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철학자 강신주 생각과 말들 EBS 인생문답
강신주.지승호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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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의 다섯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하루하루는 잘도 흘러가지만 텅 빈 가슴 속 헛헛함을 달랠 길은 없다. 짧은 생을 분주히 살다 간 혈육을 떠나보내고 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49일 동안 기도하느라 피폐해진 육신을 다잡아야 했다. 해가 뜨고 달이 지기를 반복하는 일상은 하루를 견디며 사는 일에 무게를 실어 주었고, 한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때는 어김없이 돌아와 밥을 먹고 움직여야 하는 시간은 지속되었다.

 

   나의 의지와 생각과는 다르게 소용돌이치는 사건에 지배를 받으며 휘청거릴 때 한 권의 책은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노화는 여러 질병 요인을 안고 살아가면서 느닷없는 복병을 만나 병원 출입이 잦아지다 소멸해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생로병사의 고통 없이 일생을 보내다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아 인생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연한 사고 없이 과거에 했던 일들을 늘어놓으며 자신들의 생각이 불변의 금과옥조인 것처럼 말하는 직장의 60대를 보면서 묵언 수행하듯 책을 읽는다. 50대 중반이지만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 사유하며 행동하는 실천가, 주변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 책을 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제목은 벼랑 끝에 매달려 추락하지 않으려는 내면의 바람이 강하게 불어 책을 구매하였다. 방송에서 본 저자가 너무 깡말라 몹쓸 병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는데 그동안 몸을 잘 돌보지 않은 탓에 기력이 쇠해져 몸에 축이 많이 났다니 건강 회복을 위해 너무 무리하면 안 될 듯하다. 인터뷰어 지승호가 철학자 강신주를 10년 만에 다시 만나 인터뷰이의 육성을 온전히 담아낸 책에는 그 전 발간된 책과 중첩되는 부분도 있지만 명쾌한 논리로 무디어진 감각을 일깨운다.


   풍토병을 넘어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를 살면서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 감염으로 또 다른 전염병 창궐을 우려하는 때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생각한다. 매번 새롭게 변하는 것으로 유지되는 유일한 제체인 자본주의, 자본주의 체제가 공공해질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유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각자 등불을 들고 타인을 비춰주는 사람으로 무명의 진리를 깨쳐 삶의 주인으로 살며, 사랑과 연대로 이기적 개인을 탈피하는 실천으로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려 한다. 자본이 원하는 것을 경쟁적으로 습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유한 소수가 가난한 다수를 영속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권력을 잡으려는 이들을 주관적으로 보면서 사람의 문맥을 읽을 필요가 있다.

 

   자본의 이윤을 챙기기 위해 인간의 생계뿐 아니라 삶 자체를 위기에 노출시킬 수 있는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민의식의 연대는 절실하다. 무고한 청춘들의 목숨을 앗은 세월호 참사의 주범은 이명박 정부의 2009년 해운법 시행규칙을 통과시킨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있음을 밝힌 부분에서는 소름이 끼쳤다. 자본의 극대화를 위해 운항 선령 제한을 10년 더 늘려 30년으로 정한 법안을 통과시킨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현실이다. 상전이 바뀐 것에 지나지 않은 촛불혁명의 미온적인 의미를 들추며 진정한 혁명의 의미를 밝힌다. 명령하는 자가 동시에 명령을 듣는 자이며, 역으로 명령을 듣는 자가 동시에 명령을 하는 자여야 진정한 혁명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강남 좌파와 여의도 좌파의 권력욕을 새긴다.

