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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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글은 늘 뾰족하고 선득한 느낌이 있었다. 덤덤하고 건조하게 씌어진 글을 읽을 때면 다정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내가 읽은 두 편의 소설이 그랬고 이 에세이도 그렇다. 작가 특유의 느낌이 있어 역시!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언젠가 작가 사진으로 본 모습에서 왜소하다 생각했는데 실제 몸이 약한 분이다. 본인의 얘기 속에서 어린 시절 받은 상처와 약한 신체로 인해 겪은 불의와 예민한 감각들이 지금의 작가 황정은을 만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사회적 약자로 여러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강한 연민을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얼마전 읽었던 필립 로스의 울분의 나온 인물처럼 황정은 작가에게 울분은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이들의 삶을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삶을 사는 많은 무심한 이들에게 따끔하게 찔러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는 글을 써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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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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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문호인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작품인 햄릿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 널리 알려진 것들도 생각해 보면 아동용으로 편집된 책이었거나 극이나 짧게 소개된 글로만 접했던 것 같다. 이렇게 원문을 읽은 것이 처음이라 생소하면서 진짜 고문을 읽는 듯한 느낌도 가지면서 운문스럽고도 소리내어 발음을 하면 착착 입에 붙는 것 같은 글이 매력적이었다. 사실 셰익스피어가 직접 쓴 글이 아니라 배우들의 기억에 의존해 만들어지고 여러 판본이 전해진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렇기에 더 많은 해석들이 나오고 그만큼 햄릿의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역자의 해설이나 각주를 보긴했으나 내 생각이 그에 다 동의되지는 않았다. 있음이냐 없음이냐로 해석한 투비 올 낫투비도 썩 내키지 않는 번역 같았다. 이 말 뒤로 죽음에 대한 햄릿의 복잡한 심경이 아주 길게 자세하게 나열되기때문에 죽느냐 사느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책 읽기 이전에 익히 들어 온 우유부단의 대명사로서의 햄릿과는 내가 보기엔 많이 달랐다. 그는 오히려 주도면밀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부친 유령으로 부터 죽음의 진상을 알고 나서도 삼촌이 자신의 악행을 연기한 극 앞에서 반응을 보고서야 확신을 갖고 자신의 계획을 철저히 관리하고 실행하는 모습에서 영리하고 용기있는 인물로 보이기까지 했다. 상대인 삼촌인 왕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냉철하게 판단하고 허투루 자신의 악행이 드러나지 않게 하며 주변인들에게 인심을 얻는 좋은 군주의 행색을 하는 최고의 모사꾼이라 작가의 능력을 가늠케 한다. 안타까운 점은 오필리아나 왕비가 당시 시대의 여성상이 반영된 것이겠으나 애처로울 정도로 의존적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녀들의 말을 보면 멍청한 여자가 분명 아님에도 자신생각과 의지의 피력을 해 보지도 못하고 오빠와 아버지, 연인, 남편에 종속되어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고 심지어 그 남자들로인해 실성하는 모습에서 다시한번 여성의 비참한 삶의 역사성을 보는 것 같았다. 이 또한 작품의 비극이라 할 수 있겠다.
함축적이고 의미심장한 글들이 많이 보였다. 꼼꼼히 작정하고 보다 보면 엄청난 명언 제조도 가능하리라.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읽은 적이 없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원전으로 꼭 읽어보아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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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의 신호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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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선 감당이 되지 않는 너무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루실이지만 또한 그래서 매력적인 인물이다. 나로선 도저히 그렇게 살아 낼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서 동경하게 되는 삶을 루실이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남자버전으로 조르바가 있듯이.
그녀의 두 남자, 샤를과 앙투안 그녀는 둘 사이에서 재거나 계산하지 않는다. 그녀가 누구를 선택하든 납득하게 되는 놀라운 글에 감탄하게 된다. 너무 뻔하고 통속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사랑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사강의 전작에서 보였던 장면들, 침대에서 꾸물거리기, 아침을 오렌지 한 조각으로 떼우기, 자동차 드라이브 씬들이 사강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이 익숙해 읽는 동안 팬심이 절로 든다. 프랑스 사교계를 엿보는 즐거움도 있었고 닳고 닳은 중년들의 시선들, 허세와 가식이 가득한 세계에 순수하고 열정 가득한 젋은 남녀의 사랑이 반짝이고 사그라드는 것이 너무 뻔한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내겐 가슴절절하게 다가왔던 것은 루실과 앙투안의 순수함이었을까. 순수함 사랑의 열정 그런것들을 우리모두 욕망하고 동경하기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 루실이 샤를과 결혼했다는 문장을 본 순간 난 소름이 끼쳤다. 세상에 없는 크고 넓은 아량과 지고지순한 루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던 샤를이 애초에 이런 결말을 생각하고 마침내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루실은 발목 잡혔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퇴각의 북소리에 무감해지는 루실과 앙투안의 모습이 내겐 너무 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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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가 잠든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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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와 연명치료,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문제를 주제로 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다. 전에 읽은 작가의 책과는 결이 다르지만 문제의식이나 당사자와 가족, 친지 각종 관계자와 대중들의 시선들을 다각도로 담고 있어 여러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하고 아무리 미친 짓을 해도 그 사람의 심정에서 헤아려 볼 수 있게 써 있어 독자의 몰입과 공감을 끌어내는 솜씨가 아주 뛰어난 작가이다.
