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행복한가?
강태수 지음 / 끌리는책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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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행복한가?

그리고, 나는 지금 행복한가?

행복이란 수학공식처럼 일정한 내용이나 요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정의가 다양하다. 그리고, 외부적인 조건이 아니라 내부적인 만족도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다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에서 제시한 방법을 1년 반 정도 꾸준히 실천한다면 누구나 마음 속 깊이 자리한 무의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자신한다.

이 책의 내용들은 가정과 식구들, 직장의 동료나 상사 등 우리의 일상에서 언제나 만나고 경험한 사례들을 통한 행복 찾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특히 3, [타인은 바꿀 수 없지만, 나는 바꿀 수 있다]의 내용 중 아이들에게 관한 행복 찾기의 이야기가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나같은 경우에는 이미 아들들이 다 성인이 되어 분가를 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만시지탄일 뿐이다.

 

이 책을 자녀들이 장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읽었다면, 자녀를 양육하는데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되었음이 확실하다.

특히 스마트 폰이나 게임에 심취해 있는 자녀들을 훈육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일방적으로 지시 일변도이고, 자녀는 자녀대로 정서적으로 민감한 청소년시기이기에 자칫 잘 못 다루면 빗나갈 수 있기에 그만큼 자녀 교육이 어렵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즐거운 권리가 있는 것처럼 자녀에게도 즐거울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자녀들이 학교와 학원에서 집에 들어와서 잠자는 시간까지 계속 부모에게 지시 일변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명령, 폭언, 심지어 폭력까지를 일방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자녀들의 입장을 헤아려 보면, 부모들의 따뜻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출하고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는 사회현상의 이면에는 부모님들의 과잉 사랑도 한몫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간섭하기보다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자율권을 부여해 줌으로써 자존감과 책임성을 함양해 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훌륭한 점을 찾아내어 적극적으로 칭찬해 주면, 부정적인 면이 저절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것은 부모가 하고자 하는 것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하고자 하는 것을 지원하고 응원해 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아이가 잘 못을 저질렀을 때는 부정적으로 반응하기 보다는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고 안심시킬 때 아이에게 큰 격려가 된다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관심을 가질 때 아이들은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모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절대로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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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가 잃어버린 주기도문
김형국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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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앙생활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그리고, 자주 드리는 가장 익숙한 주기도문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니, 매우 당혹스럽기도 하고, 도전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기도문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에서는 아예 주기도문을 암송하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자기는 찾아야한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앞장서서 주기도문을 실종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시무하는 교회의 성도들은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것을 생활화한다니 점점 알쏭달쏭할 뿐이다.

 

사실, 이 책을 읽은 나 자신도 이 목사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서평에 참여할 때도 내가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이나 사명감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목사님도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예배를 시작할 때는 주로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예배를 끝마칠 때는 주기도문을 사용한다.

 

주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한국에서는 폐회의 순서로 전락한지가 오래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은 주기도문을 단숨에 외워버리기까지 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친 기도라면, 모든 기도의 샘플로서 가장 대표적인 위치와 중요성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할 텐데, 종교행위의 악세사리나 형식적 치장에 불과하게 취급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최근 몇 몇 출판사에서 주기도문 관련 서적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본서를 비롯하여, 김영봉목사님이 쓴 가장 위험한 기도, 주기도가 있고, 열린교회를 시무하시는 김남준목사님이 쓴 깊이 있는 주기도문과 코르넬리스 프롱크목사의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으로 보는 주기도문이 있다.

 

그만큼 주기도가 중요하다는 반증이라고 본다.

예수님의 설교와 가르침의 핵심인 산상수훈에 주기도문은 소개되어 있다.

가정사역단체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님은 주기도문은 산상수훈의 심장과 같은데 이것이 주문처럼 외워지는데 비극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을 쓴 김형국목사님과 일치한 견해다.

김목사님은 주기도문을 암송하지 않고, 그 의미와 신학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주기도문을 기도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기도를 한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와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질적이고 근원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단다.

 

우리가 드리는 주기도문은 하나님이 주인이지만, 여타의 종교의 기도는 기도자가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주기도문은 일곱 개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의 3개의 기도 내용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고, 후반부의 4개의 내용은 우리들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는 꼭 십계명이 앞의 4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으로, 뒤에 6계명은 사람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흡사하다.

 

이는 꼭 구약시대의 성전의 구조를 연상하게 한다.

제일 바깥으로 이방인의 뜰이 있고, 그 뜰을 지나면, 성전이 위치해 있고, 이 성전의 제일 안쪽에 지성소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연상시킨다.

신앙생활의 지성소의 위치에 주기도문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주기도문은 하늘의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한다.

