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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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연극 배우, 출중한 재능의 연기력을 가진 배우가 어느날 갑자기 한낱한시에 연기를 못하게 된다. 아무 이유도 없고 또 그에 대한 아무 설명도 없다. <전락>은 이 배우 주인공이 연기력을 한순간에 잃게 되어 ‘전락’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각 50페이지 씩 총 150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이다. ‘장편’이라기에도 조금 부족할 성싶어 ‘중편소설’이라 칭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느껴질 정도니까 말이다. 때문에 책의 두께와 뒷표지 줄거리를 읽을 때만 해도 이러한 얇은 분량에서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향하는 급행열차를 타게 된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위주로 전개되지 않을까 싶어 흥미로웠던 것이다.



1부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듯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2부에서 갑자기 ‘페기’라는 여성 인물이 등장해서는 분위기가 반전된다. 이 여성은 주인공의 새로운 연인으로 등장하는데, 주인공과 나이 차이가 스무 살 정도 되는 데다가 원래 ‘레즈비언’이지만 이 남자 주인공을 갑자기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다수 만들어졌다. 그런데 물음표들이 해소되기는 커녕 3부로 가면 가관이다. 둘이서 작당하고 술집에 어느 취한 여성을 꼬시더니 셋이서 …… (뒷내용은 생략한다.) 심지어 묘사가 상당히 노골적이어서 도무지 불쾌한 기분을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었다. 필립 로스 작가의 작품 처음으로 읽는 책인데, 불편하다거나 불친절한 느낌의 작가라는 익히 들어왔더래도 정도는 너무 심하지 않았나 싶다. 애석하게도 책장에 필립 로스의 대표작 <울분> 꽂혀 있는데, 아무래도 동안은 절대 펼치지 않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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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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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교보문고에 들러 가판대 위의 책들을 살펴보는데, 띠지에 쓰여있는 강력한 문구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극한의 뇌 정지 미친 반전!”

사실 이런 문구에 속은 적이 한두번 있었다. 그때마다 너무 억울한 기분이었다. 때문에 더 이상은 출판사의 홍보 문구에 낚이지 않겠다고 결연히 다짐했다. 하지만 운명처럼 그날 서점에서 돌아온 후 습관적으로 알라딘 어플을 켰을 때, 이 책의 김은모 번역가의 추천사가 다시 내 눈에 쏙 들어와 안착해버렸다.

“10년간 본격미스터리를 번역했지만 이렇게까지 소름 돋는 작품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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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지하의 어느 수상한 장소에 갇힌 열 명의 사람들 중 누군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를 추리해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음… 사실 소설의 리뷰를 쓸 때 추리소설의 줄거리를 쓰는 게 제일 어렵다. 추리소설은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읽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줄거리를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해야 결말을 스포일러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매번 크게 들곤 한다. 아무튼 이 소설은 특히나 결말이 중요한 편이기 때문에 내용 요약은 이 문단의 맨 앞 한 줄 정도로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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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결말에 대한 나의 감상은… 놀랐다. 전혀 예측하지 못 했던 것을 넘어서, 번역가님의 말씀처럼 ‘소름 돋는’ 느낌을 주는 결말이었다. 한정된 장소와 용의자들의 ‘클로즈드 서클물’에서 반전을 주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중에 누군가는 범인이겠지, 하는 생각을 당연지사 가지게 되므로 예상치도 못한 인물을 범인으로 앞세운다 한들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걸 뛰어넘는 결말을 가지고 있다. 아… 여기서 더 말하면 진짜 스포일러 해버릴 것만 같으므로 이만 말을 줄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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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앞선 한줄평에서도 말했듯이, 이 소설은 충격의 그 결말까지 이끌어가는 중간 전개의 힘이 조금 부족했다는 느낌이 든다. ‘본격 미스터리’ 장르가 나와 맞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추리해가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게 내겐 종종 지루하게 느껴지곤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해연 작가님의 <홍학의 자리>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의 소설은 중간 이야기들을 충분히 재밌고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간다고 느꼈다. 그래서 <방주>에서도 위의 두 작품같은 재미를 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 기대를 충족해주진 못한 것 같아서 아쉬운 느낌이 든다. 그래도 결말은 어찌됐든 만족스러웠으니 이만하면 되었다는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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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의 아이들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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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우리 엄마에게 이케이도 준의 <하늘을 나는 타이어>를 추천해드렸는데, 상당히 재밌게 읽으셨다. 