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공고 제 2011-10 호

 

 

2011‘손 안 애서(愛書)’공모전 공고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전 국민의 독서 생활화를 유도할 수 있는

사진 및 포스터 공모를 통해 책과 독서의 소중함을 되새기고자 하오니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공모 개요

1. 사 업 명 : 2011 ‘손 안 애서(愛書)’ 공모전

2. 주 최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후 원 : 문화체육관광부, 교보문고 등

3. 접수 기간 : 2011년 5월 2일(월) ~ 6월 30일(목)

4. 응모 자격 : 일반인 및 학생 등 전 국민 누구나 가능

5. 공모 내용 : 아래와 관련된 사진 및 포스터

o 책 읽는 사람의 행복한 모습

o 책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

o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이미지를 묘사한 작품

o ‘손 안 애서(愛書)’의 의미를 형상화한 작품

o 독서의 소중함을 알릴 수 있는 작품

o 기타 책과 독서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 등

 

● 작품 응모

1. 작품 규격 및 출품 방법



응모

부문


작품 규격


사진

분야


ㆍ프린트된 컬러 또는 흑백사진 8˝×10˝(20㎝×25㎝)

※입상자는 촬영필름 혹은 3024×2016픽셀 이상의 psd 혹은 ai파일 제출

ㆍ출품방법 : 작품명 및 설명, 촬영년도(2년 이내 촬영 작품), 촬영장소 등을 응모신청서에 기재


포스터

분야


ㆍ직접 그린 그림의 경우 : 4절 사이즈(39.4×59.4㎝)

ㆍ컴퓨터그래픽 작업의 경우 : A3 사이즈(29.7㎝×42㎝)

※작품 원본(300dpi 이상 JPG, JPEG파일)을 CD에 복사하여 함께 제출

ㆍ출품방법 : 응모작품은 검정색 폼보드에 부착하여 제출(여백사방 3㎝)

폼보드 뒷면에 작품설명 등을 기재한 응모신청서 부착



o 응모작품과 함께 참가신청서(사진 및 포스터 부문 확인)를 작성하여 방문 또는

우편접수

o 신청서 다운로드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독서인(www.read-kpec.or.kr)

2. 출품 수량

o 1인 또는 1팀 2점 이하

3. 접수처

(157-857) 서울시 강서구 금낭화로 154(방화3동 827)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독서진흥팀 ‘손 안 애서(愛書)’ 공모전 담당자 앞(☎ 02-2669-0742)

 

● 발표 및 시상

 

1. 수상작 발표

o 2011년 8월 1일(월) [예정]

o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홈페이지 및 '독서인' 발표 후 개별 통보

2. 시상 내역 : 상금 및 상장



시상 내역


수 상 자


상 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1명


100만원


최우수상


사 진


포스터


각 50만원


2명


1명


우 수 상


5명


4명


각 30만원


장 려 상


22명


6명


각 10만원




29명


11명


800만원


41명



 

공모 규정

 

1. 모든 수상작의 저작권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 귀속

2. 응모작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하며, 시상 후 표절이나 모방 등이 밝혀질 경우 수상 취소와 상장 및 상금 환수

