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브라이언 에븐슨 지음, 이유림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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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환상, SF, 미스터리의 경계가 무색하게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공포와 그 이상으로 극단적인 현실을 풍자적으로 꼬집는 기괴하고 독창적인 소설집이다.  
 





​각각의 소설들은 독립적인 작품이지만 마치 연작처럼 공통된 소재를 통해 이어진듯한 구성상의 설정들이 자주 눈에 보인다. 빈 집과 구멍, 탑, 우주선 등 어둡거나 밀페된 장소, 특히 외부와의 단절과 고립, 동시에 인간의 간절함을 상징하는 문門은 독자의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또한 '새어 나오다', '세상의 매듭을 풀기 위한 노래', '두 번째 문', '빛나는 세계', '태어난 사산아' 등에서 등장하는 인간 가죽이나 이목구비가 없는 얼굴은 인간이 갖는 자아존재감과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혹은 인간의 몸을 갖기 위해 인간을 삼켜버리는 존재들에 대한 잔혹 동화같은 이야기들은 허구에 그치지 않는다(따지고 보면 인간의 역사야말로 먹고 먹히는 아비규환이 아니던가).   


'룸 톤', '메노', '트리거 경고', '방랑의 시간' 외에도 여러 작품에서는 인간의 광기와 망상과 욕망, 불안감에 대해 쓴다. 편협한 고정관념과 집요한 가스라이팅, 잠재되어 있는 인간의 폭력성을 섬뜩하게 그리고 있는데 영화적 장치를 이용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의 폭력성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점이 인상적이다.  



불안의 기저에 근거가 있든 없든 현대인은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살고, 불행에 익숙해진 인간은 불행이 없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며 스스로 불행을 만들어 안심한다. 인생에 있어서 끊임없이 강요되는 선택에 대한 결과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늘 불안하다. 그 불안감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임을 알면서도 초연해질 수 없다. 이렇듯 작가는 우리의 본능과 딜레마를 몸서리쳐지도록 공포스럽게 그려냈다.  



1990년대 <블레이드 러너>같은 B급 영화같은 느낌도 있고, 오컬트 영화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 소설집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우리나라 작가 중 정보라 작가와 비슷한 결이 아닐까싶은데, SF요소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겠다. 단편소설 스물두 편이 모두 독특하다. 소설에 삼켜지지 않도록 주의하시길.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방랑의 시간>. 오랜 시간을 방랑한 후 주인공 라스크가 깨닫는 것. 그리고 새삼스러운 깨달음에서 오는 탄식.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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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I-II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1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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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인물인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삶을 모티브로 한 두 편의 연작 소설이다.  


후원을 받아 독일의 미술학교로 유학 온 라스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작가라고 자화자찬하지만 스승 한스 구데의 평가를 받는 것에 불안함을 느낀다. 미술학교에서 평가가 있는 날, 하숙방에서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라스의 모습에서 출발하는 소설은 시종일관 갈등과 혼란의 연속이다. 이는 그림뿐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여인 헬레네를 대하는 태도 역시 비슷하다. 집착의 대상인 동시에 확신과 불안의 사이에서 고뇌와 혼란을 반복한다.  






 
소설에서는 상징성을 띠는 소재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희고 검은 천, 보라색 코듀로이 양복, 종교, 말카스텐, 문門, 눈目, 빛, 그리고 헬레네. 라스와 그의 누이 올리네의 심리를 드러내는 이 장치들은 내용과 인물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많은 부분을 차치한다.  


문구 자체에 이미 모순을 띤 희고 검은 천은 불안과 혼란에 직면했을 때와 이를 피하고 싶을 때 라스의 눈앞에 나타나고, 코듀로이 양복은 라스의 삶이 바뀌는 전환점이자 벗어나고 싶어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족쇄같은 존재다. 자신이 가난한 이방인 즉 비주류이자 아웃사이더를 상징하는 퀘이커교인임을 끊임없이 되뇌이는 라스는 모든 문들이 두려움의 대상이다. 주류의 공간인 말카스텐의 문턱도, 헬레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하숙집 대문도, 세상에 나아가기 위해 내딛어야하는 자신의 하숙방 방문도, 그에게는 그 어떤 산보다 높았을 것이다. 그래서 라스가 정신병원에서 행하는 자위 행위와 올리네가 마지막까지 참으려고 애썼던 배설은 그들이 억눌러야만했던 욕구를 대변한다.  



