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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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랑> - 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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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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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기 전의 가제본을 미리 받아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자그마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 출간 전이기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 없는 상태로 읽게 되었고, 보통 이런 상황에서 책을 읽는다면 약간의 불안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라면 기본적으로 믿고 보는 가독성과 흡인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별 부담없이 읽기 시작했다. (참고로 가제본으로 받았을 당시의 제목은 ‘낮과 밤이 겹치는 순간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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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 소설을 많이 쓰는 작가로 유명하지만, 실은 그보다 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많이 써왔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녹나무의 파수꾼> 등 독자에게 따뜻한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이나 <방황하는 칼날>, <편지> 등 가슴 아픈 서사를 담은 작품 등등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말 많은 장르의 작품을 써온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작가가 지금까지 계속 써왔던 작품들과는 또 다른 종류의 새로운 도전과도 같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젠더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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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여자도 그렇겠지만, 생판 모르는 남자에게 그런 일을 당한 게 너무 굴욕적이었어. 성적 욕망을 품게 했다는 사실, 그 자체를 견딜 수 없었어. 자신이 남자에게 그런 존재라는 게 받아들여지질 않았지. 그래서 다음 날부터 바지를 입기로 했어. 당시 교복을 입었어야 했는데, 치마는 정말 입고 싶지 않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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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서사를 놓고 보자면 미스터리 장르적인 요소가 없진 않지만,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지내온 배경 등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은 분명히 페미니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주인공과 그에게 여성으로서의 삶을 강요하는 주변 환경,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회적 현실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런 작품도 쓸 줄 아는구나’ 하며 원래도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한번 더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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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랑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뭐랄까, 재미와는 별개로 읽으면서 계속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페미니즘이나 여성 서사라고 해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일본 문학을 읽다보면 종종 느껴지곤 하는 일본 특유의 분위기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정서적인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인 듯싶다. 명확하게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구태여 설명해보자면, 우리나라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문화적인 요소가 일본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듯한 부분들이 작품 속에서 종종 등장했다는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에 읽었던 <비밀>이라는 작품에서도 비슷한 불편함을 느꼈는데, 옮긴이의 말을 보니 아예 작가가 이 작품을 <비밀>의 후속편으로 생각하고 집필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불편함이 느껴졌던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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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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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 프레드 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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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치즘의 사상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유대인 소년과 독일 귀족 소년의 애틋한 우정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전쟁문학’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 작품은 ‘전쟁’보다는 ‘우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특히 이 작품이 그려내는 우정도 일반적인 것과는 다른, 같은 나이의 동급생이더라도 단순히 ‘친한’ 사이를 넘어서 그를 ‘동경’하는 마음의 우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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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하는 그 친구에게 나 자신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 혹시라도 나를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되짚어보거나 자신의 처지(유대인)를 무시하는 듯한 모욕감을 느끼는 등등 혼란스러운 ‘사춘기’ 그 자체의 심정을, 나 역시 경험한 적이 없지 않았기에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사춘기 소년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하고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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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우정 이야기로만 쓰였다면 조금은 밋밋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겠으나, <동급생>은 그렇지 않다. 앞서 말했듯 이 작품은 2차대전 발발 직전의 혼란스러운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을 혐오하는 ‘나치즘’의 사상이 이들의 우정을 깨뜨리며 소설은 절정에 다다른다. (결정적인 스포일러는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적인 면모를 ‘수용소에서의 죽음’과 같이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사춘기 소년들의 우정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보다 간접적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더 깊고 오래가는 슬픔의 여운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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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에 대한 거의 모든 리뷰에서 마지막 문장을 언급하고 있는데, 나 역시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누군가는 ‘마지막 문장만을 위해 존재하는 소설’이라고도 할 정도였다. 또한 첫문장 역시 그렇다.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난 다음 다시 첫문장으로 되돌아가보면,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부분만큼은 절대 ‘스포일러’할 수 없기에, 직접 책을 읽어보며 확인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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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척