3. 타인의 초상권 및 지적 재산권 침해 작품 또는 타공모전 출품 작품은 응모 불가

4. 사진 분야의 경우 공모전의 특성상 과도한 합성과 후보정은 입상에서 제외

5. 작품의 초상권 및 저작권 문제 발생시 출품자 책임

6. 사진 분야 입상자는 촬영 필름 혹은 디지털 원본 파일을 제출, 미제출시 입상 취소

7. 응모작이 심사 기준 및 수준에 미달할 경우 수상작 미선정

8. 수상작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홍보사업 및 포스터 제작 등에 활용되며, 필요에 의해 수정 혹은 변형하여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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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의 아이들 - 부모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조선족 아이들 이야기 문학동네 청소년 8
박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열무 삼십 단을 이고 / 시장에 간 우리 엄마 /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 …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빈방에서 훌쩍거리며 행상을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소년의 애처로운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 가슴을 시리게 한다. 생계를 전담하는 엄마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시인의 소년 시절의 슬픔을 담은 ‘엄마 걱정’에는 고스란히 배어 있다. 돌아 올 엄마를 기다리는 소년의 고독과 두려움은 엄마가 제자리로 돌아옴으로써 스러져버리겠지만 기약 없이 떠나버린 엄마를 그리워하며 지내야 하는 만주족 아이들의 일상은 참담함에 쓸쓸함을 더할 듯하다. <<만주의 아이들>>은 부모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뒤 조선족 학교 기숙사에서 단체 생활하며 가슴에 상처를 안고 외롭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만나 취재한 기록을 현장의 목소리로 르포 형식에 담았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만주에 사는 조선족들에게도 ‘한국 바람, 간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을 찾는 부모가 늘어났다. 친척집에 맡겨지거나 오갈 데가 없는 아이들은 조선족 학교의 기숙사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외로움을 견디고 어린 나이에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법을 체득할 수밖에 없다. 비자 연장을 위해 잠시 들른 부모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를 묻기는커녕 성적 향상여부부터 물어 자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종종 있다. 얼굴도 잘 생가나지 않는 부모를 기다리며 고통 속에 나날을 보냈을 아이들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 줄 사람은 부모일진대 자본을 축적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는 부모들이 자식들의 마음을 헤아릴 만한 여유는 없어 보인다.

"엄마가 한국에 나간 뒤부터 무섭단 말임다. 저도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봐설랑 쪼매 아꼬망, 한국은 절대 안심할 나라가 아이잖습네까. 이혼을 마치 금메달 따는 대회처럼 한단 말임다."(44쪽)

 이혼율이 급증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익히 알고 있는 아이는 가정 붕괴와 해체로 외톨이로 남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강을 건너는 시련을 예상하고 그것을 두려워하며 불안에 떨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혼·결손 가정이 급속도로 증가하자 심양시의 한 중학교 교장은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이곳에 남아 달라는 간곡한 메시지를 전했다니 조선족 가정의 위기는 수위를 넘어 서 보인다.


