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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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김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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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가슴 아픈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해 우리의 군함이 침몰되어 당시 배에 타고 있던 46명의 군인들이 순직하게 된, 바로 ‘천안함 사건’이다. 놀랍게도, 그리고 너무 부끄럽게도 나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다. 당시 12살의 나이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정도의 수준으로만 알고 있던 것이 너무도 무안하고 낯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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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이 책이 바로 그 ‘천안함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제목만 보고 구입했던 책이어서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이면을 고발하는 차원의 르포 형식으로 쓰인 책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보다 집중적으로 조망하여 서술한 책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천안함 사건’ 자체의 숨겨진 진실보다는 그 사건을 겪어낸 ‘생존장병들의 사건 이후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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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이들이 사건 이후 고통스러운 삶에 시달려야 했던 원인을 미시적 관점(PTSD)과 거시적 관점(냉혹한 한국 현실)에서 분석하고, 실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을 해소하기 위해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었으며, 우리가 앞으로 가져야할 시각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전부 적기엔 인스타 피드 양의 한계치를 넘어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과 분노했던 부분 등을 중심으로 이 책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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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가장 화나고 놀랐던 것은 바로 생존장병들을 대하던 한국의 현실이었다. 이 사회는 살아남은 병사들을 보듬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냉담하고 참혹한 태도만을 보였다. 이를테면 국방부는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게 된 책임을 생존병사들에게 떠넘겼고, 언론은 이런 시각을 더욱 크게 확산시켰다. 그들의 주장은 정리하자면 이렇다.

- 천안함의 장비로도 적의 잠수정과 어뢰를 충분히 탐지할 수 있었다.

- 당시 대잠 위협이 있었음에도 경계 등급을 상향 조정하지 않았다.

- 즉, 병사들의 경계 작전 실패로 인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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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은 전혀 달랐다. 80년대에 만들어진 당시 천안함이 보유한 장비는 9~13kHz 정도의 주파수를 청음하게 되어 있으나, 북한이 썼던 유도 어뢰의 주파수는 3~8kHz 수준이었다. 즉, 천안함의 장비로는 북한 어뢰의 탐지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사건 발생 전에 기무사령관이 ‘천안함 사건 발생 며칠 전의 사전 징후’를 국방부와 합참에 보고하였으나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고, 사건 직후 청와대는 어뢰에 대한 내용이 일절 없이 ‘선체 파공으로 인한 침몰’이라는 보고를 받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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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진실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여론은 천안함 사건에서 살아돌아온 병사들에게 ‘패잔병’이라는 낙인을 찍었고, 정치계에서는 이 사건을 서로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만 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PTSD’라는 심리적 고통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그 누구도 정확히 가르쳐주지 않았고, 오히려 이들을 ‘행운아’로 취급할 뿐이었다.

🗣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된다는 일은 간단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이미지에서 어긋나는 이들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살아남은 이들은 피해자라기보다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재난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1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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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비참함’이 피해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지금의 한국 사회는 사회적 폭력을 대할 때 가해자의 행동을 따져 묻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진짜 피해자’인지 확인하는 데 더 큰 관심을 쏟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이에 반박하지 못하였다. ‘천안함 사건’ 뿐만 아니라 ‘세월호’,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등등의 수많은 피해를 낳았던 참사들 모두 희생되셨던 분들께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사고에서 살아돌아온 분들께도 관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그분들은 평생을 잊지 못할 끔찍한 경험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인데, 감히 우리가 그들을 ‘살아돌아왔으니 운이 좋’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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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지음 / 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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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혼자에게> - 이병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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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등 일반 산문의 문장과 소설 속 문장의 결은 아주 많이 다르다. 소설의 경우에는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는다 하더라도 이야기 속 장면에 맞는 문장이다보니 독자가 그 상황에 본인을 맞추어 몰입을 해야하는 반면, 일반 산문의 경우에는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훨씬 직접적으로 드러내어 독자들은 그 마음을 소설보다 더욱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닌, 그저 개인적으로 느낀 둘의 차이를 설명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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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학교 선배님의 추천으로 이병률 작가님의 산문을 처음 읽어보았다. 시도 쓰시는 분이라 나랑은 결이 맞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너무도 시적인 산문 <시와 산책>이 나랑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배님이 전혀 어렵지 않다고 말씀해주셔서 그 말을 믿고 읽어보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내 마음을 울리는 듯한 문장들을 정말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소설을 주로 읽는 나에게 이 책은, 소설 속 문장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었다. 그 많은 문장들 중 일부를 공유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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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p]

