 현안을 마무리 짓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듯하다.


 

  성교육을 행하는 강의실에서는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성년이 될 때까지는 성행위를 해서는 인생을 망치게 된다는 우려를 담아 낙태했을 때의 피해 양상을 보여주는 교육이 많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자기 규제적이고 검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주체로 살아가는 10대의 성적 욕망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명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듯하다. 무엇보다 성 경험을 뒷공론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친구들과 성에 대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공간에서 삶의 상황과 정체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음을 밝히는 글에서 10대의 성경험에 따른 임신을 표적 삼아 조용히 일을 끝내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요구되는 요즘이다. 고착적인 위치성이 깨지고 운동성이 발휘되면서 진동의 일탈을 꼬집은 김예란 글쓴이는 유비쿼터스 같은 모바일 환경 아래 10대는 쉽게 욕망에 노출됨을 주시했다. 경제적 결핍과 성적 욕망의 불행한 결합이 진정성과는 거리가 먼 일탈을 부추기는 점이 큰 것으로 봤다.

 

  여성의 외모는 경쟁력으로 치부되어 성형을 해서라도 경쟁력을 높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잠재된 가능성과 실력보다는 여성의 외모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남성 중심의 가치관이 여성의 외모 관리에 열을 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불편함을 더했다. 그 파장은 10대에까지 미쳐 저렴한 수술로 외모의 불균형과 변형을 야기하였다. 출산 장려 정책으로 미혼모들을 위한 사회복지 시설 확충으로 10대의 임신을 장려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기도 하지만 10대 미혼모는 증가 추세를 보인다. 10대 임신에 대한 사회적 낙인 속에서도 엄마가 되려는 10대의 선택을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 가족, 환경, 노동 시장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쉽게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비춰졌다. 10대의 임신과 출산을 백안시하기보다는 그녀들이 처한 삶의 환경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역동적인 집단으로서의 10대로 볼 필요가 있음을 주창했다.

 

  티켓 다방으로 시작해 성 매매업에 발을 딛고 사는 이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 그들이 생각하는 일은 본능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소모하며 사느라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듯해 안타까움이 더했다. 쉽게 돈을 벌고 쓰는 법을 배워 힘든 일은 기피하며 빚까지 떠안는 10대들의 모습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며 꿈을 향해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과 동떨어져 간극이 너무나 커보였다. 10대의 동성애자들의 고민 속에는 다수가 지향하는 가치를 선으로 여기며 소수자들의 동성애는 볼썽사납게 여기는 사회 풍토를 꼬집었고, 북한 이주 1.5세대 여성들이 남한 사회에서 여전히 겉돌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야기까지 폭넓게 담아 베일에 가려진 10대들의 성 담론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열여덟 살 딸을 키우는 엄마로 이 글을 읽어가는 시간이 제목처럼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가정과 학교에서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 대부분이 일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자신의 선택 의지보다는 환경의 영향으로 또 다른 길을 걷는 이들이 많음을 인지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일이 급선무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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