   광활한 만주 벌판에 정착하여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던 조선족들이 맞닥뜨린 문제는 어른들의 선택으로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점점 민족성까지 잃어가는 모습을 보는 듯해 안타까움이 더한다. 동북아 공정의 일환으로 조선어 사용 금지를 내세워 중국어 사용을 강요하는데다 점점 빠져나가는 학생들로 운영마저 힘든 조선족 학교의 실태를 엿보며 점점 자본에 잠식당하는 민족이 위태로워 보인다. 부모에게 버림 받은 상처의 골이 깊어갈수록 치유 불가능한 마음의 병을 안고 사는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비관하여 잘못된 길을 걸을까 염려스럽기도 했다. 고모가 있어 다행스러운 효범이는 학업이 우수해야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무장하여 자기 방어책을 찾아가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조선족 자치주 주도인 연길시는 조선족 고유의 문화를 지켜가는 모습과는 괴리된 가족 윤리 붕괴와 성 도덕의 문란이 가중되어 이혼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변해버렸다.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으로 나가는 비행 청소년 같은 어른들이 많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미혜의 말은 지금 조선족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것을 돌보기보다는 물질적 재화를 얻기 위해 낯익은 곳을 벗어나 허영을 충족하려는 움직임은 지금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한국행을 돕는 브로커가 야욕을 앞세워 사기 행각을 벌이고, 한국행 비자를 얻기 위해 사기 결혼을 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한 가정을 파탄 내는 일들을 보면서 인간의 본지에 대해 회의를 품는다. 목단강 4층 합숙소에는 부모를 멀리 떠나보낸 아이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전기장판이라도 틀아 추위를 녹이고 방과 후 학습으로 배움의 길을 열어 갈 수 있다는 데 위안을 삼으며 지내고 있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살 길이 막막해 지자 아들과 함께 한국으로 시집 온 엄마는 지금 학교 급식소에서 일을 하며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있어 적이 안심이 된다. 여느 때와는 달리 자율학습 감독을 마치고 늦게 돌아 온 엄마를 보고는 보고 싶었다며 달려 와서는 안기는 아들을 보면서 엄마 얼굴도 잘 기억 못한다는 조선족 아이들의 얼굴이 생각나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자신의 선택 의지와는 달리 돈을 벌기 위해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길을 떠난 엄마를 기다리다 그리움만 가슴에 켜켜이 쌓아두고 지내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생일날 엄마가 끓여 준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어린 소년의 말은 고통 받는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길은 사랑의 힘을 보태는 일밖에 없을 듯하다. 가정이 흔들리면 다른 상부 조직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들이 한탕주의로 흘러 돈의 하수인으로 살기보다는 근원적인 궁핍을 해결하기 위해 대안을 세워 가족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생활을 지원하여 자력갱생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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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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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사진첩을 들추며 추억 속 아련한 향기를 맡으며 깨알 같은 글씨로 새겨 놓은 시간 속에는 앳된 소녀 시절의 역사가 담겨 있다. 가끔은 사진을 붙이고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며 나만의 기록물로 남겨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일을 서슴지 않을 때도 있었다. 크고 작은 시대적 경험 속에 융해된 감수성은 서정 시인으로 변모해 어쭙잖은 글을 남기며 개인의 역사를 창조해 갔다. 일반적으로 역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며 남긴 흔적을 되짚어 보며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객관화된 사실 중심의 사건을 따라잡기에도 힘겨웠다. 이름부터 낯선 정체불명의 나라의 지명과 정치가들의 이름을 외우기에도 버거웠던 세계사 시간은 지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수업 시간 중 하나로 자리한다. 하지만 세계사를 공부하는 시간에 문학 작품을 펴 두고 학문 간 소통하는 시대적 배경과 인물을 둘러싼 맥락을 꿰뚫어 토론하며 재해석한 책,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는 어렵다고만 여겼던 세계의 역사를 쉽게 풀어 줬다. 지난 시대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하며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정서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연구는 문학 작품과 역사적 사실을 아우르고 있다.

