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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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 날개에 저자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바탕으로 책을 읽게 되는데 이 책은 겉표지가 벗겨져 도서관 대출을 해서인지 저자에 대한 아무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막연히 20세기 이전의 사람일 것이라 생각을 했다. 장인 뮈사르를 제외한 부분에선 전혀 시대에 대한 묘사가 없었음에도 고전이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다 읽은 후 작가를 찾고 출생년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생존해 계신 분이 아닌가.
역사학을 전공했다고 나오긴 하지만 이 책에 나온 단편들과 짧은 에세이에선 인간의 심리에 대한 통찰이 대단한 작가로 여겨졌다.
<승부>에서 뭔가 있어보이는 정체를 모를 젊은이가 동네 체스 챔피언인 노인과 두는 체스 경기장면은 앞서 내가 막연히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를 19세기쯤 활동하던 작가로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냉철하고 신선한 관점을 전달해 주는 멋진 고전을 쓴 천재적인 작가라고 생각하고 글을 읽었다가 진상을 안 후 느낀 부끄러움과도 다르지 않았다.
승부의 노인은 체스를 그 일이 있은 이후 접기까지 했으니…
나름 그 지역, 구역에선 내노라 할 만한 탄탄한 실력의 노인이 체스를 그만둔 연유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

<장인 뮈사르의 유언>은 구두장인 아들이었던 그가 금세공장인으로 성공하여 당시 유명했던 지식인들과의 교류하며 비록 정규교육과정을 밟은 지식인들과는 다르지만 그들과 어울림에 손색없는 사람으로 은퇴생활을 할 교외 저택에서 우연히 화단을 파다 발견한 돌조개에서 출발한 이 모든 이야기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죽음을 앞두고 유언이라 말하는 그가 발견한 세상의 비밀.. 그의 입장에선 그럴듯하고 당시 17~18세기 과학지식이 지금처럼 공교육으로 습득할 수 없었다면 믿고 맹신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법하다. 유럽의 식수에 석회 성분이 많다는 사실과 그가 앓았던 병과도 영 관련이 앖진 않았을 것 같고 그가 발견한 아마도 폐총(조개무지)은 인류가 삶의 터전으로 삼은 곳곳에 흔히 발견되는 유적이니 또 얼마나 그럴싸한 것인가 싶기도 했고 한 두번 폐총 유적을 실제 발견한 사실이 있다면 그 사실에 사로잡혀 흥분하면 또 비슷한 석회질의 토양과 암석은 다 폐총 유적지로 보이는 착각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싶으면서 그가 금세공일도 않고 이 일에만 골몰하여 관련 서적들을 섭렵하기까지 했으니 그 착각과 착란의 순간들은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에서 사실적인 이론들로 정립되기 쉬웠을까 싶은 것이다.
뮈사르의 사고의 단계들을 보며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내게도 이런 비약의 우를 범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짧은 에세이에서 아주 제대로 공감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그렇게 읽고 수없이 읽었지만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제대로 인용할 수도 없는 나의 독서는 대체 뭐가 문제인가라는 생각을 작가도 하고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그 덕에 표절에 휘말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 새벽에 졸리운 눈을 부비며 독서후기를 쓰는 나 자신도 그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망각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이 마음 이 심정 이 느낌을 남기고픈 것이다.
그렇게 망각하여 남은 것이 없는 것 같아도 먼 훗날 작은 조각이든 얼기설기 다른 것과 엮여져 면면히 영향을 주더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앞으로도 계속 독서를 하는 것이라고 작가도 나도 공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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