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그림자 속에서
알비다스 슐레피카스 지음, 서진석 옮김 / 양철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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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차 대전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전국 독일, 사상 유래 없는 대학살 사건의 피해자이자 이스라엘을 세운 유대인, 승전한 연합국, 무엇보다 강대국으로 부상한 두 나라의 양강 구도의 재편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졸지에 전쟁의 가해자가 되어 처참한 삶과 죽음을 겪어야했던 동프로이센 사람들.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녀와 가족,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삶을 통해 모든 것을 잃고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얼어붙은 네무나스강을 건너려는 독일 아이들. 러시아 군인은 독일 아이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부상당한 아이들은 얼음 구멍 속에서 허우적댄다. 동프로이센 거리에서 독일인의 시체를 보는 건 어렵지 않고, 살아있다한들 러시아가 점령한 땅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린다. 러시아 군인들이 가족을 데려와 살고 있던 독일인 가족을 내쫓고 집을 차지하면 원래 주인인 사람들은 땔감 창고에 거처를 마련한다. 여자와 아이와 노파만 남은 마을은 러시아 군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붉은 군대가 마을에 쳐들와 폭력과 약탈을 일삼고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네무나스강으로 몸을 던졌다.


동프로이센 사람들은 굶주림의 끝에 쥐를 잡아먹고, 나무껍질을 뜯어 먹는다. 여자들은 군인에게 두들겨 맞고, 고작 열 살 전후의 아이들은 가족의 생계 혹은 배고픔에 지쳐 국경을 넘거나 이것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스스로를 시장에서 파는 물품으로 내놓아 제발 자기를 사달라고 애걸한다. 그들에게 '인간다움'이란 사치가 되어버렸다.  


레나테가 고양이한테 우유를 주는 여자에게 당신이 살고 있는 그 집이 빼앗기기 전 자신들의 집이었다고 말하자 그녀는 "우리 잘못이 아니야"라고 변명하듯 말한다. 러시아 여자는 자신들, 즉 전쟁과 무관한 러시아 시민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내면에서는 부끄러움을 느꼈을테다.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른 형태의 수치심을 안긴다. 


남편과 아이와 친구를 잃고, 죽을 기운조차 없는 지긋지긋한 삶. 여전히 살아 있는 그들의 바람은 그저 죽음뿐이다. 



이 소설에서 의미심장한 부분은 에바가 아이들에게 가족의 이름을 외우도록 일러두면서 자기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그리고 독일인임을 잊지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로 도망치듯 가버린 언니를 뒤쫓다 놓쳐버린 레나테가 살기 위해 기계처럼 외운 말은 에바가 훈련하듯 당부시킨 내용과는 달랐다. 


"내 이름은 마리톄예요." 



열린 결말로 끝나는 소설은 그뒤 레나테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얘기해주지 않는다. 다시 길 위로 나서서 정처없이 세상을 떠돌게 되는지, 스타셰를 만났던 것처럼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게 되는지, 독자는 확인하지 못한다. 다만 레나테가 살아남아 전쟁 직후 동프로이센의 엄혹함과 처참함, 그리고 그보다 훨씬 이전에 행복했던 때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그 시절을 증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숨 작가의 <한 명>을 읽으면서 너무 참혹하고 끔찍해 울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감정과 많이 겹쳐졌다. <늑대의 그림자 속에서>를 읽는 동안 "어떡하냐..."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고,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서 내내 명치 끝이 뻐근했다.  


전쟁이라는 격류에서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전쟁은 이긴 자도, 진 자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남겨두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역사의 수많은 사건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음에도, 세계는 여전히 전쟁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레나테'가 '마리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소설 속 레나테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레나테'들을 기억하기를 바라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 출판사 지원도서

그 여인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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