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기 사랑 이야기 거장의 클래식 2
찬쉐 지음, 심지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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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한줄평에 적은 ‘놀라울 정도로 이정표가 없는 소설’이라는 표현은 뒷표지에 쓰여있어서 읽기 전에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개연성이 없을 줄은 몰랐다… 이를테면 주인공의 남자친구와 넷째숙부가 알고보니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였다던지… 현실에선 전혀 일어날 일이 없는 사건들이 서슴없이 벌어지는데, 근데 그게 또 되게 술술 읽힌다…! 보통 우리가 꿈을 꿀 때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지 않는가, 이 작품이 딱 그러한 느낌이었다.



글을 쓰기 다른 분들의 리뷰를 찾아보았는데 다들 줄거리를 설명하기를 꺼려하셨다. 또한 마찬가지다. 도대체가 작품의 내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요약하여 설명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일말의 감조차 잡히지가 않는다. 그래서 이번 작품의 리뷰는 줄거리는 생략한 짧게 쓰려고 한다. 말은 하고 싶다. ‘진짜 말도 안되는 일들이 연속해서 벌어지는데, 그와중에 가독성이 좋아서 쉽게 읽힌다.’ 나는 책을 읽는 방법으로뇌를 빼고 읽어라 것을 추천하고 싶다. 대체 인물들에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이런 생각을 하는지를이해하지 말고 그저받아들이기 한다면 작품은 정말 색다른 소설의 세계를 독자에게 선사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 작가의 작품으로 <신세기 사랑 이야기> 만나게 되어 영광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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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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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RHK북클럽

지금부터 내가 쓸 이 글은 자기 잘못에 대한 고백록이자 참회록이 될 것이다. ‘도서협찬’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독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이창래 작가의 글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하여 호기심이 동하였고 ‘RHK북클럽’이라는 좋은 기회에 이 책을 받아들어 읽을 수 있게 되었으나 결과론적으로는 이 작품은 나와 전혀 맞지 않았다. 어떤 지점이 날 힘들게 하였는지를 조심스레 이 글에 밝혀보도록 하겠다.

내가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재미’다. 무언가를 얻어가기 위해 읽는다기보다는 그저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현실에서 벗어나 소설이 그리고 있는 세계에 푹 빠져있는 몰입의 쾌감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에는 어떤 재미를 느끼는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여러가지 재미를 느낄 요소들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대답한다. 하나는 다음 내용이 궁금해 미칠 것 같은(?) ‘서사적인 재미’이고, 다른 하나는 문장 하나하나가 내 심금을 울리는 듯한 ‘문학적인 재미’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읽다 포기한 <타국에서의 일 년>은 두 가지의 재미 중 어느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일단 이 작품에는 불필요한 장면들이 지나치게 길고 많았다. 초반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틸러’라는 주인공이 ‘퐁’이라는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를 만나 기존의 삶을 버리고 그와 함께 떠난다는 내용인데, 틸러가 퐁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지루했다. 굳이 이런 장면까지 디테일을 살렸어야 했는가 싶은, 삭제하더라도 극의 전개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을 법한 문장들이 매우 많았다. 만약 이런 장면들을 구태여 살리고 싶었다면, 그 장면들을 설명하는 데에 쓰인 문장들이 아름답다거나 소소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지점들이 있어야 계속하여 소설을 읽을 맛이 날텐데 (이를테면 최은영 작가 같은 문장들이 필요했달까), 이 작품은 그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이 작품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주인공’이라 할 수 있겠다. 이 ‘틸러’라는 인물의 내면이 도무지 공감이 가질 않는다. 뭔가 깊이 생각한다거나 진심으로 대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붕 떠있는 듯하여 마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같은 태도가 너무 꼴보기 싫… 아 아니 매력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서사 자체도 흥미롭지 않는데다가 주인공까지 너무 별로이니 이 작품을 읽는 게 힘들 수밖에…

이 글을 쓰기 전 다른 분들의 후기도 많이 살펴보았다. 혹시 나만 이런 걸까 싶은 걱정스런 마음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초반에는 읽는 게 수월하지 않았으나 끝까지 참고 읽으니 여운이 있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즉, 나는 그 초반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절반 이상 읽기는 했다만…) 지금은 서평을 쓰는 데까지의 기간이 한정되어서 이렇게 글을 쓰지만,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오랜 시간을 두고 이 책을 천천히, 꼼꼼히 읽어내려 가보고 싶다. 일단 지금의 나와는 인연이 아닌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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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나이 환상문학전집 38
안드루스 키비래흐크 지음, 서진석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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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살다살다 ‘에스토니아’ 문학을 읽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도 상의 위치도 어딘지 몰라 이 책을 읽은 뒤 검색을 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핀란드 바로 밑에 있는 작은 북유럽 국가였다.) 그만큼 잘 모르는 나라였고 지금까지 번역된 에스토니아의 작품들을 만나볼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어느 정도의 문화적인 이질감이 느껴질 것이라는 각오(?)를 머금고 책장을 펼쳐들었다.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인 일본 문학을 읽을 때도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종종 있었다. 나만 그런가?)



