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7 : 반물질의 블루스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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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미키7>이 끝난 시점에서 2년이 경과된 후부터 시작한다. 소설에서 행성 간 디아스포라는 200년 전부터 시작됐다. 디아스포라 이후 인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이 근현대 역사와 아주 흡사하다. 
 






전작 <미키7>이 익스펜더블이 된 미키 반스의 정체성과 의미론에 대한 고뇌였다면, 이번에는 정의와 도덕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두드러진다. 인간 복제에 대한 종교적 · 윤리적 문제에 대한 찬반 논란. 디아스포라, 그리고 침략적 이주에 따른 토착민과의 갈등. 토착민과 이주민의 동맹과 협력을 통한 동등한 관계. 토착민이 이주민에게 내민 선의, 그럼에도 문명을 들먹이며 토착민의 관습을 미개하다고 낮잡는 이주민의 태도. 


읽으면서 이야기 자체도 상당히 재미있지만, 물리적 대결 구도뿐 아니라 사고의 차이와 관습의 이해, 그리고 가치관에서 오는 딜레마 등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많은 SF소설에서 봐왔듯 외계인(지구인 입장에서)과 인간 캐릭터의 설정을 보면 외계인이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아이러니와 인간의 모순을 짚어내는 역할을 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이러한 점들이 더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인간이면서도 온전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괴물로 취급당하는 익스펜더블과 반은 생명체이고 반은 기계인 하이브리드 크리퍼가 철학적으로 사유하며 공공의 이익과 우정을 더 우선시한다는 점에도 여러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나샤로부터 인간이 행성 간 이동을 한다는 말을 들은 스피커(크리퍼)는 인간이 예상보다 위험한 존재라고 말한다. 크리퍼는 폭탄의 위력에 상당히 놀라며 인간들은 왜 그런 걸 만드는지 묻는다. 아마 이 질문에 상당히 설득력 있는 근거를 들어 타당성을 설명해주는 것은 우리에게 일도 아닐 것이다. 문제는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타인의 죽음,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에 너무 익숙해져 '원래 세상은 다 그래'라는 한 마디로 모든 물음표를 일축하고 있는 건 아닌지. 


미키 반스가 던진 도덕적 딜레마. 살아 있는 적과의 약속, 죽은 친구와의 약속 중 더 우선해야야 하는 것은? 합의한 사항에 대해 약속을 어기고 배신을 하는 짓은 크리퍼 세계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인간 종족을 괴물이라고 말하는 스피커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는 익스펜더블인 미키뿐이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장면은 '반물질 원정대'(내가 붙인 이름이다)가 남쪽으로 가는 동안 로버에서 스피커와 원정대원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비록 서로의 이득을 위해 맺은 동맹관계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그 순간만큼 그들은 '친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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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 일기 안온북스 사강 컬렉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백수린 옮김 / 안온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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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한 후 석 달 동안 투약한 모르핀 대용 약제로 인해 약물 중독 증세가 심해져 전문 의료 시설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던 사강이 짧은 입원 기간 동안 쓴 일기다. 








사강은 입원한지 이틀만에 스스로 쇠약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몸의 쇠락을 느낀다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일테다. 그녀가 말하는 쇠약이 육체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병원에서 듣는 다른 환자의 울음소리. 그 지치고 애통한 울음소리를 예사로 여기며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사강의 눈에는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듯 하다.  


내 몸을 내 의지대로, 내 의사대로 할 수 없다는 자괴감. 
몸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하면서도 예전과는 달리 책 한 권을 끝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침대와 소파만 오가고 조금 답답하며 잠을 못 자는 와중에도 자신의 탐욕과 호기심이 새삼스러운 사강.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살았던 예전의 삶에 대한 그리움, 그러면서 진정한 행복은 드물다고 말한다.  


사강은 고통과 외로움이, 무엇보다 스스로 삶을 끊어내게 될까봐, 두렵고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두려움이 지겹다. 


​지치고 지루하고 도망치고 싶은 날들. 
삶과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열망.
그리고 글을 쓰겠다는 다짐.



