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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ㅣ 문학동네 청소년 51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평점 :
실비가 내리는 운동장, 가랑비에 옷 젖는 줄도 모른 채 아이들은 공을 찬다. 열다섯인 아이들은 축구 국가대표 선수 꿈을 품고 예닐곱 살 때부터 공을 차기 시작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축구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상대 진영의 수비를 뚫고 골을 넣었을 때의 짜릿함을 몸으로 기억하며 행운이 함께한다면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사는 아이들과는 달리 살기 위하여 운동장을 찾은 은재가 떠오른다. 살아갈수록 인생은 원하는 대로 살아지는 게 아님에 통절하면서도 이보다는 나빠질 리가 없다는 희망을 안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다. 미성년인 자녀를 안전하게 보육하여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환경을 조성하는 몫은 어른 몫일진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자녀를 학대하는 경우가 있어 울울하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시구는 돌아갈 집을 지옥으로 여기는 이들의 아픔을 덜어주지 못한다. 일과를 마치고 고단한 몸을 붙들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는 시구절과는 달리 은재의 나날은 우려가 크다. 매일 같이 폭력을 행사하는 괴물 같은 아빠를 피해 도둑처럼 복도식 아파트 창문을 떼어내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은재에게 집은 휴식은커녕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를 목격한 형수와 우영은 춥지 않은 날에도 검은 카디건을 입고 올 수밖에 없는 은재의 상황을 알았지만, 은재가 강단지게 쐐기를 박는 바람에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었다. 공부보다는 게임을 좋아하는 단짝은 은재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본인이 극구 원하지 않는 일을 나서서 행할 정도로 배짱이 있지는 않았다.
남편의 학대에 지쳐 집을 나간 엄마의 빈자리를 느낄 새도 없이 딸 은재는 아빠와 지내며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져 헤어나기 힘든 시간을 견디며 이대로 삶이 끝날 수도 있겠다고 여긴다. 은재는 아빠의 주먹‧발길질이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고 기력을 빼앗아 자신을 무력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아직은 살아 있다며 지옥 같은 시간을 잊기 위하여 운동장을 달린다. 한껏 달리다 굴러온 공을 차자 열 명의 선수로 경기를 뛸 수도 없는 상황인 여중 축구 감독 눈에 은재가 들어왔다. 축구 국가대표를 꿈꾸며 선수 생활을 한 감독은 유지조차 힘든 축구부를 운영하며 전전긍긍해 왔던 터라 경기를 뛸 수 있는 선수 확보가 먼저였다.
‘인생은 자주 장난질을 하고, 나는 아주 가끔 기회를 던져 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기회가 왔는지 알지 못한다.’
한쪽 문이 닫히면 어느 한쪽 문이 열린다고 했던 것처럼 최 감독이 은재에게 건넨 동그란 축구공 열쇠고리는 지금의 가정 폭력을 끝낼 대안의 열쇠처럼 보인다. 그동안 가정 폭력의 사슬을 쉽게 끊어내지 못한 채 살아야 했던 은재는 보랏빛으로 멍든 팔다리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마음으로 운동장을 힘껏 내달렸다. 은재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단말마의 고통을 견디며, 폭력의 상처를 지우고 싶은 바람에 갑갑한 밀실을 벗어나 광장을 내달렸다. 한 팀을 꾸려 선수들이 경기에 뛸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던 최 감독에게 은재의 특별한 재능은 팀 회생으로 새롭게 도전할 계기로 작용하였다. 작은 행운을 건네고 싶은 나는 은재가 축구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돕고 싶었다.
자신감을 잃고 위축된 시간을 보내던 우영에게 지금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며 용기를 주는 지유의 넉넉한 마음과 배려에서 깊어진 내면을 가늠한다. 우영은 부모에게서 배우지 못한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배우며 자존감을 회복하여 갔다. 운동장에 나오지 않는 은재를 걱정하는 형수와 우영, 지유는 은재의 집을 찾아 빗장이 걸린 문을 두드려 소통하기를 바랐다. 술에 찌든 은재의 아버지는 외부의 자극에 격하게 반응하며 감금된 딸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 달라고 소리쳤다. 아버지의 폭력 행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학대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살아내는 은재에게 친구들과 최 감독은 대안을 찾도록 돕는다.
경찰서에 가정 폭력 신고를 하였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경찰들은 멍 자국이 가득한 은재의 신체를 보며 아버지 말만 듣고 간단한 집안 문제를 치부했던 점을 뉘우쳤다. 사안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괴물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가정 폭력이 가정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아차린다. 은재는 괴물 같은 아버지 곁을 나와 운동장 옆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아버지의 발길질을 감내하며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과 늘 맞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덜었다. 한때 잘 지내던 친구가 사이가 멀어지면서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까지 폭로당한 뒤 친구를 사귀지 못했던 은재에게 마음의 손길을 먼저 건네 행운을 선물한 친구들이 있기에 지옥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버지의 반대와 횡포에 접었던 육상 선수의 꿈은 새로운 꿈의 씨앗을 움틔워 운동장을 달리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