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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나는 주변 친구들과는 다르게 게임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 왜 게임을 안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게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니까 계속 지게 되고, 이기지 못하고 지기만 하니까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밖에… 일례로 대학 동기들에게 이끌려 ‘리그 오브 레전드’와 ‘배틀 그라운드’라는 게임을 배워보려 PC방에 방문하기도 하였으나 처참하게 실패하였다. 롤 같은 경우엔 뉴비로서 새로 진입하기엔 그 체계가 너무도 복잡했고, 배틀 그라운드는 게임 도중 멀미 증세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내 평생동안 컴퓨터 게임으로서 즐길 마지막 게임은 아마도 ‘테일즈런너’가 아닐까 싶다.)
이렇듯 게임을 즐기지 않는 나이기에 ‘게임 제작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는 건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너무도 재밌게 읽은 소설이다. 게임에 관한 내용이 작품 안에 없는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게임에 대해 천재적인 재능과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또 이들이 계속해서 게임을 개발하면서 보완할 점을 찾아가는 그 과정 중에 게임 자체를 설명하지 않고 서사를 진행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이 책을 별 네개 반이나 줄 정도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일까?
물론 앞서 말한 게임과 관련된 여러 설명들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쓰여있는 것도 분명 영향을 끼쳤겠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이 작품이 내게 ‘게임 소설’로만 읽히지는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읽으면서 계속 느끼고 감탄했던 점 중 하나가 바로 인물들이 아주 ‘입체적’으로 그려져있다는 점이다. 즉 각각의 인물들에게 부여된 서사가 모두 풍부하다.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렸을 적 어떤 사건을 겪었기 때문에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등등의 서사를 캐릭터에 부여함으로써, 그렇게 만난 인물들이 하나의 게임을 완성하는 데에 빚어지는 수많은 충돌과 갈등들을 독자들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이해되는 것이고, 그러므로 이런 미숙한 인물들을 끝까지 응원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소설 속 인물들의 나잇대가 지금 이 소설을 읽는 내 나이와 비슷해서 더욱 몰입하고 공감하며 읽었는지도 모른다. 인물들이 보이는 어리숙하고 미숙한 모습에서 나의 행동이 겹쳐 보이기도 하고, 또 ‘게임’을 대하는 그들의 진심어린 모습에도 감복했을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나는 참 ‘책에 진심이다’ 내지는 ‘책에 미친놈이다’는 말을 종종(아니고 자주) 듣는데, 어쩐지 그런 말을 들어도 기분이 나쁘기는 커녕 오히려 좋아진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 내게 좋은 작품이었던 이유는 혹시 나 자신의 여러 모습들을 이 소설에서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들의 행보를 응원했던 것처럼, 나 자신의 앞으로를 스스로 응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덧. 게임을 좋아하는 내 주변 친구들에게, 특히 그 중에서도 책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친구들에게(책을 나만큼 좋아하는 친구는 없음...)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아니 생일날이 되면 꼭 선물해줄 것이다.
🗣“가끔, <CPH>를 개발하다보면, 그쪽 세계가 나한테는 더 진짜처럼 느껴져요. 이 세상의 세계보다. 하여간 나는 그쪽 세계가 더 좋아요, 완벽해질 수 있으니까. 내가 완벽하게 만들었으니까. 현실 세계는 마구잡이식 재난과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잖아요, 늘 그렇죠. 현실 세계의 코드에 대해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젠장 하나도 없잖아.” (531-532p)
🗣“게임이 뭐겠어?” 마크스가 말했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잖아. 무한한 부활과 무한한 구원의 가능성. 계속 플레이하다보면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는 개념. 그 어떤 죽음도 영원하지 않아,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니까.” (540p)