레이철 호킨스 지음, 천화영 옮김 / 모모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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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척> - 레이철 호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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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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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영미권의 '심리 스릴러' 장르 소설을 읽었다. 최근 들어 외국 문학에서 느껴지곤 하는 특유의 번역투가 잘 읽히지 않았다. (얼마 전에 올렸던 <폭풍의 언덕>도 거의 한달 동안 읽은 것 같다.) 스튜디오 오드리 출판사의 서포터즈 마지막 활동으로 받은 이 책도, 수령한 것은 몇 주 전이지만 계속해서 제쳐두고 다른 책들을 읽다가 마감일이 닥쳐서야 급하게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번역투가 많이 거슬려서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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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만 잘 안 읽힌건가 싶어서 책을 다 읽은 뒤에 다른 인스타 리뷰들을 찾아봤는데, 정말로 하나같이 모두 호평 일색이었다. 미친 가독성, 숨 막히는 전개, <제인 에어>를 떠올리게 하는 서사, 전혀 예상하지 못할 반전의 결말 등등… 그러나 나는 앞서 말했듯이 썩 좋게 읽진 않았다.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리뷰들 눈치 보느라 재밌던 책이었다고 쓴다면 솔직한 감상이 아닐 듯하여 그냥 왜 내가 재밌게 읽지 못하였는지에 대한 변명이나 늘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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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똑똑하고 기지 넘치는 버사는 어느 밤 어머니가 여전히 응접실로 부르길 고집하는 방에서 아버지가 곯아떨어지길 기다렸다가 책상에 몰래 접근했다. (318-3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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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번역투도 번역투지만, 소설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했던 건 과도한 수사여구의 문체였다. 위의 문장만 보더라도 ‘똑똑하고 기지 넘치는’, ‘여전히 응접실로 부르길 고집하는’ 등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수식어들이 억지로 문장에 끼어있는 느낌이라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듯 싶다. 장르 문학에서 ‘가독성’은 거의 생명과도 같은 핵심적인 요소일텐데, 적당한 수식은 필요하겠으나 <기척>은 이러한 부분이 조금은 지나치게 많아서 내게는 가독성이 떨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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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작품의 초반부터 중후반까지는 이야기의 전개가 더디게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나오면서 몰입도가 순식간에 치솟는다. 다른 리뷰들도 마찬가지로 후반부에서 전개가 빨라졌다는 후기가 많았다. 그래서 작품의 초중반에도 후반처럼 집중이 잘 되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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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들리와 그레이스
수잔 레드펀 지음, 이진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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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들리와 그레이스> - 수잔 레드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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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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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연락을 주실 때, 영화 ‘달마와 루이스’가 생각나는 여성 서사를 다룬 작품이라고 이 책을 설명하셨다. 책을 받아보니 뒷표지에도 그렇고 작품 중간에도 ‘달마와 루이스’가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 애석하게도 ‘달마와 루이스’라는 영화를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유튜브에 널리고 널린 영화 소개 채널에서 ‘달마와 루이스’를 15분 가량으로 깔끔하게 압축해놓은 영상을 보는 것으로 영화 감상을 대체하였다. 확실히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두 작품(영화와 책)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긴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나는 자꾸만 영화 ‘킹스맨’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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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달마와 루이스’와 내용적인 측면에서 비슷하다고 말한 이유는, 두 여성의 도주극(?)과 연대를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남편 ‘프랭크’로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 ‘하들리’와, 동일인물 ‘프랭크’의 밑에서 비서로 일하다가 토사구팽 당할 위기에 처하는 ‘그레이스’는 우연히 같은 시간에 프랭크의 사무실에서 만나 금고를 털어 그 안에 있던 엄청난 돈을 들고 본격적인 도주를 시작한다. 애석하게도 그 돈은 출처가 더러웠기 때문에 (마약 사업 등의 불법적인 돈이었다) FBI에서 출처를 주시하고 있었으므로, 두 여성은 FBI에게 추적을 당하기 시작하며 이야기는 극적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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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가 영화 ‘킹스맨’이 떠올랐던 이유를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영화 ‘킹스맨’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1편은 그래도 괜찮았는데 2,3편은 도통…) 그 이유를 가장 최근에 상영했던 3편을 두고 설명해보자면, 개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다시 말해 납득이 가지 않는 전개를 정말 싫어하는데 3편에 그런 전개가 많이 나왔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다리 부상이 메인 빌런의 초자연적 능력으로 갑자기 치유된다든지, 아들이 신분을 바꿔치기해서 전쟁에 참전한다든지, 그러다가 또 갑자기 죽는다든지(어떻게 죽는지 말 안했으므로 스포 아님) 등등… 영화관에 같이 갔던 친구들은 그게 ‘킹스맨’의 매력이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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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느닷없는’ 전개 방식이 <하들리와 그레이스>에서도 등장한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기 위해 몇 가지만 말해보자면, 두 여성을 추적하던 FBI 요원 ‘마크’가 역으로 둘에게 납치를 당한다(?!). 여성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우람한 덩치에 근육질 몸매로 묘사되는 FBI 현장 요원이라면 무장 강도 둘은 그냥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한 훈련을 받았을 터인데, 너무 허무하게 둘에게 납치되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다가 심지어 이 ‘마크’라는 요원은 ‘하들리’와 갑자기, 정말 느닷없이 사랑을 나눈다(?!?!). 이게 무슨 전개람……?