   부조리하고 불온한 시대일수록 부정적 상황은 도처에서 벌어져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을 일으키고 그 일에 연루된 이들이 희생되고 마는 일들을 역사 속에 보아 왔다. 그럴 때마다 문학은 시대적 아픔을 작품 속에 용해해 당대를 살아가는 이들 뿐 아니라 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통찰력을 키워줬다. 현명한 노예 이솝은 당대에서 중시하던 도덕적 덕목을 우화 형식에 담아 넌지시 알려 주던 <<이솝 우화>>를 통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문학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통시적 고찰 아래 놓인 역사적 배경이 문학 속에 깃들어 있는 부분을 간명히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귀결하는 글은 균형 감각을 더한다. 피는 피를 부른다는 말처럼 원시적 복수의 연쇄를 끊고 공적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신과 인간 모두 법질서를 지켜야 함을 정당화한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는 그리스 시대 절대적 규칙을 정했던 역사의 이면을 가늠케 한다.  

 
  상상력으로써 인간의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는 문학에 여러 유형으로 나타나는 사랑은 행복한 삶을 사는 인간의 일상에 촉매로 작용한다.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트리스탄과 이즈의 곡진한 사랑은 중세의 봉건적인 인습을 뛰어넘은 사랑의 힘으로 비춰진다. 14세기 흑사병 창궐로 수많은 이들이 맥없이 스러져 갈 때 피렌체 양갓집 남녀 10명이 흑사병을 피해 간 곳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열흘 동안 내놓은 이야기를 묶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인간의 실존에 대한 탐구서가 되었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휘둘릴 수도 있는 인간이지만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의지로 역경을 헤쳐 나가는 지혜 속에 스스로 어떻게 행동하며 살아야 하는지 답을 주고 있다. 개선 가능성이 없는 심각한 사회 모순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인 러시아 혁명을 초래한, 푸시킨의 <<대위의 딸>>은 농민들의 처참한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해방을 가져왔지만 쿠테타로 권력을 장악하고는 스스로 황제임을 선언한 나폴레옹의 억압을 불러왔다. 힘과 권력으로 여성들 위에 군림하며 여성들에게 자아를 말살토록 강요하던 영국 사회의 남성적 시각을 개선하여야 함을 <<코린나>>에서 넌지시 밝히고 있다. 국가를 대리하여 해외 사업을 수행한 사업가로 민족적 영웅으로 떠오른 초기의 해적이 제국주의자로 변신해 이민족을 침략해 보물을 빼앗아 부를 쌓는 소년의 이야기인 스티븐슨의 <<보물섬>>은 해군 제독이 된 해적 드레이크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와는 달리 국가로부터 적으로 취급받으면서도 문명 세계를 등지고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에 대해 깊은 성찰을 담았다. 미군이 멕시코를 공격해 전쟁을 일으킨 사실에 반대하며 양심대로 살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깨끗하고 소박한 삶을 이어 왔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과 만나 서면의 극장에서 봤던 영화,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이 연출한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연기 속에 숨어 있는 아버지의 사랑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상대를 죽여야 이기는 전쟁과 홀로고스트로 불리는 유대인 대량학살의 잔혹함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것을 넘어 아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은 아버지의 사랑이 달달하게 녹아 있었다. 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경험을 담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에서는 생명 연장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느라 절대 고독에 시달리며 공포에 떨었던 시간을 작품 속에 반영하여 후세인들에게 반성의 시간을 준다. 히틀러를 위시한 우월주의에 젖어 광기어린 탄압을 해 온 독일인들의 잔혹한 학살을 쥐에 담은 만화는 진실 너머의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다. 미국 경제가 대공황을 겪던 시절 극심한 가뭄과 농업구조의 변화로 땅을 잃고 서부로 이주해 간 소작농들의 삶을 다른 작품,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생명체가 공존하기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피를 팔아 한 가족을 부양하는 허 삼관의 눈물겨운 삶을 다룬, 위화의 <<허 삼관 매혈기>>는 문화 대혁명을 살아 온 가장의 슬픈 인생은 자신의 기(氣)를 빼내서 가족을 살리는 끈끈한 사랑 아래 버티고 서 있는 책임감이 눈물겹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로 발전적인 미래를 위한 지평을 열어나가는 길에, 문학은 역사적 사건을 작품 속에 발현하여 보편성을 얻어 생명력을 더하고 있다. 지금은 실존하지 않지만 살아 온 자들이 남긴 발자취를 더듬어 현재를 반성하고 내일을 구상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문학 작품은 영향을 끼친다. 프로이센과의 전쟁 후 많은 상처를 입은 프랑스 국민들이 한 민족의 노예가 되더라도 모국어를 간직하는 한 정신까지 앗아갈 수 없다는 점을 담은 <<마지막 수업>>은 패권주의에 물들어 민족적 정체성을 잃어가는 청소년들에게 삶의 좌표가 될 듯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삶의 주체로 우뚝 서기 위해 과거의 모든 일은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해야 할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앉아 그를 괴롭히면서 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그 사람 역시 자신의 계획을 추진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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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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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육은 한 자리에 모이는 횟수가 줄어 서로 떨어져 지내도 질긴 인연의 줄로 엮여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때로는 상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시공간을 초월해 공생하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짐처럼 걸머지고 겨우 버텨 왔던 것처럼 지방 관청의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상사의 말에 복종하며 부조리인 줄 알면서도 그것의 부당함을 말하지 않고 묵묵히 수행해 왔다.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를 따라 아버지는 유랑하며 낯선 땅에서 힘든 생활을 견디며 지금까지 생존해 왔던 것처럼 맞닥뜨린 현실에 순응해 왔을 뿐이다. 온갖 노역에 끌려 다니느라 기운이 쇠해진 말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잇는 연결고리이기도 했다. 좆내논은 늙은 절름발이 말에 지나지 않지만 할아버지에게만큼은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반려 동물이었던 셈이다. 사살된 말은 어머니의 잠재된 의식 속에 환영처럼 살아나 다가올 일을 알려 살아남은 자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를 줬다. 선택의지도 없이 할아버지를 따라 정든 공간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돈 아버지는 교도소라는 낯선 공간에서 수인으로 지내는 시간이 더 안온하였을 지도 모른다며 그 딸은 위안을 삼았다.

 

 

