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데뷔작이다. 내가 읽은 도선생님의 7번째 작품(권수로는 13권이다 ㅎㅎ). 유명한 책만 골라 읽는 나에게 있어서 특정작가의 책을 이렇게 많이 읽은건 손에 꼽을 듯 하다.

일단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은 도선생님은 정말 대단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의 심리를 이렇게 완벽하게 묘사하다니, 가난한 사람의 사랑을 이렇게 애절하게 그리다니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도선생님은 인간의 심리를 세밀한 문장으로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이 책은 찢어지게 가난한 나이 많은 하급관리 ˝제부쉬낀˝과 불행한 가정사에 의해 가난하게 된 젊은 여성인 ˝바르바라˝가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서로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서간채‘  형식의 소설이다. 이런 비슷한 형식의 책으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나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을 주세요‘를 아주 재미있게 읽어서인지 매우 반가윘다.

둘은 옆집(?)에 사는데 서로 찢어지게 가난하면서도 서로를 배려 하면서 힘든시기에 정신적인 지원자로 지낸다. 정말 먹을 것도 없고, 옷도 없음에도 가진것을 모두 팔아 ˝바르바라˝를 도와주는 ˝제부쉬낀˝의 모습은 너무 불쌍해서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제부쉬낀˝은 이러한 무조건적인 배려를 그녀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보여줌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반면 ˝제부쉬낀˝이 그녀에게 보여주는 태도가 ‘사랑‘이라면, ˝바르바라˝가 그에게 보여주는 태도는 ‘연민‘에 가깝다. 무조건적으로 퍼주는 그의 태도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그녀도 그에게 의지하면서 그를 물질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도와주지만,   더이상의 관계 진전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의 편지가 장황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느낌이라면, 그녀의 편지는 내용이 좀 더 현실적이었고, 간결하였으며, 어느정도 거리를 두는 느낌이었다.
(해설에는 이게 문학적 빈곤이라 써있던데, ‘아‘  하고 인정했다. 근데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까진 생각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현실을 택하게 되고, 그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즐거웠던 추억 중에서 새 생활로 가져가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야 당신에 대한 회상이 더 값질 테니까요. 그렇게 해야 당신이 저의 가슴속에서 더 소중하게 남으실 테니까요. 당신은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저의 친구입니다. 여기서 절 사랑해준 사람은 오직 당신 한사람 뿐이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절 사랑하셨는지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 저의 미소 하나로, 제가 쓴 한 줄의 편지로 당신은 행복을 느끼셨지요.」

이 편지를 받은 ˝제부쉬낀˝은 마지막이지만, ˝바르바라˝에게 전하지 못한 예절한 편지를 끝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제게 편지를 한 통만 더 쓰세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써서 한 통만 더 보내 주세요.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것이 마지막 편지가 되잖아요. 절대 그럴수는 없습니다....사랑하는 이여, 소중하고 소중한 내 사람이여!」

이 작품은 도선생님의 유일한 사랑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아직 안 읽은 책이 많지만, 왠지 그럴거 같다. 해설을 보면 이 작품을 단순히 사랑이야기로 볼 수는 없다지만(문학적 빈곤이 핵심임~!)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읽은 작품들의 정신분열적인 특성을 봤을때는 이 작품이 그나마 서정적이다.(어디까지나 상대적인...이 작품은 절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위대한 작가들의 데뷔작은 정말 다르긴 하다. 전혀 미숙하지 않으며, 이후 도선생님의 작품속에 잘 나타나는 심리묘사의 기법이 잘 녹아들어 있다. 중간중간의 풍자적인 우스꽝스러운 장면도 곳곳에 보인다. 그래서 읽기에 지루함이 전혀 없다.