이는 우리의 정체성과 신분의 독특성을 내포하고 있는 고백이다.

우리는 기도하면, 나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이와 같은 우리의 선입견과는 정반대임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전반부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을 위한 기도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주기도문을 외워서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기도문이 우리를 형성하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게 만든다’(46페이지)]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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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의 영성 - 예수님을 나의 집으로 삼는 하루 헨리 나우웬의 일상의 예배 2
헨리 나우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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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는 헨리 나우웬이 쓴 삶의 영성을 읽고 많은 깨달음과 도전을 받은 바 있다.

채 그 은혜의 잔영이 남아 있는 때에 다시, ‘귀향의 영성을 읽는 행운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서문에서 밝혔듯이 ‘1985년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나눈 헨리의 사순절 강론 시리지를 다듬은 것설교문이다.

 

사순절이라면 더 큰 은혜가 되었으리라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갖고 이 책을 읽었다.

우리들의 죄를 대신해서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과 헨리 나우웬이 정신 지체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삶은 의미적인 면에서 일치한다고 하겠다.

 

헨리 나우웬은 자신이 간증을 했듯이, [프랑스의 라르쉬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꼭 집에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 예일이나 라틴아메리카나 하버드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15페이지)]

 

그래서 헨리를 하나님을 삶의 한 복판에서 만나리라는 확신을 갖고 살았던 분으로 평가한다.그리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예수님을 따라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 분의 성육신이 되어야 한다고 도전을 주는 것이다.

 

사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셔서 함께 살자고 하는 내용이다.

출애굽기 4장에서 하나님은 애굽 왕 바로에게 포로 신세인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백성임을 선언하면서, 자기를 섬기도록 해방을 시키라고 명령하신다.

 

이 명령에 불복한 바로는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해방을 얻게 되었고, 명실 공히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에 머무르지 않고, 예레미아 31장에서 더 적극적이며 직접적인 새 언약을 예고해 주셨고, 결국 예수님을 친히 임마누엘로 우리에게 보내 주심으로 함께 하심을 완성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 거처를 마련하시기에 열심히시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 계신다.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삼으시고 임재 해 계신다.

이 책은 설명한다. 하나님과 동거하는 구체적 증거는 기도라고 선언한다.

 

진정한 기도란 주님의 십자가와 연합되게 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나의 짐을 예수님께 맡겨 드리는 삶이 주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삶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살고 있음을 일깨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아야 한다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셨음을 안다.

 

예수님이 우리를 떠나신 건 우리가 그 분의 삶을 살며 기도와 섬김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게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해 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별리는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 되고, 손실이 아니라 풍부한 부요가 된다는 의미라고 부연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을 마치면서 105페이지에서, [사랑하는 친구여 이 책도 마친가지다. 책이 끝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 당신이 여기서 읽고 경험한 내용은 어쩌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열매를 맺을지도 모른다. (중략)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와 새로운 섬김으로 우리를 부르실 것이다]고 기대를 피력하고 있다.

 

아마, 그렇게 변화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작가의 확신에 찬 선언이라고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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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오늘도 무사히 사계절 1318 문고 86
자비에 로랑 쁘띠 지음, 김주열 옮김 / 사계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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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오늘도 무사히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우연과 마주친다.

그 우연이 우연일 수도 있지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수도 있겠는데, 우리는 어떤 일이 우연이고 어떤 일이 필연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하면서 우연이니 필연이니 개념을 지어 구분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는 우연과 필연의 사이를 곡예를 하듯 줄다리기를 하면서 살아 간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 책은 2006년 여름, 몹시 더운 날 작가가 리베라시옹이라는 일간지를 읽다가 캐나다로 도주한 그들이라는 기사에서 착안하여 지은 소설이다.

 

그러기에 소설은 간단한 프롯을 갖고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가수의 꿈을 키우며 사는 형제의 이야기가 뼈대를 이룬다.

형 제레미와 동생인 오스카가 그들이다. 이 형제의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용사로서 한 쪽 다리에 부상을 입고, 지금은 자동차 수리를 하며 살아간다.

 

영인 제레미가 무료한 일상에 지치고, 무력감에 젖어 있을 때에,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에 다리를 놓는 공병에 근무하는 조건으로 군대입대를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이미 제레미의 전도를 예감하고 있었으므로 착잡한 마음으로 안절부절한다.

 

결국, 제레미는 입대하여 치열한 전쟁터인 이라크에 파병하게 되고, 실전에 배치되어 총과 포탄을 쏘면서 적을 살상하는 전쟁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된다.

