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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혈육은 한 자리에 모이는 횟수가 줄어 서로 떨어져 지내도 질긴 인연의 줄로 엮여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때로는 상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시공간을 초월해 공생하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짐처럼 걸머지고 겨우 버텨 왔던 것처럼 지방 관청의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상사의 말에 복종하며 부조리인 줄 알면서도 그것의 부당함을 말하지 않고 묵묵히 수행해 왔다.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를 따라 아버지는 유랑하며 낯선 땅에서 힘든 생활을 견디며 지금까지 생존해 왔던 것처럼 맞닥뜨린 현실에 순응해 왔을 뿐이다. 온갖 노역에 끌려 다니느라 기운이 쇠해진 말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잇는 연결고리이기도 했다. 좆내논은 늙은 절름발이 말에 지나지 않지만 할아버지에게만큼은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반려 동물이었던 셈이다. 사살된 말은 어머니의 잠재된 의식 속에 환영처럼 살아나 다가올 일을 알려 살아남은 자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를 줬다. 선택의지도 없이 할아버지를 따라 정든 공간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돈 아버지는 교도소라는 낯선 공간에서 수인으로 지내는 시간이 더 안온하였을 지도 모른다며 그 딸은 위안을 삼았다.
각기 다른 사고방식과 문화적 생활에 젖어 지내왔던 타인이 한 가정을 이루고 의좋게 살아가는 일이 수월한 일은 아니다. 헤어짐이 잦은 시대에 부부가 갈라서는 일이 다반사처럼 보이는 시대에도 한 가정의 인위적인 해체는 크고 작은 상처를 떠안고 살아야 할 숙명에 놓이고 만다. 그저 살면서 지내왔을 뿐인 어머니는 살던 집을 처분하고 작은 아파트 두 채를 마련해 남편과 따로 살겠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죄와 알선수재 혐의로 복역 중인 남편을 그 인간으로 명명하며 혐오감을 드러내고 익명화하는 모습은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바람을 강하게 투영한 것이다. 사랑보다는 미움의 정만 강하게 남은 연주 어머니를 보면서 청상으로 지내 온 친정 엄마가 떠올랐다. 하지만 친정 엄마는 병든 남편이라도 곁에 있는 게 의지가 된다며 늘 남편의 그늘을 크게 생각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 어떤 추억도 남기지 못한 채 서둘러 저승을 찾은 남편에 대한 원망이 그 말 속에는 묻어 있었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봄 소풍지로 종종 찾은 인근의 수목원은 단장한 나무들 사이로 꽃들이 피어 곳곳에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어 싱그러움을 더했다. 안내자의 인도 아래 원색의 옷을 입은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나무들의 생태를 살피고 활발히 움직이며 만끽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그 뒤를 따르는 보호자들은 아이들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앞 다퉈 사진에 담느라 활기를 더하였다. 하지만 민간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정해진 시간 내에 통행증을 발급받아 들어갈 수 있는 민통선 수목원은 폐쇄적인 공간으로 내면의 세계로 침잠해 사유하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세밀화 작가인 연주는 민통선 부근에 자리한 수목원의 계약직 공무원으로 발령받아 괴괴한 숲으로 들어갔다. 수목원 생활을 앞두고 그녀는 의지가지없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아버지를 보고 돌아오는 길 마음의 멍에를 가득 안고 수목원 직원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영치금으로 넣어 준 돈을 딸에게 건네며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폐아인 아들과 함께 사는 안요한 실장의 우울한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결핍이 낳은 크고 작은 숙제를 안고 사는 이들이 또 다른 결핍을 부르면서 대물림하는 질긴 인연은 쉽사리 융화하기 힘든 가족의 일면을 투영한다. 부부가 수십 년을 함께 살다 보면 사랑보다는 미움이 더 많이 채워져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사는 일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남편의 그늘에서 찾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소극적인 저항을 생각한 어머니는 교회에 나가 신앙인으로 살면서 그들과 마음의 짐을 나누려 했고, 남편과의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자구책을 마련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식물 종자학을 전공한 연구원 안 실장은 꽃이 피어나는 배경을 찾으려 애썼고, 식물의 종자 안에 잠재해 있는 형태가 발현태로 이행하는지의 여부를 찾는 과업에 매달렸다. 식물의 관찰된 내용을 식물의 살아 있는 질감과 표정으로 화폭에 담아내는 일이 조연주 작가에게 부여된 작업이었다.
