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영산(靈山)이라 불리는 지리산 아래 삼태기 모양으로 자리한 고향 하동은 벼농사를 짓기에 그만인 여건을 잘 갖추고 있다. 가물에도 농업용수로 끌어다 쓸 섬진강이 곁에 있어 땅바닥이 바닥을 드러내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드넓게 펼쳐진 무디미 벌판의 시월은 누렇게 익어가는 나락들이 창창하게 서 있는 사이사이 알록달록한 허수아비들이 바람이 부는 대로 우줄우줄 춤을 춘다. 삶의 가치를 찾아 깨어 있는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왕왕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움직이며 안주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정체성은 쏙 빠진 채 아무런 문제의식을 찾지 못하고 일상을 보냈던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아니었는지 반문해 본다. 무지몽매함에 얽혀 아무런 의식이나 자각도 없이 무책임하게 상부 조직의 수뇌가 시키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망령들의 모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깨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작가는 허수아비 춤에 담았는지 모른다.

 

 

  남들보다 이른 때에 피안의 세상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대신한 어머니는 어린 남매를 시어머니에게 의탁하고 늘 돈이 되는 일을 찾아 길을 떠났다. 계절에 따라 돈벌이의 수단도 각기 달랐던 어머니는 봄이면 야산에 고사리를 끊어 삶아 말린 것을 조금 싸게 사서 웃돈을 받고 도매상에 넘기는 형태로 장사를 이어갔다. 농한기에는 대도시로 나가 떼어 온 옷을 밤이면 고단한 몸을 눕힐 틈새도 없이 장사에 나섰다. 고단한 삶을 이어 가느라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던 어머니는 장사꾼으로 이익만을 좇기보다는 상대의 고민을 들어주며 그 고통을 나누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힘든 생활에 놓인 이들의 한 서린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눠 믿음을 켜켜이 쌓아 이웃들과 소통해 나갔다. 배움의 끈이 짧았던 어머니는 장사를 하면서 이익을 남기되 서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나누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비춰진다.

 

 