 

   지난밤 행복학교 관련 교육과정 소식을 담은 관리자의 블로그에 실은 글을 보면서 교육자로 안일하게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는 글을 썼다. 이튿날 책을 읽고 기록하려는데 인터넷에는 어제 봤던 내용의 관련 광고가 창에 뜬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봤던 핵심어들이 또 다른 빅 데이터로 축적되어 마케팅 대상으로 시장이 편재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 자신을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기 않기 위해서라도 스마트폰과 거리를 두고 활자 중심의 책을 가까이 할 필요가 있다. 강자에게 굴복하지 않고, 약자를 지배하지 않는 동고동락(同苦同樂)의 의미를 새기기 위해 사유하는 철학을 주워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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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장석주 지음 / 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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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이 따끔거리고 머리가 아파 쉬었다 가는 주말, 감기 기운이 있어 외출은 삼가고 집에서 책을 읽으며 지낸다고적한 시간 미러두었던 책 한 권을 빼들었다다독 장서가로 이름 있는 전업 작가의 <<가만히 혼자 웃은 싶은 오후>>를 읽으며 한가로운 시간이 주는 선물에 빠져들었다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하나의 지혜가 자라지 못한다는 명심보감의 구절을 들지 않더라도 살아갈수록 경험의 소중함은 한 사람의 인생을 지탱하는 든든한 바탕으로 자리한다겪을 수 있는 다채로운 경험에서 떠올린 소박한 생각들을 좇아 나서는 즐거움에 기쁨은 더했다사유의 촉매제 기능으로 자리한 독서 관련 이야기에 숱한 경험들을 녹여낸 산문집은 숨은 보석을 찾아 떠나는 보물찾기처럼 흥미로웠다.

 

    태어남과 동시에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남은 시간을 가늠키 힘들지만 언젠가는 삶의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은 불가피한 사실이다인생의 후반부의 정점에 이른 저자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며 현재의 시간을 중시한다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계절의 순환에 감성적 반응을 보이며 늘 책을 읽고 뭔가를 끼적이며 전업 작가의 길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간다. 20대 전반을 시립도서관에 처박혀 책을 읽고 신간을 찾아 서점을 순례하며 살던 일들은 작가의 등용문인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시와 문학평론에 당선하는 기쁨을 낳았다공인받은 작가로의 삶이 고독한 길일진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책의 행간을 넘나드는 일을 좋아하였다.

 

    보잘것없는 현실의 벽을 잊고 책 속에 몰입하여 살아갈 때작가는 니체의 철학에서 영감을 받았다니체는 남을 흉내 내며 살기보다는 자기의 척도를 갖고 살 것과 항상 웃고 노래하며 춤추는 사람으로 살 것을 전하였다제 삶의 주인으로 사는 데 필요한 일상의 철학은 타인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의연함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 것인지 고민하며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고 사는 것이다. 1년 연애하고 스물세 살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지만 생활인으로서 잘나갈 때에는 드러나지 않던 것들이 일이 틀어지고 난 뒤부터 여러 일로 부부가 삐걱거릴 때가 많다. 14년간 청하출판사를 운영하며 문학작품을 출간하는 출판사로 위상을 찾을 무렵 대학교수가 쓴 소설을 출간한 그는 1992년 10월 음란문서 제조 및 반포죄로 2개월간 수감됐다 출옥한 후 출판사를 접었다.

 

   제주도로 내려가 머리를 식히며 겨울을 나던 제분공장 옆방에서 출판사를 정리하는 결단을 내렸다밀고 왔다 밀려가는 일을 반복하는 파도소리에 헛헛함을 달래며 풍찬노숙의 삶을 결정하고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활자중독자로 살아온 덕분에 문학에 심취하였고 닥치는 대로 읽은 책 덕분에 편집부에서 일하며 책을 출간하는 일을 주로 했다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에 처해진 시시포스의 노동처럼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일은 작가의 천형인 셈이다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정도로 에너지 소모가 많은 글쓰기를 지속하는 일은 오롯한 정신으로 자신을 관리하는 일을 전제로 한다열다섯에 처음으로 시를 쓴 이후로 필생의 업으로 삼는 작가의 길로 나선 저자는 여명이 시작되기 전 새벽 4시 만물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 때 작가는 글쓰기를 시작해 청송 사과 한 알을 아침으로 해결하고 정오까지 글을 쓴다조직 생활에 얽매이는 직장인은 아니지만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신의 일을 잇는다.