​적은 분량과 각 페이지마다 길지 않은 글들임에도 느리게 읽혔다. 책에 실린 삽화는 사강의 피폐해진 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음 장을 넘기고 다시 두세 페이지 앞으로 돌아가기를 여러 번.  


오랜만에 독후기록 노트에 발췌한 문장들과 읽는 순간들었던 단상을 꾹꾹 눌러담아 적었다. 



글로만 봐서는 이십대 초반에 썼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짙은 페이소스가 전해진다. 내 몸에 대한 의사 결정권을 상실한다는 것, 지겨울 정도로 두려움이 일상을 잠식한다는 것, 죽음에 더 가까이 발을 내딛다가도 글쓰기를 향한 열망 덕분에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삶을 향해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온전히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녀의 고통과 고독, 어렴풋한 희망을 조금이나마 나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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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나이 환상문학전집 38
안드루스 키비래흐크 지음, 서진석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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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유인원과 언어 및 삶의 터전을 공유하는 고대 설화에서 보여지는 세계관을 상징하는 숲과 기독교 문명 세계를 상징하는 마을로 나뉘는 소설은 석기시대 - 청동기 및 철기 시대 - 중세 시대를 한 차원에 배치한다.  
 



 



레메트는 숲이 아닌 마을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에게 숲에서 나와 마을에서 살자고 한 사람은 아버지였고, 가족은 모두 마을로 옮겨갔으나 어머니는 마을 생활을 싫어했다. 그녀는 작물과 빵처럼 가공식품(혹은 식재료)을 쓰레기라고 말했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아버지는 새로운 시대의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새로운 시대의 사람이라면 암울한 숲이 아닌 밝은 태양과 하늘 아래 마을에 사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아버지는 언어와 문명에 대한 호기심과 이를 터득해 나가는 스스로를 뿌듯해 한다. 그와 동시에 숲의 사람들이 사용했던 '뱀의 말', 즉 숲의 언어는 잊었고 그로인해 그는 마치 숲에게 대가를 치르듯 죽임을 당한다. 또한 어머니가 밀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노동을 두고 '여름 내내 시커먼 개미'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한다면, 아버지는 숲에서 열매를 따고 사냥을 하는 행위에 대해 '거지같은 삶'이라고 말한다.  


소설의 시작에 해당하는 이 대목은 현대 사회에서 노동과 (과학)기술의 발달을 바라보는 시선에 닿아 있으며, 문명과 생태의 공존과 조화 측면에서 고찰해볼만하다. 이러한 점은 이후 요하네스와 레메트가 뱀 인츠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나는데, 뱀을 친구라고 주장하는 레메트에게 뱀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며 꼬챙이로 인츠를 죽이러 달려드는 요하네스를 보면서 엘크의 옆구리를 꼬챙이로 찔러 죽이는 숲 사람, 즉 자신들을 떠올리며 당황해한다.


그리고 유인원은 마을 사람들보다 오히려 동물을 죽이고 철을 갈취하며 마을 사람들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고 제 삶의 방식만 옳다고 여기는 외곬의 숲 사람들 생활방식을 더 비판하는데에서 유인원들이 보다 더 훨씬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은 자연과 인간을 분리해 인간 외 생물을 지배할 대상으로 삼는 인간중심적 사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와 유사한 관점은 소설 곳곳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래메트가 마을에 내려갔다가 우연찮게 요하네스가 소를 치료하는 과정을 목도하게 되는데, 요하네스는 소를 치료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소의 고통은 외면한다. 이를 지켜본 레메트는 차라리 소를 죽여 고통을 줄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다만 요하네스는 소를 자산으로서 접근했다면 레메트는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로 바라봤다는 것이다.   