📖 하지만, 떨어지는 것은 절대로 중요한 일이다. 당선되지 않았다는 것은 당선의 의미만큼이나 중요하며 역시나 안 되었다는 것은 되기 위한 과정으로도 중대하다. (중략) 안 될 수도 있는 일에 말도 안 되는 확률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한 사람의 어느 한 단면은 바뀐다. 그 상황은 자신의 현재를 확대해서 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내부의 힘까지도 뭉근하게 키운다. 어딘가에 떨어져보지 않는 우리는, 어디에선가 망해보지 않은 우리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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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3p]

📖 밥을 먹을 때 그 사람과 함께여서 맛이 두 배가 되는 사람이면 좋겠다. 별 음식도 아닌데 그 사람하고 함께 먹으면 맛있는,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

📖 슬픔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슬픔을 알더라도 드러나지는 않지만, 또 어딘가에는 슬쩍이라도 칠칠맞지 못하게 슬픔을 묻힌 사람이면 좋겠다.

📖 벌이 날아들었을 때 “움직이지 말고 그냥 눈감고 있어”하고 내가 소리치면, 나를 믿고 벌이 떠날 때까지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어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 어떤 비밀에 대해 내가 이야기할 때 ‘누구한테 절대 이야기하면 안 돼’라고 못박지 않아도 좋은 사람.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거나 두 사람이 아주 완전히 분리될 일이 생길 때, 서로의 어떤 부분에 대해 남에게 함부로 말로 옮기는 일을 하지 않는 그런 사람.

📖 평상시에는 보통 눈을 가진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을 들여다볼 때나 세상을 내다볼 때는 광각렌즈와 망원렌즈, 모두의 사용이 가능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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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p]

📖 설령 당신이 어느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 하나 남기는 것 없다 하더라도 누군가 당신을 떠올릴 때 슬픔 대신 어느 믿음직한 나무 한 그루를 떠올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나는 바란다.

📖 세상과의 이별을 앞둔 순간에 단어 하나가 멤돌더라도 그 단어를 마음 속에서 꺼내올리지 못할 수도 있겠다. 죽음 앞에서 확연히 떠오르는 뭔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설명하거나 다 풀고 갈 상황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살면서 미처 다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어리석게도 영원히 내성적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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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p]

📖 “아마, 공연이 잘 안됐다면 그건, 자기 자신한테 집중이 안 되서였을 거예요. (중략) 우린 늘, 자기 자신한테 집중을 못해서 못마땅해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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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p]

📖 그 누가 됐건, 누군가 먼길을 떠나는 것은 커다란 의미다. 먼길 위에서 안전해야 하고, 성과를 가져와야 하고, 또 남겨두고 온 가족을 많이 생각해야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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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p]

📖 다른 사람 너머를 보고 싶어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다른 사람의 속을 읽고 싶은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게 다 좋아해서였겠지만 그게 다 관심 있어서였지만 단지 그런 자잘한 욕심들로 힘든 일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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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p]

📖 우리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싶어하는 바람에 끝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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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p]

📖 만나고 있다고 다 사랑하는 건 아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그녀에게서 헤어지자는 말이 몇 번이나 나왔다면 이미 잔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고 그걸 주섬주섬 봉합하려는 너는, 이성 때문에 그러는 것이지 네 영혼이 시켜서가 아닌 거다. 무슨 얘기냐 하면 가만히 네 영혼에게 물어보라는 이야기다. 네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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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p]

📖 그때는 그랬을리 없는 상황들을 이제는 꺼내보며 내가 원하는 상황으로 재배치한다. 나의 고집으로 인해 별로 좋게 기억될 만한 사건이 아닌데도 시간이라는 망사를 이용해 그때 일을 통과시켜 재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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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p]

📖 사실 우리는 잘 만나다가도 어느 순간 둔해진 관계라서 안 만나게 되고, 또 멀어지게도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아예 둔한 사람 자체를 멀리하게도 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안 섬세한 사람들’에게 있어 섬세한 사람이란 ‘그거 참 머리 아픈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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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p]