 

   ‘바깥의 오탁과 내 안의 번잡함이 뭉치고 쌓여 독을 뿜고그 독으로 말미암아 병이 생기는 것이다.’

폭염을 피해 쉬고 싶을 때에는 서운산 숲으로 들어가 책을 꺼내어 읽고 이도 아니다 싶으면 흙의 탄성을 즐기며 걷는다문명의 이기에 직립 보행하는 이점을 뺏기고 사는 현대인들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몸 전체를 움직이며 숲을 걷는 시간은 작은 근심이나 걱정을 가라앉히고 자기 정화에 이르는 시간이다바람과 풀구름과 해책과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는 출판사를 접고 수졸재로 내려와 사는 목가적 삶에 만족도가 커 보인다계파나 조직을 안 만들고 무리에 섞이지 않은 채 외톨이로 사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지닌 하루키는 오전 4시부터 10시까지 원고를 쓴 뒤 10킬로미터를 달린다포스터모던 문학을 즐겨 읽으며 감수성을 키워 온 하루키는 재즈 카페를 운영하며 쓴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는 공허한 인간들의 자아 찾기를 그려내었다단순하게 살기를 바라는 저자는 시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살아가는 하루키의 일상을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책은 생명보험이며 불사(不死)를 위한 약간의 선금

    불가능한 여러 겹의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책 약 5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장서와 더불어 다양한 언어들에 대한 고서들을 소장해 온 움베르트 에코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저자 역시 좋아하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은 편이라 책 읽고 쓰기명상산책여행에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작가의 삶은 4음절의 현재진행형 동사에 융해되어 생기를 더한근심 걱정 없이 살며 만년에는 제주도에 작은 서점을 내고 여행자들을 맞고 싶은 꿈을 꾸고 사는 작가다죽을 때는 사랑하는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은 바람까지 섞어 지나간 시간들을 반추하며 조촐한 일상을 보내는 작가는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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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견만리 : 미래의 가치 편 - 대전환, 청년, 기후, 신뢰 명견만리 시리즈
KBS 명견만리 제작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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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잡을 수 없는 코로나19 감염병 유행이 불러온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불신은 애꿎은 미움을 낳기도 하였지만, 주변의 사람들과 연대하지 않으면 어렵게 이어온 일상마저 무너질 수 있음을 일깨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던 20대 후반의 청년은 여행업계 파산으로 일자리를 잃어 단기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며 고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1993년생인 청년은 중국 유학을 1년 다녀온 뒤 대학을 졸업한 뒤 어학 성적 덕분에 직장에 들어갔지만 110개월을 끝으로 취준생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를 감염병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생계를 위협받지 않고 가치 있는 일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실질적 혜택이 있어야 한다.

 

   학부를 졸업한 해, 안정적인 직장의 정규직으로 33년째 일하며 은퇴를 생각하는 86세대로 구직 플랫폼을 찾아 취업 준비에 매달리는 청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삼포를 넘어 오포 세대라는 부정적 신조어 일색인 밀레니얼 세대가 경제 활동하며 자립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은 때, 꿈을 찾아 도전하는 청년들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공공의 지원이 따라야 할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기회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기회 불평등의 악순환을 끊을 만한 사회안전망 확충은 절실하다. 개인 방역 수칙을 지키며 내가 잘못하면 나와 연결된 사람들도 함께 위험해진다는 생각은 연대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와 실업 문제는 내수 경기를 위축하고, 수출 부진으로 투자 둔화를 초래해 국가 부채가 증가하는 사회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중심의 성공 논리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정책 입안자들의 의견이 눈길을 끈다. 삼성 반도체 산업에 국가 경제가 크게 의존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에 대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공급자의 구미에 맞는 조건을 채우느라 분주했던 시간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탐색하는 시간을 청년들에게 주기 위한 공공의 지원은 절실하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복지 국가의 기본적 원칙이 준수되어 국가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쌓일 수 있는 국가의 공적 역할은 미래를 살아갈 이들의 보호막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술 개발 못지않게 필요한 공감 능력은 혁신의 토대로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능력으로 귀결된다.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여 사람들이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자발적으로 일하는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정부의 공적 기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와 개발 등으로 환경이 파괴돼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이 인간 사회로 들어와 인간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질병을 일으킨다. 동물과의 접촉이 늘어나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파된 코로나19는 이동수단의 발전으로 세계적인 유행 감염병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편리함과 실용성을 내세워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탄소 배출량은 쌓이고, 그에 따른 온실 효과로 지구의 온도는 올라간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C 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상승 폭을 1.5°C로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제로인 걷기로 자동차 중심의 생활에서 보행 중심의 생활로 전환하는 일은 우리를 위한 길이다.