그러나 그런 나의 각오와는 다르게 <뱀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나이>는 그런 부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나라와도 공통된 정서로 쓰인 작품이라는 점을 느꼈달까. 소설은 크게 ‘마을 사람들’과 ‘숲에 사는 사람들’로 나뉜다. 마을 사람들은 독일권의 신진 문물을 받아들인 반면, 숲에 사는 사람들은 전통 문화를 고수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몇 번의 전쟁을 거쳤을 만큼 갈등이 많은 편인데, 숲에 사는 사람들은 원래 ‘북녘 개구리’가 철갑인들(마을 사람들)을 잡아먹으며 본인들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북녘 개구리가 잠드는 바람에 열세를 띌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마을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 치부하지만 말이다.



마을에서 태어나 숲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그곳에서 쭉 자란 소년 ‘레메트’는 중립된 입장에 서있는 인물(주인공)이다. 레메트의 기억 속에는 오직 숲에서의 생활 뿐이었으나, 모종의 계기로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목격하게 된 그는 숲에 사는 자신들보다 훨씬 편하게 사는 듯한 모습에 일종의 혼란을 느낀다. 이러한 어리숙한 인물이 주인공으로서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 중립적인 인물의 심리와 그의 모험을 따라가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게 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전통을 고집하는 입장의 인물들이 너무도 악하고 매력없게 그려져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탐베트’라는 인물을 들 수 있다. 이 인물은 주인공 레메트를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멸시한다.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치자. 더 심한 것은 본인의 어린 딸 ‘히에’가 ‘늑대 젖’을 먹어야하는 전통을 거부하자 극도로 분개하며 딸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며 완전히 진심으로 혐오한다는 것이다. 대립된 두 입장의 인물들을 모두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입체적으로 그렸다면 훨씬 더 보기 좋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숲에 사는 사람들을 너무 안좋게 그려내다보니 양쪽 입장의 균형을 잃게 되는 듯하여 그 지점이 너무도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읽으며 어쩐지 우리나라 역사를 보는 같기도 하였다. 한국사를 공부하다보면 병자호란 전후에 문물 도입을 둘러싼 대립과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 등을 배우게 될텐데, 그때마다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입장이 항상 맞지 않았던가. (삼전도의 굴욕이라던지, 일제강점기라던지…) 이런 결과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래서 작가도 전통을 고수하자는 입장을 악하게 그려낸건지 싶다. 이렇게 에스토니아 문학에서 한국사를 떠올린 것이 너무도 신기한 경험이었고 먼나라와도 정서적으로 공감을 이룰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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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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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도입부에는 뇌종양으로 어린 아들을 잃고 이혼한 뒤 고향에 내려온 ‘리에’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곳에서 리에는 다시 ‘다니구치 다이스케’라는 한 남자를 만나며 사랑을 키우고 다시금 행복을 누리던 차에 안타까운 사고로 다니구치는 사망하게 된다. 연이어 닥친 불행에도 의연하게 대처하고자 했던 리에는 그동안 가족과 연을 끊고 살았다던 다니구치의 말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지낼 때 그의 형을 불러 그를 완전히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데, 뜻밖에도 생전의 다니구치 사진을 본 그의 형은 이 남성을 보고 자신의 동생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과연 자신이 사랑했던 남성은 누구였을까, 도대체 왜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고 있었던 걸까.



‘다니구치 다이스케’라는 인물이, 아니 어떤 남성이 ‘다니구치 다이스케’라는 인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아무도 이 인물을 함부로 비난할 수 없을 만한 강렬한 사연이 있었다.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자세한 내용을 발설할 순 없겠으나, 더이상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가 없었던 한 남성의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정도로만 말할 수 있겠다. 와… 여운이 장난 아니다… 

🗣 인간의 마지막 거처일 터인 내 몸이 지옥, 이라는 건 과연 어떤 고통일까. 내 몸이 사랑하거나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야 하는 인생이란. (264p)



지금까지 소개한 소설의 줄거리만 놓고 보았을 때는 흥미진진한 사건이 전개될 법한 추리소설 내지는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실제로 리에의 이혼에 도움을 주었던 변호사 ‘기도’라는 인물이 실질적으로 이 사건을 파헤치며 추적하는 구조의 서사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이른바 ‘탐정 소설’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 추적 과정 중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고발하는 장면들(사형 제도에 대한 찬반 대립, 재일 교포에 대한 일본인의 시선 등)이 등장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죽음 등을 보며 ‘죽음’ 자체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담는 장면 또한 존재한다.