📖 그래, 맞아. 저토록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 삶. 바로 내가 살고 싶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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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은 늘 옳았다
정병권 지음 / 히읏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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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은 늘 옳았다> - 정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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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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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의 마케팅 담당자님께 인스타 DM으로 도서 협찬 제의를 3번이나 받았다. 처음은 그 당시 읽어야 될 책이 산더미처럼 밀려있어서 거절했었고, 두번째는 하필 제안받은 책이 ‘자기계발서’여서 거절했다. (나는 자기계발서 전혀 읽지 않는다.) 사실 두 번이나 거절당했다면 기분 나쁘실 법도 한데, 이 책으로 또 한 번 제안을 주셨다. 히읏 출판사 담당자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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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받은 이 책은 인터뷰 유튜브 채널 ‘잼뱅TV’를 운영 중인 유튜버 ‘정병권’님의 힐링 에세이다. 사실 힐링 에세이도 썩… 좋아하지는 않는 터라 출판사의 제안을 수락하기 전 많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이 옳다’라는 진솔한 지지와 응원의 마음을 보내는 책’이라는 DM 내용이 내 마음을 움직여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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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출판사 담당자님께 정말… 정말… 죄송하지만… <당신의 삶은 늘 옳았다>는 내가 기대했던 내용과는 다른 부분이 많았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던 간에 그것은 언제나 그 당시의 최선이었으니, 후회스러운 과거의 자신에게 매몰되지 말고 가치있는 현재의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자는… 그런 희망찬 내용의 에세이일 줄 알았으나(물론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살아보니 이게 옳더라, 저게 맞더라’ 하는 등의 자잘한 교훈을 독자들에게 가르치려는 듯한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 적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자기계발서를 싫어한다. 그래서… 나랑은 맞지 않았던 책이었던 것 같다… (마케터님 진짜 좋은 말만 쓰고 싶었는데, 너무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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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좋았던 부분이 아예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의 저자는 ‘인터뷰 유튜버’로 다양한 사람들의 내밀한 속마음을 인터뷰해온 분이고, 그런 부분들이 책에도 나온다. 자궁경부암 4기 판정을 받으셨던 ‘샛별’님, 아오지 탄광촌에서 탈북하신 ‘최금영’님, FTM(Female to Male) 트렌스젠더 ‘짱그래’님 등등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잘 알지 못하는 삶을 사시는 분들의 힘든 점과 그로 인한 속마음들을 알 수 있게 되어서, 그와 더불어 인터뷰를 하면서 경험했던 저자의 여러 고민들과 생각들을 함께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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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크게 동했던 내용은 ‘김경태’님과 관련한 부분이었다. 경태님은 CRPS로 인해 안락사를 생각하셨다고 한다. CRPS란 ‘복합부위통증증후군’으로, 신체 특정 부위에 무언가(바람 등) 살짝 닿아도 불에 타거나 칼로 베는 듯한 끔찍한 통증을 느끼는 희귀성 난치 질환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질병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과연 이 병을 실제로 겪게 되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내가 감히 ‘고통’이라는 말을 써도 될까 싶을 정도로 그 고통의 크기는 짐작조차 되질 않는다. 그러니 이 분께서 안락사를 다짐하셨다 하더라도 나는 함부로 말리지 못할 것 같았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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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책을 ‘인생 힐링 에세이’가 아니라 ‘인터뷰 대담집’으로 출간되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보며 평상시에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할 것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며 그것들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당신의 삶은 늘 옳았다>는 그런 나의 바람과는 거리가 조금 멀어서 많이 아쉬웠다. (다시 한번 출판사 마케팅 담당자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들숨에 재력을 얻고 날숨에 건강을 얻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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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타임 - 빛도 시간도 없는 40일, 극한 환경에서 발견한 인간의 위대한 본성
크리스티앙 클로 지음, 이주영 옮김 / 웨일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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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타임> - 크리스티앙 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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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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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대학교 2학년 과정을 마친 뒤 군휴학계를 제출했다. 입대가 20년 5월 25일이니 그때까지 후회없이 실컷 놀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대만 여행을, 스키장 여행을, 글램핑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때, 코로나가 터졌다. 1월은 잠잠하다가 2월에 우리나라에서도 확진자가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하더니, 3월이 되니 ‘신천지’ 사태가 터졌다. 지금까지 세워놓은 모든 여행 계획을 다 취소한 채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아무 것도 못했고, 아무 데도 나가지 못했다. 그렇게 5개월의 시간을 허무하게 날려버린 채 훈련소로 씁쓸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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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딥 타임’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바로 ‘코로나 19’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면서 전세계의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피로를 느끼고 불안한 미래로 고통스러워했다. 이 가운데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너무도 중요한 문제가 드러났다. 바로 ‘시간 개념의 상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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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딥 타임을 통해 우리가 특별히 이해하고 싶은 개념은 다음의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시간 개념을 알 수 없으며 모든 것이 낯선,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메커니즘이다. 두 번째는 인간이 인지 기능과 생체리듬을 통해 시간을 인식하는 능력이다. 세 번째는 시간 개념을 잊은 집단이 점차 비슷한 생체 리듬을 보이느냐의 여부다. (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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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가 이 ‘딥 타임’이라 부르는 프로젝트를 구상한 것은 시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낯선 곳에서 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설계한 ‘딥 타임’의 세부적인 내용을 설명하자면, 열다섯명의 남녀가 프랑스의 ‘롱브리브 동굴’에 들어가 외부와 단절된 채 40일 가량을 지내게 된다. 이때 시계와 휴대전화는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다. 때문에 이들은 각자의 생체리듬에 따라 개인적으로 생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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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살아가야 하는 기간이었다. 전기가 필요하면 페달 자전거를 돌리고 물은 직접 길어다 정수 과정을 거쳐 해결했다. (물론 배설, 빨래 등의 문제는 외부의 지상 대기팀이 담당하였다.) 과연 이들은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을까. 책을 직접 읽어서 그 답을 확인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책 띠지를 보면 답을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 이들은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고, 비록 지금 전세계가 코로나19에 잠식되었다 하더라도 언젠가 우리 인간들은 이 위기를 결국엔 극복해낼 것이라는 희망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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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밥일지 - 청년공, 펜을 들다
천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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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밥일지> - 천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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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밥일지>는 용접 등의 현장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현장 르포’이자, 작가 개인의 쓰라린 인생사를 덤덤하게 담아낸 ‘에세이’이기도 하다. 아주 거친 문장과 내용들이 많아서 어쩌면 ‘투박’하다고도 느낄 수 있지만, 이 책 만큼은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거칠고 투박하기 때문에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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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모르면서 노동자 후려치려고 헛소리하는 인간들이 좀 있어요. 돈 잘 버는 정규직은 귀족 노조라고 욕하고, 돈 못 버는 비정규직은 공부 못해서 그 꼴 났대요. 그런 인간들 입에 재갈을 물려주고 싶어요. 제 현장 경험과 회사의 데이터로 논리를 만들어서 개망신을 주고 싶어요.” (2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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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혀, 단 한번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처절하고 괴로운 삶을 천현우 작가님은 버텨내셨다. 감히 그 인생을 누추한 이 글에 요약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 부분은 직접 책에서 읽길 바란다. 다만, 작가님이 경험하신 이 현실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너무도 가혹하고 거대한 벽과도 같았다. 절대 넘을 수 없을 듯한 높이와 두께를 가진, 참으로 부조리한 벽. 그럼에도 그 벽에 조금의 흠집과 균열을 내기 위해, 현장 노동의 비참한 현실을 이 사회에 알리기 위해 작가님은 이 책을 쓰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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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십대 중반인 나는, 작가님이 그려내신 이 현실에 대해 ‘공감’한다기 보다는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것 같았다. 마치 이런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라는 교훈을 듣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뼈저리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무거운 마음을 지니게 된 부분도 있었다. 바로 학벌에 관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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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입은 말하지 않았지만 눈이 떠들고 있었다. 대학 안 가는 건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고졸’이란 딱지는 수갑이며 죄수복이자 족쇄나 다름없다고. (중략) 대학을 강요하는 세상이 못마땅했다. 어른으로 살아가려면 사람 착하고 몸 건강하며 상식 있는 것만으론 부족한 걸까. (18-19p)