수목원 안에서 나무를 관찰하고 그 모습을 화폭에 담아 표본관에 둘 세밀화를 완성하여 가는 과정은 지금껏 익숙해 있던 바깥세상과 절연한 채로 살아가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오로지 지금 앞에 있는 물상의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몰입하는 화가의 관찰은 손쉽게 놓쳐버린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잠이 안 온다는 이유로 딸에게 전화를 걸어 푸념을 늘어놓는 엄마는 쇠잔하여 가는 육신을 붙들고 과거의 망상에서 벗어나려 애써 보지만 제자리걸음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벗어나려 해도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인연은 어느 누가 인위적으로 끊고 싶다고 해서 끊어지지 않는 질긴 씨줄과 날줄로 이어진 숙명의 고리 같았다. 생애 가장 역동적인 순간에 작동하고 있는 생명의 표정을 화폭에 드러내라는 안 실장의 요청은 세밀화를 그려야 하는 연주를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연주의 어머니처럼 자신의 이혼을 객관화하여 표현하는 안 실장을 보면서 어머니와 아버지, 이혼한 안 실장 부부의 삶은 몹시도 닮아 보인다. 자신의 일을 마치 제 삼자의 일인 양 에둘러 말하며 그동안 살면서 일으켰던 무수한 파란에서 헤어나고 싶은 열망이 그 안에는 존재해 있는 듯했다. 안 실장은 마음의 빗장을 뽑고 소통의 문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디뎌 적막을 깨 잔잔한 울림을 전했다. 그의 아들 신우 역시 자신과 너무 닮아서 괴롭다며 연주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대목에서는 울울함을 떨쳐 버리려는 시도를 통해 자폐성에서 한 발짝 물러나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늙은 말 좆내논을 타고 어머니 꿈속에 나타난 아버지는 석가탄신일에 가석방이 되었다. 의협심이었든, 결탁이었든 간에 아버지 자백으로 형량이 가벼웠던 상사 최 국장은 일신 상조회를 만들어 자신들의 비리를 비호하는 세력에 힘을 주는 공적 부조 형태를 유지해 갔다. 아버지가 일을 할 수 없을 때 돈을 대줬던 최 국장의 도움에 감사하며 지내던 어머니의 단편적인 모습을 볼 때마다 연주는 소시민적 삶을 이어 온 자신의 생애를 되짚어 보기도 한다. 출소 후 예상대로 어머니가 마련한 아파트에 머물며 간병인의 도움으로 숨을 붙이고 사는 아버지는 삶의 무게를 다 짐 지우지 못하고 물기 없는 나뭇잎처럼 부서져 가고 있었다. 밤마다 잠이 오지 않는다며 전화를 해대는 어머니의 넋두리를 타고 전해지는 아버지의 근황은 떨어져 살아도 깊이 관여하는 부부의 연을 떠올리게 한다. 나무는 한 그루 안에서 늙음과 젊음이 순환한다는 연륜 있는 숲 해설사의 말대로 인간의 시간과는 대별되는 점이 오히려 다행처럼 여겨졌다.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기며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서 있는 나뭇가지에 앉았던 새는 인기척에 놀라 푸드득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새의 날개 짓을 보며 공허함으로 가득한 마음을 곧추 세운다. 초가을 숨을 거둔 이나모의 빈소를 찾은 김 주위는 숲 해설사의 마지막 가는 길이 너무나 쓸쓸하다며 연주에게 문상을 와주길 요청하여 인간미를 더했다. 빈소를 찾아 예를 갖춰 숲 해설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전송한 뒤 새로운 인연의 발단이 시작될 것만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 연주를 보면서 지금껏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을 가슴에 담을 수 있기를 바랐다. 유해 발굴 작업을 끝으로 전역하는 김민수 중위는 뼈 그림을 맡아 그려주기로 한 연주에게 감사하며 관찰자의 시선을 거두고 그녀에게 자신의 소소한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며 소통해 나갔다. 