  각기 다른 사고방식과 문화적 생활에 젖어 지내왔던 타인이 한 가정을 이루고 의좋게 살아가는 일이 수월한 일은 아니다. 헤어짐이 잦은 시대에 부부가 갈라서는 일이 다반사처럼 보이는 시대에도 한 가정의 인위적인 해체는 크고 작은 상처를 떠안고 살아야 할 숙명에 놓이고 만다. 그저 살면서 지내왔을 뿐인 어머니는 살던 집을 처분하고 작은 아파트 두 채를 마련해 남편과 따로 살겠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죄와 알선수재 혐의로 복역 중인 남편을 그 인간으로 명명하며 혐오감을 드러내고 익명화하는 모습은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바람을 강하게 투영한 것이다. 사랑보다는 미움의 정만 강하게 남은 연주 어머니를 보면서 청상으로 지내 온 친정 엄마가 떠올랐다. 하지만 친정 엄마는 병든 남편이라도 곁에 있는 게 의지가 된다며 늘 남편의 그늘을 크게 생각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 어떤 추억도 남기지 못한 채 서둘러 저승을 찾은 남편에 대한 원망이 그 말 속에는 묻어 있었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봄 소풍지로 종종 찾은 인근의 수목원은 단장한 나무들 사이로 꽃들이 피어 곳곳에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어 싱그러움을 더했다. 안내자의 인도 아래 원색의 옷을 입은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나무들의 생태를 살피고 활발히 움직이며 만끽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그 뒤를 따르는 보호자들은 아이들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앞 다퉈 사진에 담느라 활기를 더하였다. 하지만 민간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정해진 시간 내에 통행증을 발급받아 들어갈 수 있는 민통선 수목원은 폐쇄적인 공간으로 내면의 세계로 침잠해 사유하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세밀화 작가인 연주는 민통선 부근에 자리한 수목원의 계약직 공무원으로 발령받아 괴괴한 숲으로 들어갔다. 수목원 생활을 앞두고 그녀는 의지가지없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아버지를 보고 돌아오는 길 마음의 멍에를 가득 안고 수목원 직원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영치금으로 넣어 준 돈을 딸에게 건네며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폐아인 아들과 함께 사는 안요한 실장의 우울한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결핍이 낳은 크고 작은 숙제를 안고 사는 이들이 또 다른 결핍을 부르면서 대물림하는 질긴 인연은 쉽사리 융화하기 힘든 가족의 일면을 투영한다. 부부가 수십 년을 함께 살다 보면 사랑보다는 미움이 더 많이 채워져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사는 일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남편의 그늘에서 찾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소극적인 저항을 생각한 어머니는 교회에 나가 신앙인으로 살면서 그들과 마음의 짐을 나누려 했고, 남편과의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자구책을 마련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식물 종자학을 전공한 연구원 안 실장은 꽃이 피어나는 배경을 찾으려 애썼고, 식물의 종자 안에 잠재해 있는 형태가 발현태로 이행하는지의 여부를 찾는 과업에 매달렸다. 식물의 관찰된 내용을 식물의 살아 있는 질감과 표정으로 화폭에 담아내는 일이 조연주 작가에게 부여된 작업이었다.

 

 