🗣 학벌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면 거짓말. 수능도 안 봤지만 대학 순위표는 머릿속에 줄곧 각인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명문대란 만병통치약 같아서 어딜 가나 약발이 들었다. (중략) 대체 그놈의 학벌이 뭐라고 사람들을 줄 세우고 급을 나누게 만드는 걸까? (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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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부끄러웠다. 고등학생 때, 특히 수능을 준비하던 3학년 때는 너무나 만연하고도 견고한 한국의 학력주의를 아주 많이 원망했다.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화가 없다. 오히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학벌에 따른 차별을 직접 겪으며 학력주의에 대한 그 원망의 정도는 더 커졌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 또한 학벌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보는 색안경을 끼고 있던 것 같다. 그 마음을 위의 문장들을 보며 깨달았다. ‘대학 순위표’를 ‘머릿속에 줄곧 각인’해둔 채 더 높은 대학에 합격하고자 노력하였고, ‘대학을 안 가는 건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학벌주의를 원망했으면서도 그런 학벌주의에 따른 생각을 갖고 있던 모순적인 내 자신이 겸연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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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중에 직장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미래의 나는 아마도 현장 노동의 현실을 모른 채 살아가지 않았을까. 그저 위로만 올라가려는 ‘화이트칼라’가 되어 ‘블루칼라’들을 무시하지는 않을까 싶어 무섭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불편할 수는 있어도, 우리는 모르지만 이 사회에선 아주 중요한 부분을 알게 해주기 때문에라도 꼭 읽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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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현우야. 우리 없으면 누가 다리 만들어주냐? 우린 뿐만 아냐. 청소부, 간호사, 택배, 배달, 노가다, 이런 사람들 하루라도 일 안 하면 난리 나. 저기 서울대 나온 새끼들이 뭐하는 줄 알어? 서류 존나 어렵게 꼬아놓고, 돈으로 돈 따먹기만 하고, 땅덩어리로 장난질이나 치지. 그런 새끼들보다 우리가 훨씬 대단한거야. 기죽지 마.” (1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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