ㅡ 


소설이 진행할수록 눈여겨 볼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레메트의 어릴 적 친구인 패르텔을 꼽을 수 있다. 숲에서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마을로 이사를 간 패르텔의 가족. 그가 마을에서 소위 기독교 문명 사회에 적응하고 동화되면서(과하게 말하면 세뇌 당한듯한) 한때 자신이 살았던 숲의 생활을 미개하고 야만적이라고 낮잡아 말하는 패르텔이 변화하는 과정은 눈에 띈다. 더불어 숲과 땅, 그 안에 사는 생명체들을 사랑하지만 세상과 고립된 채 숲에서 평생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레메트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이에 대해 비판의 시선보다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말하고자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숲에서의 삶을 고집하는 집단 안에서도 광신적이고 왜곡된 사람은 존재한다. 탐베트나 윌가스는 자연과 숲에서 찾아야할 본질보다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구습만을 폭력적으로 고집한다. 어쪄면 숲 공동체의 쇠락은 시대의 흐름뿐 아니라 이와같은 사람들에 의해 더 가속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에는 유의미한 상황들이 많이 보인다. 
엘크 고기를 물 건너온 포도주와 함꼐 마시는 최초의 결혼식이 된 레메트와 히에의 결혼식. (하느님을 포함한)영적인 존재를 신봉하면서 그 안에 인간의 안위는 존재하지 않는, 그럼에도 끝없이 구원을 믿으며 집착하는 인간의 광기. 같은 시각에 마을과 숲에서 동시에 일어난 죽음. 자발적으로 철창에 갇혀 인간을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곰들. 


ㅡ 


자연과 문명의 공존과 조화 차원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살메와 믐미, 그리고 유인원 부부다. 인간 살매와 곰 믐미가 결혼했고, 이 소설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족의 형태다. 그리고 유인원 부부 역시 모두가 도살당하다시피 죽어가는 숲에서 살아남는데, 그들은 숲의 사람들이 동물을 강압적으로 사육하고 도륙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품었던 이들이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숲의 생물들을 죽음에 몰아넣은 것처럼 마을 역시 폐허가 되었다.  


이처럼 지배와 피지배 구도가 아닌 수평적 관계의 상생이야말로 인류가 추구해야하는 지향점임을 말하고 있는듯 하다. 소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에 물음표를 놓는다. 인간이라면 과연 '살아있기만 한 것'에 만족할 수 있을까? 사회에 동화하지 못하고 고립된 삶이 진정한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삼촌 보텔레는 사람들이 뱀의 말은 잊은데다 뱀의 말을 배우는 것이 어려워서 마을로 내려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요하네스는 숲의 삶이 원시적이고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삶이다. 뱀의 말을 배우것만큼이나 문명 세계에 맞춰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리라.  


과거 속에 살고 있는 그들과 그들 세계에서 마지막 존재인 레메트. 집안의 마지막 남자, 숲의 마지막 남자, 히에의 마지막 남자, 마을의 마지막 이교도, 뱀의 말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존재.  


끝으로 숲의 사람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북녘 개구리가 있는 곳, 그리고 그곳의 상징성. 이는 보고 느끼고 깨닫고자 노력하는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이해했다. 쓰다보니 어떻게 '살고 있다'가 아닌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 '인간다운 삶'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 헛헛하고 쓸쓸하다.



※ 출판사 지원도서
 

새롭게 열리는 세상에서 조용하고 무미건조하게 썩어 가는 나의 지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부질없었다. 갑자기 비참해진 미래가 눈 앞에 펼쳐졌다.(중략) 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마을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밭을 갈고 빵을 먹으로 살아야 할까? 난 그곳에 살기 싫었다. - P268

그들의 성실한 삶은 이제 끝이 났다. 그들의 세상, 그들의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 P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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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그림자 속에서
알비다스 슐레피카스 지음, 서진석 옮김 / 양철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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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차 대전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전국 독일, 사상 유래 없는 대학살 사건의 피해자이자 이스라엘을 세운 유대인, 승전한 연합국, 무엇보다 강대국으로 부상한 두 나라의 양강 구도의 재편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졸지에 전쟁의 가해자가 되어 처참한 삶과 죽음을 겪어야했던 동프로이센 사람들.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녀와 가족,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삶을 통해 모든 것을 잃고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얼어붙은 네무나스강을 건너려는 독일 아이들. 러시아 군인은 독일 아이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부상당한 아이들은 얼음 구멍 속에서 허우적댄다. 동프로이센 거리에서 독일인의 시체를 보는 건 어렵지 않고, 살아있다한들 러시아가 점령한 땅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린다. 러시아 군인들이 가족을 데려와 살고 있던 독일인 가족을 내쫓고 집을 차지하면 원래 주인인 사람들은 땔감 창고에 거처를 마련한다. 여자와 아이와 노파만 남은 마을은 러시아 군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붉은 군대가 마을에 쳐들와 폭력과 약탈을 일삼고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네무나스강으로 몸을 던졌다.