후에 만난 엄마 친구분께 이 책을 추천하기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 또한 <하늘을 나는 타이어>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났고, 그래서인지 이케이도 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 작가의 대표작인 <한자와 나오키>를 읽을까 했는데 총 4(+1)권의 분량이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결국 <샤일록의 아이들>로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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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나오는 ‘샤일록’은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나오는 고리대금업자의 이름으로, 이 작품은 성공을 갈망하여 치열한 삶을 사는 은행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기에 작가는 소설 속 인물들을 지칭하는 말로 ‘샤일록의 아이들’을 제목으로 삼은 듯하다. 총 열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마다 다른 인물 한 명이 주인공으로 내세워져 개인사를 풀어가는 옴니버스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옴니버스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 그것도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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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이 ‘추리소설’로 분류되는 만큼, <샤일록의 아이들>에는 하나의 큰 사건이 존재한다. 현금 100만 엔의 도난 사건과 그를 좇던 어느 은행원의 실종이 바로 그것이다. 사건 자체도 긴박하게 전개되고 각 인물들의 서사도 흥미롭기에 이 책을 두고 안좋은 평을 하긴 힘들 것이다. 다만 <하늘을 나는 타이어>처럼 하나의 장편소설처럼 전개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을 텐데, 애석하게도 이 작품은 ‘연작 단편집’ 형식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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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에도 분명한 장점은 있다. 이를테면 각 인물의 서사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에 인물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내게는 이런 구조가 극의 몰입을 방해하게 만들었다고 느껴졌다. 소설의 중후반부에 들어서는 큰 사건을 중점적으로 전개하여 긴박감을 한층 더 끌어올려야 할 텐데, 챕터가 넘어가면서 또다시 새로운 인물의 서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되니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점이 내게 너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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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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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 - 가와무라 겐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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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을 만큼, ‘치매’에 관한 두 책을 연이어 읽게 되었다. (각 출판사 담당자님들께 감사의 큰 절을 올립니다…🙇‍♂️🙇‍♂️) 지난 독서 생활을 돌이켜보면 치매를 다루는 책을 읽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이라는 작품이 떠오르긴 하지만 그 당시에 읽으면서 너무도 불편해서 ‘읽덮’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번 <백화>라는 작품은 그렇게 불편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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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 안좋은 얘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이 작품은 총 15장의 챕터로 구성되어있는데,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챕터가 조금은 과하게 많이 나뉘어 있다는 것. 물론 이 점은 분명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한 작품 안에서 장면 전환이 많이 되다보면 이야기 전개의 호흡을 빠르게 가지고 가기 때문에 독자가 지루할 틈이 없이 책장을 휙휙 넘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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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전개 방식은 명확한 단점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맥’이 끊기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자꾸 받았다. 한 인물의 서사를 읽고 있다가 갑자기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챕터로 전환되어 흐름이 뚝 끊기는 느낌… 어디까지나 취향 차이겠지만, 나애게는 맞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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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이 작품에 대한 내용적인 측면을 들여다보자면, 가슴이 이렇게 아플 수가 없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다면… 그를 바라보는 자식(혹은 가족)의 마음은 찢어질 정도로 슬프고, 힘들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다. 읽다보면 자식의 입장에 몰입되어 치매 환자인 어머니의 행동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머니 역시 치매 환자이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어쩔 수 없는 행동인 걸 알기에 막연히 답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프고 뭉클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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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이 책의 작가가 예전에 읽었던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저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작가는 사람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잘 쓰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치매’에 대한 책으로 두꺼운 의학 서적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마음을 묵직하게 만드는 문학 작품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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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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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네이트 (노블판) - Alternate