  수목원 안에서 나무를 관찰하고 그 모습을 화폭에 담아 표본관에 둘 세밀화를 완성하여 가는 과정은 지금껏 익숙해 있던 바깥세상과 절연한 채로 살아가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오로지 지금 앞에 있는 물상의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몰입하는 화가의 관찰은 손쉽게 놓쳐버린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잠이 안 온다는 이유로 딸에게 전화를 걸어 푸념을 늘어놓는 엄마는 쇠잔하여 가는 육신을 붙들고 과거의 망상에서 벗어나려 애써 보지만 제자리걸음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벗어나려 해도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인연은 어느 누가 인위적으로 끊고 싶다고 해서 끊어지지 않는 질긴 씨줄과 날줄로 이어진 숙명의 고리 같았다. 생애 가장 역동적인 순간에 작동하고 있는 생명의 표정을 화폭에 드러내라는 안 실장의 요청은 세밀화를 그려야 하는 연주를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연주의 어머니처럼 자신의 이혼을 객관화하여 표현하는 안 실장을 보면서 어머니와 아버지, 이혼한 안 실장 부부의 삶은 몹시도 닮아 보인다. 자신의 일을 마치 제 삼자의 일인 양 에둘러 말하며 그동안 살면서 일으켰던 무수한 파란에서 헤어나고 싶은 열망이 그 안에는 존재해 있는 듯했다. 안 실장은 마음의 빗장을 뽑고 소통의 문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디뎌 적막을 깨 잔잔한 울림을 전했다. 그의 아들 신우 역시 자신과 너무 닮아서 괴롭다며 연주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대목에서는 울울함을 떨쳐 버리려는 시도를 통해 자폐성에서 한 발짝 물러나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늙은 말 좆내논을 타고 어머니 꿈속에 나타난 아버지는 석가탄신일에 가석방이 되었다. 의협심이었든, 결탁이었든 간에 아버지 자백으로 형량이 가벼웠던 상사 최 국장은 일신 상조회를 만들어 자신들의 비리를 비호하는 세력에 힘을 주는 공적 부조 형태를 유지해 갔다. 아버지가 일을 할 수 없을 때 돈을 대줬던 최 국장의 도움에 감사하며 지내던 어머니의 단편적인 모습을 볼 때마다 연주는 소시민적 삶을 이어 온 자신의 생애를 되짚어 보기도 한다. 출소 후 예상대로 어머니가 마련한 아파트에 머물며 간병인의 도움으로 숨을 붙이고 사는 아버지는 삶의 무게를 다 짐 지우지 못하고 물기 없는 나뭇잎처럼 부서져 가고 있었다. 밤마다 잠이 오지 않는다며 전화를 해대는 어머니의 넋두리를 타고 전해지는 아버지의 근황은 떨어져 살아도 깊이 관여하는 부부의 연을 떠올리게 한다. 나무는 한 그루 안에서 늙음과 젊음이 순환한다는 연륜 있는 숲 해설사의 말대로 인간의 시간과는 대별되는 점이 오히려 다행처럼 여겨졌다.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기며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서 있는 나뭇가지에 앉았던 새는 인기척에 놀라 푸드득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새의 날개 짓을 보며 공허함으로 가득한 마음을 곧추 세운다. 초가을 숨을 거둔 이나모의 빈소를 찾은 김 주위는 숲 해설사의 마지막 가는 길이 너무나 쓸쓸하다며 연주에게 문상을 와주길 요청하여 인간미를 더했다. 빈소를 찾아 예를 갖춰 숲 해설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전송한 뒤 새로운 인연의 발단이 시작될 것만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 연주를 보면서 지금껏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을 가슴에 담을 수 있기를 바랐다. 유해 발굴 작업을 끝으로 전역하는 김민수 중위는 뼈 그림을 맡아 그려주기로 한 연주에게 감사하며 관찰자의 시선을 거두고 그녀에게 자신의 소소한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며 소통해 나갔다. 가을 잎을 떨어뜨리고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연주는 병세 악화로 점점 소진해 가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무들은 따로 따로 살아서 술을 이뤄내고 있지만 혈육의 인연으로 이어진 우리들의 삶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유기체이기에 따로 떼어 내 생각할 수 없는 개체들이다. 유해 발굴단 작업이 종료되고 식을 치르는 날 망자(亡者)가 남긴 편지를 낭독하며 슬픔에 잠긴 살아남은 자의 아픔은 헤아리기 힘든 슬픔의 분화구였다. 보존용 뼈 그림을 김민수 중위에게 넘긴 날 그는 12월 16일 시화강 상류에서의 군 생활을 마치고 시화강 하류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말을 연주에게 전하며 세밀화 소재가 많다는 소리로 새로운 인연의 물꼬를 트려는 의도가 강하게 전해졌다.

 

 

  딸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았던 아버지는,

  ‘미안하다, 괜찮다.’

  짧은 문장으로 이승에서의 아픔과 서러움, 형량의 무거움까지 떠안고 운명하였다. 좆내논이 아버지를 거적처럼 걸치고 걸어가다 하늘로 올라가더라는 어머니의 꿈은 아버지 마지막 날을 명중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죽어서 자유의 몸이 되어 죄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해졌지만, 죽어서도 형을 면제받지 못한 우울한 삶이 영정 사진에 깃들어 있다. 연신 불쌍하다며 숙성된 울음을 토해내는 어머니의 설움은 이승에서 병마와 고독하게 살다 간 남편의 안쓰러운 삶을 위로하는 울음이었는지는 확언하기 힘들다. 아버지 뼛가루를 민통선 자등령과 연결되는 6부 능선에서 뿌려 죽어서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혼백으로 시화평 고원 위를 훨훨 날아오르길 바라며 딸은 풍장을 선택했다. 자등령 능선과 시화평 고지에는 민간인들의 출입 통제가 엄격했던 만큼 자유로이 왕래하며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삶과는 대별되는 삶이 곳곳에 벌어져 있다. 살아남은 자와 덧없이 죽어 골짜기에 흩어진 자들과 공생하는 민통선 수목원은 존재 가치를 일깨우기에 그만인 곳이다. 숱한 이들이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산화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두는 순환처럼 폐쇄적인 연구 생활로 점철된 안 실장의 성과는 뚜렷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에 안 실장 논문이 게재됨으로써 목적보다는 과정을 깊이 있게 관찰하며 사유하여 이뤄낸 성과는 결핍된 생활이 이뤄 낸 또 다른 성과로 비춰진다. 