동프로이센 사람들은 굶주림의 끝에 쥐를 잡아먹고, 나무껍질을 뜯어 먹는다. 여자들은 군인에게 두들겨 맞고, 고작 열 살 전후의 아이들은 가족의 생계 혹은 배고픔에 지쳐 국경을 넘거나 이것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스스로를 시장에서 파는 물품으로 내놓아 제발 자기를 사달라고 애걸한다. 그들에게 '인간다움'이란 사치가 되어버렸다.  


레나테가 고양이한테 우유를 주는 여자에게 당신이 살고 있는 그 집이 빼앗기기 전 자신들의 집이었다고 말하자 그녀는 "우리 잘못이 아니야"라고 변명하듯 말한다. 러시아 여자는 자신들, 즉 전쟁과 무관한 러시아 시민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내면에서는 부끄러움을 느꼈을테다.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른 형태의 수치심을 안긴다. 


남편과 아이와 친구를 잃고, 죽을 기운조차 없는 지긋지긋한 삶. 여전히 살아 있는 그들의 바람은 그저 죽음뿐이다. 



이 소설에서 의미심장한 부분은 에바가 아이들에게 가족의 이름을 외우도록 일러두면서 자기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그리고 독일인임을 잊지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로 도망치듯 가버린 언니를 뒤쫓다 놓쳐버린 레나테가 살기 위해 기계처럼 외운 말은 에바가 훈련하듯 당부시킨 내용과는 달랐다. 


"내 이름은 마리톄예요." 



열린 결말로 끝나는 소설은 그뒤 레나테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얘기해주지 않는다. 다시 길 위로 나서서 정처없이 세상을 떠돌게 되는지, 스타셰를 만났던 것처럼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게 되는지, 독자는 확인하지 못한다. 다만 레나테가 살아남아 전쟁 직후 동프로이센의 엄혹함과 처참함, 그리고 그보다 훨씬 이전에 행복했던 때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그 시절을 증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숨 작가의 <한 명>을 읽으면서 너무 참혹하고 끔찍해 울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감정과 많이 겹쳐졌다. <늑대의 그림자 속에서>를 읽는 동안 "어떡하냐..."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고,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서 내내 명치 끝이 뻐근했다.  


전쟁이라는 격류에서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전쟁은 이긴 자도, 진 자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남겨두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역사의 수많은 사건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음에도, 세계는 여전히 전쟁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레나테'가 '마리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소설 속 레나테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레나테'들을 기억하기를 바라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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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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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
아민 말루프 지음, 이원희 옮김 / 교양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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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출간한 소설인데, 우리나라 번역본은 25년만에 복간됐다.  
11세기 셀주크 제국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페르시아의 근현대를 걸쳐 오마르 하이얌의 필사본을 매개로 두 시대를 잇는 대서사를 그려낸다. 오마르 하이얌, 하산 사바흐, 니잠 알물크, 빅토르 앙리 로슈포르, 자말 알딘 알아프가니, 모건 슈스터 등 실존 인물과 실제 역사적 사건들에 작가의 상상을 엮은 소설은 벤저민이라는 19세기 인물을 서술자로 내세워 오마르 하이얌이라는 천재 지식인이자 시인을 중심으로 11세기 이슬람 세계와 근현대 격동의 시대에 오마르 하이얌의 필사본을 좇아 동방으로 떠나는 벤저민의 여정을 따라간다.   