이 책을 통해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새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나도 가족들에게 사후 기증에 대한 의사를 밝히고 서로의 의견을 묻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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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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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 날개에 저자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바탕으로 책을 읽게 되는데 이 책은 겉표지가 벗겨져 도서관 대출을 해서인지 저자에 대한 아무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막연히 20세기 이전의 사람일 것이라 생각을 했다. 장인 뮈사르를 제외한 부분에선 전혀 시대에 대한 묘사가 없었음에도 고전이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다 읽은 후 작가를 찾고 출생년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생존해 계신 분이 아닌가.
역사학을 전공했다고 나오긴 하지만 이 책에 나온 단편들과 짧은 에세이에선 인간의 심리에 대한 통찰이 대단한 작가로 여겨졌다.
<승부>에서 뭔가 있어보이는 정체를 모를 젊은이가 동네 체스 챔피언인 노인과 두는 체스 경기장면은 앞서 내가 막연히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를 19세기쯤 활동하던 작가로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냉철하고 신선한 관점을 전달해 주는 멋진 고전을 쓴 천재적인 작가라고 생각하고 글을 읽었다가 진상을 안 후 느낀 부끄러움과도 다르지 않았다.
승부의 노인은 체스를 그 일이 있은 이후 접기까지 했으니…
나름 그 지역, 구역에선 내노라 할 만한 탄탄한 실력의 노인이 체스를 그만둔 연유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

<장인 뮈사르의 유언>은 구두장인 아들이었던 그가 금세공장인으로 성공하여 당시 유명했던 지식인들과의 교류하며 비록 정규교육과정을 밟은 지식인들과는 다르지만 그들과 어울림에 손색없는 사람으로 은퇴생활을 할 교외 저택에서 우연히 화단을 파다 발견한 돌조개에서 출발한 이 모든 이야기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죽음을 앞두고 유언이라 말하는 그가 발견한 세상의 비밀.. 그의 입장에선 그럴듯하고 당시 17~18세기 과학지식이 지금처럼 공교육으로 습득할 수 없었다면 믿고 맹신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법하다. 유럽의 식수에 석회 성분이 많다는 사실과 그가 앓았던 병과도 영 관련이 앖진 않았을 것 같고 그가 발견한 아마도 폐총(조개무지)은 인류가 삶의 터전으로 삼은 곳곳에 흔히 발견되는 유적이니 또 얼마나 그럴싸한 것인가 싶기도 했고 한 두번 폐총 유적을 실제 발견한 사실이 있다면 그 사실에 사로잡혀 흥분하면 또 비슷한 석회질의 토양과 암석은 다 폐총 유적지로 보이는 착각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싶으면서 그가 금세공일도 않고 이 일에만 골몰하여 관련 서적들을 섭렵하기까지 했으니 그 착각과 착란의 순간들은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에서 사실적인 이론들로 정립되기 쉬웠을까 싶은 것이다.
뮈사르의 사고의 단계들을 보며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내게도 이런 비약의 우를 범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짧은 에세이에서 아주 제대로 공감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그렇게 읽고 수없이 읽었지만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제대로 인용할 수도 없는 나의 독서는 대체 뭐가 문제인가라는 생각을 작가도 하고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그 덕에 표절에 휘말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 새벽에 졸리운 눈을 부비며 독서후기를 쓰는 나 자신도 그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망각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이 마음 이 심정 이 느낌을 남기고픈 것이다.
그렇게 망각하여 남은 것이 없는 것 같아도 먼 훗날 작은 조각이든 얼기설기 다른 것과 엮여져 면면히 영향을 주더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앞으로도 계속 독서를 하는 것이라고 작가도 나도 공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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