단순한 나는 책을 읽고나니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가 떠올랐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도선생님 책을 모아놓고 사진촬영~! 악령하권은 어디간건지 ㅎㅎ 언젠가는 다시 읽어야 겠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4-18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8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1-04-18 23: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말씀처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소설인것 같아요 근데 저는 이 책 읽으며 제부쉬낀이 바르바라를 사랑했는지 아님 후견인으로서 역할인지 좀 혼란스러웠어요. 사랑을 뛰어넘은 관계인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마지막 바르바라의 선택이 넘 아쉬웠어요 ㅠㅠ
신경림시인의 시도 넘 좋아요 ^^

새파랑 2021-04-19 00:07   좋아요 4 | URL
아 후견인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네요. 전 ˝제부쉬낀˝이 너무 가난해서 그렇게 생각을 못했는데 페넬로페님 글 보니 아하 하는~! 저도 마지막 선택이 아쉬웠어요 ㅜㅜ

scott 2021-04-19 00:55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도끼 선생의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도 추천 합니다
도끼 선생 작품중 거의 유일한 중편작에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작품으로 소녀가 십대로 넘아가는 심리묘사가 뺴어난 숨겨진 명작! 원래 6부작으로 완성할 예정이였지만 3부작 마치자 마자 시베리아로 끌려가서 ㅜ.ㅜ

도끼 선생 완독 하시면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추천합니다. ㅎㅎ
수전 손택 여사의 멋진 서문, 도끼선생의 겜블 중독과 간질 발작 그리고 아내 안나의 헌신적인 사랑이 담김 ^@@^

새파랑 2021-04-19 06:36   좋아요 3 | URL
추천해주신 두권의 책 읽어보겠습니다^^ 너무 재미있을거 같아요 ㅎㅎ 역시~!!

Jeremy 2021-04-19 09:01   좋아요 3 | URL
저도 Scott 님 댓글 읽고
Summer in Baden-Baden by Leonid Tsypkin
Amazon 에서주문했어요. 알
라딘에서 정말 여러가지 많이 배웁니다.
아무래도 영.미 문학이나 책에만 편향되기 쉬운 상황인데
새파랑님이랑 계속 같은 책 읽어나가면 정말 즐거울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1-04-19 09:59   좋아요 3 | URL
맞춤형 추천책 너무 좋은거 같아요 ㅎㅎ 알리딘 정말 좋다는^^ 저도 Jeremy님이 읽으시는 책 잘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모나리자 2021-04-19 06: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시네요! 하나같이 모두 두꺼운 책인데.. 도선생 초 마니아!!ㅎ
책 포스도 멋져요.^^

새파랑 2021-04-19 07:25   좋아요 3 | URL
아직 안읽은 작품이 많아서 마니아 수준은 아니지만 다 읽어보고 싶네요^^

미미 2021-04-19 09: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도선생님 컬랙션 근사하네요!!
저에게는 따뜻하고 슬픈 사랑이야기로 남았는데 새파랑님 리뷰 읽어보니 그런 함의가 있었군여. 그리고 열린책들 민음사 문학동네 정답게 모였네요?😆
‘가난한 사랑노래‘ 마무리도 멋짐요!
( ᵘ ᵕ ᵘ ⁎)👍

새파랑 2021-04-19 10:02   좋아요 2 | URL
저도 읽을때는 슬픈 사랑 이야기로 읽었어요. 해설 보니까 오잉? 그런거였어? 했다는 ㅎㅎ
여러군데 퍼져있는 책 간만에 모아봤어요^^

새파랑 2021-04-19 10:04   좋아요 2 | URL
아 원래 민음사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열린책들의 양장이 맘에 들더라구요 ㅎㅎ

미미 2021-04-19 10:14   좋아요 2 | URL
저도 처음엔 민음사만 샀는데 열린책들 그립감?이 좋은것 같아요.ㅋㅋ 크기도 아담하고 표지도 예쁘고요.
읽기에도 적당한 간격과 느낌!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4-19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이 두꺼운 책을. 속도가 부럽습니다용 ^^ 이제 도끼 선생 찐찐팬 되신겁니까.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보기만 해도 므흣므흣하겠어요.^^

새파랑 2021-04-19 14:38   좋아요 0 | URL
이책 별로 두껍지 않습니다ㅎㅎ 책은 언제나 보면 배가 부른거 같아요^^

mini74 2021-04-19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폭주기관차 ㅎㅎㅎ 도선생님은 카리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다인데. 덩달아 읽고싶어지는 저는 덩달이ㅠㅠ 입니다 ㅎ

새파랑 2021-04-19 20:51   좋아요 1 | URL
덩달아 ㅎㅎ 저도 다른 분들 보면 덩달아 읽고싶어집니다 ^^ 죄와 벌 완전 강추합니다. 러시아식 이름 외우기가 부담된다면 ‘가난한 사람들‘도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