앞에서 언급했듯 소설의 절반은 11세기, 나머지 절반은 19세기 말~20세기 초를 배경으로 서술하는데 전반부를 읽으면서 하산 사바흐와 아사신 교단에 대한 자료를 찾아 읽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됐다. 아사신의 공동체 교리를 읽으면서 이슬람 지하드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레 따라왔는데 현재에는 많은 부분이 와전되거나 혹은 왜곡된 해석으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 하다.   


그리고 19세기에는 페르시아의 입헌제(민주제)를 놓고 내분과 더불어 식민제국들의 첨예한 이권 다툼 등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 열강의 전쟁터였던 페르시아의 근현대사를 단편적으로나마 들여다 볼 수 있다.  


ㅡ 


소설에는 여러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부분들이 많지만 일일이 언급하자면 스포일러가 되기에 쓰기를 아낀다. 실존인물이든 허구적 인물이든 각각의 인물들이 갖는 입체감이 커서 영화로 만들어도 무척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렴결백하고 자아와 신념이 확실하며 돈과 권력의 무상함을 이른 나이에 이미 꿰뚫고 있는 천채 학자이자 고결한 시인인 오마르 하이얌,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실력자로서 제국의 태평성대를 제손으로 이뤄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재상 니잠 알물크, 다른 세상을 꿈꾸며 이스마일파의 부흥을 염원한 하산 사바흐, 당시 여성이 갖는 한계를 뛰어 넘어 제국을 손에 넣고 싶었던 야심가 술타나 테르켄 하툰과 자한, 페르시아의 입헌제와 민주주의를 열망한 파젤, 그리고 조국과 시詩와 벤저민을 사랑한 시린 등 그들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소설에서는 정치적인 부분을 서술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서사에서 가장 어리석고 무능한 자는 술탄 말리크 샤와 무함마드 알리 샤. 의지나 신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휘둘리며 분노와 자존심만 가진 허수아비 왕. 무능한 사람이 권력을 쥐고 수장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두 인물이다. 그리고 강력한 집단을 만들기 위해 사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두 아들을 참형시키고, 아내와 딸을 내쫓는 하산 사바흐의 공포에 가까운 엄격한 공정함은 과연 그를 따르는 이들의 귀감이 되었을까? 


ㅡ 


책을 읽다보면 오마르 하이얌이 벤저민 O. 르사즈로 환생한 게 아닐까싶을 정도로 두 사람의 성향이나 삶의 궤적이 닮아 있다. 권력과 부富에 관심이 없고 야심과는 거리가 멀지만 본의 아니게 정치적 상황에 말려들고, 그들의 권유가 뜻하지 않게 누군가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이것이 한 시대에 직간접적으로 파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완성하지 못한 아름다운 여인과의 운명적 사랑, 그리고 시를 향한 열망까지.   


벤저민은 필사본을 좇아 동방의 땅으로 왔지만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투쟁에 깊이 관여하게 됐고, 그로인해 친구를 잃었다. 하워드 바스커빌의 페르시아를 향한 동경을 부추기기까지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자신의 우발적이고 부차적인 역할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이러한 회의 또한 오마르 하이얌과 흡사하다. 



오마르 하이얌이 유명한 이유는 의학자이자 천문학자요 수학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시詩다. 그가 학문에 매료되는 이유도 학문 속에서 최상의 시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오마르 하이얌의 삶이 시 그 자체로 느껴졌다.  


하산 사바흐의 비밀 철장 벽감 안에 있던 오마르 하이얌의 필사본이 800년의 세월을 지나 어떻게 미르자 레자의 손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필사본이 손에 손을 거쳐 이어져왔고, 우리 역시 후대를 이어 삶을 지속한다. 소설은 우리에게 삶과 시의 영속성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것들을 떠나서 일단, 재밌다. 
올해의 소설 목록에 올린다.  




※ 출판사 지원도서

나는 이 도시를 혐오하지 않으리라. 설사 미역 감는 여인이 환영일지라도. 설사 칼자국 난 얼굴의 사내가 현실일지라도. 설사 이 신선한 밤이 나를 위한 마지막 밤이 된다 할지라도.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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