 

 

  자연적 질서에 따라 생명의 움이 트고 삭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두는 일련의 과정이 순환의 고리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달마다 그려야 할 식물들이 따로 존재했던 것처럼 계약 기간이 끝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길에 연주는 서 있다. 전역하며 명함을 그녀에게 건네고는 후방으로 나오면 연락 바란다는 김민수 중위의 말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연주의 일상에 밝은 빛을 희미하게나마 비춰줄 듯하다. 수목원을 떠나는 연주의 핸드백에 든 김민수 중위의 명함 한 장은 연주와 끝나지 않는 인연의 실타래를 차근차근히 풀어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숲이 모여 거대한 산을 이루듯 지난날 자신을 옥죄었던 관념에 빗장을 풀고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겨 더불어 숲을 이뤄야 할 때다. 내 젊은 날의 황량한 숲이 윤이 반지르르 흐르고 생동감이 넘쳐흘러 강렬히 살아 움직이는 숲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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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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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靈山)이라 불리는 지리산 아래 삼태기 모양으로 자리한 고향 하동은 벼농사를 짓기에 그만인 여건을 잘 갖추고 있다. 가물에도 농업용수로 끌어다 쓸 섬진강이 곁에 있어 땅바닥이 바닥을 드러내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드넓게 펼쳐진 무디미 벌판의 시월은 누렇게 익어가는 나락들이 창창하게 서 있는 사이사이 알록달록한 허수아비들이 바람이 부는 대로 우줄우줄 춤을 춘다. 삶의 가치를 찾아 깨어 있는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왕왕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움직이며 안주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정체성은 쏙 빠진 채 아무런 문제의식을 찾지 못하고 일상을 보냈던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아니었는지 반문해 본다. 무지몽매함에 얽혀 아무런 의식이나 자각도 없이 무책임하게 상부 조직의 수뇌가 시키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망령들의 모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깨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작가는 허수아비 춤에 담았는지 모른다.

 

 

  남들보다 이른 때에 피안의 세상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대신한 어머니는 어린 남매를 시어머니에게 의탁하고 늘 돈이 되는 일을 찾아 길을 떠났다. 계절에 따라 돈벌이의 수단도 각기 달랐던 어머니는 봄이면 야산에 고사리를 끊어 삶아 말린 것을 조금 싸게 사서 웃돈을 받고 도매상에 넘기는 형태로 장사를 이어갔다. 농한기에는 대도시로 나가 떼어 온 옷을 밤이면 고단한 몸을 눕힐 틈새도 없이 장사에 나섰다. 고단한 삶을 이어 가느라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던 어머니는 장사꾼으로 이익만을 좇기보다는 상대의 고민을 들어주며 그 고통을 나누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힘든 생활에 놓인 이들의 한 서린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눠 믿음을 켜켜이 쌓아 이웃들과 소통해 나갔다. 배움의 끈이 짧았던 어머니는 장사를 하면서 이익을 남기되 서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나누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비춰진다.

 

 