🗣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에도 범행 자체를 부인하는 그림은 의외로 적었다. 자신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은 그런 인간이 아니다, 라고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행위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항변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존재는 국가에 의해 무로 돌아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220p)



그리하여 이 소설은 한 문장, 한 장면을 허투루 읽을 수 없었고 꼭꼭 씹고 음미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여 가독성 좋은 문체에 흥미로운 사건에도 불구하고 읽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던 소설이기도 하다. (정말 좋았다는 말이다.) 최근에 이 작품이 영화화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과연 이 책이 담고 있는 ‘흥미로운 서사’와 ‘묵직한 깊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았을지 의문이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영화까지 한번 보고 싶다. 어쨌든 이 소설은 올해 읽은 책 중 몇 안되는 별 다섯 개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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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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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변 친구들과는 다르게 게임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 왜 게임을 안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게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니까 계속 지게 되고, 이기지 못하고 지기만 하니까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밖에… 일례로 대학 동기들에게 이끌려 ‘리그 오브 레전드’와 ‘배틀 그라운드’라는 게임을 배워보려 PC방에 방문하기도 하였으나 처참하게 실패하였다. 롤 같은 경우엔 뉴비로서 새로 진입하기엔 그 체계가 너무도 복잡했고, 배틀 그라운드는 게임 도중 멀미 증세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내 평생동안 컴퓨터 게임으로서 즐길 마지막 게임은 아마도 ‘테일즈런너’가 아닐까 싶다.)


이렇듯 게임을 즐기지 않는 나이기에 ‘게임 제작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는 건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너무도 재밌게 읽은 소설이다. 게임에 관한 내용이 작품 안에 없는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게임에 대해 천재적인 재능과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또 이들이 계속해서 게임을 개발하면서 보완할 점을 찾아가는 그 과정 중에 게임 자체를 설명하지 않고 서사를 진행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이 책을 별 네개 반이나 줄 정도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일까?


물론 앞서 말한 게임과 관련된 여러 설명들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쓰여있는 것도 분명 영향을 끼쳤겠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이 작품이 내게 ‘게임 소설’로만 읽히지는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읽으면서 계속 느끼고 감탄했던 점 중 하나가 바로 인물들이 아주 ‘입체적’으로 그려져있다는 점이다. 즉 각각의 인물들에게 부여된 서사가 모두 풍부하다.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렸을 적 어떤 사건을 겪었기 때문에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등등의 서사를 캐릭터에 부여함으로써, 그렇게 만난 인물들이 하나의 게임을 완성하는 데에 빚어지는 수많은 충돌과 갈등들을 독자들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이해되는 것이고, 그러므로 이런 미숙한 인물들을 끝까지 응원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소설 속 인물들의 나잇대가 지금 이 소설을 읽는 내 나이와 비슷해서 더욱 몰입하고 공감하며 읽었는지도 모른다. 인물들이 보이는 어리숙하고 미숙한 모습에서 나의 행동이 겹쳐 보이기도 하고, 또 ‘게임’을 대하는 그들의 진심어린 모습에도 감복했을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나는 참 ‘책에 진심이다’ 내지는 ‘책에 미친놈이다’는 말을 종종(아니고 자주) 듣는데, 어쩐지 그런 말을 들어도 기분이 나쁘기는 커녕 오히려 좋아진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 내게 좋은 작품이었던 이유는 혹시 나 자신의 여러 모습들을 이 소설에서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들의 행보를 응원했던 것처럼, 나 자신의 앞으로를 스스로 응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덧. 게임을 좋아하는 내 주변 친구들에게, 특히 그 중에서도 책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친구들에게(책을 나만큼 좋아하는 친구는 없음...)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아니 생일날이 되면 꼭 선물해줄 것이다.


🗣“가끔, <CPH>를 개발하다보면, 그쪽 세계가 나한테는 더 진짜처럼 느껴져요. 이 세상의 세계보다. 하여간 나는 그쪽 세계가 더 좋아요, 완벽해질 수 있으니까. 내가 완벽하게 만들었으니까. 현실 세계는 마구잡이식 재난과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잖아요, 늘 그렇죠. 현실 세계의 코드에 대해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젠장 하나도 없잖아.” (531-532p)

🗣“게임이 뭐겠어?” 마크스가 말했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잖아. 무한한 부활과 무한한 구원의 가능성. 계속 플레이하다보면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는 개념. 그 어떤 죽음도 영원하지 않아,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니까.” (5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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