가토 시게아키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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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네이트> - 가토 시게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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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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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원물’ 장르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무언가 ‘성장소설’이라 하기도 애매하게 느껴지고, 로맨스나 추리 등의 특정 장르에 충실한 것도 아닌 듯하고… 아무튼 이래저래 나의 취향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출판사로부터 이 작품을 받을 때에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랑 잘 맞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띠지에 적혀있는 ‘정용준 추천’이라는 말이 나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내가 사랑하는 정용준 작가님이 추천을??? 이건 못참지;;; 하는 마음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더불어 일반판과 노블판, 두 권이나 보내주신 출판사 담당자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소미미디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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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얼터네이트’라는 고등학생 대상의 SNS를 소재로 하는 작품으로, 세 명의 주인공 각각의 서사가 교차되는 구조로 전개된다. 일종의 옴니버스 소설로도 볼 수도 있을 듯하고, 연작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용준 추천’이라는 말을 믿고 약간의 기대감을 가진 채 독서를 시작했지만, 줄거리 자체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타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흔하디 흔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다만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얼터네이트’라는 소재에서 개인적으로 느낀 바가 있어 그 부분에 대한 감상을 적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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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펐어. 난 딱히 인기인이 되고 싶었던 게 아냐. 그저 날 드러내고 싶었을 뿐이야. 그야 많은 사람들이 봐주면 기쁘잖아. 하지만 그게 첫째는 아니야.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해서 그걸 본 누군가가 기뻐해주면 기분이 좋겠다, 정도의 느낌이었어. 그 녀석은 그렇지 않았던 거지. 어떻게 하면 더 주목을 받을지, 그게 기준이 돼버렸어. (후략)“ (73p)

🗣️ “난 얼터네이트가 92.3 퍼센트로 표시했기 때문에 플로우했을 뿐이야. 내 직감같은 거야말로 나한테 있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야.” (2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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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스타그램에 독후감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책의 내용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지금보다 ‘추리소설’ 같은 류의 장르 문학에 훨씬 편중된 독서를 했었기 때문에 책을 다 읽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내용이 머릿속에서 금방 휘발되어버리곤 했다. 그게 싫어서 완독할 때마다 감상을 억지로라도 한두줄 적은 것인데, 그게 하나둘 쌓이면서 팔로워가 늘고 협찬을 받기도 하는 등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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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나름의 북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한 것이 내게 좋은 영향만을 끼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스타 덕분에 한국문학이나 세계 고전문학, 나아가 인문교양서 등등 독서 범위가 훨씬 확장되기도 했고, 좋은 분들과 소통도 할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스타를 하다보면 같은 책을 읽었더라도 훨씬 더 깊은 감상을 남기신 분들의 글을 보며 열등감 내지는 자기혐오감이 들 때도 있었고, 좋아요 수에 ‘일희일비’하여 감정 소모가 클 때도 있었다. (지금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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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으면서, 특히 위에서 언급했던 문장들 속 주인공을 보면서 인스타에 감정적으로 많이 매몰되어있던 당시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물론 작중 인물과 내가 SNS에게서 받은 영향이 서로 다른 종류이기는 하지만, SNS가 가지고 있는 양면적인 영향력을 느꼈다는 것 자체는 주인공과 나 둘 다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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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어떤 분들은 SNS 속 타인의 모습(혹은 글)을 보며 오히려 힘을 받아 계정을 더욱 활발하게 운영하는 원동력으로 삼겠지만,) 나는 오히려 인스타와 거리를 두려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독서 기록용이라고, 속으로 계속 되뇌이면서 나름의 마인드컨트롤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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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에 지금은 열등감이나 자기혐오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끼지 않는 같다. 다른 사람이 어떻든지 간에 타인과 나를 비교해가며 스스로를 우울의 늪에 빠뜨리지 말고, 그냥 나는 길이나 가자고 생각하니 이전보다 속이 훨씬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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