  ‘10리 안에 굶어주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경주의 최 부자는 부를 이루면서도 가난한 이웃들과 상생하려는 노력을 다했고,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는 사업으로 번 돈을 각종 공익 재단에 기부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영인으로 지금도 존경받고 있다.   지구촌 최고의 투자가인 워렌 버핏은,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이야말로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앤드류 카네기의 말을 신념처럼 삼으며 기부를 실천하는 기업인으로 귀감을 보인다. 특히, 그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일은 자식을 망치는 길이라며 기부 서약으로 그동안 모은 개인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공적 부조의 뜻을 이뤄가고 있다. 기업을 투명하게 경영하며 이윤을 극대화하여 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 일반인들에게 혜택을 돌리는 대목은 존경스러운 기업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와는 달리 일광 그룹의 남 회장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의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기에 그 누구도 재산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여기며 그 재산을 불려나가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철옹성처럼 단단한 부를 이뤄 낸 재벌은 그 부를 오롯이 지키기 위해 자식들에게 기업 경영권을 이양하여 세습하려는 움직임을 표면화해 존경받는 세계적인 부자와는 괴리된 모습을 담아가고 있는 듯해 씁쓸함이 더한다. 막강한 정보 관리를 토대로 한 문화 개척센터 조직을 위한 일광그룹 회장의 간절한 바람은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믿음 속에 유능한 재원을 뽑아내는 일에 몰두했다. 태봉그룹의 1급 첩보원 박재우를 스카우트하여 세를 불려 나가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 차명계좌를 개설하여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경 유착, 언론 로비 등의 불법을 자행하며 잇속을 찾아 무도덕함으로 윤성훈 실장을 위시한 박재우, 강기준 개척단은 사람을 빼내오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자본주의 왕족 사회인 로얄 패밀리 대열에는 끼이지 못하더라도 그 다음 급인 골든 패밀리 인이 되기 위해 골몰하는 이들은 자본에 현혹되어 돈의 노예로 살기를 자청하고 또 다른 길을 나선다. 박재우는 학연을 앞세워 법조인 신태하를 포섭해 일광기업인을 만들어 자발적 복종자로 길들여 나갔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글에서 승자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 온갖 불법을 자행하는 이들이 우리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현실은 민주화된 세상과는 요원해 보인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은 갖은 요술을 부려 필요한 이들을 빼내오는 전략에 맞아 들어갔다. 특별한 전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무한감동 로비로 마음을 움직여 나갔고, 탈세를 도와 줄 세무 공무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이삿날 두툼한 이사 비용을 건네며 기민하게 대응해 나갔다. 남 회장의 친위대인 문화 개척 센터는 목표로 삼고 있는 각 분야의 로비 대상자들을 점진적으로 늘려 그들을 포섭해 왔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돈 봉투를 돌리는 부분에서도 한 치의 착오도 용납하지 않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비정규직의 비인간적인  인건비 착취를 일삼으며 노조가 발을 붙일 수 없도록 법조인 신태하를 방패막이로 앞세워 법망을 피해 나갔다. 생계가 막막한 노조 위원장에게 큰돈을 건네며 증언대에 서서 위증을 강요하며 약자들을 이용해 갔다. 재벌의 재산권 불법 상속과 경영권 불법 승계사건을 저지르고도 무죄로 판결이 나 힘이 빠지는 대목에서는 국민들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의식으로 끔찍한 범죄를 철저히 감시하는 눈으로 불법을 자행하는 기업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그 기업의 생산품 불매 운동을 벌여서라도 일침을 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노예처럼 살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고 이상적인 사회 건설을 도모하는 역군을 양성하는  지성인들의 전당으로 지금껏 여겨왔다. 후학들을 양성하는 일에 보람을 찾고, 속물적인 군상과는 달리 순수한 모습으로 학문 연구에 힘쓰던 허민 교수는 재벌의 기업 경영의 비리를 고발하는 칼럼을 써 교수 재임용에 탈락된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아무런 예고 없이 교수직 박탈당한 당사자 뿐 아니라 허 교수 아내의 우울증은 설사가상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경제민주화실천연대의 고문 변호사 전인욱은 약자의 권익 옹호에 앞장서서 도덕성이 살아나는 시대를 위해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고 소신을 지켜 나갔다. 선거 기간에만 국민을 나라의 주인이라고 대접하며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치를 뿐 선거 후에는 기득권자가 부당한 권력행사를 일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권좌에 올라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던 권력자일수록 권력의 단맛을 보았으니 최고의 자리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 욕망이 역사적 진실에 반하는 술수로 선량한 국민들을 쥐락펴락하는 경우가 생긴다. 생존권과 재산권을 뒤흔드는 국가 권력을 송두리째 넘겨주고 감시와 감독을 제대로 행하지 않아 또 다른 불법을 자행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만 셈이다. 소유욕에 찌들어 재물에 집착하는 이들은 분배를 적절히 하여 상생하려는 노력과는 거리를 두고 지금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자산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려고 안달재신하며 지낸다.  화폐지상주의에 빠져 오로지 돈을 모아 지금보다 더 큰 힘을 과시하려는 움직임에 힘을 더하고 있어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더욱 요구된다.

 

  부의 사회적 환원을 알리고, 납세의 의무를 다하는 기업의 바람직한 형태를 제시하며 사회를 단결시키는 임무를 이행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하는 일이 늘어날 수 있도록 국민들은 나서야 한다. 사회적 공헌도가 낲은 기업의 상품을 사는 합리적인 소비에 나서야 한다. 그리하여 기업의 소유자는 경영자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라는 인식 아래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나 박애 자본주의로 환원되어야 한다. 갖은 회유와 술수 아래서도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해 한길을 걸어가는 허민과 전인욱처럼 서로의 고통을 덜어주며 함께 하는 모습 속에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경제적 부조리도 조금씩 사라져 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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