하는 심정으로 계속 읽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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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너무 당황스럽고 개연성 없는 전개를 보니 영화 ‘킹스맨’이 떠올랐던 것이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감상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이런 전개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혹은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와는 맞지 않았을 뿐. 하지만 작품 자체는 가독성이 정말 좋아 페이지를 빠르게 넘길 수 있었다. (그런 부분마저 ‘킹스맨’과 비슷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달마와 루이스’ 혹은 ‘킹스맨’을 재밌게 보았던 사람들에게는 이 작품 <하들리와 그레이스>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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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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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 벵하민 라바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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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논픽션소설’이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게 무슨 궤변인가 싶었다. ‘논픽션’과 ‘소설’이라는 상극의 두 단어는 한 어절 내에서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논픽션소설’이라는 단어보다 더 정확하게 이 작품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등 유수한 과학자들의 연구 및 이론 등의 ‘사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일생이라는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덧붙여 그 연구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던 이유를 설명하는 이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객관적 사실에 소설적 허구를 더했다는 측면에서 ‘논픽션소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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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중단편 중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은 아무래도 ‘양자역학’과 관련된 표제작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이다. 이해하기 너무 어려웠고 아직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받아들인 양자역학을 설명해보자면, 양자역학은 자기 모순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모두 양자로 이루어져 있고 양자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지만, 아무런 조직없이 움직이므로 예측이 절대 불가능한 개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생물들이 그들로써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운’ 때문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인간)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즉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운’ 때문이란 걸 간과하면 매우 끔찍하고 참혹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마치 전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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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물질 자체에 관계된 것이고, 만물이 창조되는 방식을 지배하는 원리이며, 어떤 현상이 완벽하게 정의된 특징들을 한꺼번에 가질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애초 직관은 옳았다. 양자의 실체를 ‘보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양자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양자의 성질들 중 하나를 규명하면 다른 것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양자계를 기술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림도 은유도 아니라 숫자의 집합이다. (216-2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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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도 너무 어려운데 이 작품에는 양자역학 외에도 많은 과학적 지식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때문에 읽으면서 ‘과학’이라는 어둡고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발버둥치는 ‘문과생’이라는 순한 양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이과적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한 점 부끄럼 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처음으로 나의 과문함에 대한 통탄의 심정이 들었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과학적인 지식이 있었더라면, 이 작품을 조금 더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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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인생을 반추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과학계에 지각 변동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성취를 일구어낸 과학자들의 서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노인과 바다>에서 청새치 한마리를 잡기 위해 몇달 가량 온몸과 온마음을 다 바치는 노력 끝에 결국 잡아내고야 마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모습이, 광기 어린 집착과도 같은 노력을 통해 세상의 통념을 뒤집어 엎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던 과학자들의 모습에서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은 과학적 지식이 일절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느끼고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살아가면서 이 정도의 혹은 반의 반 정도의 노력을 한번이라도 해보았는지, 노력없는 대가를 바라지는 않았는지를 반성하게 만드는 교훈을 선사하는 이 책을, 이과 문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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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 슈바르츠실트는 신들린 사람처럼 일하며 논문을 쏟아냈다. 복사에 의한 항성 간 에너지 이동을 분석하고 태양 대기의 평형을 연구하고 천체 이동 속도의 분포를 기술하고 복사 전달을 모델링하는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중략) 그는 물리학에 만족할 수 없었다. 연금술사들이 추구한 지식과 같은 무언가를 열망했으며 자신조차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긴박감에 휩싸인 채 고투했다. (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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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필요하다면 몇 시간이든 제 의지대로 자고 일어나 연구에 온 정력을 쏟을 수 있었다. 아침에 개념을 전개하기 시작하여 이튿날 새벽까지 낡은 남포등의 불빛 아래서 눈을 찡그린 채 책상 앞에서 꼼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의 친구 이브 라드겔레리는 이렇게 회상한다. “천재와 함께 연구하는 일은 매혹적이었다. 이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로텐디크는 다른 어떤 말로도 묘사할 수 없다. 그는 매혹적이면서도 두려웠는데, 그것은 이 남자가 어떤 인간과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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