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언덕의 풍경‘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데뷔작이다. 그의 작품이 많지 않아서 다 읽어보기로 생각중이며, 순서대로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은 내가 읽은 그의 네번째 작품^^ (남아있는 나날, 나를 보내지마, 클라라와 태양)
우선 이 책은 제목처럼 ‘창백‘하다. 문장에 유머는 없고, 명확하게 설명되는게 없으며, 인물들은 모두 비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읽다보면 답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후반부에 무슨 일이 일어날거라 생각하고 집중해서 읽어서 나름 흥미진진 했다. 추리소설 읽듯이 ㅎㅎ 이시구로의 초창기 이러한 분위기가 이후에 나오는 작품에서는 더욱 세련되게 발전하는 것 같다.
이야기는 영국남성과 재혼을 한 ˝예츠코˝의 영국에서의 생활과, 일본에서 경험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그녀에게는 일본인 남편 사이에서 낳은 ˝게이코˝와 영국인 남편 사이에서 낳은 ˝니키˝라는 두 딸이 있다. 하지만 ˝게이코˝는 목을 매 자살을 하고, 이런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런던에서 ˝니키˝가 온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그녀는 자살한 자신의 딸인 ˝게이코˝를 기억하는게 아니라, 일본에서 잠시 알았던 ˝사치코˝와 그녀의 딸인 ˝마리코˝를 기억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 여인(엄마)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두 이야기가 정교하게 이어진다. 과거의 ˝사치코˝와 ˝마리코˝가 현재의 ˝에츠코˝와 ˝게이코˝와 삶이 비슷하며, 자신의 삶을 바꾸려는 두 여인의 노력은 결국 딸의 상실을 가져온다.(이건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다)
과거의 ˝에츠코˝는 삶을 바꾸려는 ˝사치코˝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수동적인 인물이었다면,
현재의 ˝에츠코˝는 과거 ˝사치코˝가 했던 행동들을 따라하게 된다.(책에는 이게 자세히 그려져 있지 않지만, 현재의 모습으로 내가 유추한 것임 ㅎㅎ)
그럼에도 두 여인의 주변 인물들은 어떻게든 미래를 위한 자주적인 삶을 개척해 나간다. 개인적으로 ˝니키˝가 미래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그녀가 런던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중간에 많은 이야기들은 스포 때문에 설명을 생략한다.)
「기억이란 믿을 만한 게 못된다. 기억은 종종 그것을 떠올리는 현재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내가 본 이 책의 핵심 문장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인 ˝에츠코˝가 회상하는 과거 일본에서의 창백한 언덕 풍경과 ˝사치코˝, ˝마리코˝의 기억은 뭔가 불분명하고 모호한 부분이 많다. 이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묘사한 것이라 본다. 그러한 측면 때문에 더욱 궁금증이 유발되지만, 이야기 흐름이 답답한 점이 있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작품이다.
이건 스포일 수 있지만 뒷부분의 역자 해설을 보면 ˝게이코˝는 자살을 했지만 ˝마리코˝는 도망을 친 것으로 써져 있던데, 나는 둘다 자살을 한걸로 이해했었다.
왜냐하면...
(현재)「엄마 말 속은 그러니까 게이코 언니였다는 거죠?」
「아니란다, 게이코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그러니까 내 꿈에 나온 소녀는 그네를 타던 아이가 아니었다. 처음에누 그런 것 같았지. 하지만 그 애가 타고 있던 것은 그네가 아니었어.」(126페이지)
(내 생각 : 그네가 아니라 그와 비슷한, 목매단걸 본 기억을 이야기하는거 아닌가?)
(과거)「아무리 살펴봐도 그것은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었다. 나무에 매달린 채 발견된 비극적인 어린 소녀의 시신은 그해 여름 그런 이미지들로 마음이 심란해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204페이지)
(과거)「마리코 : 왜 그걸 들고 있어요?」「에츠코 : 말했잖니, 내 발에 (밧줄이) 감겨 있었다고. 도대체 왜 그러니?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거지? 난 널 해치지 않아」
「마리코 : (아이는 달려서 도망간다)」(227페이지)
아니면 현재의 ˝게이코˝의 자살이 과거의 기억에 영향을 준 것 일수도 있고.....
간만에 다 읽고 난 후, 해설을 보고 이해를 못해서 다시 펼치게 한 책이다. 그래서 늦잠잤다는... 내 이해력이 부족함을 느꼈다는 ㅎㅎ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를 싫어한다면 이 작품은 패쓰하는게 좋을것 같다.(개인적으로는 좋았다^^)
다음 읽을 작품은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