소설이  Ⅰ- Ⅱ 로 넘어가는 사이에 언뜻 보기에는 불필요해 보이는 비드메의 이야기가 짧게 서술된다. 
소설 속 작가 비드메는 욘 포세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로 읽힌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드메와 라스는 같은 연장선에 있다. 주류 종교 및 사회와 단절되었다가 다시 유대를 잇고 싶어하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헬레네와 마리아의 유사성이다. 마리아는 비드메에게 비스킷과 차를 대접하고 옷을 말려준 사람, 즉 곤경에 처하고 단절된 비드메에게 손을 내민 사람인데, 헬레네 역시 독일에서 라스에게 손을 내밀어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마리아가 머무는 곳은 목사관으로서 그녀 자신의 소유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는데, 헬레네가 어머니와 삼촌의 영향력 아래에서 억압받는다고 여기는 라스는, 어쩌면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병원에서 라스의 유일한 바람이 헬레네를 데리고 고향 마을로 돌아가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고.   




그렇다면 작가는 라스의 삶에서 무엇을 보았고, 치매 노인 올리네의 삶 끝에서 그가 하고자했던 말은 무엇일까.
인간의 삶은 정도의 차이일뿐 늘 불안을 안고 살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혼란을 반복한다. 삶은 평온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죽음으로써 인생을 마무리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비로소 온전한 평안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헬레네를 데리고 고향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바람을 말하는 라스가 너무나도 애처로와 나도 모르게 울컥했고, 수치스러움을 느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힘겹게 하루를 보내고 모든 것을 쏟아낸 올리네를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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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2세 열린책들 세계문학 28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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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평가하는 리처드 2세는 어떤 인물이었을지 궁금하다. 왕권찬탈 그 이상을 담아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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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과거 을유세계문학전집 131
드리스 슈라이비 지음, 정지용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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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군주라고 칭하고 가정에서 군림하며 가족들에게 자신을 '과인'이라고 말하는 아버지. 어린 나이에 감금당한 채로 일곱 번의 출산을 겪고 더 이상 욕망도 분노도 없이 신에게 오직 죽음만을 간구하는 어머니. 마치 왕을 모시는 신하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아버지의 부당함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자식들. 모든 가족들은 '군주님'이라고 부르는 가장에 대한 복종 이외에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소설은 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 등 종교와 민족을 떠나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탄압하는 비정상적이고 부조리한 권력을 강하게 반발하며 비판하고 있다. 유년시절부터 겪어야하는 침묵과 억압의 고통, 교육(혹은 훈육)과 인내심을 명분으로 육체에 가해지는 가학적 통증과 모멸감을 당연하게 여겼던 드리스는 프랑스인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절대적 존재인 아버지(이슬람 세계의 지배층)에게 반항하기 시작한다. 그는 인종과 종교와 성을 차별하고 강압하는 이슬람인보다 근대적 문명을 상징하는 프랑스인에 더 친근함을 느낀다.


기득권층의 부정부패와 권력을 따라 움직이는 비굴함과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모순, 그리고 아버지의 명령으로 간 페스에서 마주한 구태와 관습의 부조리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드리스의 혐오는 깊어진다. 더하여 페스로 날아온 막내동생의 사망 소식으로 그의 반항심은 절정에 이른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형제들을 모아놓고 이슬람 교리를 멋대로 해석하고 이를 빌미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맹비난하며 그에게 저항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늘 무기력하게 술에 취해 있는 맏아들 카멜과 아버지의 권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구경꾼 입장을 자처하는 다른 형제들은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드리스는 아버지를 향해 신정 통치가 아니라 관용과 자유를 지닌 부성애로서 가족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하면서 아버지의 이슬람 신정 통치는 종교적 차원에서도 온당치 않다고 비판한다. 더불어 그 자리에서 저항하지 않고 그저 침묵과 무관심 뒤에 숨어서 복종의 자세만 취하는 다른 가족들도 함께 질타한다. 이 사건은 드리스의 삶에 있어서 전환점이 된다.  