 

   혈연이나 지연으로 뭉치는 연고주의가 21세기에도 지속되는 한국 사회는 코로나19 이후 가족과 친척, 이웃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졌지만 대인신뢰도는 크게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권력을 가진 강자에게는 유리하고 그렇지 못한 약자에게는 불리한 구조로 움직이는 법체계를 보며 많은 이들은 공공 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을 불신한다. 불신의 골이 깊은 사회에서 공적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정치권의 자정이 필요하다. 공적 기관이 정치권력을 비호하는 기관으로 전락하는 일을 막기 위해 깨어 있는 의식으로 무장한 시민들은 권력의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국책사업을 무분별하게 시행하기 전, 시민들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공공토론회를 수차례 열어 공익에 부합하는 일인지 충분히 살필 필요가 있다. 국민들의 세금이 낭비되는 일 없이 필요한 일에 쓰여 믿을 만한 정책을 편다는 말이 퍼져 나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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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 / 더숲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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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총격전과 폭음이 소용돌이치는 전쟁 속에서 지하로 숨어든 이들이 의기투합해 공공도서관을 만들었다. 다라야는 시리아 반군 거점지라는 이유로 정부군에 의해 봉쇄되어 구호 물품도 조달받지 못한 채 죽음의 공포를 견뎌야 했다. 평화 가득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하여 하나로 결속된 청년들은 다라야의 폐허에서 발견한 책들을 한두 권 주워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암흑 같은 상황을 버텼고, 지하의 은둔생활자들과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며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으려 애썼다.

 

   작가는 20151015일부터 201611월까지 다라야에 남아있던 청년들과 인터넷으로 나눈 대화를 기록해 책으로 엮었다. 201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10대 학생들의 낙서에서 촉발된 정부의 시위대 탄압은 알아사드 정권 퇴진의 도화선이 되어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시리아 내전은 끊이지 않았다. 포화 속에서 진실을 알리는 일을 서슴지 않은 아흐마드는 정부군의 폭격에 스러져간 다라야 곳곳을 다니며 보이지 않는 전쟁의 이면을 알리는 데 나섰다.

 

   아흐마드는 황폐한 거리, 폐허로 변해버린 구석에서 발견한 책들을 한 권씩 모으며 책 전달자 역할을 도맡았다. 포탄에 평범한 일상이 깨지고, 폭격으로 거처를 잃고 가족을 잃은 시민들은 불안과 의심이 찾아오는 밤마다 책을 읽으며 전쟁의 소용돌이를 견뎌냈다.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책에 매달리며 민주화를 열망하는 이들의 바람을 담아 공공도서관을 세웠다.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수단이자 무지를 영원히 몰아내는 방법입니다.’

   낮은 목소리에 의지를 담아 말하는 아부를 연상하며 책과 함께 성장할 우리를 그리게 하였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사라질 내밀한 흔적들을 기록으로 남겨 역사 속에 보존하려는 노력은 전쟁으로 잘려나간 흔적들을 책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실상을 전하며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청년이 있어 가능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집중공습으로 주거지역은 초토화가 되었고, 아흐마드가 아끼는 친구 오마르가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의 평화를 위해 총기를 들고 나선 병사의 희생은 수십만 명으로 늘어났다. 시리아의 평화를 위한 혁명의 에너지로 산화한 오마르는 생전 글쓰기로 또 다른 출구를 찾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는 아흐마드의 말에는 흉포한 내전의 참상을 알린다.

