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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파티 (반양장) ㅣ 펭귄클래식 79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한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그 생각을 하면 슬픈가? 돌아보면, 돌아보면. 그 세월을 되돌아본다. 세월이 눈에 보이지 않고 오래되었지만 어느 여인네가 하듯이 그 세월을 돌아본다. 그 생각을 하면 슬픈가? 아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이번에 내가 읽은 작품은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집 <가든파티>이다. 뉴질랜드 태생의 그녀는 어린시절 영국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작가가 되었고, 동시대의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 "D.H.로렌스"와 교류를 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였을까? 이 책의 첫번째 단편인 <만으로>를 읽으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가, 두번째 단편인 <가든파티>를 읽으면서 <델러웨이 부인>이 떠올랐다. 그리고 "맨스필드"가 러시아의 단편 황제 "체호프"와 교류 하지는 않았겠지만 짧은 글속에 남겨진 여운이 남는 결말은 "체호프"를 떠오르게 했다. 그녀가 아류작가라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작품이 좋았다는 거다. 찾아보니까 체호프가 오빠였다.
총 15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는 <가든 파티>를 관통하는 단어는 '우울' 과 '죽음'이었다.
가족이지만 서로의 속마음은 알지 못한 채 다른것을 생각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를바 없는 이야기인 <만에서>,
아버지의 죽음 후에도 남아있는 아버지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두 자매 이야기인 <죽은 대령의 딸들>,
남편을 잃고 다자녀를 홀로 힘겹게 키웠지만 남는건 비루한 인생인데다, 사랑하는 손자마저 잃어버렸지만 어디든 울 곳이 없는 외로운 인생 이야기인 <마 파커의 일생>,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를 타지에 남겨둔 채 할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멘스필드"의 자전적인 느낌이 드는 <항해>,
사랑하는 사람의 글 때문에 지옥과 천당을 경험하는 <노래 수업>까지,
대부분의 작품에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울과 죽음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아, 혼자 숨어 원하는 만큼 머물 곳,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아무도 걱정해 주지 않는 곳은 없을까? 이 세상에서 맘껏 울 수 있는 곳은 결국 없는 것일까? ] P.185
하지만 이 책에서 단연 좋았던 두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표제작인 <가든 파티>와 <낯선 사람> 이었다.
1. <가든 파티>
열심히 가든 파티를 준비하고 있던 당신의 집은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파티를 준비하던 중 집 근처에 사는 한 남자가 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남자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많은 가족을 먹여살리고 있었는데, 부자인 당신과는 다르게 찢어지게 가난한데다 당신과는 일면식도 없다. 당신이라면 파티를 취소할 것인가? 아니면 상관없이 파티를 열 것인가?
주인공인 딸 "로라"는 가족들에게, 우리가 파티를 하면 악단과 손님들이 와서 초상집에 소리기 들릴 것이기 때문에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파티의 취소는 말이 안된다면서 "로라"를 설득한다. 결국 파티는 열리고, 성공적으로 끝나지만 "로라"는 왠지 안타까운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어머니의 제안에 따라 "로라"는 파티 음식을 직접 가져다 주기로 하고, 초상집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기와 다른게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사고로 숨진 남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는다. 왜 어떤 인생은 그렇게 화려하면서, 어떤 인생은 그렇게 비참한걸까?
["인생이, 인생이......" 그녀가 더듬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로리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정말 그렇지?" 로리가 말했다.] P.114
2. <낯선 사람>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바로 <낯선 사람> 이었다. "제이니"는 유럽에 사는 맏딸을 방문하기 위해 떠났었고, 10개월만에 뉴질랜드로 돌아온다. 부인인 "제이니"를 맞이하기 위해 부둣가에서 남편인 "해먼드"는 배의 입항을 기다리지만, 배는 접안을 하지 않고 계속 떠있기만 한다. 왠지 불안함을 느끼는 "해먼드"는 오랫동안 부인을 못봐서인지 마치 그녀가 사라질것만 같은 마음이 든다.
유럽에서, 그리고 뉴질랜드로 오는 배 안에서, 그 10개월 동안 그녀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자신만 모르는, 그녀만이 아는 추억들로 인해 "해먼드"는 괴로워 하고, 결국 부인인 "제이니"를 낯선 사람에게 빼앗겼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이제 더이상 부부는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없다는 걸 암시하면서 작품은 끝난다.
<낯선 사람>을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제임스 조이스"의 <죽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꼭 그렇게 자기만 알고 있는 추억을 상대방에게 말해야만 했을까? 한번 나온 말, 한번 느낀 실망은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데 말이다.
도서생님의 어마무시하고 장황한 작품을 읽다가 "맨스필드"의 함축적이고 감성적인 단편들을 읽으니 하루만에 뭔가 새로운 세계로 옮겨온 느낌이 든다. 짜장면과 스파게티의 관계라고나 할까? "맨스필드"의 섬세한 문장과 묘사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문체가 선명하지 않다보니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불투명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