집에서 쫓겨난 드리스는 자국 땅 모로코 내에서 유럽인에게 차별을 당하는 모로코인의 처지와 모로코 사회뿐 아니라 이방인 사회에서 아버지 핫지 파트미 페르디의 위치가 갖는 힘을 새삼 깨닫는다. 방향성을 잃어버린 반항. 속물적인 세상에서 책상머리의 이론에 그친 '자유, 평등, 박애', '동양 정신과 이슬람 전통과 유럽 문명의 공생'이라는 허위는 이슬람 사회의 기득권층이 지속적으로 악용해 누려왔던 특권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느끼고, 비로소 자신이 현재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드리스의 귀가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소설에서 20년이 넘은 가게 건물의 정면을 복원한 얘기가 세 줄에 걸쳐 짧게 나오는데, 페인트칠만 하면 될 줄 알았던 문을 살펴보니 경첩이 다 녹슬어 겨우 버티고 있더라는 가게 주인의 말은 당시의 모로코뿐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에 빗대어도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구습과 가부장제의 틀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고, 동시에 '과인'이라는 말을 거둔 파트미와 다른 세상으로 나아간 뒤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아버지와 타협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지배계급에 대한 저항정신과 '곧 보자'는 선전포고를 마음 속에 담고 프랑스로 떠나는 드리스의 모습은 독립 전 모로코 사회의 혼란스러운 과도기적 모습을 담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단원의 제목들이 독특하다. 드리스의 생물학적이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위치 등 그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 가부장제 관습에 따른 가정폭력의 한가운데 던져진 유년 시절, 프랑스인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그가 겪는 내적 갈등과 반항과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현실적 한계에 따른 각성과 타협 등 주인공 드리스의 모습을 함축적이자 물리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1926년생 작가가 20대 초반에 쓴 소설로써 1950년대에 출간됐다. 초판 출간 이후 현지에서 상당히 이슈가 됐었다고 하는데, 모로코인이면서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는 작가가 이 작품 이후 어떤 글을 써왔을지도 자못 궁금해진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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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에디터스 컬렉션 16
조지 오웰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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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시점은 1937년 7월 무렵이다. 오웰은 1936년 12월말에 신문 기사를 쓰기 위해 스페인에 갔다가 거의 도착하자마자 POUM(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 소속의 의용군에 들어갔다. 그가 배치된 전선은 아라곤 지방의 사라고사. 


요새같은 자연환경으로 인해 대치만 하는 양측 사이에 전투가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 정작 전투와는 별개로 열악한 무기 상태, 무기 사용 미숙으로 인한 부상, 절반이 열여섯 살 이하의 소년으로 이루어진 병사 구성, 언어와 암호 인지 부족에 의한 상호 소통의 부재, 땔감 부족으로 인한 추위, 물 부족과 불결한 위생 상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지는 보급품 기근, 수면 부족, 숙달된 의료진과 병원 부족. 한 마디로 병사들은 오합지졸이요, 지원도 엉망진창이다.  


오웰은 의용군을 두고 훈련과 무기 부족으로 생겨난 문제들을 의례 평등 시스템의 산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었음을 짚으며 현실적으로,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기강은 생각보다 믿을 만하다고 말한다. '혁명적인' 기강은 정치의식에 좌우되며, 정치의식이란 왜 명령에 반드시 복종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의식임을 설명한다. 의용군이 승리가 아주 드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장에 머물렀다는 사실 자체가 '혁명적인' 기강의 강점을 입증해 준다고 주장하면서 스페인 의용군은 예상하기 힘들 만큼 훌륭한 부대였다고 칭찬한다. 아마도 여기에는 스페인 사람들의 천성에 호의를 품은 오웰의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부분도 일부분이나마 작용한 것으로 느껴진다. 타인을 칭찬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고 재주가 많으며 즉흥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느긋한 스페인인들의 천성을 애정하면서도 다른 측면에서 이러한 점들이 전쟁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에 안타까워하는 듯하다.  