동생인 오스카는 형과 함께 입대하여 전사한 제프의 여동생 마르카와 사랑을 하며, 형이 못다한 가수의 꿈을 펼쳐 간다.

 

사람들은 각 자의 삶이 있다.

오스카의 경우, 형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존재였으나, 형 제레미가 군대에 홀로 입대하여 자신과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가듯이 형이 갈등하고 괴로워할 때도 그는 노래에 심취한다.

그 애인인 마르카 역시, 오빠가 전사했지만 그는 그 슬픔을 딛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스카와 자신의 꿈인 가수의 꿈을 키워 가면서---

 

사실 제레미가 입대를 할 때, 형의 또 다른 친구 레옹이 있었다.

이 레옹은 탈영을 하였다. 그렇다면, 입대한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전사한 것이다.

그리고, 제레미는 심한 갈등과 충격에 사로잡히게 되어 결국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탈영을 결심하게 된다.

 

오스카와 마르카는 형과 오빠의 전쟁 이야기를 노래로 승화시키며 가슴에 담고 있는 희망과 그리움, 불안과 두려움 등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세계 평화를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세께 각국의 전쟁에 참여하는 미군들을 많이 보아 왔다.

 

이 책을 읽으며, 국가의 이해에 얽힌 공권력에 휩쓸려 희생하는 숭고한 젊은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단지, 직업을 얻고 일정한 봉급을 받는다는 단순한 동기로 입대를 하였는데 그들의 소망과 뜻과 관계없이 살상의 현장인 전쟁에 내 몰리는 현실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의 글을 통하여, 우리는 단순한 우연, 순간의 결정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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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직업은 인생 응원단 - 누구에게나 응원받고 싶은 순간이 있다
가무샤라응원단 지음, 이정환 옮김 / 예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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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다.

살아 갈수록 직업의 종류는 새롭게 생겨나는 추세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삶의 방법이 다양하고 치열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리다.

 

농경사회나 미개사회인 경우에는 노동 집약적인 직업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생활의 수준이 높아지고, 다양해질수록 직업 또한 새로 개발되고 많아진 것이다.

직업이 응원이라는 제목이 다소 생소하게 들린다.

 

응원이라면, 초등학교-우리 어린 시절에는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때 했던 기억이 전부다.

머리에 천으로 만든 파란 띠나 하얀 띠를 두르고 그 천의 색깔로 팀을 나누고 경주나 시합을 하면서,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같은 편에 속하는 팀에게 응원으로 힘을 불어 넣었던 것이다.

 

가무샤라응원단이란 세계 유일의 응원단이란다.

이 응원단은 일본 뿐 아니라 프랑스, 뉴질랜드, 독일까지 초청을 받아 원정 응원을 한다는 것이다. ‘가무샤라앞 뒤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돌진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면, ‘죽기 살기로 오직 응원에만 집중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무슨 일이든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프로가 되어야 한다. 응원이 직업이라면 대충대충 슬렁슬렁 시간만 때우는 응원으로는 부족함은 당연하다.

 

그러기에 이들은 응원을 의뢰받으면, 팀의 이름에 걸맞게 매일매일 인생을 걸고 응원한다는 각오로 임한다는 것이다.

의뢰자를 만나보고, 의뢰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철저히 연구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최선을 다하여 연습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응원이 직업인 이들이지만, 그 응원이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늘 가슴 떨리는 긴장 속에 산다고 고백한다.

그 긴장을 해소하는 유일한 해소책은 연습이라고 말한다.

언제나 응원하기 전에는 원을 만들고 ‘we are beautiful’라는 구호를 외친다고 한다.

 

이들은 응원을 이렇게 정의한다.

[응원은 형식이나 멋이 아니다. 스타일도 아니다. 하물며 퍼포먼스는 더욱 아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심과 맞서는 것, 그것이 응원이다.(41페이지)]

또한,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응원이다.]고도 말한다.

 

이 책에는 총 여덟 편의 응원을 소개하고 있다.

어떤 응원은 응원단 자체의 응원만으로 된 응원도 있고, 의뢰자와 함께 연습하고 수행된 응원도 있다. , 일본에서 행해진 응원도 있고, 외국에 가서 행한 응원도 있다.

 

또 어떤 응원은 짧은 응원도 있었지만, 어떤 응원은 24시간 계속된 응원도 있었다.

 

[응원은 누구에게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본인이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응원은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응원은 확실하게 전달된다. (106페이지)] 응원이 제대로 역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응원을 받는 자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이리라.

 

자기가 하는 일에 꾀를 부리고, 요령을 피운다면, 아무리 열정적이고 뜨거운 응원단의 응원일지라도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내가 스스로 나에게 응원이 된다는 말로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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