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김계영 외 옮김 / 레모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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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을 프랑스판으로 보는 것 같았다. 좀 더 사변적이고 독백과 같은 주인공의 말로만 이루어진 소설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은밀하고 솔직한 자기 고백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 소녀가 자라오며 본 자신과 자신의 부모님 친구 친구네 부모님 학창시절, 사춘기, 연애, 결혼, 육아까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돋보인다. 결혼이후부터는 글의 문체에서 불만의 감정이 느껴진다. 저항의 감정이 속도감 있게 다다다 말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 읽는 내게만 느껴진 것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공감하고 동조할 수밖에 없는 내용과 글이지만 불행한 여자 삶을 탓하는 것처럼 여겨져 어느새 삐딱한 독자가 되어벼렸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줄곧 원치 않던 삶을 강요받다 그렇게 흘러가 버린 안타까운 여자의 인생 앞에 무력하게 얼어붙었다라는 표현이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며 잊고 있던 책의 제목을 상기시켜준다. 나도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이런 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많이 다른 것 같다. 가치관의 차이(가사나 육아가 폄하되는 면)겠지만 가사와 육아, 외부 사회활동에 있어 남녀가 평등하고자 하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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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목격자들 - 어린이 목소리를 위한 솔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연진희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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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목격자들.. 가장 최근까지 전쟁을 목도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뜻이니까 천년만년 사는 사람이 없다면 전쟁 당시 아이들이라는 말이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도 아니고 아무런 전쟁과는 이해관계도 없는 이들이 목격자가 되어 하는 말이라는데에 의미를 두고 있다. 본능이나 순수에 가까운 이들의 목격담이기에 사상이나 이념따위 없는 시선으로 전쟁을 한번 바라봐 어때?
라고 작가가 말을 거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고 밟고 수치를 주고 총을 쏘아 죽이고 그걸 재밌다고 낄낄거리는
엄마, 아빠, 형제와 흩어지고 모르는 아줌마 할머니가 거둬 길러주고 게토로 끌려가지 않도록 목숨걸고 연대해 감싸주고
굶주려 죽어가면서도 더 굶주린 사람을 위해 먹을 것을 건내는 인간의 밑바닥과 인간의 고양된 양심을 다 목격한 그들에게서 뭐라 말을 이을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그런 목격자들이 벨라루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구 곳곳에 그래 왔고 지금도 진행중인 것이다.
내 아버지도 6.25를 겪으셨는데 그 기억을 자식들에게 풀어내신 적이 없다. 그렇게 산업역군으로 이 나라를 갈고 닦아 일으켜 세운 그들이 다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은 목격자들인 것이다. 너희가 배고픈 적이 있느냐. 이산의 아픔, 참상에 대한 기억이 이런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악착같고 열심이고 부지런히 살뜰하게 내 식구 먹이고 챙기느라 급급해 옆도 뒤도 못 돌아보던 그들이 마지막 목격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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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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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 죽어서 세실에게 슬픔이 되었다.
진정 슬픔이라는 감정을 마주 대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세실이 되었으리라.
슬픔이여 안녕에서 안녕이 봉주르 인 것을 책 뒤의 작품 해설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말이 그 전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완전 다른 것으로 다가왔다.
세실의 성장이 느껴졌다.
한 순간의 충동적 감정으로 시작된 장난의 파국이 간단한 줄거리라 할 수 있는데 주인공 세실은 사춘기 소녀라고 단순히 보기 어려운 매우 복잡하고 섬세한 면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 레몽, 젊은 연인 엘자, 세실을 사랑한 시릴까지 모두 경박하고 허영심 있는 사랑의 포로들 같은 사람들이고 지적이고 엄격한 안은 이들과 대조되어 외로운 상대진영의 인물이다. 대체로 세실도 줄곧 인정하는 멋진 안 이지만 완벽한 안과 같은 인물을 나도 좀 알고 있는 면이 있어 세실의 장난에 내심 공모하듯 읽기도 했던 것 같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말에 이르러 공모했던 커플들은 와해되고 한동안 애도의 기간을 가진 부녀는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문득 꿈에서 만나는 안은 세실의 “슬픔”이라는 감정을 가져다 준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인간사이지 않나.