그는 10장에서 내전 이후에도 스페인의 정치적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 내전이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는 거짓말 이후에 파시즘이 들어설 것이며 그 파시즘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파시즘보다는 더 인간적이고 덜 효율적이리라 예측한다. 아무튼 어떤 결점을 지닌 정부라도 프랑코 정권이 더 나쁠 것임은 분명하기에 이 싸움에서 프랑코 무리들을 몰아낼 수 있다면 스페인뿐 아니라 세계정세도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오웰의 예측은 결과적으로 스페인 내전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 된 셈이었으니 기가 막히게 적중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오웰이 아니더라도 당시의 국제 정세와 스페인 내전을 바라본 강대국들의 대처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수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초반에는 내전 당시 스페인의 분열된 정치적 상황과 사회 분위기, 간간이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선과는 다른 바르셀로나의 온도차 등을 오웰이 체감하는 그대로 적고 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급속하게 변하는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 공포 정치와 학살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한편으로는 내전에 참여한 한 사람의 일원에서 외부자의 시선으로 전환하는 오웰의 관점, 무엇보다 그의 너무나 솔직한 심경이 나타나는 10장부터 12장은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이 아닐까싶다.   


이 책에서 오웰 본인이 갖는 경험, 특히 전선에서의 한계는 분명히 느껴진다. 따라서 독자가 읽기에 그가 겪은 경험치를 대부분의 군인들과 같은 연장선에서 놓고 있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 자신이 스페인 정부를 위해 더 유능하게 복무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전쟁을 통한 개인의 발전과 전선에 발을 디딘 처음 3~4개월의 무익함, 그리고 한시라도 스페인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기심'을 언급할 때에는 그가 어쩔 수 없이 그안에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읽다보면 오웰 자신도 은연 중에 이를 인정하는 듯하고(무엇보다 돌아갈 곳이 있는 그와 그렇지 못한 이들의 차이가 아닐까싶기도 하고).  


어쨌든 오웰은 자신도 사람이다보니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느 한 편에 기울어지게 마련이고, 자신의 경험이 온전히 진실만 말할 수 없음을 밝히는데, 그러면서도 그가 끝까지 주목하고 분개하는 점은 '무의미'한 죽음이다. 적어도 이에 대해서만큼은 이후에도 오웰의 마음에 남아있는 듯하다. 



오웰은 이 책의 '부록Ⅰ'을 통해서 바르셀로나에 처음 도착했을 때 스페인의 복잡한 정치적 측면, 즉 당파 간의 대립에 무지했고 이를 간과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프랑코가 이끄는 군사 반란을 비롯해 당시 스페인 혁명과 정치 및 사회의 전반적인 상황들을 설명하고 이것으로써 대중이 오해할 만한 내용들을 짚으며, 여기에 자신의 견해와 주장까지 곁들여 당시를 서술해 나간다.  


그리고 '부록Ⅱ'에서는 바르셀로나 전투에 대해 자신의 경험치를 넘어 좀더 넓은 시각에서 서술하고자하는 목적을 밝히면서 전투의 목표와 그 의의 등 전후 정황을 앞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견해와 함께 서술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 문헌이 '르포문학'으로 구분되면서도 오히려 문학보다는 르포에 더 가깝다는 평을 받는 까닭일 것이다. 오웰은 당파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 그냥 넘어가도 좋다고 썼는데, 개인적으로는 읽어보기를 권한다.   


ㅡ 


책을 읽다보면 전투를 하겠다고, 공격을 하게 해달라고 외치지만 실상 순박하기 그지없는 이 사람들을, 당장에라도 서로에게 방아쇠를 당길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인데 바리케이드 뒤에서 불을 피워 달걀프라이를 만드는 남자들을, 끔찍한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 누워있는 오웰에게 배급받은 일주일치 분량의 담배를 쥐어주고 허둥지둥 병실을 나간 천진한 소년병들을, 어쩌면 좋은가 싶었다. 마치 처절한 전투 장면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이 흘러나오는 영화적 장치를 마주한 것 같은 그런 느낌. 거기에 이토록 곤혹스러운 상황에 유머가 묻어나는 오웰의 필력은 또 어쩌란 말인가.  


거짓으로 점철된 이 전쟁에서 오웰이 바치는 '찬가'는 누구에게 향한 것이려나.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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