가을 잎을 떨어뜨리고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연주는 병세 악화로 점점 소진해 가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무들은 따로 따로 살아서 술을 이뤄내고 있지만 혈육의 인연으로 이어진 우리들의 삶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유기체이기에 따로 떼어 내 생각할 수 없는 개체들이다. 유해 발굴단 작업이 종료되고 식을 치르는 날 망자(亡者)가 남긴 편지를 낭독하며 슬픔에 잠긴 살아남은 자의 아픔은 헤아리기 힘든 슬픔의 분화구였다. 보존용 뼈 그림을 김민수 중위에게 넘긴 날 그는 12월 16일 시화강 상류에서의 군 생활을 마치고 시화강 하류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말을 연주에게 전하며 세밀화 소재가 많다는 소리로 새로운 인연의 물꼬를 트려는 의도가 강하게 전해졌다.
딸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았던 아버지는,
‘미안하다, 괜찮다.’
짧은 문장으로 이승에서의 아픔과 서러움, 형량의 무거움까지 떠안고 운명하였다. 좆내논이 아버지를 거적처럼 걸치고 걸어가다 하늘로 올라가더라는 어머니의 꿈은 아버지 마지막 날을 명중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죽어서 자유의 몸이 되어 죄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해졌지만, 죽어서도 형을 면제받지 못한 우울한 삶이 영정 사진에 깃들어 있다. 연신 불쌍하다며 숙성된 울음을 토해내는 어머니의 설움은 이승에서 병마와 고독하게 살다 간 남편의 안쓰러운 삶을 위로하는 울음이었는지는 확언하기 힘들다. 아버지 뼛가루를 민통선 자등령과 연결되는 6부 능선에서 뿌려 죽어서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혼백으로 시화평 고원 위를 훨훨 날아오르길 바라며 딸은 풍장을 선택했다. 자등령 능선과 시화평 고지에는 민간인들의 출입 통제가 엄격했던 만큼 자유로이 왕래하며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삶과는 대별되는 삶이 곳곳에 벌어져 있다. 살아남은 자와 덧없이 죽어 골짜기에 흩어진 자들과 공생하는 민통선 수목원은 존재 가치를 일깨우기에 그만인 곳이다. 숱한 이들이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산화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두는 순환처럼 폐쇄적인 연구 생활로 점철된 안 실장의 성과는 뚜렷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에 안 실장 논문이 게재됨으로써 목적보다는 과정을 깊이 있게 관찰하며 사유하여 이뤄낸 성과는 결핍된 생활이 이뤄 낸 또 다른 성과로 비춰진다.
자연적 질서에 따라 생명의 움이 트고 삭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두는 일련의 과정이 순환의 고리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달마다 그려야 할 식물들이 따로 존재했던 것처럼 계약 기간이 끝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길에 연주는 서 있다. 전역하며 명함을 그녀에게 건네고는 후방으로 나오면 연락 바란다는 김민수 중위의 말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연주의 일상에 밝은 빛을 희미하게나마 비춰줄 듯하다. 수목원을 떠나는 연주의 핸드백에 든 김민수 중위의 명함 한 장은 연주와 끝나지 않는 인연의 실타래를 차근차근히 풀어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숲이 모여 거대한 산을 이루듯 지난날 자신을 옥죄었던 관념에 빗장을 풀고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겨 더불어 숲을 이뤄야 할 때다. 내 젊은 날의 황량한 숲이 윤이 반지르르 흐르고 생동감이 넘쳐흘러 강렬히 살아 움직이는 숲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