보는 사람에 따라 끔찍한 트라우마일 수도 있지만 살아있
는 사람의 삶은 계속 되는 것 처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비슷한 정서로 내게는 읽혔던 것 같다. 인간의 내면을 이렇게 솔직하고 정교하게 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작가는 여태 내가 본 중엔 정말 드문 작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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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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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영감의 불안한 직장생활과 망쳐버린 자식농사로 인한 가족 갈등. 그 끝에 가장의 자살로 마감된 비극을 다루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끊임없이 떠 올리며 현실의 각박하고 비참한 상황들을 무시하고 회피하는 윌리. 망상으로 사고 위험까지 겪으면서 영업 실적이 저조하여 박봉에 각종수리비에 할부금까지 갚아야하는데 백수 건달로 집에 들어와 있는 큰 아들과 마냥 세상 해피하게만 사는데만 관심이 있는 둘째 아들까지…살아도 사는게 아닌듯 지하실 가스관에 호스를 연결하며 극단적 생각까지 하던 차에 두 아들이 의기투합하여 한때 큰아들을 좋게 봤다던 사업가를 찾아가 투자를 받아 내어 사업을 하기로 계획을 한다. 동시에 자신은 나이와 건강을 생각해 좀 적게 받더라도 원거리 외근은 피하고 본사에서 일 할 수 있도록 현 사장(사장 아버지와 친분이 있어 이름도 지어줬던)에게 얘기해 보러 가지만 되려 권고 사직을 당하게 된다. 큰 아들 비프도 투자를 받기는 커녕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사장에게 실망한데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평소 도벽이 발휘되어 만년필을 집어들고 와 더욱 곤란한 상황을 만들게 된다. 이 사샐을 감추려던 해피와는 반대로 비프는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지난 세월 자신의 과오와 그런 자신으로 양육한 아버지를 원망하며 부자간의 갈등이 고조된다. 아들의 말에서 찰리와 버나드의 말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며 화해 했더라면 다른 결말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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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공 2021-11-0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하면 그건 윌리가 아니지… 다시 읽어보니 그렇다.
곧 죽어도 허풍에 위선을 떨며 남자의 자존심이 중요했던 윌리
그런 윌리같은 사람이 흔하고 도처에서 발견되기에 이 책은 고전인가 본가..

아공 2021-11-02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읽었을땐 그래도 윌리네 가족 중에 린다는 꽤나 합리적이네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온 식구가 다 똑같아.
자신들의 논리와 행복회로에 단체로 취해있어 더 서글펐다. 맨 마지막 장남이 그래도 뭔가 깨달은 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랑 식사하기로 한 식당에서 정신이 온전치도 않은 아버지 방치하고 여자랑 놀다 와선 엄마한테 꽃다발 내미는 거 보고 비프도 아직 멀었다 싶었다.
 

공상과학소설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그 병이 또 도졌다. 자꾸만 과학적으로 따지게 되는 이상한 병이다. 아예 허구맹랑하면 포기가 될텐데 중간에 구체적으로 과학작 사실들을 나열하며 설명을 하면 또 오류나 허점을 자꾸만 찾으려들어서 독서에 방해가 되는데 이 책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생가설의 외계생명체가 인체에 들어와 살고 있다는 발상은 재미있고 신선했다. 천재예술가나 무엇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기이한 사람의 능력도 사실 알고보면 말이야… 우리 몸에 들어와 살고 있는 생명체(외계이든 돌연변이든)의 소행이야. 생각을 하니 너무도 그럴싸해서 신이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아기 울음소리 패턴을 분석하는 것, 뇌의 패턴? -뉴런의 전기신호를 뜻하는 걸까- 데이터를 분석해 대화를 찾아내는 부분이 말이 안되지만 혼자 다른 상상을 하며 한참 웃었다. 아기들 뇌에서 뉴런의 전기신호를 무슨 무선데이터 통신하듯 주고 받고 그걸 중간에 해킹해 데이터 분석하는 연구원들이 연상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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