  ‘10리 안에 굶어주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경주의 최 부자는 부를 이루면서도 가난한 이웃들과 상생하려는 노력을 다했고,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는 사업으로 번 돈을 각종 공익 재단에 기부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영인으로 지금도 존경받고 있다.   지구촌 최고의 투자가인 워렌 버핏은,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이야말로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앤드류 카네기의 말을 신념처럼 삼으며 기부를 실천하는 기업인으로 귀감을 보인다. 특히, 그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일은 자식을 망치는 길이라며 기부 서약으로 그동안 모은 개인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공적 부조의 뜻을 이뤄가고 있다. 기업을 투명하게 경영하며 이윤을 극대화하여 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 일반인들에게 혜택을 돌리는 대목은 존경스러운 기업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와는 달리 일광 그룹의 남 회장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의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기에 그 누구도 재산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여기며 그 재산을 불려나가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철옹성처럼 단단한 부를 이뤄 낸 재벌은 그 부를 오롯이 지키기 위해 자식들에게 기업 경영권을 이양하여 세습하려는 움직임을 표면화해 존경받는 세계적인 부자와는 괴리된 모습을 담아가고 있는 듯해 씁쓸함이 더한다. 막강한 정보 관리를 토대로 한 문화 개척센터 조직을 위한 일광그룹 회장의 간절한 바람은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믿음 속에 유능한 재원을 뽑아내는 일에 몰두했다. 태봉그룹의 1급 첩보원 박재우를 스카우트하여 세를 불려 나가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 차명계좌를 개설하여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경 유착, 언론 로비 등의 불법을 자행하며 잇속을 찾아 무도덕함으로 윤성훈 실장을 위시한 박재우, 강기준 개척단은 사람을 빼내오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자본주의 왕족 사회인 로얄 패밀리 대열에는 끼이지 못하더라도 그 다음 급인 골든 패밀리 인이 되기 위해 골몰하는 이들은 자본에 현혹되어 돈의 노예로 살기를 자청하고 또 다른 길을 나선다. 박재우는 학연을 앞세워 법조인 신태하를 포섭해 일광기업인을 만들어 자발적 복종자로 길들여 나갔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글에서 승자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 온갖 불법을 자행하는 이들이 우리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현실은 민주화된 세상과는 요원해 보인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은 갖은 요술을 부려 필요한 이들을 빼내오는 전략에 맞아 들어갔다. 특별한 전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무한감동 로비로 마음을 움직여 나갔고, 탈세를 도와 줄 세무 공무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이삿날 두툼한 이사 비용을 건네며 기민하게 대응해 나갔다. 남 회장의 친위대인 문화 개척 센터는 목표로 삼고 있는 각 분야의 로비 대상자들을 점진적으로 늘려 그들을 포섭해 왔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돈 봉투를 돌리는 부분에서도 한 치의 착오도 용납하지 않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비정규직의 비인간적인  인건비 착취를 일삼으며 노조가 발을 붙일 수 없도록 법조인 신태하를 방패막이로 앞세워 법망을 피해 나갔다. 생계가 막막한 노조 위원장에게 큰돈을 건네며 증언대에 서서 위증을 강요하며 약자들을 이용해 갔다. 재벌의 재산권 불법 상속과 경영권 불법 승계사건을 저지르고도 무죄로 판결이 나 힘이 빠지는 대목에서는 국민들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의식으로 끔찍한 범죄를 철저히 감시하는 눈으로 불법을 자행하는 기업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그 기업의 생산품 불매 운동을 벌여서라도 일침을 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노예처럼 살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고 이상적인 사회 건설을 도모하는 역군을 양성하는  지성인들의 전당으로 지금껏 여겨왔다. 후학들을 양성하는 일에 보람을 찾고, 속물적인 군상과는 달리 순수한 모습으로 학문 연구에 힘쓰던 허민 교수는 재벌의 기업 경영의 비리를 고발하는 칼럼을 써 교수 재임용에 탈락된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아무런 예고 없이 교수직 박탈당한 당사자 뿐 아니라 허 교수 아내의 우울증은 설사가상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경제민주화실천연대의 고문 변호사 전인욱은 약자의 권익 옹호에 앞장서서 도덕성이 살아나는 시대를 위해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고 소신을 지켜 나갔다. 선거 기간에만 국민을 나라의 주인이라고 대접하며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치를 뿐 선거 후에는 기득권자가 부당한 권력행사를 일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권좌에 올라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던 권력자일수록 권력의 단맛을 보았으니 최고의 자리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 욕망이 역사적 진실에 반하는 술수로 선량한 국민들을 쥐락펴락하는 경우가 생긴다. 생존권과 재산권을 뒤흔드는 국가 권력을 송두리째 넘겨주고 감시와 감독을 제대로 행하지 않아 또 다른 불법을 자행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만 셈이다. 소유욕에 찌들어 재물에 집착하는 이들은 분배를 적절히 하여 상생하려는 노력과는 거리를 두고 지금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자산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려고 안달재신하며 지낸다.  화폐지상주의에 빠져 오로지 돈을 모아 지금보다 더 큰 힘을 과시하려는 움직임에 힘을 더하고 있어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더욱 요구된다.

 

  부의 사회적 환원을 알리고, 납세의 의무를 다하는 기업의 바람직한 형태를 제시하며 사회를 단결시키는 임무를 이행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하는 일이 늘어날 수 있도록 국민들은 나서야 한다. 사회적 공헌도가 낲은 기업의 상품을 사는 합리적인 소비에 나서야 한다. 그리하여 기업의 소유자는 경영자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라는 인식 아래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나 박애 자본주의로 환원되어야 한다. 갖은 회유와 술수 아래서도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해 한길을 걸어가는 허민과 전인욱처럼 서로의 고통을 덜어주며 함께 하는 모습 속에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경제적 부조리도 조금씩 사라져 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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