 

   오마르의 죽음으로 다라야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이 다가옴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다라야 시민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대하며 온 들판을 불태우며 이주할 것을 요구하는 정부군의 명령대로 강제 퇴거를 당하였다. 정권의 야욕에 짓밟힌 다라야를 떠나며 지하에 세워둔 도서관 책장 속 책들을 약탈하여 헐값으로 처분한다는 정부군의 만행에 문화적 가치를 홀대하는 야만성을 떠올린다. 전쟁으로 학교를 갈 수 없고, 배움을 주고받을 수 없는 이들에게 책은 문화적 고갱이들로 새로운 세상을 호흡하게 하는 양분으로 작용한다. 아흐마드가 새롭게 이주한 곳에서 이동도서관을 만들어 아이들과 여성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일은 무지를 일깨운 앎으로 새 세상을 꿈꿀 수 있게 하는 모태로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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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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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한 사람으로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의 소중한 가치를 새기며 지난시간보다 나은 사람으로 자리하기 위해 오늘도 책을 읽고 쓴다. 오감을 동원한 글쓰기 습관화를 위해 감성 근육을 키워 가는 데 경험은 가치를 구현한다. 여행지에 머무르며 새 작품을 구상하고 글을 쓰는 이의 진솔한 이야기는 동경하는 세계로 이끈다. 등단 작가로 생활하며 지금까지 해온 인터뷰와 강연, 대담을 재구성한 <<말하다>>를 읽으며 심드렁한 일상에 새로운 에너지를 붓는다.


   말 많은 세상에 말로 먹고 사는 생활자로 십대들에게 이런저런 훈수를 두며 자기관리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말만으로는 달라지지 않을 세상에서 자신을 무장하며 지내는 일은 쉽지 않다. 급변하는 시대에 조바심내기보다는 나만의 속도로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을 용기로 세상을 살아갈 내면의 힘을 기르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한 때, 저자의 한마디는 각성제로 다가온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 합리적인 의견에 따라주기를 바라지만 그 또한 쉽지 않음을 일상에서 알아차린다. 자신 외에 누군가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더라도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일은 자신이 할 수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낙관주의자로 환상적인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비관적 현실주의자로 남을 때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근간을 이룰 수 있다는 작가의 뼈 있는 말에 공감한다.


   학군단으로 임관하기를 거부하고 작가로 살고 싶은 작가는 고전 작품을 읽으며 생각의 깊이를 더하며 자신을 지키는 보루로 여겨왔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글을 씀으로써 글을 쓰기 전까지 몰랐거나 외면했던 것들을 직면함으로써 자신을 에워싼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을 즐겼다. 충실한 독자에서 출발한 작가는 생명력이 긴 고전을 읽으며 받은 영향과 쓰고 싶은 내용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글을 쓰기 시작한다는 고백은 평범하면서도 인상적이다.


   한 줌 재로 살라진 혈육의 죽음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누군가의 존재 여부와는 관계없이 세계는 돌아가고 존재한다. 허무의식으로 가득한 세상을 보면서 죽음을 다룬 책들을 읽으며 나를 추스르며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타인으로부터 위로받지 못한 채 지내던 자신도 이야기를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작가의 말대로 유한한 인생보다도 수명이 더 긴 이야기는 인류에 오랫동안 남아 여러 사람들의 눈과 입을 통해 전승될 듯하다. 소설가로 살기를 갈망하는 작가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며 글을 쓴다.


   서울 외곽의 변두리에 사는 3남매가 교통 불편으로 직장인 서울로 들고 나는 길이 쉽지 않은 가운데 그들만의 색으로 인생을 채워가는 과정을 그린 나의 해방 일지를 즐겨 시청하며 주말을 보낸다. 공교롭게도 작가는 자기 해방의 글쓰기를 말한다. 통념을 넘어서는 기괴한 생각을 하며 소설을 쓰거나 작품을 구상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작가의 말은 머릿속에서 소설의 플롯을 그려본다는 뜻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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