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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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중학교 동기 아버지의 부음을 알리는 문자가 날아들었다. 오십 대에 접어들어 지인의 부모 부고를 알리는 메시지가 잦아졌다. 팔십사 년을 살다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정토로 가는 길은 통과의례처럼 여겨지지만, 수정이 입시 고민으로 찾아간 점집에서 점쟁이 북두로부터 들은 단명 소식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단명할 운명이라는 예언을 들은 수정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강하게 드러냈다. 살고 싶어 산다기보다는 죽음을 피하고 싶을 뿐인 수정은 북두의 주술이 이끄는 대로 남동쪽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수정이 죽음을 죽이러 가는 길에서 만난 이안은 영면에 들기 위하여 노력한다. 커다란 개 내일의 등을 타고 환상의 세계로 가는 길에서 오늘은 죽고 싶지 않은 자와 살고자 하는 이가 만났다. 특정인이 이안을 사랑한 적은 없었지만 이안이 있어서 분명 좋았을 것이라는 북두의 말을 듣고 그는 죽겠다고 결심했다. 죽음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 둘은 함께 저승으로 가서 힘을 합해 저승의 신을 붙잡아 각자 원하는 것을 얻으라는 북두의 말을 듣고 비현실적인 세계로 향한다.

동물의 등을 타고 이동하며 기괴한 얼굴을 한 인간의 –눈·모기·허수아비-의 형상을 한 괴물들을 물리치며 저승사자 앞으로 다가간다. 살생부 같은 명부의 초상화에 나온 악사, 청소부 등을 죽이고 목표점을 향하는 동안 목도한 마지막 남은 명부의 초상화는 수정과 이안의 얼굴이었다. 서로를 죽여야 목표에 도달할 일촉즉발의 설정에서 이안은 연명을 위하여 북망산을 등지고 걸어온 수정을 생각하였다. 


죽음으로 가는 이안의 모험은 끝나고 병원에서 눈을 뜬 수정은 현실의 무게를 가늠한다. 병실에 입원한 할머니로부터 갓 태어난 강아지를 선물 받은 수정은 목숨을 지키기 위하여 분투하던 환상을 떠올린다. 스무 살을 넘기기 어렵다는 북두의 말에 지금은 죽고 싶지 않다며 수정은 북망산과 멀리 떨어져 걸었다. 




대한민국에서의 열아홉은 입시 경쟁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입시를 향하는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불확실성이 커져 불안감이 엄습할 때, 수정 역시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점집을 찾았을 것이다. 단명(短命)할 운명이라는 점쟁이의 말에 쐐기라도 박듯 명을 늘리기 위하여 용기 있게 모험 길에 올랐다. 태어날 때는 알아도 죽을 때를 모른 채 살다 어느 순간 죽음에 직면한다. 불투명한 죽음의 시기를 두고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라는 말이 항간에 떠도는 것을 보면, 탄생은 죽음을 등에 지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수정이 부정적인 점괘를 듣고 삶을 비관하기보다는 지금은 죽고 싶지 않다며 살아갈 방법을 찾아 나섰다. 우리 삶 역시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 새롭게 시도하며 언제 맞닥뜨릴지 모를 시간과 경쟁하며 함께 나아갈 길을 찾는 과정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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